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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피, 『바울, 성령,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7-8장
김재현
A. 서론 : 바울 신학 연구사에서 고든 피의 위치
종교개혁 시대 이후로 바울 신학을 이해하는 관점은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바울 신학이라는 건물에 들어가는 “입구”는 칭의론이었다. 자유주의 시대에는 칭의론을 강조하는 교리신학자 바울보다는 종교적 천재성을 가진 “종교인 바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불트만(R. Bultmann)은 그의 신약성서신학에서 바울을 인간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신앙의 계시 이전의 인간”과 “신앙 하의 인간”이라는 구분하에 바울의 인간학을 중심으로 전체 바울신학을 이해하려고 했다.
스텐달(C. Stendahl)은 “사도바울과 서구의 자기 반성적 양심”(1961)에서 당대까지 서구의 바울 해석에 어거스틴-루터의 계보 안에 있는 “자기 반성적 양심”, “예민한 자기 반성의 요소”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통찰하였다. 그러나 스텐달에 따르면, 1세기의 바울과 16세기의 루터는 매우 다르다. 스텐달은 롬7장에 있는 죄의식과 내적 갈등 보다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도로 받은 소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마서 9-11장은 1-8장의 부록이 아니라 그 편지의 절정이었다.” 스텐달은 바울의 “회심”을 “개종”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회심”을 “예언자적 소명”이라는 전통에서 이해한다. 바울의 회심은 “소명의 사건”이며, 이방인의 사도라는 특별한 임무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소명의 경험”이다.
최근의 바울 해석에서 중요한 인물들은 “새 관점”(New Perspective) 학파의 학자들이다.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은 레이제넨(H. Räisänen)이다. 그는 바울의 율법관이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① 율법의 개념에 대한 비일관성(모세의 토라만 ↔ 율법서,시편 포함) ② 율법의 유효성(폐기 ↔ 유효) ③ 율법의 성취(성취못함 ↔ 성취 가능) ④ 율법의 기능(율법이 죄를 일으킴 ↔ 죄는 율법 이전에 존재)⑤ 율법과 그리스도(율법이 아닌 그리스도: 이스라엘의 계약과 선택의 단절 ↔ 이스라엘의 계약과 선택의 지속적 의의 강조(롬9-11장)) 레이제넨은 바울이 신학자라기 보다는 선교사요 종교인으로서 일관된 율법관을 가지지 못했고, 더 나쁜 것으로 “유대인의 종교에 하나의 왜곡된 그림을 전달”한다고 비판했다.
샌더스(E. P. Sanders)는 “일관성 없는”(Räisänen) 신학자가 아니라 “조직적 사고가 결여된” 신학자로 읽는다. 샌더스는 바울과 팔레스타인의 유대교가 일치점과 더불어 중요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샌더스는 팔레스타인의 유대교를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으로 규정한다. 언약적 율법주의에서 사람이 계약과 계약 공동체 속에 머물기(staying in) 위해서는 율법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율법을 복종한다고 해서 구원이 허락되는 것(들어가기(getting in))은 아니다. 이러한 “언약적 율법주의”는 법률주의와는 구분된다. 샌더스에 따르면 기독교인으로서 바울이 다른 점은 그가 “참여적 종말론”(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함께 죽음)에 의해서 머물기와 들어가기를 모두 해결했다는 것이다.
새 관점 학파의 또 다른 대표자는 던(J. D. G. Dunn)이다. 그는 샌더스와 레이제넨이 앞 뒤 안 맞고 일관성 없는 바울만 보는 것에 관해서 비판한다. 하지만 던은 새 관점 탐구의 추진력을 토대로 율법의 문제를 새롭게 고찰한다. 던은 “열심”과 “율법의 행위들”이라는 바울의 말을 재고한다. “율법의 행위들”이란 일반적인 선행이나 의를 이루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언약적 의, 특히 이방인들과의 구별을 유지하기 위하여 준수하도록 명령된 율법의 계명들”이었다. 회심 이전 바울은 이런 율법의 행위들에 열심이 있었다. 던에 의하면 칭의는 율법의 행위를 행함이 아니라 “듣고 믿음”으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 속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의미한다”(즉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고든 피는 인상적이게도 이러한 지평 위에서 “성령론”을 중심으로 바울신학을 재구성한다. 새 관점 학파가 율법 및 칭의 문제와 관련하여 제기한 결정적인 질문은 ‘이방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에 들어가게 되고 머물게되는가에 관해 바울이 어떻게 생각했는가?’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던은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를 강조할 것이다. 피는 그 듣고 믿음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한다.
