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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기본소득을 ; 들어가며
새로운 책을 시작한다. 새로운 책이라고 하지만, 이전의 책과 내용이 많이 겹치며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면
되겠다. 다른 점이라면, 이 책의 내용은 기본소득 자체에 집중하여 분석을 한다는 점과, 분석의 기반이
한국이라는 사회에 좀 더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간 즈음에 서서, 이전에도 했을 법한 이야기를 조금 풀자면, 내가 기본소득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전적
으로 호기심에 기인한다. 난,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여부에 대해서는 반반이다. 일단 현실적 부에 기반하여
기본소득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 여건에 기반해서 생각해보면 걸림돌은 무한에 가깝다.
일단 무상의료 무상보육도 제대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식부터 시작해서, 권력을 쥔
자들의 이기심과 국제정세가 기본소득의 실현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공부는 그러니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지금의 불합리를 극복하고 대안이 필요할 때, 수많은
대안 중 하나의 방법으로서 제시될 수 있게끔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블로그라는 개방된 공간을 통해 적지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이제 잠시 섬을 멈추고 다시 걸어나간다. 책을 펼쳐본다.
기본소득은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해법이다. - 가이 스탠딩(영국 배쓰대학 경제보장 교수)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지구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삶이 불안정하고 저소득층 사람들이 품위있는
생활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이 품위있게 생존하는 것을 보장하려면 모두에게 적정한
금액의 현금소득이 매달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족이나 가구의 일부 성원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이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본소득을 받을 것이며, 아이들도 기본소득을 받을
것이다. 다만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들을 돌보는 사람에게 지급될 것이다.
이 현금은 무조건적으로, 즉 인간이 갖는 권리로서 받아야 하는 것이지, 몇몇 관료들이 마음에 들어하는
방식으로 처신하는 것을 조건으로 받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이는 사람들 각자가 최선의 장기적 관심사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이지 온정주의
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은 인권의 창시자이자 미국 헌법 제정자 가운데 한 사람인 토머스 페인이 오래
전인 1795년에 표명한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그는 한 나라의 부는 모든 이전 세대들의 기여로부터 나오며, 오늘날 운 좋은 사람이 운이 덜한 사람보다
훨씬 잘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때문에, 여러분이나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보다 많고 적음을 따질 것 없이 우리 선조의 투자와
고된 노동에 대한 보상인 사회배당의 형태로 적정한 몫을 받는 것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평한 것
이다.
이러한 보장을 받는 사람은 더 나은 시민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 이웃, 동포를 향해 이타심을 더욱
발휘하고,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 보다 관대하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보다 적게 받으며, 질병이나
중독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경향이 있다.
중간계급의 여러 선입견과는 반대로, 기본소득이 보장된 사람들은 실제로 더 일하고, 기술들을 익혀 이를
더 큰 영역에 적용하기 쉽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국과 같은 나라가 모든 국민을 위해 적절한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할 여력이 없다는 주장이 자주 반복
되지만, 그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막대한 공적 자금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각종 보조금과 경비로 쓰이고,
막대한 금액이 과도한 행정적 비용에 소모되고, 그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어떤 목적을 좀처럼
달성하지 못하는 낭비적인 사회정책의 형태로 쓰인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도입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기본소득이 도입될 수 있냐 ?
하지만, 브라질은 2003년에 '보우싸 파밀리아Bolsa Familia'라는 전국적 현금 보조 제도를 도입했다.
2004년에 브라질 정부는 여력이 생기는 대로 모든 시민들에게 기본소득을 단계적으로 지급할 것을 약속
하는 '시민기본소득법'을 통과시켰다.
한편,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에서는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 - 강남훈(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사람들은 기본소득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대부분은 기대와 우려를 함께 표현하게 된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것보다는 기본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질문도 많이
제기한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이 책은 첫째로, 실제로 기본소득의 실험이 있었다는 것,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 오래
전부터 실제로 시행하고 있다는 것, 앞으로 전면적으로 시행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로, 독자들은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기본소득은 오래된 이념이지만, 신자유주의 시대를 계기로 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로, 독자들은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기본소득은 필요하고, 정당하며,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고용상황은 악화되고 있지만, 기존의 낙후된 사회복지 제도를 가지고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기본소득이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지와 기본소득을 통하여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을까?
우선 한국은 OECD회원국 중 세금을 매우 적게 내는 나라에 속한다.
2008년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6.6%에 불과하다.
스웨덴과 같은 복지국가 건설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소득의 50%를 세금
으로 내야 한다.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서는 조세부담률을 35-40%로 높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국은 세금을 너무 적게 내고 있어서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
부동산세를 토지세로 단일화하고 3%의 세율을 매기면 30조원이 마련된다. '증권양도소득세'를 신설하고
배당과 이자소득세율을 30%로 인상하면 적어도 60조원이 생긴다. 탄소세와 같은 환경세로 30조원을 마련
할 수 있다. 앞으로 환경세는 더 늘려가야 할 것이다. 정보, 통신기술을 활용해서 지하경제의 세원을 포착
하면 30조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지 않고서, 국민 일인당 연간 300만원씩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모든 정부가 고용 창출을 목표로 삼아왔지만 완전고용은 한 번도 달성된
적이 없다.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완전고용정책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 800만명과 비정규직 노동자 800만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음은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다. 또한 영세 자영업자가 400만명이고, 사실상의 실업자가
100만명이다.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25%나 된다. 청년 네 명 중 한 명이 백수인 셈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다음과 같은 여러 경로로 완전고용의 길을 열어준다.
첫째로, 기본소득은 노동시간 단축을 가능하게 해 준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시간의 단축 없이 완전
고용은 불가능하다.
