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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잠언10장1~17절
제목 : 지혜자의 입술
오늘 둘째 모음집(10:1~22:16)은 375개의 잠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잠언은 그 자신의 3천 잠언 중에서 선정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왕상4:32에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10장에서 15장까지 나오는 절 대부분은 대조적 평행법을 쓰고 있습니다.
절 대부분의 둘째 형이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 절 한 절 주제가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절에서 다음 절로 넘어 가기 전에 독자로 하여금 그 한 절에 담긴 사상을 파악하고 묵상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장은 오랜 경험과 객관적인 관찰에서 얻어진 다양한 잠언들이 일정한 문맥 없이 등장합니다.
의로운 삶과 죄악된 삶은 말과 행실로 드러내며 그에 따른 보응을 받게 됩니다.
1. 지혜로운 아들과 미련한 아들(1~5절)
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라(1절)
“[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1:8부터 계속된 일단의 충고적 강화들이 일단락됩니다.
곧 이제까지 지혜의 원리적측면과 특별히 젊은이들에 대한 음행의 예방에 초점을 두어 지혜의 수용을 촉구한 저자는 여기서부터 구체적인 대조 문구의 다양한 비유적 예증들을 통해 지혜를 수용한 자와 이를 배격한 자의 실상, 그리고 그 결과들을 특별히 논리나 주제의 흐름 없이 단상적(斷想的)으로 기술해 갑니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 1:1에 이어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이 말은 본서에 있어서 이러한 형태의 서두들이 모두 새로운 단락이나 새로운 저자의 저작을 언급할 때 쓰여 졌다는 점에서(1:1;25:1;30:1;31:1)본장이 이전까지의 잠언과
구분되는 새로운 단락의 시작임을 암시합니다.
한편 70인 역은 이 구절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아비, 어미 -여기서는 직접적으로 혈육적 의미의 부모를 지칭합니다.
또한 이는 단어의 중복을 피하고 대조 문구의 형식을 살리기 위해 번갈아 가며 개별적으로 쓰여 졌습니다.
한편 지혜를 배격하는 것 자체가 곧 악이라는 점에서(8:12, 13),
'미련한 아들'은 그 사악한 행위로 인해 부모를 비통에 빠지게 하나,
'지혜로운 아들'은 지혜를 통해 얻어진 영적 통찰력과 탁월한 도덕적 성품으로 부모의 영광을 드러나게 합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한다. 그러나 미련한 아들은 어머니를 근심하게 한다” 여기서 첫째 형에서 ‘아버지’, 둘째 형에서 ‘어머니’를 사용하느 것은 격언 문학의 전형입니다.
즉 지혜로운 자는 ‘아버지 만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도 기쁘게 하고’ 미련한 아들은 ‘어머니만 근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 양자 다 이 격언에 관계하는 것입니다.
양부모가 그의 자식이 지혜로운가 미련한 가에 따라 똑 같이 기쁨을 맛보던지, 똑 같이 슬픔을 맛 보는 것입니다.
지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 특히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 잠언은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2절)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 '불의의 재물'은 '부정하게 획득한 재물'이란 뜻이며(4:17;눅 16:9),
'무익하여도'는 '역속적인 행복이 없다'란 종말론적 의미를 가지는 바(11:4), 본 문구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은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얻어진 재물이 당시에는 육체적 안락과 감각 적인 쾌락을 가져올지 몰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영원한 행복의 조건은 결코 될 수 없으며, 궁극에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마16:26).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 '공의'(체다카)는 문자적으로 단순히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인) 의로움'(2:9)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그 문맥상의 의미로 보아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얻은 재물로 남을 구제하는 것을 뜻합니다(Delizsch).
따라서 본 문구는 그러한 행위가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보응을 가져오게 될 것임을 주지시키고 있습니다(시 112:9).
*재물이 무익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재물이 불의한 방법으로 얻어진 것일때 그 재물은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재물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물론 정직하게 벌지 않은 돈도 어느정도 기쁨을 주고 잠시 쓸모는 있겠지만 그것이 오래 동안 만족은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집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공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 같은 돈이라고 해도 나 자신 만을 위해 쓰는 돈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는 돈이 될 때 그것이 공의의 재물이 될 것입니다.
