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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의 역사
조선 전기의 시민생활
21세기 시대에 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낭송의 역사는 언제부터 이 땅에 뿌리를 내렸나. 그 역사는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당대의 문아(文雅)한 선비들이 많이 나와 시로써 서로 수작(酬酌)하며 유흥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시회(시낭송)를 열 때면 먼저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시상(詩想)을 떠올려 작품을 만들어 서로 돌려가며 낭송하던 것이 점점 발전하여 세종 때 이르러 집현전을 창건하고 당대의 문사(시인)를 많이 모아 문화 사업을 벌리고 그들 문인들은 어명에 따라 여러 가지 서적을 편찬하였다.
이와 같이 문운이 한창 융성한 시기였던 조선에 시를 잘 짓는다는 명나라의 사신들이 들어와 자신들을 천사라 하며 거만을 부리므로 세종은 그들에게 지지 않을 만한 문신을 내보내 겨루게 하였다.
세종 32년(1450) 정월에 명의 사신 시강(侍講) 예겸(倪謙)과 급사중(給事中) 사마순(司馬詢)등이 한양에 와서 공자의 묘에 알성한 후 시를 지었으며 수일 후에는 한강에 나가 선유하며 우리의 학자들과 시회를 열었는데 이 때 명나라 사신, 예겸은 '유한강(遊漢江)'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고. 조선은 정인지(鄭麟趾)와 한성판윤(漢城判尹) 김하(金何) · 신숙주(申叔舟) · 성삼문(成三門) · 이계전(李季甸) · 허후(許撞) 등이었는데 예검의 작품을 능가하였다. 특히 김하는 중국어를 잘하여 직접 언어로써 예겸에게 필시(筆詩)하지 않고 통하였으며 신숙주도 중국어를 잘했던 이러한 관계로 예겸은 신숙주 · 성삼문 · 김하 등 세 사람과 매우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한운(漢韻)에 대한 토론도 하며 더욱 폭넓은 문답을 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조춘이라 하여도 제천정의 놀이가 끝나면 다시 선유를 하여 이른 봄의 맑고 깨끗한 경치를 만끽하였으며 명나라 사신은 이러한 경치를 보고 이 나라의 경치가 좋아 좋은 시가 저절로 나온다 라고 조선의 경치를 극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배를 하류로 몰고 가서 양화도에 이르러 그 곳의 절경을 감상하며 시를 지었는데 예겸은 신숙주 · 성삼문의 시에 매혹되어 매우 감탄하며 형제의 의까지 맺는 관계로 발전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세조 2년(1457) 여름에는 명의 사신 한림원수찬(翰林院修撰) 진감(陳鑑)과 태상시박사(太常寺博士) 고윤(高閏)이 들어왔는데 조정에서는 접반관(接伴官)으로 박원형(朴元亨)과 이승소(李承召)를 보내었다. 그리고 다음날 희청부(喜淸賦)라는 맑은 날을 찬양하는 시를 지었는데 이 때 김수온(金守溫)이 여기에 가담하여 그들의 시에 사답하였다. 이에 사신, 진감은 동방의 문사들의 실력이 중국과 다름이 없다며 크게 칭찬하였다.
그 후에도 태복승(太僕丞) 김식(金湜)과 중서사인(中書舍人) 장성(張城)이 들어와서 당대의 문사(文士) 신숙주 · 김수온 · 이승소 · 서거정 · 김수녕 등과 시회를 열었다. 그런데 김식은 그림을 잘 그려 그가 그린 그림을 장식하여 왕에게 바쳤다. 즉 국가에서 명나라 사람들과 시회를 열어준 셈이다. 또 그 후에도 호부랑중(戶部郞中) 기순(祈順)이 들어왔는데 한강에서 노사신(盧思愼) · 성예(成倪) 등이 마중나가 시회를 열었다. 다시 동월(董越) 주지번(朱之蕃) 등 글 잘하는 사람이 들어와 우리의 학자들과 시로써 서로 수작(酬酌)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문사들은 그들과의 시를 황화집(皇華集)이라 하여 출판해 나누어 가진 기록이 전해져오고 있다.
모두 문우로써 양국사이에 크게 호감과 호평을 받은 이러한 시회야말로 국제적인 교류에 있어 성공한 외교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안평대군은 세종의 왕자로서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시문을 잘 짓고 서법도 기묘하고 절묘하여 이름을 크게 떨쳤고, 그림, 거문고 등 악기를 다루는 솜씨도 뛰어나 다재다예한 인물로 오늘날 평가 받고 있으며 세검정근처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지었고 또 마포부근에 담담정(淡淡亭)을 지었다.
이러한 정자에 서적 수 만권을 소장해 두고 글 잘하는 문사를 청하여 유명한 십이경시 사십팔영 등을 만들어 자랑삼아 자기 서재에 걸어 두었으며 혹은 배를 타고 선유를 하는 등, 풍류생활을 하였고 시인들과 시회를 자주 열어 당대의 명류들이 그와 어울렸다.
