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列傳第五十五
[集解:張晏曰朝鮮有濕水洌水汕水, 三水合爲洌水, 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
[索隱:案 朝音潮, 直驕反. 鮮首仙. 以有汕水, 故名也. 汕一音 .]
조선열전 제오십오
[집해: 장안이 말하기를,조선에는 습수,열수,선수,가 있는데, 3水가 합하여 열수가 되니,'낙랑','조선'의 이름은,그것을 취한것이 아닌가 한다.]
[색은: 朝는 음이 潮요, 鮮은 仙이니,'선수'가 있슴으로,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니, 선이 원래음이다.]
朝鮮[正義:潮仙二音. 括地志云高驪都平壤城, 本漢樂浪郡王險城, 又古云朝鮮地也.]王滿者, 故燕人也.[索隱:案 漢書, 滿, 燕人, 姓衛, 擊破朝鮮而自王之.] 自始全燕時[索隱:始全燕時, 謂六國燕方全盛之時.]嘗略屬眞番[集解:徐廣曰 一作莫. 遼東有番汗縣. 番音普寒反.] [索隱: 徐氏據地理志而知也. 番音潘, 又音盤. 汗音寒.] 朝鮮[索隱: 如淳云 燕嘗略二國以屬己也. 應 云 玄 本眞番國.] 爲置吏, 築 塞.
조선[정의: 潮仙 2개음이다. 괄지지에서 말하길, 고려는 도읍이 평양성이며, 본래 한나라 낙랑군 왕검성이며 또 옛부터 말하기를 조선땅이라 한다.]왕'만'은 연나라 사람이다. [색은: 한서에 '만'은 연나라사람이며, 성은 '위'씨로 조선을 쳐서 스스로 왕이라 했다.]
처음 연나라가 전성기때부터[색은: '始全燕時'라함은 '6국'시대에 연나라의 전성기를 말한다.]
'진번조선'에 속하여 노략질을 일삼더니[집해: 서광이 말하기를, '막(莫)'으로 된 기록도 있고, 요동에,'번한현'이 있다. '번'음은'보한'이 바뀐 것이다.] [색은: 서광은, 지리지에 근거하여, 番(번)의 음이,藩(번),盤(반),으로 바뀌고, 汗이 寒으로 바뀐 것이라 하였다.] [색은: '여순'에 연나라가 속국임에도 2나라를 노략질 하였다. '응소'는 현토는 본래 '진번국'이다.] 관리가 되어 장새를 쌓았다.
秦滅燕, 屬遼東外 . 漢興, 爲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集解: 漢書音義曰 浿音傍沛反.] [索隱: 浿音旁沛反.][正義: 地理志云 浿水出遼東塞外, 西南至樂浪縣西入海. 浿普大反.] 屬燕. 燕王盧 反, 入匈奴, 滿亡命,[正義: 命謂敎令.]聚黨千餘人, 結蠻夷服而東走出塞, 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 ,[索隱: 案 地理志 樂浪有雲 .] 稍役屬眞番朝鮮 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 都王險.[集解: 徐廣曰 昌黎有險瀆縣也.] [索隱: 韋昭云 古邑名. 徐廣曰 昌黎有險瀆縣. 應 注 地理志 遼東險瀆縣, 朝鮮王舊都. 臣瓚云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자, 요동의 바깥으로 나갔다. 한나라가 일어서자 그곳이 멀고 지키기 어려워 요동의 옛 요새를 고치니, 경계가 패수로[집해: '한서음의'에 '浿'는 沛가 바뀐것이다.][색은: '浿'는,沛가 바뀐것이다.][정의: '지리지'에, '패수'는, 요동의 요새밖에서 나오며,서남으로흘러, 낙랑현 서쪽에 이르러, 海로 들어간다.] 연나라에 속한다.
'연왕 노관'이 반하여 흉노로 도망가고,'만'이 명령을 버리고[정의: 命은 敎令이라 한다.] 그 무리 천여명과 상투를 틀고 '만이'의 복식으로 바꾸고 동쪽으로 달아나 요새를 벗어났다.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공지'인 '상하장' 땅에 살다가[색은: 지리지에 보면 낙랑에 '운장'이 있다.] 차츰 '진번조선'에 속하게 되고, 만이,연,제나라의 망명자들의 왕이 되어 '왕검'에 도읍을 하였다.[집해: 서광이 말하기를,창려에 험독현<險瀆縣>이 있다.][색은: 위소에, 옛도읍 이름이다. 서광이, 창려에 험독현이 있다. 응소는 주(注)에서 지리지 요동 험독현은 조선왕의 옛도읍이라하고 신찬은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동쪽에 있다.]
