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서울교구 주낙현 요셉 신부님께서 성공회신문에 연재하신 시리즈 [성찬례 해설]을 공유합니다.
주낙현 신부님께 감사합니다.
원문 출처: [성찬례 해설 5] 정심기도 - 마음을 깨끗이 하여 - 성공회신문 (skhnews.or.kr)
[성찬례 해설 5] 정심기도 - 마음을 깨끗이 하여
주낙현 요셉 신부
전례의 시작은 머무는 곳을 떠나 예배 공간인 성당으로 떠나는 일이라고 했다. 이러한 순례로 성당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고 환영하며 예배를 준비한다. 신자들은 성당 입구 세례대에 손을 담가 온몸에 성호를 그으며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그 은총에 감사한다. 그런 다음 자리에 앉아 예배를 준비한다.
성찬례를 시작할 때 드리는 첫 기도는 <정심기도>(마음을 깨끗이 하는 기도, the Collect for Purity)다. 이 기도는 예배하는 마음을 준비하여,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놓기를 바라는 다짐을 빼어나게 담고 있다. 정심기도는 성찬례의 준비 기도로 적합하지만, 어떤 기도 모임이나 예배를 시작할 때 사용해도 좋다. 또는, 하루의 일상을 시작하거나 마칠 때 사용해도 좋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소원을 다 아시며,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사오니,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우리 마음의 온갖 생각을 정결하게 하시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공경하여 찬송하게 하소서" (기도서 244쪽)
정심기도의 역사는 매우 길다. 교회의 공식 전례에서만 1천 년이 넘도록 교회가 함께 바쳐온 기도다. 이 기도는 시편 51편에 담긴 참회의 마음과 표현을 잘 담고 있다. 서방교회 안에서 지성적인 신앙과 전례의 부흥을 일으켰던 9세기 수도자 성인 알퀸(Alcuin)의 작품이라고도 말한다. 특별히, 10세기와 11세기 영국 문화의 영향이 컸던 레오프릭 미사와 사룸 미사에 들어간 이래 점차 큰 사랑을 받았다.
정심기도는 원래 성찬례 시작 전, 예복실에서 집전 사제가 예복을 입으며, 전례를 준비하며 바치던 기도였다. 성령 청원의 노래(Veni Creator Spiritus)를 부른 뒤, 정심기도를 바쳤다. 이 아름다운 기도를 신자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한 사람은 성공회 기도서의 아버지인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다. 크랜머는 1549년 첫 기도서에 라틴어 기도를 영어로 옮기면서 몇 가지를 수정하여 수록했고, 예복실의 사제 기도에서 빼내어 1552년 기도서에서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기도로 옮겨 놓았다.
기도문에 담긴 여러 말의 뜻을 헤아려 본다.
"전능하신 하느님" - 모든 예배는 공동체로 모인 신앙인 개인과 교회가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깨닫고 그분을 함께 경배하는 일이다. 그래서 시작의 말에는 하느님 홀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켜주시며,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신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 특히, 크랜머는 원래 라틴어 기도에 ‘전능하신’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이를 더욱 강조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며" - 그리스도교는 마음의 변화를 요청하는 신앙이다. 우리 신앙은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의 상태를 속속들이 아신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모든 소원을 다 아시며" -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상태를 헤아리실 때, 우리 소원을 먼저 살펴보신다. 크랜머는 라틴어 원문에서 ‘말씀하신다’를 ‘아신다’로 고쳐서 하느님의 능력과 우리 인간의 갈망을 더 깊이 연결하였다. ‘다 아시는’ 하느님은 우리를 최선의 상황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확신이기도 하다.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사오니" -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진 존재다. 예배는 우리 자신의 치장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고 투명하게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마음의 온갖 생각을 정결하게 하시어" - 사람이 세상에서 얻은 생각은 언제나 마음을 더럽힌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는 사람의 삿된 생각을 씻어서 우리 자신을 주님의 뜻에 맡겨 봉헌하려는 까닭이다. 깨끗이 하려는 인간의 다짐과 깨끗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행동이 예배에서 만난다.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 변화의 능력인 성령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면, 우리는 하느님과 더 깊은 친교와 사랑으로 나아간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서로 용서하며 새로운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공경하여 찬송하게 하소서" - 여기서 교회의 신앙이 드러난다. 신자와 교회의 삶은 거룩하신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 거룩함을 함께 축하하는 일이다. 이로써 서로 다른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맞추고, 우리는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인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정결하게 되어 우리가 하느님의 것이 되었으니, 주님께 영광을 돌리자. 이제 주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
출처 : 성공회신문(http://www.skh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