그리고 세조때 성간(成侃)은 처음 과거에 합격하여 명성을 날린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의 새로운 시를 보고자 성남지방의 춘색이 농후한 장소로 초대되어 서로 운을 떼어 시를 지었는데, 이 때 성간의 동생 성현도 함께 갔다. 그리하여 춘색을 자랑하는 시인인 만큼 시가 모두 좋았는데 그 중에도 이개(李塏)와 성간(成侃)의 시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장의동(현재 신영동)의 조지서(造紙署) 근처로 시회를 하러 가서 지었다는 시가 전해져 오고 있다
「꽃이 있고, 술이 있고, 산도 있는데
손도 즐기고 주인도 즐기며 승도 즐기네.
술에 취하여 양쪽 귀가 벌개진다고 사양말라.
흐르는 샘물에 얼굴 씻으면 오히려 추워지네.[[註39]」
이와 같이 시구를 서로 음미하여 주배(酒盃)를 기울이며 글을 배운 사람들의 활달한 일면을 시로써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시를 지어 모아두어 문집을 만드는데 썼으며, 문치를 주로 하는 조선왕조에서 시를 배운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되어 더욱 운치있는 생활을 누렸고 그 중에도 여기 저기 산수가 아름다워 시상이 솟아나는 곳에는 항상 시회가 이어지는 그야말로 태평세월을 누렸으며 이들의 뒤에는 언제나 화공들이 있어서 시회에 참석한 인물들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오늘날 이 그림을 시회도라 하는데 조선 중기까지는 계회(契會)·기노회(耆老會)·기영회(耆瑛會) 등과 같은 문인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시서화로 교유하는 습속이 성행했고 그 장면을 그린 많은 계회도들이 전해지고 있다.
계회는 사실상 시회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으므로 크게 본다면 시회도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 이후 문인들 또는 서민들이 문학을 표방하며 모여 글을 짓고 창답하며 품평하는 본격적인 시회보다 집단적인 시사(詩社)가 성행하게 되었고, 그 모임을 그린 시회도도 빈번하게 그려졌다. 조선 후기 이후의 시회도는 산수에 큰 비중을 두었던 이전의 계회도와는 달리 옥외이건 옥내이건 간에 시회의 장면이 중점적으로 부각되었고 인물의 비중이 높아졌으며, 때로는 참석한 인물들의 모습을 거의 초상화적인 수법으로 꼼꼼하게 표현하여 기념사진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회도들은 시회에서 창작된 시문(詩文)과 함께 시화첩으로 꾸며지거나 독립적으로 그려졌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홍도의 〈송석원시사야연도 松石園詩社夜宴圖〉(한독의약박물관), 이인문의 〈송석원시사아회도 松石園詩社雅會圖〉(한독의약박물관), 강세황의 〈현정승집도 玄亭勝集圖〉(개인 소장), 홍필우(洪必遇)의 〈오노도 五老圖〉(개인 소장) 등 다수가 전해져 오고 있는 만큼 오늘날 시낭송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옛 문화유산이라고 단정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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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낭송(詩郞誦)이란 무엇인가
1.
낭송문학이란 말 그대로 문학 작품들을 음율적인 감정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어 유창하게 읽거나 외우는 것을 말한다.
눈으로는 읽고, 입으로는 낭송을 하고, 귀로는 듣고, 마음으론 감상하는 장르다.
낭송을 漢子로 쓰자면 랑(郞- 사내랑) 송(誦-욀송)자를 쓰는데 옛 선인들은 거의가 다 남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의 목소리는 여자들보다 또랑또랑 하다 하여 또랑또랑할 랑(郞)자로 또는 소리가 랑랑하다 하여 쓰기도 한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여성 상위시대"라 할 만큼 여권신장이 날로 향상되어 사회 할동의 넓어진 영역만큼이나 이제는 시낭송가들 십중팔구는 여성들이다.
이런 시대에 걸맞게 이제는 낭자를 (娘- 아씨낭)자를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citation 는 이야기, 또는 음송. 앙송을 뜻하는 단어다.
우리 인체에는 오관(五官)과 오감(五感)이 있다. 오관(五官)이란 눈(視覺) 귀 (聽覺) 입(혀)(味覺) 코(嗅覺) 마음(觸覺)을 말하며 오감(五感)이란 인간이 느끼는 다섯 가지 감각을 말하는데, 시각(視覺)은 눈을 통하여 빛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 ․ 청각(聽覺)귀로 받은 음파의 자극을 대뇌에 전하여 일어나는 감각 ․ 미각(味覺)액체의 화학적 자극으로 혀의 미뢰에서 생기는 막의 감각 ․ 후각(嗅覺): 코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일어나는 감각 ․ 촉각(觸覺): 피부에 외부의 것이 닿아서 느껴지는 감각(촉감)이다.