會孝惠高后時天下初定, 遼東太守卽約滿爲外臣, 保塞外蠻夷, 無使盜邊 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 勿得禁止. 以聞, 上許之, 以故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 眞番臨屯[索隱: 東夷小國, 後以爲郡.] 皆來服屬, 方數千里.[正義: 括地志云 朝鮮高驪貊東沃沮五國之地, 國東西千二百里, 南北二千里, 在京師東, 東至大海四百里, 北至營州界九百二十里, 南至新羅國六百里, 北至靺鞨國千四百里.]
효혜고후때에 이르러 천하가 처음 정해지니, 요동태수가 '만'을 신하로 삼기로 약속하고, 요새밖의 '만이'들의 침략으로 부터 보호하였다. 여러'만이'의 군장들이 '천자'를 만나고자 하여 금지시켰으나 막지못했다. 이에 허락하였다. 이리하여,'만'이 병사와 재물을 얻어, 그곳의 작은 지역을 침략하여, 항복받으니, '진번','임둔'[색은: 동이의 작은 나라로, 후에'군(郡)'이 되었다.] 등이 모두, 복속하여 지방이 수천리나 되었다. [정의: 괄지지에, 조선, 고려, 맥, 동옥저,5국의 지역은, 동서, 12000리, 남북2000리 이며, 동쪽에 있으며, 동으로 400리에 대해大海가 있고, 북으로 '영주'에 이르러, 920리가 경계이며, 남으로 '신라국' 600리, 북으로 '말갈국'1400리이다.
傳子至孫右渠[正義: 其孫名也.]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 眞番旁衆國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元封二年, 漢使涉何 諭[索隱: 說文云 , 讓也. 諭, 曉也. 音才笑反.] 右渠, 終不肯奉詔. 何去至界上, 臨浿水, 使御刺殺送何者[索隱: 卽送何之御也.] 朝鮮裨王長,[正義: 顔師古云 長者, 裨王名也. 送何至浿水, 何因刺殺也. 按 裨王及將士長, 恐顔非也.] 卽渡, 馳入塞,[正義: 入平州楡林關也.] 遂歸報天子曰 殺朝鮮將. 上爲其名美,[索隱: 有殺將之美名.] 卽不詰, 拜何爲遼東東部都尉.[正義: 地理志云 遼東郡武次縣, 東部都尉所理也.] 朝鮮怨何, 發兵襲攻殺何.
전하여 손자'우거'[정의: 그 손자의 이름이다.]에 이르러, 한나라의 망명자들을 불러 유인하니, 그 숫자는 많았다. 또한 입견하지 않고 '진번'지역의 여러나라에서, 글을 올려 천자를 뵙고자 하였으나, 역시 가로막아 만나게 하지 못하게 하였다. 원봉2년, 한나라 사신 '섭하'[색은: 설문에, '초'는 꾸짖다,諭는 권유하다,는 의미라 했다. '초'음은 웃게 만드는 것의 반대이다.]가,'우거'를 회유하고 꾸짖었으나,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섭하가, 돌아가는길에 '패수'에 이르니, 길잡이[색은: 즉 섭하를 따라온 길잡이 이다.]가 마중나온 '조선비왕' '長'[정의: 안사고는, '長'은 비왕의 이름이며, 섭하를 보내러 패수까지 나왔다가 죽었다. 생각컨데 비왕은 장사급에 미치나 감히 안사고는 알지 못한다 했다.]을 찔러 죽였다. 달려 요새로 들어가,[정의: 들어간 곳이 평주 유림관이다.] 왕[한무제]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하니,왕이 그 명예를 부추겨[색은: 살해한 장수의 이름이 있다.], 힐책하지 않고, 섭하를'요동 동부도위'에 임명하였다.[정의: 지리지에, 요동군 무차현은,동부도위가 다스린다.] '조선'이 섭하에게,원한을 품고 병사를 일으켜, 습겨하여 섭하를 죽여버렸다.
天子募罪人擊朝鮮. 其秋, 遣樓船將軍楊僕 從齊浮渤海 兵五萬人, 左將軍荀 出遼東 討右渠. 右渠發兵距險. 左將軍卒正多率遼東兵先縱, 敗散, 多還走, 坐法斬. 樓船將軍將齊兵七千人 先至王險. 右渠城守, 窺知樓船軍少, 卽出城擊樓船, 樓船軍敗散走. 將軍楊僕失其衆, 遁山中十餘日, 稍求收散卒, 復聚. 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 未能破自前.
