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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 50
The saxophone remains an iconic instrument in jazz, mastered by many musical geniuses. uDiscover Music celebrates the 50 best jazz saxophonists of all time.
많은 음악의 천재들에 의해 색소폰은 재즈에 있어서 상징적인 악기가 되었다. uDiscover Music는 모든 기간에 걸친 최고 50명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를 선정하고 기념하게 되었다.
There’s no doubt that, if he were alive today, 19th-century Belgian instrument maker Adolphe Sax would be extremely surprised – and pleased, too, no doubt – at how the saxophone, which he invented and then patented back in 1846, has become universally popular, and was crucial in defining the sound of a 20th-century-born musical style called jazz. Its status as one of the genre’s most important instruments is undisputed; even the most cursory glance at the list of musicians hailed as the best jazz saxophonists of all time reveals a number of one-off talents who have helped take the music in new directions.
만약 19세기 벨기에의 악기 제조자 였던 아돌프 색스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가 극도로 놀라고 기뻐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 1846년 발명하고 특허등록했던 색소폰이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20세에 탄생되었고 재즈라고 명명된 음악의 중요한 핵심 사운드로 자리잡게 되었기에 당연한 것이다. 이 재즈라는 장르에 있어서 색소폰이 가장 중요한 악기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비록 현재까지의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를 대충 살펴본다고 할지라도 하나하나의 재능들 모두가 음악이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Yet when he died in poverty, in 1894, Sax, who invented several other wind instruments besides the saxophone – all of which bore his name – would have seen that the saxophone had been adopted mostly by military marching bands, though his hope that it would feature prominently in classical music orchestras was not to be fully realised.
색소폰 뿐만아니라 모두 그의 이름을 붙인 몇가지의 관악기를 발명했던 색스가 가난하게 죽을 때까지는 색소폰은 대부분 군대의 행진곡을 연주하는 용도로 채택되었다. 비록 그는 크래식 음악의 오케스트라에도 탁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희망은 있었지만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Though marching-band music was part of jazz’s foundation, it was the trumpet, rather than the saxophone, that first took the spotlight.
비록 행진곡을 연주하는 악대의 음악이 재즈의 기초가 되었지만 색소폰 보다는 트럼펫이 가장 각광을 빋았다.
But the saxophone (the tenor and alto varieties) began to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big-band swing era, when Johnny Hodges and Coleman Hawkins
그러나 죠니 호지스와 콜맨 호킨스 시대에 즉 빅밴드의 스윙 시대때부터 색소폰은(테너와 알토가 다양하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었다.
But it was altoist Charlie Parker Stan Getz, Sonny Rollins and John Coltrane
하지만 알토연주자 찰리파커와 스탄 개츠, 소니 롤린스 그리고 존 콜트래인이 주역이었다.
Though this tenor trio’s influence (along with Parker’s) is powerful and continues to shape the saxophone’s narrative in jazz today, almost 60 years later, there have nevertheless been a raft of talented horn blowers – and there are many more still emerging – all armed with a unique sound, style and approach to their instrument.
비록(찰리 파커를 따라서) 세명의 테너 연주자들이 커다란 영향을 주었지만 오늘날의 재즈에 색소폰이 줄거리를 차지하게 되기까지는 계속되었다. 수많은 재능을 지닌 나팔 연주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지만-거의 60년이 걸렸다.
The saxophone, like the trumpet, remains an iconic instrument in jazz, and one that, through its indelible musical associations, has become totally synonymous with the genre.
트럼펫 처럼 색소폰은 재즈에 있어서 상징적인 악기가 되었다. 지금은 영원한 음악이라는 영역에 있어서 재즈라는 장르와 완전하게 같은 동의어가 되다시피했다.
Here, then, is our blow-by-blow countdown of the 50 best jazz saxophonists of all time…
여기에 현재까지의 최고의색소폰 연주자 50명을 한명 한명 수록했다.
With his raw, wailing tenor sax sound, Argentina-born Leandro “Gato” Barbieri ploughed a Coltrane-esque avant-garde furrow in the late 60s before making a more accessible form of music that embraced his Latin American roots. From the 70s onwards, Barbieri leaned towards smooth jazz settings for his music, though his brooding tenor saxophone never lost its visceral intensity.
50위 가토 바르비에리(1932-2016)
그의 특기는 테너 색소폰의 흐느끼는 소리이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르안드로 가토 바르비에리는 1960년대 후반이전에 콜트래인-아방 풍의-을 추종하는 연주자의 한명으로 그의 라틴 아메리카 뿌리의 음악을 수용하면서 보다 접근하기 쉬운 음악을 만들면서 자신의 경지를 만들었다. 70년대 후반부터는 그의 음악은 매우 강한 피가 흐르는 듯한 강한 소리의 주법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재즈 형태로 기울어졌다.