이것들을 많이 동원하여 활용함으로써 보다 수준 높게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문학작품의 감상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서 자신의 자작시나 유명 시인들의 시를 들려줌으로써 문학작품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것이 [낭송문학]의 가치와 역할이라 할 수 있다.
詩가 하나의 악보라고 한다면 시낭송은 가수가 악보를 통해 자신의 노래를 소화해 내는 일인 것이다. 시를 읽고, 시를 외우고, 시를 낭송하려면 먼저 시와 친해져서 마음에 다가 와야만 낭송문학을 이해하게 된다.
2.
문학의 본질은 언어의 예술이다.
음성이나 글을 통하여 인간의 사상이나 그 어느 감정이나 의지, 또는 생각. 체험이나 사고(思考)등을 통해서 스스로 느끼거나 깨달은 것들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주며 전달해 주는 행위가 곧 문학의 본질이자 가치라 할 수 있다. 언어라고 하면 단순 말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언어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있다. 입을 통해 말로 표현하는 것이 음성언어이고, 글을 써서 표현하는 것이 문자언어인데 단지 그 표현하는 방법만 다를 뿐이다.
낭송문학은 바로 이런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모두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문학적으로 바르게 승화시켜 표출하는 것이다.
특히 글을 쓴 작품에다가 생생한 감정과 꾀꼬리 같은 목소리에 음악적 음율 등을 불어 넣음으로써 문학의 본질과, 그 특성에 한 걸음 더 접근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낭송문학인 것 이다.
3.
낭송문학은 문학적 예술이요 문자와 음성의 종합 예술이다. 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시가(詩歌)같은 것도 음율적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시를 가리켜 "언어로 된 노래"라고도 하는데 시가 원래는 노래의 형태로 시작된 것 이며 문자언어가 아니라 음성언어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4.
낭송문학이란 정신적 청량제다. 사실 낭송문학은 발음 ․ 발성 ․ 호흡 ․ 속도 ․ 억양 등을 모두 동원하는데, 이런 것에 조절 기능을 소화할 만큼 숙련되면 기쁨이나 즐거움을 더욱 크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쁨이나 즐거움은 단지 한사람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나 가치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옛 말에 "슬픈 일은 서로 나누면 작아지고 기쁜 일은 서로 합치면 더욱 커진다" 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문학적 감상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그만큼 기쁨과 즐거움이 커지기 마련이다.
5.
낭송문학은 모든 문학의 장르가 가능하다. 시나, 소설, 또는 수필이나 희곡, 문학평론, 그리고 꽁트 등 많은 장르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느 것이 낭송문학으로 가장 적합한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것 중에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무의미 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동차를 그 예로 삼는다면 승용차, 영업용, 트럭, 봉고차 중에서 어느 차가 운전하기에 가장 좋은가 하고 질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운전자의 실력에 따라 운전하기에 좀 쉽다거나 어려운 차량이 있을 것이나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자동차란 사람이 운전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낭송문학에 있어서도 좀 어려운 것이 있고 낭송하기에 좀 부드러운 것이 있듯이 그 차이만 조금씩 다를 뿐 모든 장르가 다 낭송하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 구체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소설: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어떻게 낭송하느냐고 반문 한다.
이 질문은 아마도 긴 글을 언제 모두 다 낭송을 하고 또, 다 듣느냐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요즘 "문학의 밤"이나 어는 낭송회를 가보아도 소설이나 수필은 낭송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소설도 한 대목을 잘 추려내어 낭송한다면 오히려 그 소설의 특성과 본질, 또는 멋과 묘미를 충분히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소설이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하여 구성되고 각색된 산문체의 이야기로 다시 말하면 소설은 [픽션,fiction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소설을 [노블,novel 혹은 로망,roman]이라 하는데 이러한 말속에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이고, 수필은 낭송문학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소설에 비해 분량이 적으면서도 그 속에는 작가의 의도나 생각하는 사상과 감정 등을 압축하고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으로 오히려 시보다 청중을 감동시키는 마력이 더할 수 있다.
그러나 낭송문학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은 역시 詩다. 왜냐하면 시는 단어나 문장이 최소한으로 압축된 [음성언어] 언어로 음률이 포함되어 있어, 노래라 할만 큼 낭송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옛 음유시인들이 운율에 맞추어 시를 읊으면 그 시를 듣는 이들은 흡사 노래를 듣는 것처럼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거나 장단을 맞추기도 하였고, 때로는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했다. 시를 가리켜 음풍농월(吟風弄月) (소리를 읊고, 달을 희롱하다.)이라는 말의 음(吟)자의 뜻이 "읊다"의 뜻인 것처럼 프랑스의 샹송도 원래는 프랑스의 음유시인들이 부르던 시에서 발달
되었다고 하듯이 詩는 언어의 꽃이요, 낭송은 그 꽃의 열매인 것으로 지금부터라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할 예술의 한 장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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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 교육 자료
시낭송은 소리의 예술이다
낭송문학이란 말 그대로 문학작품을 음율 적인 감정을 불어넣어 유창하게 읽거나 외우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작가의 문학성을 높여주고 가치와 이해도를 높이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문자와 음성의 종합예술이다.