둘째로, 기본소득은 비자본주의적 노동을 증가시켜 노동시장의 노동력 공급 압력을 줄인다. 우리 사회에는
돈을 많이 버는 노동보다 보람있는 노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기본소득은 이런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 준다.
셋째로,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적 일자리도 증가시킨다. 기본소득은 내수시장을 키우고, 다른 한 편으로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임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중소기업에서 받는 임금과 기본소득을 합하면 생활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불로소득이 절반 가까이 되고 경제수준은 상위권이지만 복지수준이 최하위권인 한국 자본주
의에서 적절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에 사용될 세금을 더 걷자는 데 대하여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국민 대다수에게 순이익이 되고, 정부가 쓸데없는 일에다 그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그대로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국민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정치 세력이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본소득은 필요하고, 정당하며, 가능하다.
1.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입장이 완전히 하나인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 논의가 가장 활발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기본소득 지지자들 가운데 극소수는 복지국가를 해체
하고 그 대신에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대다수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기존 복지국가의 해체가 아니라 그것의 성과위에서 현재 나타
나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2.
사회당과 대학생사람연대는 기본소득을 강령으로 삼았고, 전국교수노동조합은 기본소득을 주요 정책으
로 채택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연구원의 '기본소득 연구 프로젝트'는 2008년부터 3년째 계속
되고 있으며, 정부출연 연구 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9년 12월에 발행한 한 연구보고서에는
'데모그란트Demogrants', '범주적 공공부조'와 함께 '부분 기본소득'의 도입까지 검토대상으로 올랐다.
그리고 지난 4월에는 '모두를 위한 글로벌 기본소득의 비전'이라는 연구과제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사업
으로 선정되는 일도 있었다.
가장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던 것은 물론 2010년 1월 말 서울에서 개최된 기본소득국제학술대회였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도 기본소득 지지흐름이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세계 각국의 기본소득 지지자
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이는 2010년 7월 2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개최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총회에서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BIKN가 그 가맹 조직으로 무난히 승인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3.
기본소득은 기여금, 자산 심사, 노동 요구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이며,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을 그 핵심적인 특징으로 한다.
기본소득을 실현한다는 것은 현존 사회보장제도를 급진적으로 개혁한다는 것인데, 이는 노동과 복지를
연계하는 것을 넘어서서 노동과 소득 사이의 연결고리를 해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기본소득은 또한 현재의 패러다임 모두를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과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에 기초
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실질화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기초를 수립하는, 신자유
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사회 프로젝트로서의 위상도 갖는다.
4.
이 책의 제 1장부터 3장까지는 필자의 석사학위논문 '기본소득 모델의 이해와 한국에서의 도입 가능성
연구'(2009년, 한신대학교 국제평화인권대학원)를 뼈대로 하고 있다.
제 2장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기본소득 논의의 배경과 역사, 그리고 기본
소득 개념의 발전과정 등을 살펴보고 있다.
또한, 기본소득에 대한 다양한 비판의 논리와 기본소득 논의의 배경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도 여기서 함께 다룬다.
제 3장에서는 낙후한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 낮은 사회복지 지출수준, 점차 악화하는 고용 상황 등을
먼저 살펴본다. 그리고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 방법으로 넘어간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구체적인 현실에 비추어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필요하고, 정당하며, 가능하
다는 주장을 편다.
5.
'충분한 수준'이란 무엇을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일까? 누구에게 충분하다는 것일까? 도대체 충분한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 질문은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원칙과 방향이다. 원칙과 방향을 잘 세워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다면,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리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에서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질문
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다양한 기본소득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
6.
제 4장은 지난 2009년 연말부터 장애인운동 활동가들 및 장애인 단체와의 간담회, 토론회 등을 통해
다듬기 시작해 2010년 1월 27일과 28일에 서울에서 열린 기본소득국제학술대회 때 제 2부 '지구화 시대의
도시와 기본소득' 순서에서 발표했던 글을 토대로 하고 있다.
여기서는 한국에서 2010년 7월부터 시행된 장애인연금의 문제를 파헤치면서 장애인이 마주하고 있는 열악
한 현실을 고발하고 기본소득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제 5장에는 두 개의 인터뷰를 실었다. 2010년 3월 말 일본 교토에서 열린 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설립
총회에 참석해 만난 오자와 슈지 기본소득일본네트워크 대표와의 인터뷰와 이 책의 추천사를 써 준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명예공동대표와의 인터뷰다.
덧붙여 '기본소득 서울 선언'과 '기본소득연합 발족 선언문'을 자료로 실었다.
기본소득, 세상에 나오다
1.세계 최초로 기본소득법 제정한 브라질
브라질은 '시민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 제도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시민기본소득법'은 2004년에 최종적으로 통과되었지만, 재원마련문제 때문에 그 시행에 이르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기본소득의 핵심적 취지와는 다른 점이 있지만 '부의 소득세'의 일종인 '보우싸 파밀리아Bolsa Familia'라
불리는 최소 소득보장 프로그램이 바로 이 시민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위한 첫 단계의 역할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기본소득 제도의 맹아, '보우싸 파밀리아'
이 프로그램은 2009년 현재 일인당 월 소득이 140레알(1레알은 2010년 9월 현재 681원) 미만인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우선 일인당 월 소득이 70레알 미만인 가구에 매달 68레알의 기본수당을 지급한다. 그리고 16세 미만의
아동 한 명이 있으면 22레알, 두 명이 있으면 44레알, 세 명 이상이 있으면 66레알의 아동수당을 해당 가구
에 지급한다. 또한, 16세 이상 18세 미만의 청년이 있으면 최대 두 명에 대해 각각 33레알의 청년수당을
해당 가구에 추가로 지급한다.