3) 부리런 자와 계으른 자의 대조(3~5절)
(1)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3절).
“[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 6:30에 근거한 표현으로 이미 그곳에서 '영혼'(네페쉬)이 '배'로 표현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여기서
'영혼'은 인간의 전인적인 삶과 관련한 기본적인 욕구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본 문구는 의인이 그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됨으로써 영적, 육적 삶에 결핍된 것이 없이 항상 풍요로울 것이란 의미입니다(시 37:35;마6:33).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 여기서 '소욕'(하와트)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심하게 탐하다'란 뜻이며,
'물리치시느니라'(예헤도프)는 '밀고 내던져서 쫓아버리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본 문구는 2절 상반절과 유사한 내용으로 부당한 사리사욕으로 얻어진 악인의 재물은 오래지 않아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상실되며 따라서 그 삶이 핍절하게 될 것임을 보여 줍니다.
(2)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4절)
본절에서 상반절의 손(카프)은 '(주먹을) 쥔 손'이란 뜻이며,
근육이 이완되어 손이 오무라져 있는 상태를 비유한 것으로 아무 일도 하려하지 않는 게으름의 상징으로 쓰여졌으며,
하반절의 손(야드)은 '펼친 손'이란 뜻으로 근육의 팽팽한 긴장 상태를 비유하여 다분히 활력있고 근면함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된 것입니다(12:24).
(3)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5절)
여름에 거두는 자. - 여기서 '여름'(카이츠)은 문자적으로 '추수기'를 가리키는 바(6:8주석 참조), 이는 제 철에 곧바로 추수하는 부지런한 자를 가리킵니다.
추수 때에 자는 자. - '추수 때'는 6:8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자는'(라담)은 문자적으로 '기절 시키다'란 뜻으로 마치 죽은 듯이 깊게 잠든 상태를 나타내는 바, 본 문구는 제철에 할 일을 뒤로 미룬 채 나태하고 무력하게 지내는 자를 비유합니다(6:9, 10).
*놀고 먹는 것이 지혜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덜 일하고 많이 벌려고 합니다.
공돈을 좋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지혜가 아닙니다.
2. 의인의 입과 악인의 입(6~11절)
1)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6절)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거늘. - LB는 이를 '의인은 머리에서 발 끝까지 축복으로 덮여 있다'라고 번역합니다.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피 레솨임 예카세 하마스) - 문자적 의미는 '악한 자의 입은 악으로 덮여 있다'입니다.
본 문구에 대해서는 상반절과의 호응 문제 때문에 학자들 간에 다양한 견해
가 있습니다.
곧 '악이 악인의 입을 덮는다'(Delitzsch, Hitzig),
'악이 악인의 입에서 가깝다'(Doderlein, Dathe),
'악인의 입이 악으로 찬다'(Umbreit),
'악인의 입이 슬픔으로 덮인다'(LXX),
'포악이 저주로 악인에게 돌아가고 그때 그 저주가 그들의 입을 막아 침묵하게 한다'(Fleisher) 등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원전상의 의미대로 첫 번째 견해가 타당합니다.
곧 '입'이 그 마음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악이 악한 자의 전인격을 감싸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악'이 악한 자의 전체적인 특성으로 규정 지워 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상반절에서 축복이 의인을 감싸고 있는 궁극적인 특성이라는 점과도 잘 부합됩니다.