즉 음성이나 문자를 통해서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 의지, 생각, 사고 등을 통해서 느끼거나 깨달은 것을 표현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것이 있음을 알리고 전달해 주는 행위가 바로 낭송문학의 가치이다.
시낭송의 필요성은 시를 읽고 사랑하는 것은 곧 우리말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나의 마음을 가장 아름답게 가꾸는 것으로서 다른 예술의 장르에 비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시낭송의 특성이며 사람마다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느낌이 다양하기에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 또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예술의 장르다.
시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은 인간의 원초적상태의 감정을 간결하고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적 언어능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고, 시의 향기가 영혼을 울리는 감동의 소리로 우리에게 전해질 때, 시는 일상적인 삶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주고 왜곡된 삶을 회복시켜 창의성을 촉진하고 인성이 정화되어 세상을 달리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논술이나 변설보다 한 줄의 시에 더 감응(感應)받는 것은 시가 예술의 극치로서 미감(美感)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에 부딪칠 수 있는 생명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물량주의를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고양시키고 인간다운 풍요로움을 찾고자 할 때 예술을 갈망하게 되고 시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의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고 낭송하려는 노력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움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자기를 표현하고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기쁨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활자화된 문자언어는 음성언어로 나타나야 그 빛을 발휘할 수 있다. 보석에 비유한다면 활자화된 시가 원석이라면 시낭송은 세공을 하는 것과 같다. 세공을 거쳐야만 더 아름답게 빛나고 여러 사람에게 찬사를 들을 수 있듯이 시를 활자로 남겨놓는 것보다 낭송을 잘 하면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함께 정서적인 삶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나눈다면 육체가 우리가 섭취하는 각종 영양소로 인해 성장을 하는 반면 영혼은 시를 통해서 성장 할 수 있다. 이는 시인은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관조하고 삶을 성찰해 인간의 본성을 노래한 시인들이 있었기에 인간은 영적으로 성장해 왔다.
육체와 영혼을‘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비교한다면 시인들의 노래는 결국 영혼 소프트웨어 중 하나다. 시가 주는 감동은 언어에 의해서 창조된 예술품으로, 시는 머리로 아는 지식의차원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시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듯이 시 낭송 또한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한다. 가슴으로 낭송을 해야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려 감동을 줄 수가 있다.
-시낭송의 특징 및 효과-
시낭송의 특징과 효과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를 읽지 않고 외운다.
시를 보고 읽노라면 특히 많은 청중이 있는 자리에서 조명이나 환경에 의해 정확히 읽기도 어렵거니와 글자를 빠트리거나 틀리게 읽거나 한 구절 건너뛰는 경우도 있으므로 시를 훼손하기 쉽다.
설령 틀리지 않고 바로 읽었다 하더라도 읽기에 골몰한 나머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살리기 어렵게 된다.
둘째, 소리로 연출한다.
시인이 작곡가라면 시낭송가는 성악가로 비유된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언어의 작곡을 하는 것이다. 시에 있어서 리듬은 생명이다 시의 해석은 리듬의 해석으로 리듬의 해석은 소리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시인의 언어 작곡(시)을 낭송가가 어떻게 소리로 연출하느냐에 시의 감동은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낮게 떨어 질 수도 있다.
예로 한용운의“님의 침묵”을 낭송했다고 하자.
시집으로 읽는 “님의 침묵”은 한 편의 시이지만 낭송으로 듣는 “님의 침묵”은 열편도 백편도 될 수 있다. 낭송자의 연출에 따라 천변만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셋째, 시를 확대 재생산한다
시를 사랑하고 시 읽기를 즐겨하는 사람들도 특별한 것이 아니면 어려서나 지난날 읽었던 시를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인의 신작시라 하더라도 매월 쏟아지는 많은 양의시를 다 읽을 수는 없다.
또한 마음에 드는 좋은 시를 가려내는 작업도 쉽지는 않다. 시낭송은 시인이나 시학도의 자작시를 듣게도 되지만 시낭송가가 눈 밝히고 골라서 뽑은 명시나 묻혀있는 시 속에서 폭넓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작품을 발굴해 내서 세상에 다시 내놓는 행위다.
그러므로 활자에 묶여있는 시를 소리의 영역에 옮겨놓아 시의 수요층을 넓히고 시의 효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넷째, 시의 이해를 넓힌다.