왕[한무제]이 죄인들을 모아 '조선'을 쳤다. 그해 가을, 누선장군'양복'을 보내어, '제<齊>'를 따라 '발해'를 건너가게하였다. 병사가 오만이었다. 좌장군 '순체'는 요동으로 나가, '우거'를 쳤다. '우거'가 병사를 일으켜, 험준한 곳에서 대항하였다. 좌장군 이 요동의 병사를 거느리고 먼저 갔으나, 패하여 흩어지고, 대부분 되돌아서 도망나오므로, 죄를 물어 참수했다. 누선장군이 제나라 병사7000명을 이끌고, 왕검성에 먼저 도착하니, '우거'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누선군의 규모가 작음을 보고,즉시 성을나와 공격하니, 누선군이 패하여 달아나고, 장군'양복'은, 그 병사를 잃고 산속에서 10여일을 숨어지내며, 패잔병을 수습했다. 좌장군이,조선의 '패수서군'을 공격했으나, 지난번과 같이 패하고 말았다.
天子爲兩將未有利, 乃使衛山因兵威往諭右渠. 右渠見使者頓首謝 願降, 恐兩將詐殺臣 今見信節, 請服降. 遣太子入謝, 獻馬五千匹, 及饋軍糧. 人衆萬餘, 持兵, 方渡浿水, 使者及左將軍疑其爲變, 謂太子已服降, 宜命人毋持兵. 太子亦疑使者左將軍詐殺之, 遂不渡<浿水>, 復引歸. <山>還報天子, 天子誅<山>.
왕[유철]이 2장군의 불리함을 보고,'위산'을 사신으로 보내어,'우거'에게 군세로 위협하여 달래었다. '우거'가 사신을 보내어,사죄하기를, "항복코자 하나,2장군이 신하를 죽이려함이 두려워,이제 믿음의 징표를 보이는것이니, 항복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하고, 태자를 보내어,사죄를 하고, 말5000필을 주니, 군량으로 사용하고, 백성1만명으로 특별군을 만들어 패수를 건너려 하니, 사자와,좌장군이 그 돌변한 정세에 의심하며, 태자에게,이미 항복했으면, 마땅히 특별군은, 없어야 한다 하니, 태자 역시,사자와 좌장군이, 속여서 죽이려 하는것으로 알고, 패수를 건너지 않고, 되돌아왔다. '위산'이 돌아와, 왕에게 보고하니, 왕이 위산을 주살했다.
左將軍破浿水上軍, 乃前, 至城下, 圍其西北. 樓船亦往會, 居城南. 右渠遂堅守城, 數月未能下.
좌장군이 패수상군<浿水上軍>을 격파하고, 지난번처럼 성아래 이르러, 그 서북을 포위하고, 누선군도 역시 성의 남쪽에 와서 진을 쳤다. 우거가 성을 굳게지키니,수개월동안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左將軍素侍中, 幸, 將燕代卒, 悍, 乘勝, 軍多驕. 樓船將齊卒, 入海, 固已多敗亡. 其先與右渠戰, 困辱亡卒, 卒皆恐, 將心慙, 其圍右渠, 常持和節. 左將軍急擊之, 朝鮮大臣乃陰閒使人私約降樓船, 往來言, 尙未肯決. 左將軍數與樓船期戰, 樓船欲急就其約, 不會. 左將軍亦使人求閒 降下朝鮮, 朝鮮不肯, 心附樓船. 以故兩將不相能. 左將軍心意樓船前有失軍罪, 今與朝鮮私善而又不降, 疑其有反計, 未敢發. 天子曰將率不能, 前(及)[乃]使衛山諭降右渠, 右渠遣太子, 山使不能 決, 與左將軍計相誤, 卒沮約. 今兩將圍城, 又乖異, 以故久不決. 使濟南太守公孫遂往(征)[正]之, 有便宜得以從事. 遂至, 左將軍曰 朝鮮當下久矣, 不下者有狀. 言樓船數朝不會, 具以素所意告遂, 曰 今如此不取, 恐爲大害, 非獨樓船, 又且與朝鮮共滅吾軍. 遂亦以爲然, 而以節召樓船將軍入左將軍營計事, 卽命左將軍麾下執捕樓船將軍, 幷其軍, 以報天子. 天子誅遂.
좌장군은, 천자를 모신적이 있고, 다행히 장군 '연대'의 군사가 사나워 승리하곤 했으나, 군이 교만해졌다. 누선장'제'의 병사들이 海로 들어갔으나, 고립되어 패망했다.