일인당 월 소득이 70레알 이상 140레알 미만인 가구에는 기본수당 없이 아동수당과 청년수당만 같은 방식
으로 지급한다. 결국 이 프로그램을 통해 브라질의 빈곤가구는 매달 최소 22레알 최대 200레알의 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 현재 이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는 가구는 평균 95레알 정도의 수당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소요되는 2009년도 예산 추계는 약 114억 3400만 레알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조건이 부가된다. 우선 임신부나 산모는 공중보건 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고, 6세까지의 아동은 정해진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며, 7세 이상 16세 미만의 아동은 최소 85% 이상의
출석률로 학교에 다녀야 한다. 청년수당의 도입으로 16세 이상 18세 미만의 청년에게는 최소 75% 이상의
출석률로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조건이 부가되었다.
2006년 7월 현재 약 1120만 가구가 '보우싸 파밀리아'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는데, 이는 시작당시 120
레알 미만이었던 브라질의 거의 모든 가구가 이 혜택을 받았다는 의미를 가진다.
현재 가구당 평균 4명의 구성원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프로그램은 브라질 인구 1억 9030만 명의
대략 4분의 1에 해당하는 4500만명을 끌어안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며, 그 결과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02년 0.58에서 2007년 0.55로 개선되었다.
'시민기본소득법'이 통과되다.
'시민기본소득법'을 기초한 것은 기본소득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그 도입에 앞장서 온 브라질의 노동자당
소속 상파울루 주 연방상원의원인 에두아르두 수플리시였다.
2004년 1월 8일 룰라 대통령의 서명으로 이 법률은 효력을 갖게 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1조 : 2005년부터 시민기본소득이 시행된다. 이는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브라질 사람들과 브라질에
최소한 5년을 거주한 모든 외국인이 사회경제적 조건의 부과없이 매년 현금급여를 받을 수 있는 권리로
이루어질 것이다.
제 1항 : 적용범위는 행정부의 판단기준에 따라 더욱 궁핍한 주민계층을 우선하여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제 2항 : 지급액은 예산상의 능력을 고려하여 모두에게 동등한 액수가 되어야 하고, 각 개인이 식량,
교육, 건강에서 최소한의 지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해야 한다.
제 3항 : 지급액은 같은 액수로 월 단위로 분할될 수 있다.
제 4항 : 현금 급여는 개인 소득세 부과를 목적으로 한 과세 소득이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제 2조 : 급여액의 결정은 행정부의 권한이다. ....
제 3조 : 행정부는 이 법률의 2조에 있는 규정을 준수하며, 2005 회계연도 연방 정부 총예산 가운데
이 계획의 첫 단계를 시행하기에 충분한 예산을 계산하여 넣을 것이다.
제 4조 : ..........
제 5조 : 이 법률은 공포일로부터 시행한다.
기본소득 지급대상에는 브라질 국민은 물론 브라질에 최소한 5년을 거주한 외국인들도 포함된다.
처음에는 2005년부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부터 단계적으로 혜택을 줄 계획이었으나, 이 프로그
램의 시행이 국가 경제의 발전 정도와 사용 가능한 재원의 수준에 따라 제약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어서, 재정상의 부담으로 '시행되지 않는 법률'로 남아있다.
'시민기본소득법'의 공포 당시에 재원마련 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법률이 상당기간 동안
'실행되지 않는 법률'로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예견되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이 법률이 공포되던 날 행한 룰라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언급이 있었다는 점을 통해
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 시민기본소득의 재원은 2006년 8월 브라질 상원에서 통과된 '시민기본기금 설치에 관한 법률'을
토대로 마련될 예정이다. 수플리시 상원의원이 기초한 이 법률은 연방소유 회사주식의 10%, 자연자원채
굴에 대한 사용료의 50%, 정부의 서비스 허가 수입의 50%, 연방정부 자산 임대료의 50%, 연방 조세수입
등으로 기금을 마련하도록 되어있고 2009년 12월 현재 재무조세위원회의 의견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2.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가 진행된 나미비아
아프리카 대륙 남서부에 위치한 나미비아는 1990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한 인구 200만명
의 작은 나라다. 이곳의 수도 빈트후크에서 동쪽으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미타라 마을에서 매우
특별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바로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였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만 2년동안 이곳 주민 모두에게 일인당 매월 100나미비아달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한 실험이었다. 2009년 연말에 이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 지역 주민들에게 일인당 80 나미비아달러씩의 기본소득이 지급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후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고,
이것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험은 성공의 지름길이다.
2009년 4월에는 실험 프로젝트 시행 일 년 후의 변화를 짚어 본 종합적인 중간 평가 보고서가 나왔다.
그 가운데 핵심적인 것들만 추려서 간략히 소개한다. 실험 프로젝트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대상 : 나미비아 오미타라 지역의 모든 주민(60세 미만 930명)
지급 금액 : 매달 100나미비아 달러(약 만 오천원)
지급방식 : 우체국 예금 계좌로 송금(처음 6개월은 직접 지급)
기간 : 2008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24개월
비고 : 21세 미만은 돌보는 사람에게 지급
우선 가장 두드러진 점은 기본소득의 지급 이후 빈곤문제가 급격하게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식량빈곤선에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2007년 11월 72%에서 2008년 11월 16%로 무려 56%나 줄어들었다.
실업률 또한 2007년 11월 60%에서 2008년 11월 45%로 상당히 많이 줄었다.