시는 읽는 이의 생각과 받아들이는 느낌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다. 더구나 낭송자가 목소리에 감정을 섞어 표현하는데 따라서 시의 의미가 사뭇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시낭송(암송)은 눈으로 읽기보다는 호소력과 설득력을 더 가지게 됨으로 빠른 전달과 이해의 폭을 넓힌다.
- 낭송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시낭송은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노래를 한다고 누구나 가수나 성악가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시를 낭송한다고 시낭송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과 타고난 음성 그리고 시의 소화력, 연출력을 고루 갖춰야 한다. 그러면 시낭송의 조건을 알아보자.
첫째, 시를 고른다. (이 내용은 낭송대회를 위주로 한 것이나 일반적인 행사에서도 참고로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문학성이 높고 감동이 되는 시를 찾아야한다.
작고 시인이나 원로시인, 중견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들은 이미 교과서 등 여러 시집에 수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낯익어서 새 맛을 잃기 쉽다. 그렇다고 베스트셀러가 된 시는 저변 층에는 호소력이 있겠으나 수준 높은 독자의 선호에 맞지 않아 낭송자의 안목을 낮게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보다 많은 시를 읽고 묻혀있거나 새로 쓰여진 시들 속에서 문학성이 높은 시를 골라야 한다.
좋은 시는 대체로 낭송에 적합하지만 예외도 있으니 낭송에 적합한 시인가도 따져봐야 한다.
둘째, 시를 올바로 해석한다.
낭송자는 시와 청중사이에 매개체가 되는 전달자인 만큼 시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가령 서정주의<자화상>을 골랐다고 하면 작품이 쓰인 연대와 시대 배경, 시인의 고향 및 성장 배경, 그리고 시인의 여러 대표작과의 상관관계도 알아야 한다.
더욱 시어의 하나하나에 숨은 내포성을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 낭송자의 완전한 이해만이 시의 완전한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 청중과의 호흡을 맞춰야 한다.
낭송자의 입 안에서만 맴도는 시로써는 청중을 사로잡을 수 없다. 하늘에 높이 뜬 달이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기듯 시낭송자는 청중을 이끌고 시의 용광로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함께 시속에서 뒹굴고 함께 들끓고 함께 뼈와 살을 녹여 하나의 악기가 되어야 한다. 위에 세 가지 조건을 아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아류가 아닌 이미 무수히 들어온 억양이나 리듬이 아닌 나만의 낭송 법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한두 편의 시가 아니라 몇 십 몇 백편의 시를 내 것으로 만들고 언제 어느 자리에서도 분위기와 청중에 어울리는 시를 낭송해야 한다. 시낭송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이론이 아니라 연마에 의한 독창적인 세계를 열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Ⅰ. 시낭송을 왜 하는가?
1. 유열 감(유쾌하고 기쁨)을 얻기 위해
2. 시적 감성과 감동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Ⅱ. 낭송할 시의 선택
용도, 대상 등을 고려하여 상황에 적합한 시를 선택해야 하므로 그 목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1. 감동을 주는 명시
2. 줄거리가 있는 서정시
3. 청중이 낭송을 듣고 쉽게 상상이 되고 이해가 되는 시 (어려운 시어, 내용, 지나친 은유시 삼가)
4. 점층법이나 영탄법으로 구성된 시, 기승전결로 꾸며져 클라이맥스가 있는 시
5. 행, 연의 끝이 명사가 아닌 시
*부적합 예) 「산」 박두순
머언 그 어느 날엔가 일어났던 파도
(중략)
거친 숨결은
깊이 숨겨버린 파도
(중략)
모래펄에 스며드는
하얀 손뼉소리
6. 일정한 운율이 반복되는 정형시는 변화가 적고 단조로워 적합하지 않은 시
* 예) 「낙화」 조지훈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중략)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중략)
7. 너무 짧거나 너무 길지 않은 시(대화용)
대략 24~ 30행정도가 적합하나 행의 분량에 따라 가감
8. 시어가 잔인하거나 정서상 부적합한 시 배제
9. 노래화 된 시 배제
* 예) 향수(정지용),가고파, 성불사의 밤(이은상), 산넘어 남촌에는(김동환)산유화, 못잊어, 엄마야 누나야(김소월), 내 마음은 호수(김동명), 세월이 가면(박인환) 등
Ⅲ.어떻게 낭송할 것인가?
1. 선택한 시는 반드시 각기 다른 출판사 3곳 이상의 것을 비교하여 탈 자, 오자는 없는지 확인한다.
2. 시를 음미하며 묵독을 반복한다.(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것과 작품 흐름을 이해)
3. 낭독해 본다.(감정 배제)
4.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을 중심으로 高, 低, 長, 短, 强, 弱, 緩, 急, 사이(쉼)의 9가지 사항을 살려 큰 도구를 그린 후 시낭송 표기법을 이용하여 구체적으로 어떻게 낭송할 것인가 설정한다.
