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 시인'들의 문학 기행
1. 언제: 2019. 11(일).10. 09:00~17:00
2. 출발지: 서산의료원 정문 건너편 공터 09:00
3. 어디로: 미당 서정주 문학관(고창)
4. 참석자: 김기찬, 고귀숙, 신기원, 안준탁, 권은경, 김경아, 송국범.
미당, 서정주..그를 만나기 위해 아트 시인들이 만났다. 고창 선운사.. 질마재, 이곳에서 1915년에 태어났고 1929년 서울 중앙고등학교에 보결로 입학하기까지 14년을 살았던 곳이다. 시인은 극과 극 사이에서 찬반의 소용돌이가 진행중이다. 노벨상 후보에 다섯 번이나 오를 정도로 천재적 시적 감각에서 나오는 주옥 같은 그의 시와 친일 시인이라는 오명을 함께 가지고 현재에도 부침은 계속 되고 있다.
미당 시문학관은 초창기에서부터 여러번 찾았다. 그때마다 분위기는 달랐고 공간 배치도 바뀌었다. 친일 논쟁의 정점에서는 사람들 발길도 뚝 끊기고, 지자체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폐허같은 상태가 지속되기도 했다. 몇 년전에 방문 했을 때는 그의 친일 논쟁에 대해서 정면으로 돌파한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의 친일에 대한 글과 언론에 보도된 내용물을 전시하고 그에따른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입장이었다. 시문학관에서부터 그의 묘비에 이르기까지 노란 국화꽃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청소년 시절에 그토록 애절하게 읊었던 시를 다시 되뇌이던 그 생각을 하면서 지금쯤 만발해 있을 그 노란 국화 꽃을 생각하며 미당 시문학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두대의 승용차로 나누어 간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어가며 깊은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 달려가고 있다. 군산 휴게소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의 추억을 담으며 가을을 마시고 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리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그 그리움을 되새기면서 가을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가을은 추억의 계절이다. 쓸쓸함이 주는 겸허의 시간이다. 설렘과 쓸쓸함이 교차하면서 사색의 시간들에 감사하는 계절이다. 그 감사들로 인해 가을빛은 더욱 부드럽고 낙엽들은 더욱 다정스럽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래서 내 안의 빈터에 윤택함을 채워가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선정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아트 시인'이라는 명칭으로 첫 번째 토론을 가진 것이 2018.1.19일이었다. 4명으로 시작된 모임이 9명의 회원이 되었고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 영역을 충실히 수행 하면서 늘 책과 가까이 했던 사람들이기에 그 의는 크다. 우리가 하는 이 일은 우리의 차원을 넘어 곳곳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면서, 언젠가는 우리 사회에 독서문화가 활발하게 전개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책을 너무 안 읽기로 알려진 국가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은 반듯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다. 후배가 서점을 운영하는데 나를 만나면 늘 하는 얘기다. 너무 책을 읽지 않아서 걱정이예요. 서점을 찾는 사람과 몇 마디만 나누면 그 사람 수준이 금방 파악이 된다면서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다.
문학기행을 가면서 '내 데이트 시간'이라는 서정주 시집을 한 권씩 나누어 드렸다. 그의 주옥같은 시들이 문학기행을 가는 우리들에게 더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여러 시편들 중에 제목에 나와 있는 '내 데이트 시간'을 깊이 음미해 본다.
내 데이트 시간
서 정 주
내 데이트 시간은
인제는 순수히 부는 바람에
동으로 서으로 굽어 나부끼는
가랑나무의 가랑잎이로다.
그대 집으로 가는 길
도중에 섰는 갈대
그 갈대 위의 구름하고도
깨끗이 하직해 버린 내 데이트 시간은
이승과 저승 사이
그 갈대의 기념으로
내가 세운 절간의 법당에서도
아주 몽땅 떠나와 버린 내 데이트 시간은
인제는 그저 부는 바람 쪽
푸르른 배때기를
드러내고 나부끼는
먼 산 가랑나무 잎사귀로다.
... 내 데이트 시간은? 바람과 햇빛과 더욱 쓸쓸해진 늦 가을 낙엽들이다. 청춘의 열병이 아니라 머무는 그 자리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자연과의 데이트 시간이 더욱 감미롭고 따스하지 않을까... 오늘은 서정주 시인이 묻힌 산소 주변의 노랗게 핀 내 누님같은 꽃과의 데이트 시간이 아름다울 것이다. 단풍에 물들은 선운사 계곡과 함께 즐기는 데이트는 더욱 멋스럽지 않을까..그렇다 이제 내 데이트 시간도 세월과 함께 더욱 새롭고 더 깊고 은은하게 변하고 있다. 어느덧 '미당 시' 마당에 들어섰다.
시인의 생가 바로 옆,선운분교가 폐교되자 2001년 미당 시문학관으로 다시 살아난 곳이다. 폐교를 최대한 친 환경 공법으로 리모델링을 하여 다시 아름다운 공간으로 탄생 되었고, 몇 차례의 공간 배치 및 전시물의 배치를 바꾸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파킹을 하고 느낀 첫 인상은 고즈넉함이었다. 쓸쓸함과 애잔함이 밀려왔다. 가을의 쓸쓸함과 시 문학관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의 가을빛 단풍, 그리 많지 않은 노란 국화꽃이 화려한 잔치 뒤끝에서 느끼는 애잔함이었다.
