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6장10~18절
제목 : 완전한 승리
6: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 블레셋 제사장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확실히 규명하기 위하여(9절) 이처럼 어미 암소를 젖먹이 송아지들로부터 격리시켰습니다.
6: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수레에는 여호와의 궤 뿐만 아니라 그 궤로 인해 발생된 독종 재앙과 쥐 재앙을 형상화(形象化)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도 함께 보내졌습니다(4절).
이것들은 여호와의 궤를 진정시키기 위한 속건 예물용으로서(3절), 상자에 담겨져 여호와의 궤 옆에 놓여졌습니다(8절).
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암소가...가며...울고 - 이와 같은 현상은 이 암소들로부터 새끼를 떼어 놓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들이, 새끼 송아지에게 모성적(母性的) 본능이 이끌리면서도 하나님의 강권 하시는 손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잘 보여줍나다.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 이같은 사실은 블레셋의 제사장들이 스스로 기준을 세 운 바(9절)와 같이, 블레셋에게 임한 재앙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았음을 명확히 보여 줍니다.
대대로(비메실라 아하트) - 문자적으로는 '단 하나의 큰 길로'(along one highway, RSV)의 뜻입니다.
결국 이것은 암소들이 가장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로 행했음을 암시해 줍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 여기서 '치우치다'에 해당하는 '수르'는
'빗나가다', '기울다', '떠나가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란말은 종종 성경 안에서 철저한 순종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신 5:32;17:11;수 1:7).
여기서는 암소들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정해진 목적지 벧세메스로 곧바로 갔음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1)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소들이 수레를 이끌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는 점과,
(2) 더군다나 젖 빨리는 새끼 송아지들을 둔 상태에서 좌우로 치우침 없이 곧장 갔다는 점은 분명 이 소들이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일깨워 줍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천상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인 이십니다.
블레셋 방백들은...따라가니라 - 블레셋 방백들의 이와 같은 행동은
(1) 만약의 돌발 사태에 신속히 대처하며
(2) 재앙의 원인을 직접 확인키 위함이었습니다.
6: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긴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던 만큼, 법궤의 귀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특히 제사장의 성읍(수 21 :13-15)인 벧세메스 사람들에게 있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골짜기 - 이는 예루살렘 서남쪽 약 21km지점에서 지중해 쪽의 서북 방향으로 32km 가량 이어져 있는 소렉 골짜기이며(삿 16:4), 오늘날의 '와디 에스 사랄'(Wady es Sarar)과 동일 지역입니다.
한편 삼손의 아내 들릴라가 살았던 딤나(Timnah)는 이 골짜기의 서남쪽 입구에 위치했었습니다(삿 14:1).
그리고 '벧세메스'는 이 골짜기 남쪽 입구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밀을 베다가 - '밀'(wheat)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곡식이었습니다(왕상 5 : 11).
그리고 팔레스틴 지역에서 이 '밀' 수확은 보통 5, 6월 경에 이루어집니다(Robinson). 한편 언약궤가 돌아온 때가 마침 밀을 수확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 오는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목격될 수 있었다.
눈을 들어 - 이 말은 먼 곳의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보다 자세히 보려고 할 때 취하는 자세로서 성경의 관용어입니다(창 24:63;33:1;민 24:2;수 5:13;삿 19:17 등).
6: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수레가...여호수아의 밭...이르러 선지라 - 수레를 끄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레가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까지 와서 딱 멈춰 선 것은 블레셋에 대한 재앙이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내려졌음을 분명히 시사해 줍나다(9절).
그리고 여기서 '여호수아의 밭'(세데)은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세데)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분명히 옮겨쟝음을 강력히 시사하려는 저자의 의도에 따라 언급되었습니다.
비록 여기의 '여호수아'가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가나안 땅 정복의 위대한 지도자인 눈의 아들 여호수(Joshua)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였던 그 사람의 밭에 하나님께서 수레를 멈춰 세우신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큰 돌 - 여기서 '큰 돌'은 '돌'(에벤)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추르)를 뜻하지 않습니다(창 28:11; 출 31: 8; 수 4:5).
단지 땅 위로 드러난 굵직한 자연석(自然石)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이 큰 돌은 제단 대용으로서의 구실을 했습니다(Pulpit Commentary).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물(至誠物), 곧 법궤를 운반했던 수레는 절대로 다른 세속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없고, 다만 번제를 위한 땔감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는 벧세메스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에 따라 행해졌을 것입니다.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 번제물은 반드시 수컷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레 1: 3-13>, 여기서 암컷을 번제로 드린 것은 특별히 이 소들은 성물을 운반하여 다시는 세속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곳 벧세메스의 희생 제사는 반드시 중앙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여호와의 명령(신 12:5-7, 11-14)에 심히 위반되는 제사는 아니었습니다(Keil).