Baritone specialist Park “Pepper” Adams came from Michigan and was a stalwart of the Detroit scene, where he played with Donald Byrd in the late 50s and early 60s. An in-demand sideman due to the deep sonorities and dark textures he created on his baritone sax, Adams was an integral member of the Thad Jones/Mel Lewis Orchestra between 1966 and 1977.
49위 페퍼 아담스(1930-1986)
바리톤 전문 연주자 였던 파크 페퍼 아담스는 미시간 출신이면서 디트로이트 무대에 충실했고,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거기에서 Donald Byrd와 함께 연주했다. 그는 그가 만든 바리톤 색소폰의 깊은 반향과 어두운 느낌의 소리때문에 수요가 많은 사이드 맨 이었다. 아담스는 1966-1977사이에 싸드 존스/맬 루이스 오케스트라의 필수 단원이었다.
Regarded as an eccentric blind maverick by some for functioning as a one-man band onstage (he could play three horns at once and had a variety of exotic instruments dangling from his neck and shoulders
Kirk’s multi-tasking skills meant that his prowess on the saxophone has been overlooked. He was, though, a superb tenor saxophonist who was at home with both hard bop, modal jazz and R&B, and easily earns his place among the world’s best jazz saxophonists.
48. 라사안 롤란드 커크(1935-1977)
혼자서 밴드의(1인 밴드: 세개의 악기를 혼자서 동시에 연주하는데 그의 목과 어깨에 다른 악기를 목에 걸고 연주) 역할을 하는 기이하고 개성인 강한 능력을 가진 연주자로 기록된다.
커크의 그는 동시에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때문에 정작 그의 솜씨 좋은 색소폰 연주능력은 오랬동안 간과되었었다.(주목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의 고향에서 하드 밥(hard bob)과 모달 재즈(modal jazz)와 리듬 앤 부르수(R & B)분야에서 그는 최고의 테너 색소폰 연주자였고 세계 최고의 재즈 색소폰 연주가로서 그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An acolyte of John Coltrane (with whom he played between 1965 and ’67), tenor/soprano saxophonist and flautist Sanders helped to bring both a cosmic and deep spiritual vibe to jazz in the late 60s and early 70s. A prolific purple patch at the Impulse! label between 1969 and 1974 (which yielded ten LPs) cemented his place in pantheon of best jazz saxophonists. Sanders’ music also tapped into the music of other cultures.
47. 파로아 샌더스(1940년 생)
존 콜트레인의 보조자로서(1965부터 1967 함께 연주함)테너/소프라노 색소폰과 프룻 연주자로서 1960년대 말 부터 1970년대 초반의 재즈분야에 웅장하면서도 영적인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1969년과 1974년 사이에 임펄스 라벨(impulse label: 재즈의 한 분야) 많은 전성기를 누리면서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의 반열에 자신의 자리를 구축했다. 샌더스의 음악은 다른 문화의 음악에도 많이 이용되었다..
Mulligan’s resonant baritone sax appeared on countless recording sessions during his long and fertile career, including those by Miles Davis, Billie Holiday
46. 게리 물리간(1927-1996)
물리간의 깊게 공명하는 바리톤 색소폰 소리는 그의 길고도 풍부한 활동 중 음반 취업 분야에서 수많은 셀 수없는 업적을 남겼다. 이중에는 마일스 데이비스, 빌리 할러데이 그리고 데이브 브루 백의 음반 등에도 수록 되어있다. 물리건은 탁월한 편고자였고 또한 숙달된 혁신가였다. 1950년 챗 베이커와 피아노가 없는 4중주 밴드를 만들었다. 그는 보다 편안한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서부해안 스타일)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분류되었다.
Hailing from Pennsylvania, Brecker was a tenor saxophonist who was raised on a diet of jazz and rock so that, consequently, he never acknowledged musical boundaries. He played on a raft of pop and rock sessions in the 70s (for everyone from Steely Dan to Art Garfunkel), as well as co-leading the funky Brecker Brothers Band with his younger sibling, Randy. Towards the end of his life, he made records with more a straight-ahead jazz feel.
45. 마이클 브레커(1949-2007)
펜실바니아로 부터 환호를 받고 나타난 브레커는 재즈와 락으로만 활동한 테너 색소폰 연주자였다. 그 결과 그는 음악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1970년대의 팝과 락의 한 일원으로 연주활동을 했다.(스틸리 단으로 부터 아트 가르푼켈까지 모두와 활동) 그는 어린 동생인 랜디와 함께 펑키 스타일인 브레커 브라더스 밴드의 공동 리더로 활동을 했다. 그의 마지막 여생까지 그는 보다 정통파 재즈 느낌(필)의 수많은 음반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