늦가을을 사랑하는 이유다. 화려한 잔치 뒤끝에서 오는 공허함, 쓸슬함, 그 고즈넉하고 아리한 분위기가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시인의 구절이 가슴속을 후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학관에 들어서자 두 서너명의 관람객이 있을뿐, 안내조차 없다. 한 3년전 쯤 찾았을 때와는 또 다른 형태로 변형이 되었다. 영상실에서 서정주의 삶에 대해서 다시 보는 시간을 시작으로 천천히 둘러본다. 우리 회원 중에는 처음 오는 회원이 대부분이라 그 감동 또한 큰 것 같다.
친일의 행적이 시인을 기리는데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사실을 느낌으로도 안다. 친일에 대한 논란을 정면 돌파 하면서 안간 힘을 쏟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고 곳곳에서 찬반 논쟁으로 뜨겁다. 세워진 시비가 철거 되기도 하고, 시비 건립이 반대에 부딪치면서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안타까울 뿐이다. 그의 작품성이 친일을 덮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시 또한 폄하할 수 없다는데 많은 고민이 있는 것이다.
문학관과 그의 생가를 둘러 보는 동안 잘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지도층에 있는 사람, 그 지식인들의 삶은 더욱 그렇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일제 강점기에 무릅을 꿇었다. 이광수가 그렇고 최남선도 그랬다. 미당도 무너졌다. 시대가 준 아픔이고 안타까움이다. 우리는 나는 그런 시대 상황에처했을 때 어떻게 했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답이 나왔지만 실제로 수많은 회유와 압박이 온다면 그 때도 목숨걸고 저항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미당이 묻혀 있는 선산으로 이동한다. 6천여평으로 조성된 이곳은 적당한 높이와 생가와 시문학관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조성되어 있다. 이 넓은 선산에 국화꽃 향기가 진동했다. 그토록 내 누님같은 국화를 사랑한 시인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서는 2004년부터 질마재국화꽃 축제가 벌어졌고, 2009년부터는 질마제문화제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가을의 쓸쓸함 속에 피어난 화려한 국화꽃 향기는 볼 수 없었다. 금년에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가꾸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작년에 심어졌던 국화가 잡초들과 함께 빛바란채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시인은 아마도 어릴적 이 동산을 오르면서 시적 감수성을 쌓았을 것이다. 그의 외할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적 감각을 키운 시인은 이곳에서 바다와 소요산, 바닷 바람을 맞으며 감성이 자랐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라고 했을까? 질마재 고개를 넘나들면서 바람을 밪았고, 선운리 고향 앞바다 갯벌의 바람을 맞으며 감성이 자랐을 것이다. 오늘도 갯벌을 타고 가을 바람이 분다. 하늘과 바다와 산과 자연들을 바람이 훓터 지나간다. 그 바람과 함께 세상의 생명들을 지켜냈다.
미당 마을을 뒤로하고 미당마을을 떠나 선운산 앞 풍천장어 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선운사를 찾은 사람들로 식당은 붐비었다. 늦가을 정취를 담아볼 요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주말은 이름 있는 장소엔 늘 사람들로 꽉 찬다. 조용함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말은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주말을 택한 대가다. 이왕 현상황을 탓해봐야 소용 없는 일이다. 즐기면 된다.
실은 미당문학관을 들어섰을 때부터 시장기가 돌았다. 그러나 시인의 방에 들어서자 시인의 발자취와 그의 작품세계에 심취하여 시장기도 잊고 말었던 것이다. 배고픔과 풍천장어의 맛에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먹을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맛집을 열심히 찾는 이유다. 여행을 즐겁게 만드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먹을거리다. 영양보충으로 만점이다. 식사시간 중간쯤에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고 식당 안도 여유가 생기면서 우리도 느긋해졌다. 식사 시간이 끝나니 벌써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무래도 서운사 산책은 무리다. 모처럼 선운사 단풍에 물들고 싶었는데 아쉽기만 하다.
'아트 시인'에서 처음으로 문학기행을 시도했다. 모두들 만족스러워 했다. 그 어느 여행에서 느끼지 못했던 뿌듯함과 자부심 가득했다.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시행하지 못해던 문학기행을 통해서 함께 공유할 대화거리가 많아졌고, 더욱 가까워졌다. 미당 서정주, 그가남긴 많은 시들이 국민의 사람을 받았고 추락도 했다. 그는 장수 시인이다.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도 했다.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세계의 수많은 산들의 이름을 매일 반복해 암기했다. 그의 사후 친일 적폐 청산에서 그는 혹독한 서리를 맞는다. 언젠가는 있어야 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혹독한 형벌은 아마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국민들의 분노도 이해한다. 그 분노의 시간들은 필요하다.
언제까지 분노만 해서는 안 된다. 예술과 문학은 국경과 이념을 초월해야할 것이다. 공산주의는 나쁘지만 그 공산체제에서 이루어지는 문학작품이나 예술세계는 별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이 밉지만 일본인의 시와 소설, 예술작품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념논쟁은 논쟁이고 역사청산은 꼭 해야만 되는 당위지만 정치적 의미와는 다른 작품세계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
지식인의 삶은 그래서 어욱 책임 있게 행동하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만큼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미당 서정주 그의 행적과 삶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의 주옥같은 시는 사랑한다.
서산에 도착했을 때는 빗방울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