이러한 결과는 매우 놀라울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기본소득의 주요 비판논리 가운데 하나가 고상하게 말하면 '노동윤리의 실종', 쉽게 말하면 '놀고먹는 사람
이 늘어날 것' 등인데, 이 결과는 그러한 예상이나 추측과는 달리 경제활동인구가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 줌으로써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런 조건없이 소득이 보장되면 노동윤리가 훼손될 것이라는 뿌리깊은 암묵적 가정을 반박하는 경험
적인 결과는 오래전에 미국에도 있었다. 영구기금 배당이 실리되고 있는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도 이 배당
때문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떨어졌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기본소득의 영향으로 그 지역 주민의 일인당 소득이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기본소득으로 말미암은 소득 증가분을 제외한 임금노동, 자영업, 농업 등을 통한
기타 소득이 2007년 11월 118 나미비아달러에서 2008년 11월 152 나미비아달러로 29% 증가했다는 사실
이다. 이것은 일자리가 증가하고 생산에 참가하여 얻은 소득이 늘어난 덕택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자영업을 포함한 소규모의 사업들이 활기를 띈 것으로 나타났다.
부분적이고 제한적이긴 하지만 기본소득의 경제 효과가 증명된 셈이다.
한편, 이 때문에 오미타라 지역 주변의 한 백인 농장주는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
을 보이기도 했다. 백인 농장주들은 이제까지 턱없이 싼 임금으로 이 지역 주민들을 마음껏 부려왔는데,
이 실험 프로젝트 시행 이후 주민들의 자립이 늘어나면서 예전처럼 대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드는 상황이
탐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범죄도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체 범죄건수가 기본소득 지급 이전시기인 2007년 1월 15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85건이었고, 기본소득
지급시기인 2008년 같은 기간에는 54건이었다.
이미 잘 알려진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범죄사이의 상관관계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교육, 보건, 의료, 성 평등 등의 차원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결과들이 나왔다
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다만, 정치적 의지의 문제다.
2009년 현재 60세 이상의 노령연금 수혜자 약 15만 명을 제외하고 190만명의 국민에게 매달 100 나미
비아달러를 지급하는 데 필요한 연간 소요예산 총액이 약 23억 나미비아달러이다.
하지만 세금환급효과등을 제외하면 순수 추가 비용은 12억에서 16억 나미비아달러, 즉 나미비아 국내총
생산의 2.2%에서 3.0% 수준이다.
계량경제학적 분석에 따르면 나미비아의 조세부담 능력은 국민소득의 30를 초과하는데, 현재는 25% 이하
로 조세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순수 추가비용은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나미비아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적절한 조세제도 개혁과 예산 우선순위 변경 등의 조합을 통해
재정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기본소득 제도를 즉각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다만, 정치적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기본소득과 유사한 배당을 실시하는 미국 알래스카 주
미국 알래스카 주의 사례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 해당한다.
석유라는 자원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익이 없었다면 이러한 시도는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풍부한 수익이 있다고 해도 기본소득과 같은 발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에
대해 인식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1960년대 알래스카 브리스톨 만에 접한 작은 어촌의 시장을 지내던 제이 하몬드는 어업에서 막대한 부가
생산되고 있음에도 주민 대다수가 여전히 가난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에 그는 어업에서 벌어들인 가치에 3%의 세금을 부과하여 기금을 설치하고 이를 모든 주민을 위해 쓰자
고 제안했던 적이 있다. 이러한 경험은 10여년 후 그가 알래스카 주지사가 되었을 때 알래스카 영구기금
설치 제안으로 이어졌다.
미래 세대를 위한 오늘의 투자
제이 하몬드는 북미에서 가장 커다란 산유 지대인 프루도 만에서 원유로 얻어진 커다란 부가 주민들의
부로 축적되는 것을 보장해주는 기금의 설립을 제안했다.
이러한 기금의 설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첫째, 앞으로 자원고갈은 피할 수 없으므로 석유생산에서 얻어진 현재의 수익을 알래스카의 미래 세대들
을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모아 두어야 한다.
둘째, 이러한 수익을 낭비적으로 지출할지도 모를 정치인들로부터 이를 지켜내야 한다.
이에 따라 1976년 주 헌법개정을 통해 석유를 포함한 주 소유 자연자원의 판매로부터 벌어들인 수익의
최소 25%를 적립하는 알래스카 영구기금이 설치되었다.
1979년부터 2003년까지 석유 수익의 50%를 기금으로 적립했고, 2003년에 톹과된 법은 이를 25%로 낮추
었다. 이후부터는 다시 석유 수익의 50%를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제이 하몬드는 구체적으로 알래스카 주민들이 이 기금의 성장과 지속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모든 거주자
에게 거주 기간에 비례하는 배당을 매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계획은 거주 기간을 최대 25년으로 설정하여 1년 거주자에게는 1년치의 몫을, 2년 거주자에게는 그 두
배의 몫을, 그리고 25년 이상 거주자에게는 25배의 몫을 나눠주자는 것이었다.
현재 이 계획은 나이나 주에서 거주한 기간과는 상관없이 알래스카에 적어도 1년이상 공식적으로 거주한
모든 사람에게 배당을 주는 단순한 계획으로 수정되었다.
영구기금 배당이 시행된 첫 해인 1982년에는 특별히 일인당 1000달러의 배당이 지급되었는데, 이 때는
기금 수익이 아닌 석유 판매수익 잉여금에서 배당을 지급했다.
다음 해에는 배당이 386달러로 떨어졌는데, 배당 지급 총액을 지난 5년간의 기금운용 평균수익의 절반으
로 정한 규칙 때문이다. 이 규칙은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이후 배당은 조금씩 늘어 1995년에 990달러, 2000년에 1963달러였다.
그리고 지난 2008년에는 애초 일인당 2069달러를 지급하기로 했지만 1200달러의 일시 보상이 추가로
지급되어 역대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이 기금의 관리와 운용은 1980년에 설립된 주 소유의 알래스카영구기금법인이 맡고 있다.
2009년 7월 현재 영구기금의 자산 운용 현황을 보면, 국내외 주식이 38%, 채권이 22%, 부동산이 12%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전체 영구기금의 시장 가치는 320억 7140만 달러에 이른다.