5. 도식에 의한 인위적 낭송이 아닌, 내가 시속의 주인공이 되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감정으로 낭송한다.
6. 녹음하여 들어보며 다듬는다.
Ⅴ. 낭송시 유의할 점
1. 낭송이 처음 시작할 때 톤의 설정이 중요하다.
2. 톤을 높이거나 낮게 잡지 말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하되 음성이 매체가 되므로 정확한 발음, 발성, 호흡에 유의한다.
3. 지나친 기교, 감정과다, 불필요한 장음, 숨소리, 꾸민 목소리, 동화구연식 시낭송은 삼가
한다.
4.‘쉼표’까지도 시어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Ⅵ. 낭송할 때의 자세
낭송을 위해 무대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마치고 내려오기까지 일거수일투족에 유의하여야 한다(걸음, 인사, 낭송자세, 표정, 복장)
복장 - 짧은치마, 청바지, 반바지, 많은 장신구 금물임
- 예의를 갖춘 우아하고 단정한 복장이 좋으며 시의분위기와 일치하면 더욱 좋다
-담력 기르기-
매년 열리는 시낭송대회 때마다 출전자는 떨리고 긴장한 나머지 자기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을 본다. 특히 내성적인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어떤 출전자는 아예 진정제를 먹고 출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대 위에서 덜 떨리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무대 공포증을 제거하고 담력을 갖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짚어보기로 하자.
먼저 실습적인 방법과 심리적인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1) 실습적인 방법
(1) 무대 경험을 많이 쌓자. 과거에 무대에서 노래나 연기 등 무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시낭송을 하는 첫 무대에서 자기의 실력을 발휘하기가 쉽다. 그러나 무대 경험이 없는 출연자는 자신이 어떻게 낭송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된다. 왜냐하면 시낭송은 단지 시 낭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로서 승화시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두 번씩 무대에서는 경험을 갖게 되면 점차 자신감이 붙게 되어 청중의 분위기 더 나아가 청중의 눈동자, 표정까지 읽게 되어 나의 낭송에 청중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공간의 숨결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무대에서의 담력을 기르는 최상의 방법은 무대에 자주 서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2) 충분히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선다.
아무리 무대경험을 많이 쌓는다 하더라도 불충분한 연습은 오히려 불안감을 주고 자신감을 잃게 한다. 혹시 무대에서 시낭송을 하다가 틀려 중도에 내려오게 되면 그 뒤 무대 공포증 또는 기피증이 생길 수가 있다.
무대에서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은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으로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였을 때 비로소 자신감을 갖게 된다.
(3) 무대 아래에서 천천히 숨쉬기를 하자.
<천천히 숨쉬기 요령>
① 코와 입으로 동시에 숨을 빨아들인다.
② 손을 가슴 양쪽에 얹고 다시 한 번 숨을 빨아들인 후 입술 사이로 내쉰다.
③ 다음에는 두 손을 아랫배에 대고 다시 숨을 한 번 들이 쉰 후 아랫배를 천천히 누르면서 입술 사이로 숨을 내쉰다.
④ 들이쉬는 숨은 코와 입으로 하고 내 쉬는 숨은 입술사이로 하면서 이것을 몇 번 되풀이한다.
이렇게 천천히 숨쉬기를 몇 번하고 나면 거친 숨결이 보통 때처럼 되고 마음이 안정되어 조용하고 차분한 몸가짐이 된다.
(4) 무대에서 시작하기 전 심호흡을 하고 어깨를 내린 뒤 온몸의 근육을 푼 후 시작한다.
2) 심리적인 방법
(1) 자신감을 갖는다.
자기스스로 '나도 잘 할 수 있어.'하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즉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
어느 누구나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는 '자신감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자신을 가지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했다.
(2) 자기 최면
최면에는 자기 최면과 타인 최면이 있다. 자기 최면은 자기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다.
무대에서 떨리지 않으려면 청중을 자기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가족은 자신을 사랑하며 많은 응원을 보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낭송자는 청중을 자기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청중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만약 이것도 잘 되지 않고 가슴이 떨린다면 청중을 '돌'로 생각한다. '돌'앞에서는 내가 떨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낭송 몇 시간 전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병원에서 강심제를 맞는다든지 진정제를 먹는다고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심리적으로 '약을 먹었으니 괜찮겠지.'하는 자기 최면으로 심리적인 안정을 줄 뿐이다.
(3) 타인 최면
타인 최면이란 타인 즉 가족이나 친구, 주변 사람들이 낭송자에게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실어주고 칭찬을 해주며 인정을 해 줄 때 자신감을 갖게 되어 자신의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타인의 말 한마디가 대단한 힘을 지닌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해 주어 자신감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기최면과 타인최면이 가슴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을 때 낭송자 는 무대에서 두렵지 않고 떨리지 않게 된다.