왜냐하면 비록 이 희생 제사가 실로(Shiloh)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행해졌지만
(1) 실로가 완전한 중앙 성소로서 하나님에 의해 지정된 곳이 아닐 뿐 아니라, 당시는 블레셋 족속에 의해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고 (4:10 주석 참조).
(2) 또한 무엇보다 그 때에 벧세메스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놓여져 있었으며,
(3) 그리고 그 제사가 레위인 제사장들에 의하여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집행됐고(15절),
(4) 저자도 그 제사를 잘못된 일로 언급치 않고 있다는 점에서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F.R. Fay).
한편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제사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법궤를 다시 돌려 보내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였고, 이스라엘의 영광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음을 기뻐하였다<13절>.
6: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레위인은 - 여기의 이 '레위인'은 벧세메스에 거주하도록 지정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벧세메스는 여호수아에 의해 아론 자손의 성읍, 곧 제사장의 성읍으로 지정된 지역 이었습니다(수 21:13-15).
따라서 여기 '레위인'은 아론의 후손들로서 곧 제사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Mathew Henry, F.R. Fay).
여호와의 궤와...큰 돌 위에 두매 - 이와 같은 궤 운반 행위는 오직 고향 자손 레위인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민 3:25-4:28).
한편 고핫 자손 레위인(제사장)들인 벧세메스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큰 돌 위에 두었는데, 이는 큰 돌 곧 커다란 자연석(自然石)을 순수하고 깨끗한 것으로 여기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에서 볼 때(창 31 :45; 출 20:25; 신 4:13; 수 4: 3 ;왕상 7:9), 그 당시의 상황에서 벧세메스의 레위인들은 언약궤를 수레에서 옮겨놓을 장소로 그곳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금 보물 담긴 상자 - 당시 레위인들은 블레셋 방백들이 함께 보낸 이것을 언약궤가 놓여 있던 '큰 돌' 위에 같이 올려 놓았다. 이와 같이 한 이유는 당시 레위인들이 그 상자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제 - 이것은 성경에서 주로 '화목제'(和睦祭, peace offering)를 가리키는 말입니다(민 7: 17, 23; 10 :10 ;수 22:23; 왕상 8:63; 대하 30:22).
6: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블레셋 족속을 대표하는 다섯 방백 들은 법궤의 귀환 과정을 빠짐없이 모두 목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범궤로 인해 파생된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분명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마음 속 깊이 깨닫고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도시 에그론과 그들의 신 다곤에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6: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아스돗 - '진'(陳)이란 뜻으로 가사 북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교통 관문이다. 신약 시대에는 '아소도'란 명칭으로 불리웠습니다(행 8:40).
가사 -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80km지점, 지중해 해안으로부터는 약 5km지점, 아스글론으로 부터는 남쪽으로 약 20km지점에 위치했습니다. 당시 이 도시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남서쪽으로는 애굽으로, 북쪽으로는 수리아 , 메소포타미아로 통하는 군사, 무역용 도로가 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도시는 군대 및 대상(隊商)들이 취거나 물을 공급받았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습니다(Mare).
아스글론 - 이곳은 아스돗과 가사의 중간에 위치한 지중해변의 비옥한 도시입니다.
가드 - 아스돗 동쪽 약 20km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도시로, 오늘날 '텔 엘 사피'(Tell el-Sahfi)로 추정된다. 5 : 8 ; 수 11 :22;13: 3 주석 참조.
에그론 - 지증해 연안에서 동쪽으로 약 14km, 아스돗 북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다섯 성읍 중 하나입니다. 수13: 3주석 참조.
6:18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
본절은 사본(寫本) 전수 과정상 약간의 문제가 내포된 구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맛소라 사본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본절 중 '웨에드'('그리고~에 이르기까지')를 '웨에드'('그리고 증거')로, '아벧'('슬픔', '통곡')을 '에벤'('돌')으로 고쳐 읽어야 합니다(Keil & Delitzsch, F.R. Fay, R. Payne Smith).
그렇게 볼 때 본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드린 바 금쥐는 모든 견고한성읍과 시골 동리 곧 다섯 방백에게 속한 사람의 모든 성읍의 수효대로였더라. 그리고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서 오늘까지 증거가 되니라".
견고한 성읍 - 높은 성벽이 둘러쳐 있고 문과 빗장이 있었던 요새화된 성읍을 가리킵니다(신 3:5).
시골 동리 - 이것은 '견고한 성읍'과는 반대 개념으로서, 저지대에 위치하였고 성곽을 갖추지 못한 작은 마을을 가리킵니다(겔 38:11;슥 2:4).
그 돌은...오늘까지 있더라 - 성경에서 '돌'은 특별히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사건들을 세월이 흐른 후에도 생생히 일깨우게 할 증표로서 종종 언급되곤 합니다(창 31 :52; 수 4: 5;24:27).
따라서 여기의 '큰 돌' 역시 빼앗겼던 언약궤를 다시 되찾은 기념비적 사건을 후일에 되새기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한편 '오늘까지'는 본서를 기록할 그 당시까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