가장 평등한 주가 된 알래스카
영구기금의 배당은 뚜렷한 경제적 평등의 효과를 보여 주었다. 2002년 이전 10년간의 통계를 보면,
미국 전체의 부유한 가구 20%의 평균 소득이 26% 증가했지만 가난한 가구 20%의 평균 소득은 12%증가
에 그쳤다. 그러나 알래스카에서는 같은 기간에 부유한 가구 20%의 평균 소득이 7% 증가에 그쳤으며
가난한 가구 20%의 평균 소득은 28%나 증가했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알래스카주가 이 제도의 시행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주들 가운데 가장 평등한 주가
되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 논의의 전시장 독일
2008년 12월 10일 수잔느 비스트가 '사회보장 개혁 제안 - 조건없는 기본소득'이란 제목으로 독일연방
하원에 제출한 온라인 청원이 있었다.
모든 성인에게 1500유로, 모든 아이에게 1000유로의 기본소득을 매달 지급하고, 기본소득의 재원은 소비
세를 통해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지난 2009년 2월 17일에 막을 내린 이 온라인 청원은 최저 기준치인 5만명을 훌쩍 넘어서는 성과를 거뒀다.
독일에는 현재 구체적인 기본소득 모델 일곱개와 다소 구체성이 떨어지는 기본소득 모델 세 개가 있다.
여기서는 구체적 모델의 대표적인 것으로 좌파당 기본소득 연방연구회의 모델을 살펴볼 것이고,
괴츠 베르너의 모델도 소개할 것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기업가, 괴츠 베르너
100여개가 넘는 매장에 3만 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독일의 대형 생활용품 체인업체인 데엠
DM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괴츠 베르너는 독일의 100대 부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노사관계를 추구하는 진보적 사고의 기업가로 알려져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기업가로도 유명한 그는 기본소득 도입을 목표로 한 '미래에 대한 책임'이라는 단체
를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기본 주장은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대신 기업이 각종 사회비용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도
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기업에 이득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에서 기존의 연금, 실업연금, 사회보조금, 자녀 양육 보조금, 주택보조금 등을 롱합하여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분배하면 일인당 매달 800유로를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다 현금지급 방식의 사회복지 제도를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연간 약 1000억 유로를 절약
하여 이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보태면, 일인당 매달 830유로까지 지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장기적으로 일인당 매달 1500유로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고 주장한다.
괴츠 베르너는 조세제도 개편과 관련하여 직접세를 폐지하고 모든 세금을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로 통일
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하면 현재 매출액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직접세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생산
가격을 40% 가까이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경우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 하더라도 수출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생산도 늘리고 실업문제
도 완화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좌파당의 기본소득연방연구회 모델
독일 좌파당 기본소득연방연구회의 입장은 괴츠 베르너의 입장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좌파당 내부에는 아직까지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이들의 모델은 이렇다.
-16세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950유로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이 액수는 빈곤위험선에 기초한 것이다.
-기본소득은 액수의 삭감이 없다면 다른 모든 소득원과 합쳐질 수 있다.
-모든 소득원에 대한 35%의 추가세금 + 사치품에 대한 세금 + 주요 에너지세로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한다. 이를 통해 부유한 3분의 1은 손해를 보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이득을 보게 된다.
-기본소득 수급 자격은 시민권이 아닌 거주권이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총소득이 월 7000유로인 경우에 현재 개인 순소득 대비 기본소득 합산 순소득의
비율이 99%라는 점이다. 이는 월 7000유로 미만의 총소득이 있는 사람까지는 이 모델을 적용함에 따라
현재 개인 순소득보다 더 많은 순소득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덧붙여 기본소득의 도입은 다음과 같은 부가적인 조건들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기본소득은 최소한 시간당 8유로의 통상 최저임금과 결합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임금의 대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노동의 재분배를 촉진하기 위해 노동시간의 단축과 결합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성 평등을 위한 보편적인 투쟁 속에 자리매김해야 한다.
적어도 사회적 재생산 노동의 50%는 남성이 수행해야 하고, 사회적 재생산 노동이 균등하게 분배
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현존하는 몇몇 사회수당들을 대체하지만, 사회보험은 부담의 나눔에 있어서 균등과 연대를
위하여 기본소득의 도입 이후에도 유지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연금, 건강보험, 요양보험, 실업보험
체계와 같은 현존하는 사회보험 형태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사회보험 형태들에 덧붙여지
는 것이다.
-장애인처럼 특별한 요구가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형식의 지원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을 위한 투쟁은 지구적인 사회적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을 위한 투쟁속에 자리매김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억압과 강제가 아닌 가지 결정권을 증진시키는 교육체계와 결합하여야 한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브라질의 사례는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에 있어서 집권당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이 한편으로는 급격한 전환으로 보이지만, 그 이전에 '보우싸 파밀리아' 프로
그램 등의 다양한 소득보장제도가 성과를 거두어 온 과정이 있었기에 이의 연장선에서 비교적 순조로운
도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점도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한다.
물론 '시민기본소득법'이 2004년에 공포된 이후에도 재원 마련의 문제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실행되지
않는 법률로 남아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나미비아의 사례는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가 기본소득 도입의 장점들을 해당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매우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편, 나미비아에서는 교회와 노동조합의 전국조직도 기본소득의 도입에 매우 적극적인데, 이는 기본소득
지지 흐름이 있는 그 밖의 다른 국가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어떤 제도의 도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것의 제도화 과정에서 시민사회
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 주에서 시행하는 영구기금 배당은 매우 특수한 사례이긴 하지만, 그러한 발상을 제도로 실행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다.