(4) 마음을 비우자
'이번에는 특별히 잘 해야 한다.' 혹은 '누가 와 있을 텐데.'하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긴장이 되고 욕심은 정신의 산란을 가져온다. 오늘의 이 대회장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와 더불어 시의 잔치를 베푸는 향연의 장, 축제의 장이라고 생각하며 결과에 집착하지 말자. 그래야 오히려 시의 향기가 살아난다.
(5)시각적인 효과 얻기
일반적인 모임이라도 여러 사람 앞에 자주 서보지 않은 사람은 긴장되고 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런 기회를 많이 갖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것마저 쉬운 일은 아니다.
경험이 많지 않으면서 여러 사람 앞에 섰을 때는 우선 시선을 자기에게 가장 편한 곳에다 둔다. 다시 말해서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보지 말고 보는 각도를 좁혀서 몇 사람만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시선을 옮길 때도 군중을 다 둘러보는 것보다 부분적으로 두는 것이 더 편하다. 특히 관중의 옷차림이 똑같은 제복을 입었을 때는 더 유념해 둘 일이다.
많은 관중 앞에서면 웬만큼 기가 센 사람도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렇게 했더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 앞에 서도 편안해 질 터이니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참고자료: 재능刊 “시낭송이론과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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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낭송 강의자료
우선 시 낭송문학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눈으로는 읽고, 귀로는 듣고, 입으로는 낭송을 하고, 마음으로는 감상을 하는 것이다. 이 낭송을 보다 더 잘 하기 위해서는 3가지의 필수 조건이 있는데
첫째: 詩를 사랑해야 한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예) 한 여자(남자)를 사랑하다 보면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그의 품성을 알 게 되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을 수가 있듯이 시를 사랑하다 보면 그 시의 속성을 알게 된다.
둘째: 시를 많이 읽고 외워라. 많이 읽을수록 그 시를 이해하게 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낭송을 보다 잘하기 위해서는 외워야 한다.
외우지 못하면: 1. 감정을 실을 수가 없고
2. 감정과 운율이 없으면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다.
3. 때론 원고를 볼 수 없는 곳일 수도 있다.
4. 정신을 원고 보는데 빼앗기게 된다.
5. 자칫 잘못하면 낭독이 될 수도 있다.
암송을 하면
1. 시선이 청중을 향하므로 청중과 하나가 된다.
2. 분위기가 부드럽다 자유롭다.
3. 감정을 몸짓으로, 또는 눈짓으로, 웃음으로, 청중을 즐겁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암송은 낭송문학에 있어서 참으로 꼭, 실천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시를 자연히 읽게 되고, 또 암송을 하게 된다.
사실 원고를 보고 낭송을 하게 되면 장소에 따라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수 도 있거니와 글씨를 빠뜨리고 낭송을 하거나, 틀리게 낭송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설령 틀리지 않고 바르게 낭송을 한다 하더라도 원고를 보는데 정신을 빠뜨리게 됨으로 표현하고 하는 의도를 제대로 살리기가 어렵게 된다.
지난 강의에서 말했듯이 시 낭송은 소리의 예술이다. 가슴 속에 담겨있는 감정들을 [문자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이고, 그 문자 언어를 [음성언어]로 바꾸어 놓는 것이 낭송이라고 말을 했는데 문학은 예술의 아주 중요한 일부이고 시는 곧 "문학의 꽃"이요 시 낭송은 "아름다운 영혼의 꽃"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는 그 자체로도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문자언어가 음성언어로 변할 때시는 더욱 빛나게 되고 향기롭게 되는 것이다. 마치 시를 보석에 비유하자면 詩는 원석이고 낭송은 세공하는 것과 같다.
세공을 아름답게 해야만 보석이 빛나듯이 낭송을 잘 해야만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며 함께 즐거움을 공유할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소리로 연출하라. 연예인들은 몸으로 연기를 하지만 낭송은 소리로 연출을 한다.
시에 있어서 리듬은 곧 생명이고, 시의 해석은 곧 그 리듬의 해석이 된다.
시인이 작곡가라면 시낭송은 성악가로 비유하기도 한다. 시인이 작곡한 시를 성악가
가 어떻게 노래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시의 감동은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낮게 떨
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강좌에서 우리가 공부했던 유치환님의 <행복>을 낭송했다 시로 읽은 <행복>은 한 편의 시이지만 낭송을 듣는 <행복>은 열 편, 또는 백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낭송자의 연출에 따라 천차만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는 낭송하는 사람의 생각과 받아들이는 청중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낭송하는 사람이 감정을 섞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시의 의미는 다르게 되는 데, 시 낭송은 눈으로 읽기 보다는 암송을 하여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지고 청중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낭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시낭송은 차츰 대중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세계 시낭송 협회)만 보더라도 현제 97회 낭송회를 통하여 차츰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황금찬 시인과 함께 떠나는 문학 세미나 및 열린 詩낭송회와 회원들 간에 침목을 다지는 화합의 축제가 가평 "사조리조트"에서 있었다. 앞으로는 보다 대중과 함께 하는 시낭송으로 진행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노래를 한다고 모두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낭송을 한다고 모두 낭송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 시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시에 대한 이해와, 타고난 음성, 열성적인 연출력 등을 고루 갖추어야만 되는 것이다.