그전에 '우거'와 싸워서 패하였던 군사들이라, 모두 공포에 질려있었으며, 장수들은, '우거'를 포위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화친사절을 보내야함을 매우 수치스러워했다.
좌장군이 급히 공격하니,'조선'의 대신이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항복을 약속하고, 누선과 왕래하며 대화했으나, 항상 결론은 없었다. 좌장군이, 수차례 누선과 함께 공격하고자 했으나, 누선은,그 약속을 얻고자 욕심을 부려, 협공을 하지 못했다. 좌장군 역시 사람을 보내어,조선의 항복을 권했으나, 조선은 듣지 않고, 누선과만 연락했다. 이리하여, 2장군은, 서로 협력하지 못했다.
좌장군은,속으로 누선의 지난번 패전을 생각하고, 지금은 조선과 몰래 통하여 항복치 않게하니, 그 배반을 의심했으나, 밖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유철이 말하기를, '장수로서의 통솔력이 없다. 지난번에'위산'을 보내어, '우거'에게 항복하기를 회유하여, 우거가 태자를 보냈으나, 위산이 결말을 못짓고 좌장군의 오판이 겹쳐, 약속이 어그러졌다, 지금 2장군이 성을 포위하고 있으나, 또다시 의견이 어긋나니,오래도록 결말이 없다.' '제남태수' '공손수'를 보내어, 바로잡게 하면 마땅히 섬기어 그말을 따르리라.' 공손수가 이르니, 좌장군이 말하기를, '지금 조선을 이기기는 시일이 많이 걸리고, 함락치 못하는것 역시, 그와 마찬가지 이다'하고, 누선과 수차 약속하고도 시행치 못한 것과, 그로 인해 가지게된 뜻을 말하니, '지금 이리하여 함락치 못한다면, 큰손실이 될까 두렵고, 더더구나, 조선과 우리의 군사가 같이 멸한다면, 누선 혼자의 잘못이 아닐것이다,' 공손수 또한, 그러할것이라 하여, 누선장군을 좌장군의 진영으로 불러들일 계획을 세우고, 누선장군을 좌장군 휘하에 붙잡아 두게하며, 그 군사 역시 병합하고, 왕[유철]에게 보고하니, 왕이 공손수를 주살하였다.
左將軍已幷兩軍, 卽急擊朝鮮. 朝鮮相路人 相韓陰 尼谿相參 將軍王 [集解: 漢書音義曰 凡五人也. 戎狄不知官紀, 故皆稱相. 音頰.] [索隱: 應 云 凡五人. 戎狄不知官紀, 故皆稱相也. 路人, 漁陽縣人. 如淳云 相, 其國宰相. 路人, 名也. 音頰, 一音協.]相與謀曰 始欲降樓船, 樓船令執, 獨左將軍幷將, 戰益急, 恐不能與, (戰)王又不肯降. 陰 路人皆亡降漢. 路人道死. 元封三年夏, 尼谿相參 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巳又反, 復攻吏. 左將軍使 右渠子長降[集解: 徐廣曰 表云 長路. 漢書 表云 長(), 音各.] [索隱: 案 漢書 表云 長(), 音各.] 相路人之子最[索隱: 路人子也, 名最.]告諭其民, 誅成巳, 以故遂定朝鮮, 爲四郡.[集解: 眞番, 臨屯, 樂浪, 玄 也.] 封參爲 淸侯,[集解: 韋昭曰 屬齊.] [索隱: 參, 淸侯. 韋昭云 縣名, 屬齊. 顧氏 音獲.] 陰爲狄 侯,[集解: 韋昭曰 屬渤海.] [索隱: 陰, 狄 侯. 晉灼云 屬渤海. 荻音狄, 音子餘反.] 爲平州侯,[集解: 韋昭曰 屬梁父.] [索隱: , 平州侯. 韋昭云 屬梁父] 長降爲幾侯,[集解: 韋昭曰 屬河東.][索隱: 長, 幾侯. 韋昭云 縣名, 屬河東]. 最以父死頗有功, 爲溫陽侯.[集解: 韋昭曰 屬齊.][索隱: 最, 涅陽侯. 韋昭云 屬齊也.]