2)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7절)
의인과 악인의 현세적 삶을 묘사한 6절과는 달리 그들의 사후의 일을 언급합니다.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 여기서 '기념'(제케르)은 원어상 '기억하다'란 뜻이며, '칭찬하거니와'(베라카)는 '축복하다'란 의미인 바, 본 문구는 의인이 그 생전의 덕 때문에 두고두고 후세 사람들의 축복 속에 기억되리란 의미입니다(시 72:17;단 12:3).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 악인의 현세적인 자취가 썩어 없어지듯 후세 사람들의 기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란 의미와 그에 대한 기억이 추하고 냄새나는 썩은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혐오스러울 것이란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3)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8절)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 자의적으로 행하지 않고 지혜의 교훈에 순종하며 그 뜻대로 실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 - 문자적 의미는 '입술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곧 지혜의 특징이 자신의 말보다 듣는 것을 우선하는 점에서 본 문구는 지혜의 권고를 경청하기보다는 무익한 자랑과 교만의 방종한 말로써 그 교훈들을 배척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가리킵니다(Delitzsch, Zockder).
* 지혜로운자는 가르치면 잘 듣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배우려 하기보다 말이 많고 아는 것에 비해 자기 자랑이 많습니다.
4)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9절)
바른 길로 행하는 자. - 그 삶이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으로 일관되어 고의적으로 자신을 숨기거나 은폐시킬 이유가 없는 자를 가리킵니다.
한편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은 그러한 의미에서 본 문구를 '순박하게 해하는 자'로 번역했습니다(마10:16;18:1-4).
드러나리라(이와데아) - 문자적 의미는 '알려진다', 곧 은밀하게 모의한 악인들의 궤계가 공공연하게 알려지고 노출되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엄중하게 심판받고 책망되어질 것임을 보여 줍니다.
5)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느니라(10절)
*6: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눈짓하는 자.-문자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눈을 까박거리다'란 뜻으로서, 속이는 자들의 일반적인 특성으로(10:10;시35:19)나타납니다.
*시35:19 “부당하게 나의 원수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6)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11절)
한편으로는 생명의 또 한편으로는 사망의 발생 동인이 되는 말의 양면성을 보여 줍니다.
생명의 샘 - 이는 '의인의 입'과 관련되어 그 말에 대한 특성을 보여 주는 바, 거룩한 물리 성소에서 흘러나와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기운을 불어넣어 주듯(겔47:1-12) 지혜의 교훈을 수용한 의인의 말이 상대방에게 항상 새로운 생기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3.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12~17절)
1)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12절)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 본절 하반절을 고려해 보건대 보복의 악순환이라는 모순을 가져왔던 고대 히브리 사회의 동해보복(同害報復) 사상을(민 35:16-21;신 19:21)유의한 듯한 본 문구는 모든 다툼의 원인이 사악한 증오의 감정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6:14 주석 참조).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 여기서 '허물'(폐솨임)은 '이탈하여 반발하다'란 뜻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 특별히 개인적, 직접적 피해를 유발시키는 범죄를 가리키며, '가리우느니라'(테카세)는 '덮는다'란 뜻입니다.
사랑은 자신에게 가해진 범죄의 직접적 피해로 유발되는 모든 적대감과 증오의 감정을 순화시키며 그 범죄 자체를 용서하게 합니다(고전 13:4;약 5:20;벧전 4:8).
2)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13절)
여기서 '채찍'(쉐베트)은 원어상 '바로 잡다'란 뜻을 함축하는 바,
상반절과의 호응 관계를 고려할 때 본 문구는 무익하고 타락한 말을 발하는 지혜 없는 자에게는 그 입에서 올바르고 선한 말이 나올 수 있도록 교정을 위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19:29;26:3, Delitzsch).
3)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14절).
지식을 간직하거니와(이츠페누 다아트)-문자적 의미는 '지식을 숨기다.'
이는 곧 적절한 때를 위하여 보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 문구는 지혜 있는 자는 자신의 지식을 시의 적절한 상황에서만 절제하여 사용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 여기서 '가까우니라'(케로바)는 '근접하다'란 의미와 함께 '가까운 이웃'이란 뜻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미련한 자의 절제할 줄 모르는 무분별한 말은 자기 스스로를 올무에 걸리게 함은 물론(13:3) 그 이웃까지도 치명적인 곤경에 빠뜨리게 한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4)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15절).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 '견고한 성'은 강력한 보호나 힘을 의미하는 용례로 많이 쓰여진 말로(시 18:2;59:17:62;2) 여기서는 확고한 의지 기반을 의미하며, 적극적인 활력의 동인을 나타냅니다(Delitzsch).