첫째: 좋은 시를 골라라, 먼저 문학성이 뛰어나고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요즘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들은 그 문학성은 깊으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깊어 이해하기가 어렵다. 좋은 시와 아름다운 시는 다르므로 낭송하기에 적합한가를 따져봐야 한다.
둘째: 시를 바르게 해석하라. 낭송자는 시와 청중사이에 매개체가 되는 전달자이므로 그 시에 대한 올바르고, 완전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가령 오늘 배우는 김남조의 <후조>를 골랐다고 하면 이 작품이 쓰인 시대의 배경과 그 시인의 대표작들과의 상관관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완전한 그 시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감동의 전달이 부족할 것이다.
셋째: 청중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속으로 중얼거리는 시로써는 대중을 사로잡지 못한다.
하늘에 높이 뜬 달이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기듯이 낭송자는 청중을 이끌고 시의 용광로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함께 시 속에서 뒹굴고, 함께 들끓고, 함께 뼈와 살을 녹여 하나의 악기가 되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한 두 편의 시가 아니라 몇 십 편 몇 백편의 시를 내 것으로 만들고 때론 분위기와 청중에 따라 거기에 어울릴 수 있는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가 주는 감동은 언어에 의해서 창조된 예술이다. 시는 머리로 아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시 낭송 또한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한다.
낭독과 낭송의 차이점
우리말 사전에서 낭송과 낭독이란 단어를 찾아봤다.
낭송(朗誦)이란:
1. 크게 소리를 내어 유창하게 글을 외우거나 2. 음율적으로 감정을 불어넣어 유창하게 읽거나 외우는 것이라 했다.
낭독(朗讀)이란:
1. 글자 그대로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을 말한다. 사실 詩낭송이란 시 속에 담긴 깊은 의미와 감동을 청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감정이 닮긴 소리로 읊는 예술적 행위라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詩낭송 운동이 활발해지더니 근래에는 문학 작은 동아리로부터 큰 단체에 이르기까지 낭송문학에 대한 생활이 점차 확산되고 있음은 우리 국민들 정서적인 삶을 위해서도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세계詩낭송협회만 보더라도 현재 2005년 "황금찬 시인과 함께 떠나는 문학인의 축제" 가평 사조리조트의 행사로 98회째를 맞고 있지 않는가. 낭독은 전자에서도 말했듯이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詩낭송회"라 하면 당연히 낭독이 아닌 낭송을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가끔 "시낭송회"에 초대를 받아 참석을 하다보면 종종 낭송이 아닌 낭독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심지어 손바닥만한 종이위에 적힌 시를 더듬더듬 읽는 것을 볼 때면 경망스러운 말 같지만 낭송회인지 낭독회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때도 있으니 낭송과 낭독의 차이는 어쩜 하늘과 땅의 차이쯤 될 상 싶다. 詩낭송을 보다 잘하기 위해서는
1. 목소리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라.
혹시, 아름다운 목소리만 가지고 시를 잘 낭송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건 잘못된 생각이라 지적하고 싶다.
물론 목소리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로만 낭송을 하다보면 색깔은 고울지 모르나 깊은 시의 향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다시 말하면 귀에는 아름답지만 가슴에는 감동이 없다는 말이다.
2. 詩를 많이 읽고 먼저 이해하라. 내가 먼저 이해하고 감동을 받아야 그 감동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여러 번 읽다보면 그 시가 전하는 깊이와 넓이를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다보면 스스로 먼저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바른 소리로 말맛을 살려라. 단어 하나하나의 소리가 바르고 정확해야한다. 우리나라 말들 중에는 비슷비슷한 말들이 많아 자칫 잘 못 전달을 하면 낭송하고자 하는 그 시가 전하는 깊은 향기를 잃게 되는 수가 있게 된다.
말맛이란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계곡을 돌아갈 때의 물은 물만의 특이한 소리로 흐르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뛰어 내릴 때는 힘찬 폭포의 소리로, 넓은 곳을 흐를 때는 깊고 잔잔하고 평화롭게 흐르듯, 낭송도 물소리와 같이 그 맛을 살려 낭송을 할 때 듣는 청중들은 깊은 감동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첫댓글 총무국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ㅎ
사전 처럼 자주 자주 들어와 읽어 보겠습니다. 여울님 이 성의를 우리 회원들이 다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연식 낭송가님~^^
고운 마음 아름답습니다
날마다 행복 가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