좌장군이 이미 양군을 합하고 '조선'을 급히 공격하니, 조선의 승상 '로인','한음',이계상 '삼',장군 '왕겹',[집해: 한서음의에,相은, 5인이다. 융적(戎狄)은, 관직의 위차를 몰라서, 모두, 相이라고한다. 음은 頰(jia)이다] [색은: 응소는, 相은, 5인이다. 융적(戎狄)은, 관직의 위차를 몰라서, 모두, 相이라고한다. '로인<路人>'은, 어양현<漁陽縣>사람이다. 여순은, 相은 그나라 재상이며, '로인'은 이름이다, '겹'은, 겹, 協,으로도 발음한다.]등이 서로 모의하여 말하기를, '처음 누선에게 항복하고자 했으나,지금은 누선이 붙잡혀있고, 좌장군이 홀로, 군을 지휘하니, 전쟁이 점점 급해지므로 대항치 못할까 두렵고, 왕께서도 항복을 허락치 않습니다'하고, 한음,왕겹,로인등이 모두 한나라에 항복했으며, 로인은 길에서 죽었다. 원봉3년, 여름, 니계상 '삼'이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해왔으나, '왕검성'은 항복치 않았다. 즉'우거'의 대신인 성사(成巳)가 반기를 들고 다시 공격해 왔다. 좌장군이,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집해: 서광은,'장로',라고도 하고, 한서,표에는,'장()'라고했다.][색은: 한서,표에는,'장()'라고했다.] 재상 '로인'의 아들, '최'[색은: '최(最)'는,'로인'의 아들이다.]를 보내어, 그 백성을 회유하여,'성사'를 죽이고 조선을 정복하여, 4군으로 하였다.[색은: 4군은, 진번, 임둔, 낙랑, 현토이다.] '삼'은,화청후[집해: 위소는,'화청'은, 제나라 지역이라 했다.][색은: '삼'은, 화청후로, 위소는, 제나라 지역이라 했다. 안사고는,'화'는,'획'으로 발음한다,고 했다.] '한음'은,적상후[집해: 위소는, '발해'에 속한다.][색은: '한음'은, 적상후로 삼다. '진작'은, '발해'에 속한다. '적(荻)'은 '추'로발음하고, '상'은,'자여(子餘)의 음이 바뀐 것이다.] 왕겹은, 평주후[집해: 위소는, '양부'에 속한다.][색은: '왕겹'은, 평주후로 삼다. 위소는, '양부'에 속한다.] 장항은, '기후'[집해: 위소는, 하동에 속한다.],[색은: 장항은 기후에 삼다. 위소는 현의 이름이고 하동에 속한다.] 최는,죽은 아비의 공으로,온양후[집해: 위소는,'제나라'지역에 속한다.][색은: '최'는, 열양후로 삼다, 위소는, 제나라 지역이라했다.]에 봉했다.
左將軍徵至, 坐爭功相嫉, 乖計, 市. 樓船將軍亦坐兵至洌口[索隱: 蘇林曰 縣名. 度海先得之.], 當待左將軍, 擅先縱, 失亡多, 當誅, 贖爲庶人.
좌장군은 먼저 잘못된 계책으로 병사를 잃고 전쟁을 실패하였으므로, 기시의 형에 처하고, 누선장군 역시, 전쟁실패로, '열구'[색은: 소림은, 열구(洌口)는, 현의 이름이다. 海를 건너면, 먼저 닿는곳, 이라했다.]로 끌려와,서인이 되었다.
太史公曰 右渠負固, 國以絶祀. 涉何誣功, 爲兵發首. 樓船將狹,[集解: 徐廣曰 言其所將卒狹少.] 及難離咎. 悔失番 , 乃反見疑. 荀 爭勞, 與遂皆誅. 兩軍俱辱, 將率莫侯矣.
태사공이,'우거'는 고립된것이 부담이 되어, 나라가 망했으며, '섭하'의 거짓된 공은, 병사를 이르키게 하였다. 누선장군의 좁은 안목은[집해: 서광은, 누선장군의 통솔력이 폭좁은 것이라 하였다.], 급기야,돌이킬수없는 실패를 자초했다. '번우'를 잃은 후회는, 결국 서로를 의심케 되었고, '순체'의 노력도, 결국,공손수와 함께, 주살당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양군이,모두 치욕을 당하니, 이것은,장차의 교훈으로 남게되었다.
[索隱述贊] 衛滿燕人, 朝鮮是王. 王險置都, 路人作相. 右渠首差, 涉何 上. 兆禍自斯, 狐疑二將. 山遂伏法, 紛 無狀.
(색은 술찬)위만은 연나라 사람이며, 조선왕이 되어,왕검에 도읍하였다. '로인'은 승상이 되고,우거는, 다음 왕이 되었다. '섭하'는, 그자신으로 인하여,화를 불렀다. 서로 의심한 두장수 위산과 공손수는 복법의 형벌을 받았다. 의견이 혼란되면 결국 이루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