B. 회심 : 들어가기 1부 - 성령과 복음을 들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목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라면, 옛 언약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불연속성은 그 백성이 지금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이다. ② 모든 ‘족속과 나라’가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들어감으로써이다. 개인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구약성서에서도 이미 나타난다. 바울의 경우에는 구원으로 들어가는(gets in) 방식으로서 개인을 새롭게 바라본다. 그리고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없이 대하는 그의 변화된 종말론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피는 그리스도의 구원이 들어가기(getting in)와 머물기(staying in)를 둘 다 포함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것을 모두 함께 묶어서 회심이라고 표현한다. 구원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faith)과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faithfulness)을 모두 의미한다. 오랫동안 교회는 회심을 단지 구원의 시작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회심은 이전에 이교도였던 우리를 제자로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
1. 성령과 들어가기
바울에게 크리스천의 삶은 복음(성경 내러티브)을 듣는 것과 함께 시작되는데, 복음을 듣는 일은 믿음보다 앞서며 믿음이 뒤따른다. 복음을 듣는 것에 관한 이러한 견해는 바울이 선교를 얼마나 긴박한 것으로 보고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하나님의 복음을 듣는 것을 성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음을 듣는 일에는 두가지가 필요하다. ①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과 ②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은 진리의 계시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효과적일 수 있었던 이유가 성령의 사역의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령의 사역은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을 줄 뿐 아니라,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는 것이며 그를 통해 삶이 변화된다. 바울의 증거를 들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된 이유는 바울이 단지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복음 증거에 성령님이 능력으로 함께 하셨고,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서 성령의 능력이 이중적으로 나타난 것(능력있는 말과 강력한 행위)에 근거해서 성령의 역할을 이해했다.
바울은 말과 행위를 통한 이중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약속된 성령의 임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령, 곧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하는 임재의 현재적인 종말론적 성취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기적적인 것들이 복음 증거에 뒤따르지 않거나 또는 누군가가 말과 행위의 두 가지 능력 중 어느 하나만 있어도 된다는 식의 양자 택일로 생각하는 것은 바울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그가 볼 때 이 두 가지 능력은 아주 당연히 필요하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말하면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복음을 위해 싸우면서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2. 성령에 의한 계시
자신의 메시지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했고, 함께 하리라고 바울이 확신한 이유는 복음의 핵심 내용이 성령의 사역인 계시를 통해서 그에게 주어졌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과 그의 개종자들은 인간의 마음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 곧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구속하기로 하셨다는 사실을 오로지 성령에 의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성령님이 계시해 주시는 것은 애매모호하고 비밀스러운 지혜가 아니라 복음의 내용, 곧 하나님의 비밀이다. 이런 점에서 복음은 무엇보다도 성령을 통해서 계시되어야 한다.
성령이 계시해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지혜에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엡3:6)을 포함한다. 마지막 때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복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었다. 계시가 필요한 것은 이방인들이 율법 없이(유대인의 율법을 준수하지 않은 채) 유대인들과 동일한 기준으로 하나님의 복에 참여한다는 사실이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둘로 구성된 새로운 인류를 이루신다는 것이다(엡2:14-15).
복음을 듣는 것과 관련된 계시의 더 깊은 측면은 고전14:24-25에 나타난다. 여기서 계시는 예언이라는 수단을 통해 불신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비밀이 드러남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그들은 명백하게 회개하고 회심하게 된다. 바울은 사람들 안에 성령이 아니라 악한 영, 사단이 역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성령님은 그들의 마음에 있는 수건을 제거하신다. 이 경우 계시는 불신자들의 죄와 관련이 있다. 이 계시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던 더 큰 계시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C. 회심 : 들어가기 2부 - 성령과 회심의 순간
1. 성령과 믿음
피는 성령의 사역인 믿음 그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그 동일한 믿음을 통해서 오는 성령을 받게 하며, 경험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우리의 논리에 맞지 않더라도 성령은 믿음의 원인이자 동시에 결과다.
2. 회심에 있어서 성령의 결정적인 역할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렇게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2-3) 바울에게 크리스천의 회심 때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성령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님만이 현재 종말의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확증한다.
바울은 신자와 불신자를 성령의 소유 여부에 따라 구별한다. 이전에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기준에 따라 구분하였다. 새로운 방식은 그리스도에게 속한자와 그렇지 않은 자이다. 그리고 새로운 백성의 특징은 성령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새로 형성된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백성이다. 그들은 생명을 주는 성령에 의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성령으로 살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성령을 받는 것이다.