따라서 본 문구는 재물 자체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므로 땀 흘려 벌어들인 재물을 귀하게 여기고 또 값지게 사용할 것을 가르칩니다.
이는 불의의 재물 혹은 악인의 소득이 무익하다고 강변한 2, 16절 내용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량한 로맨티시즘이나 게으름으로 말미암은 궁핍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가난한 이웃을 구제할 수 있도록 열심히수고하여 재물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본장 전체의 문맥으로 미루어 보건대, 본 문구는 지혜의 소유에 대한 비유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 구약의 용례상 '가난'(달림)이 비천함과 모멸의 상징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가난한 자'는 단순히 물질적으로 궁핍한 자를 가리키기보다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자를 가리킵니다(LXX).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의 특성이 무력하고 쉽게 절망하는 것이기에 이들은 모든 외적 유혹의 영향 속에 쉽게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곧 지혜 없는 자의 특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바, 이들의 결국은 완전한 파멸뿐입니다.
5)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16절)
의인의 수고. - 여기서 '수고'(페울라트)는 원어상 '일'이란 뜻과 함께
'보수'(報酬)란 의미도 함축하고 있는 바, 이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법을 통해 획득한 의인의 소득을 가리킵니다(wages, NIV;earnings, LB).
죄(하타트) - 이는 원어상 죄의 결과로 주어지는 '형벌'을 가리키는 바(punishment, NIV), 이는 '죄' 그 자체를 뜻한다기보다는 죄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엄중한 심판적 형벌을 의미합니다(2절 주석 참조).
6)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17절)
'그릇 가느니라'(마트에)는 문자적으로 '길을 잃고 방황하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본 문구는 '징계'(3:11 주석 비교), 곧 바르게 하기 위한 견책을 배격하고 멸시하는 자는 상반절에 언급된 '생명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결국에는 영원한 파멸의 길로 빠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은 나의 말이 상대에게 폭력이 되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사랑이 있으면 서로 상대에게 허물이 있어도 덮어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조그만 한 허물도 들추어 다투게 됩니다.
우리는 쉽게 말하고 쉽게 잊어버립니다.
미련한 자의 입은 결국 멸망입니다.
훈계를 받아드려 지키려는 사람은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의인을 돌보시고 악인을 벌하시는 분입니다(2,3절).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 불의와 공의를 눈여겨보시며, 공의를 지켜가십니다.
혹 불의의 재물로 자신의 미래와 안전을 보장받으러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필요를 채우시고 책임져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더욱 힘써 의를 행하십시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때와 시기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4,5절).
비록 오늘날의 현실은 부지런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게으름은 가난을, 근면은 부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파종 때에는 씨를 뿌리고, 추수 때에는 결실을 거두어들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내게 맡겨진 일은 무엇이며, 지금은 어떤 일을 해야 할 때인가요?
2) “말”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입니다(6~11절).
악인은 독을 머금은 뱀처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아무도 기억하고 싶지 않는 사람, 잊고 싶은 이름이 되지만, 상대를 살리고 유익을 끼치는 의인은 기리고, 감사하고 싶은 이름으로 남게 됩니다.
내 입에서는 “생명을 머금은 말”과 “독을 머금은 말”중 어떤 말이 나옵니까? 또한 다른 이들에게 내 이름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3) 명철하고 지혜로운 자는 적절한 때에 신중하게 말합니다(13,14절).
그에 반해 어리석은 자는 경솔하게 말하여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곤경에 빠트립니다.
혹시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급하게 말하여 문제를 더 크게 만들진 않습니까?
확실히 알기 전까지 말을 삼가십시오. 신중한 말 한 마디가 장황한 말 백마디보다 낫습니다.
4) 더 멀고 힘들어 보이지만 바른 길이 생명과 평안의 길입니다(9,16,17절)
편법과 탈선과 속임으로 얼룩진 굽은 길은 더 빠르고 편하게 보이지만 결국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날 때에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는 생명의 길과 죄악의 길중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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