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삼희·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에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고 직접 말했다. 4대강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선 정말 잘된 일이다. 이 대통령은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믿음엔 변화가 없다"고 했다. 대표 공약을 접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대운하 포기 선언으로 4대강 사업의 장애 하나가 제거됐다.
대운하는 이명박 정부의 상징과 같았다. 그 탓에 정책토론보다는 정쟁(政爭)의 대상이 된 측면이 있다. 정부가 억울한 부분이다. 그렇다 해도 대운하엔 확실히 허술한 점이 있었다. 작년 대운하 추진 측에선 강바닥에서 캔 8억3000만㎥의 골재로 사업비 절반인 8조3400억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골재 1㎥당 1만원꼴이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4대강 마스터플랜을 보면 5억7000만㎥의 골재를 파내는 걸로 돼 있다. 4대강 추진본부는 골재 처리를 놓고 업자와 지자체 공무원들을 모아 10여차례 회의를 열었다. 그랬더니 자갈과 모래를 팔아봐야 골재 운송비와 적치장 임대료, 지자체 몫의 이익금을 빼면 1700억원밖에 남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당 300원이다. 골재 수익금이 당초 추정의 30분의 1도 안 됐다. 대운하사업은 그만큼 주먹구구였다.
이 대통령이 "내 임기 중엔 안 하겠다"고 한 것은 나중 정권에서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뜻으로도 들린다. 나중 정권이 전(前) 정권 대표 공약을 이행한다는 건 상상키 어렵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곤 할 수 없다. 만일 성사된다면 이명박 정부에서 보(洑)와 준설의 1단계를, 나중 정권에서 한강~낙동강 물길 잇기와 갑문, 터미널의 2단계 공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경인운하가 단계적 공사의 예였다. 경인운하는 원래 홍수 때 물을 빼는 방수로(放水路)사업이었다. 폭 80m의 방수로를 파놓고 나서 '폭을 20m 넓히고 바닥을 더 파면 운하가 되지 않겠느냐'고 해서 운하사업이 성사됐다. 방수로를 1단계, 운하를 2단계로 진행한 것이 추진 측의 의도였다는 주장도 있다. 방수로는 홍수를 막자는 것이므로 반대하기 어렵다. 일단 방수로를 파놓고 나서 운하 확장 계획을 세우면 방수로사업비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매몰비용(sunk cost)'이 된다. 이미 써버린 돈이라는 뜻이다. 사업 타당성을 검토할 때 매몰비용은 따지지 않게 돼 있다. 방수로에 100만원이 이미 들어간 상태에서 운하에 추가로 200만원이 든다면 운하 사업비(cost)는 300만원이 아니라 200만원이 된다. 만일 운하로 인해 얻는 편익(benefit)이 250만원이라면 운하는 50만원의 순익(250만원-200만원=50만원)을 가져다주는 사업이 된다.
4대강 사업도 다 완공한 후 한강~낙동강을 연결하고 갑문만 더 만들면 되니 운하를 다시 시도해보자고 할 수가 있다.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할 문제다. 그때는 논의가 훨씬 정리된 상태일 것이다. 계산서가 명확해진다는 뜻이다. 그때쯤 경인운하도 뚫렸을 것이니 국민 눈에 경인운하가 성공적이었다면 대운하에 추진력이 붙을 수 있다. 경인운하가 실패 판정을 받으면 대운하 얘기를 꺼내기는 어렵게 된다. 무엇보다 4대강 사업 자체에 대한 판정이 내려질 것이다. 4대강 사업이 청계천처럼 국민 편익을 어마어마하게 늘려줬다면 운하에 대한 긍정 여론이 일어날 수가 있다. 그 반대라면 운하 하자는 말이 나오긴 힘들다.
문제는 4대강 프로젝트를 후일 운하로 발전시킬 걸 염두에 두고 추진하느냐 여부다. 결국 운하로 개조된다면 나중에 또 보를 뜯어고치기보다는 지금 아예 보를 운하형(型)으로 만드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러나 4대강 살리기 목적에 부합하면서 운하로도 쓸 수 있는 양수겸장의 4대강 설계가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운하가 결국 성사 안 될 것인데도 운하 개조를 전제로 4대강 사업이 설계되면 꼭 하지 않아도 될 투자, 쓸모없는 투자가 끼어들게 된다. 4대강 살리기가 운하 개조를 염두에 둔 것인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판정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