3. 구원에 대한 바울의 이미지와 성령
바울이 신자의 구원 경험을 강조하는 은유들을 사용할 때에는 성령님이 자주 언급된다.
양자 됨: 이 이미지의 사용은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보는 바울의 이해를 파악하는 열쇠이다. 갈4:6에서 성령님은 신자의 마음속에서 그 아들의 특별한 용어로 아바라고 부르짖는다. 롬8:15-17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령님이 신자의 양자도미에 책임이 있는 분으로 언급된다. 성령의 체험을 통해서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칭의의 지위를 얻을 뿐 아니라 자녀 됨의 특권, 곧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우의를 지속적으로 누리게 된다.
씻음, 중생, 생명을 줌: 성령의 사역에서 씻음의 이미지는 고전6:11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세례가 암시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피는 성령이 그러한 씻음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성령에 의한 거듭남이란 개념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바울에게서 낯설지는 않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성령에 의해서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사람들의 과거의 죄를 씻어 주시며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변화시키며 거듭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다. 바울은 근본적인 변화가 회심의 초기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전체의 삶이 새롭게 방향설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향설정은 질접적으로 성령의 사역과 연결되어 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계시되어 있다. 기독교 회심에 대한 바울의 이해에 있어서 핵심은 신자가 받은 성령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성령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의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회심은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인 기독교 회심을 바라보는 바울에게 회칠한 죄인, 즉 여전히 죄인이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사람이 설 자리는 없다. 바울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유일한 길은 그 안에서 신자 자신의 삶이 생명을 주시는 성령에 의해 점령되는 것이다.
바울은 성화라는 용어를 회심 이후의 은혜의 사역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주로 회심을 가리키는 비유로 사용한다. 이 이미지는 신성한 제의와 기구들이 하나님께 정화됨으로써 즉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만 구별됨으로써 거룩하게 되는 유대인의 종교적인 관행에서 끌어온 것이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거룩한 제물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행위였다.
D. 결론: 요약과 전망
바울 신학을 성령론으로 푸는 고든 피의 작업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새 관점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바울의 회심에 대한 해석이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피는 “회심”에 대한 독자적인 견해를 제공한다. 그는 새 관점의 성과를 수용하여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의 언약관계에 들어오는 것에 관해 관심을 가진다. 그 역시 회심은 머물기와 들어가기 둘 다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는 새 관점의 학자들이 간과한 부분, 즉 이 회심의 과정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부각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피가 샌더스가 이해한 언약적 유대교의 머물기와 들어가기의 순서를 들어가기와 머물기로 역전시킨다는 것이다. 이 순서의 역전은 단순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역전이다. 그는 이를 통해 회심이 개종(들어가기)에서 멈추지 않고 제자 됨(머물기)로 나아가야 한다는 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성경 이야기 상담과 바울신학 중 성령론은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여기에서는 발제자가 발제를 준비하면서 생각났던 세 가지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바울신학은 이미 기독교적 인간학을 이루고 있으며 현대의 대표적인 정신분석학자들도 감탄하게 할 심리학적 깊이를 가지고 있다(J. Lacan, S. Zizek). 성경 이야기 상담가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나 심리에 대한 이해에 관해서 다른 기초를 가질 필요가 없이 바울신학을 근간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발제를 준비하면서 성경 이야기 상담은 연구와 분석의 훈련 뿐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능력, 그리고 성령의 계시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이야기 세계와 성경의 이야기 세계(복음)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과 연결은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배적 구상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의 이야기에서 빈약함과 고통을 느끼는 내담자가 성경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독특한 재료를 발견하고, 재저작 대화를 거쳐, 하나님 백성이라는 공동체에서 인정의식에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상담가는 성령님에게 의존해야 한다.
셋째, 발제자는 현재 중 2학년 학생 Y군 및 그 어머니 Y씨와 상담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담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함께 식사 및 대화, 상담(4회기) → Y군과 함께 목욕한 후 식사 및 대화(6회기) → 식사 후 고전 『논어』를 함께 읽으면서 여러 가지 대화를 함(지난 주) → (『논어』읽기가 끝나면 성경 『마가복음』이나 요셉 이야기를 읽으려고 계획 중). 지금까지 내담자들을 대하면서 분석과 기법의 적용이라는 차원에서만 접근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담의 매 과정에 성령님의 개입과 능력을 의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