물론 도입과정에서 대부분의 정치인은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제도가 안착되어 긍정적인 사회적, 경제적 효과들이 드러난 이후에는, 이 영구기금 배당을 허물려
는 일체의 시도가 '정치적 자살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알래스카의 사례는 자원으로 벌어들이는 이윤이 풍부한 국가들에게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기금의 조성과 그 운용에 따른 수익의 배당이 유가 등락과 투자 수익변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는 것은 알래스카 영구기금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세를 통한 안정적인 재원확보 및 소득보장 방식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안정성이 훨씬 떨어지는 것
이다.
독일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크고 논의도 활발하지만, 기업가인 괴츠 베르너의 역할
이 지대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일단 그의 노력 덕택에 기본소득이 독일에서 어떻게든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가 오로지 경쟁과 효율의 관점에서 기본소득 모델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좌파는 물론 많은
사람의 우려를 살 만한 것이다.
앤드루 글린은 복지지출이 많은 나라가 그렇지 않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가 오히려
적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지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늘어난 복지지출은 노동소득과 소비에 대한 추가적인 과세에 주로 의존했다는 것이다.
괴츠 베르너와는 달리, 좌파당의 기본소득연방연구회는 기본소득의 재원마련 방안으로 모든 소득원을
철저히 파악하여 가산세를 부과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고, 기본소득이 최저임금은 물론 기본복지와도
결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연방연구회의 모델은 좌파당 안에서조차 아직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좌파당 다수파를 비롯해 좌파 정치세력의 일부는 소득이 없거나 일정 수준이하의 소득이 있는 성인들에게
만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기존의 사회보장 제도를 보완하려는 '필요 지향의 기본보장'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좌파당뿐만 아니라 독일의 좌파 정치세력 내에서 '기본소득' 지지자들과 '기본
보장' 지지자들 사이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기본소득, 그 뿌리를 찾아서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배제 넘어서기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배제적 통합'에 입각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경제영역에서, 이러한 배제적 통합은 더욱 극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띠며 드러난다.
생산과 소비 영역 모두에서 전적으로 배제되어 구호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유형에서부터 증대된 생산결과
의 전유로부터 배제되는 유형까지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노동시장에 있어서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 노동 빈곤층을 항상 양성하
거나 늘리는 경향과 더불어 '사회적 배제'를 영속화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빈곤과 배제의 양산을 통해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 일반의 경쟁과 분할은 지속하거나 촉진되며 안정
적인 자본의 이윤 보장과 체제 안정화가 도모되는 것이다.
실업과 빈곤, 사회적 배제의 영속화
'사회적 배제 Social Exclusion'라는 개념은 빈곤 등의 사회적 문제를 소득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단선적
이고 정태적인 접근 방식을 넘어서서 다양한 측면의 사회적 관계를 고려한 동태적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논자마다 '사회적 배제' 개념을 조금씩 달리 정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그 원인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나 조건에서 찾는다.
둘째, 경제적 측면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측면 등의 문제를 총괄적으로 살피
는 다차원적 접근을 지향한다. 이러한 정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배제란 개인과 집단을 사회적 관계와 제도로부터 분리시키고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평균적이고
규범적으로 정해진 활동들에 온전하게 참여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점진적인 사회적 균열을 일으키는 다차원
적 과정을 일컫는다(Silver, 2007)'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흐름의 가속화와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 빈발은 유럽의 복지국가는 물론이고
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사회적 배제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국적 수준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 차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기본소득 지지자들
대안의 모색과정에서 기본소득이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놓여 있는데 그 안의 다양성을 살펴보면,
기본소득과 공화주의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논의 : 데이비드 카서세스, 캐롤 페이트만 등등..
기본소득과 생태주의를 관련짓는 논의 : 클리브 로드, 에릭 크리스텐슨 등등..
기본소득을 사회주의 프로젝트의 하나로 보는 논의 : 에릭 올린 라이트
'보편적인 기본소득 도입'을 이행기 강령의 하나로 제안 :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알렉스 캘리니코스
기본소득은 자본주의가 굳이 사회주의 단계를 거칠 필요없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코뮤니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사회적 배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통합적 사회질서가 모색되어야 하는데, 기본소득을 통해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대체로 이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기본소득, 단순한 소득 보장 논의를 뛰어넘다
기본소득 제도가 단순히 소득 보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러한 제도가 실현되기 위한 전제
나 조건은 매우 많은 변화를 필요로 한다.
노동 패러다임과 복지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은 물론 조세제도의 혁신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여성 혹은 성별 분업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연구가 두드러진다.
줄리에타 엘가르테 등은 몇가지 보완책이 마련된다면 기본소득 제도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도 성별 분업의
완화와 성 평등의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캐롤 페이트만은 최저생계비 수준 이상의 기본소득이라는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면 기본소득은 분명히
여성의 자유 증진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본다.
반면, 앙카 게아우스는 현재의 젠더 규범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은 오히려 성
불평등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며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지구화와 이주의 문제 역시 근래에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기본소득 제도 차제는 단순한 소득보장
차원의 논의를 이미 뛰어넘고 있다. 그러므로 기본소득 제도가 탈빈곤을 넘어 탈배제 전략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은 다른 제도에 비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실질화의 토대,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적인 사회경제적 조건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질화
하여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수립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캐롤 페이트만은 보통선거권이 동등한 정치적 시민권의 상징이라면, 기본소득은 온전한 시민권의 상징
이라고 본다. 이렇듯 민주주의를 정치적 시민권의 차원으로 국한하지 않고 더욱 확장된 관점에서 파악한
다면, 기본소득 그 자체를 민주적 기본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을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사회경제적 기초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기본소득이 사회경제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토대의
형성이 다시 여러 차원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본소득을 국민주권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국민이 대등한 주권자로서 국가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파악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구빈을 위해 지급되는 사회
적 자선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대등한 사회 구성원 또는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근거하여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민주적 기본권으로 인식될 수 있고, 복지와 민주주의 그리고 복지와 국민주권의 통일을
사고할 때에도 그 핵심적인 연결 고리로 역할을 할 수 있다.
복지국가의 위기, 다양한 해법
황금시대는 가고 위기가 도래하다
전후 '황금시대Golden Age'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포디즘적 축적체제와 이를 토대로 한 전례없는 호황
이었다. 이러한 포디즘적 축적체제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그 바탕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었던 복지국가
모델이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당연했다.
그리하여 복지국가는 차츰 잔여화되었고, 시민의 보편적 권리는 수혜요건을 갖춘 이들을 위한 것으로 바뀌
었다.
한국을 복지국가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양과 질의 측면 모두에서 한국은 아직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복지
국가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국가 복지의 영역이 조금 확장되었다고 해서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확장은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의 본격화에 대한 완충장치로 기능해 온 것이며, 그나마도
비가역적 제도로 정착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후퇴하는 가역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
하면 더욱 그러하다.
대안적 소득 보장 논의의 활성화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국가가 오늘날 경제적, 사회적 한계에 다다르자 이러한 복지국가의 위기
에 대응하여 다양한 대안적 소득 보장 논의가 활성화되었다.
김진구는 복지국가 위기 이후의 대안적 소득 보장 논의를 로버트 해브만의 분류를 기초로 크게 두 가지
방향의 대응방식으로 분석한다.
하나는 노동과 복지를 연계하는 '노동연계복지'의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연계 자체를 거부하고
비판하는 흐름이다.
'노동연계복지'의 흐름은 다시, 직접적인 노동을 강제하는 '노동력 구속 모델'과 노동 능력의 향상에
초점을 맞춘 '인적 자본개발 모델'로 나뉘는데, '노동소득세액공제'제도는 노동력 구속모델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 제도가 가장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는 곳은 미국이며, 한국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처음 '근로소득보전
세제'라는 이름으로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했는데 , 2006년 12월에 '조세특례제한법'의 일부를 개정하면
서 '근로장려를 위한 조세특례'를 신설할 때 이것의 이름이 '근로장려세제'로 바뀌었다.
이 제도는 2009년부터 시행되었는데, 정부는 점진적으로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
이다.
노동연계복지 vs. 기본소득
'노동연계복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기본소득Basic Income'이다. '기본소득'
과 함께 이러한 예로 언급되는 것에는 '사회적 지분급여stakeholder grants'도 있다.
기본소득과 사회적 지분 급여 양자는 시민권에 근거한 제도라는 점, 조건없음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지급 방식이나 제도의 목적, 설계, 예상 효과 등에 있어서는 매우 다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노동연계복지'는 복지와 노동을 연계하는 것으로서, 일정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노동시장의
규율을 강화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기본소득은 노동과 소득, 노동과 복지를 연계시키는 이러한 사고와 정반대 편에 있는 개념이다.
기존의 노동연계복지가 실패했다는 것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근거가 된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경험적 연구들에 따르면 노동연계복지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가운데 소수 사람
만 구제해 줄 뿐 행정적 실패와 관료주의 강화를 낳는 등 많은 한계점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 패러다임과 복지 패러다임의 획기적 전환
기본소득은 기존의 지배적인 노동 패러다임과 복지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기본소득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존의 '임금노동형 완전고용' 패러다임을 '사회적 필요노동'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 기존의 '선별적, 시혜적 복지' 패러다임을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사회적 필요를 중심에 놓는다면 노동의 질적 성격을 문제삼는 것이 가능하고,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이 노동사회의 재구성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 또한 생길 수 있다.
'선별적, 시혜적 복지 패러다임'은 자본주의 국가 일반의 국가 복지영역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각종 심사와 조건을 동반한 공공부조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은 이와 달리 국민 또는 시민과 같이 모두가 대등한 사회구성원이라는 보편적 자격
에 근거하여 기본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유럽의 복지국가들에서 아동수당, 학생수당, 노령연금 등과 같은 '사회수당Social Allowance'의 형태
로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본소득과 가장 큰 차이점은 사회수당이 아동, 노인, 장애인 등과 같은 특정한 인구 집단에게만 제한적
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유럽의 복지국가들 대부분은 사회수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는 약 80여개 국가가 사회
수당 제도 또는 그와 유사한 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2010년 현재 사회수당 제도가 전혀 없다.
기본소득, 만병통치약 아닌 대안 사회의 필요조건
정치공동체가 그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인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은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하는 기본의 복지국가 모델을 뛰어넘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
의 핵심적인 실현 수단으로 주목되고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한 하나의 유력한 사회경제 대안으로도 주목되고 있다.
고용창출의 측면에서 기존의 노동시장과 그 외부에서 새로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은 최소한 실업으로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을 없애고, 모자란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잔업에 목매는 사람도 없앨 수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 일자리를 나누고, 늘어나는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자리도
새롭게 만들며,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자리까지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기본소득은 또한 임금노동 중심의 사회로부터 일정하게 혹은 부분적으로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기도 한다. 기본소득은 물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다른 정책과
제도들이 보여 주지 못했던 분명한 효과를 보여 줄 수 있다면, 기본소득이 대안 사회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본소득은 대안 사회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 개념, 이렇게 나왔다.
20세기, 세 줄기의 논의 흐름
양차 대전 사이에 영국에서 '사회배당social dividend', '국가보너스state bonus', '국민배당national
dividend' 등의 논의가 있었다.
'국민배당'은 영국의 클리포드 더글러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산업의 생산은 매우 활발해졌으나
대중의 구매력이 매우 느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를 해결하려는 방법으로 모든 가구
에 매달 지급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세키 히로노는 이러한 더글러스의 '국민배당' 제안을 그가 전개했던 사회신용운동의 맥락에서 소개하고
있으며, 나아가 더글러스가 자본주의의 원리적 분석에 기초하여 '기본소득'을 역사상 처음으로 제창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에서는 앞서 말한 '데모그란트'와 '부의 소득세'를 둘러싼 논의가 있었다.
'부의 소득세' 제도는 개인의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가 되면 그 부족분을 일정한 세율로 계산된 조세 환급
을 통해 지급하는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북서유럽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건없는 기본소득에 관해 유럽에서 새로운 논쟁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후반 네덜란드에서였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사회의학과 교수인 퀴퍼는 임금노동의 비인간적 본성에 대처하는 방법의 하나로
고용과 소득의 고리를 끊기 위해 모두에게 상당한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86년 벨기에 루뱅에서 만나다
1983년 가을 벨기에 루뱅가톨릭대학의 세 명의 젊은 연구자들인 필립 반 빠레이스, 폴-마리 볼랑게,
필립 드페잇은 몇 달 전에 함께 읽은 논문에서 '보편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제안된 매우 단순하고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그룹을 발족하기로 의기투합했다.
1986년 9월 벨기에 루뱅에서 유럽 여러나라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처음으로 모여 역사적인 회의를
개최할 수 있었다.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asic Income European Network가 결성된 것이다.
2004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10차 대회의 총회에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BIEN)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루뱅가톨릭대학의 필립 반 빠레이스 교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기본소득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현물보다는 현금으로 지급하는 소득
- 일회적 급여가 아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
- 국가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 공동체 단위로도 지급할 수 있는 소득
- 세금을 통한 재분배나 자원 분배를 재원으로 하는 소득
- 정치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지급하는 소득
- 개인을 단위로 모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소득
- 자산 심사없이 지급하는 소득
-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를 묻지 않고 지급하는 소득
여기서 반 빠레이스가 기본소득을 '현물보다는 현금으로 지급하는 소득'으로 정의한 것은 기본소득이
오직 현금의 형태로만 지급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소득을 현금소득과 현물소득으로 나누듯이, 기본소득 또한 현금기본소득과 현물기본소득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다수의 기본소득 논의가 현금기본소득 지급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보통 이러한 논의는 교육이나 의료
영역등 기본복지 영역에서의 현물기본소득 지급을 전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
가 있다.
오늘날 가장 폭넓게 합의된 기본소득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 기본소득은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없이 모든 개인에게 조건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단지 사회 구성원이라는 자격에만 근거하여 지급하는 소득이다.
보통 여기서 사회 구성원 자격은 시민권을 지니고 있는지 혹은 이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거주를 인정받
았는지의 여부로 판단한다.
기본소득, 이런 비판도 있다.
윤리적 비판과 기술적 비판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을 큰 범주에서 윤리적 비판과 기술적 비판으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다.
스페인 기본소득네트워크의 대표이자 바르셀로나대학 교수인 다니엘 라벤토스는 이러한 비판을 열한가지
로 분류하면서 다시 그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는데, 그는 1번에서 7번까지를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는 비판, 8번에서 11번까지를 윤리적으로는 바람직하다 할지라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의
범주로 묶고 있다.
1. 기본소득은 기생을 부추긴다
2. 기본소득은 성별 분업을 종식하지 못할 것이다.
3. 기본소득이 있으면 몇몇 힘든 일자리는 모든 사람이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빈국 출신의 낮은 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그 빈자리를 모두 채울 것이다.
4. 기본소득은 노동인구의 이중화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5. 기본소득은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과 같이 부유한 나라들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6. 기본소득은 노동 윤리를 파괴할 것이다.
7.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야기된 부당함을 종식하는 수단으로서는 부적합하다.
8. 기본소득은 감당할 수 없는 재정 문제를 발생시킨다.
9. 기본소득은 빈국에서 부국으로의 이주를 촉진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다.
10. 기본소득은 만일 그 지급액이 매우 적으면 기대한 큰 효과들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11. 기본소득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발생시킬 것이다.
이러한 비판논리와 쟁점 가운데에는 가치 판단의 영역에 속하거나 선험적으로 예단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고 서로 상반된 주장과 근거들이 경합을 벌이는 것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노동 윤리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진보 진영 내에서 진지하게 논쟁이 되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독일에서 '기본보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기본소득 비판과 한국에서
'사회임금'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기본소득 비판이다.
이는 기본소득에 대한 조건없는 반대나 비판과는 달리 기본소득과 경합을 벌일 수 있는 대안의 형태를
제기하는 가운데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다.
기본보장 또는 사회임금 vs. 기본소득
기본보장은 독일의 좌파당 다수파, 사회민주당 좌파, 녹색당, 노동조합 등에 많은 지지자가 있는 기본
보장 주장의 핵심은 일정한 심사를 통해 소득이 낮은 가구의 소득을 보전해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보장은 엄밀하게 노동과 연계된 것은 아니지만, 다소 변형된 형태로 기본 정책이나 제도의
노동연계적 성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기본보장 지지자들이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논거는 다음과 같다.
- 기본소득이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다수를 얻을 가능성은 없다
- 기본소득보다는 최저임금제의 강화,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등의 개혁을 통해 새로운 임금노동
중심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이다.
- 기본소득은 임금 삭감을 조장하는 콤비임금의 일종이다.
사회임금 확대 주장에서는 사회적 급여를 총괄한 개념적 범주로서의 사회임금은 전통적인 복지국가
모델에서 추론된 대상별 필요복지를 주장하는 것으로서 실업, 보육, 주거, 연금 등 계층별/집단별 필요에
따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회임금 확대 전략이 기본소득과 비교할 때 소득재분배 효과가 더욱 크고 필요 재원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비판은 서로 다른 전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복지국가 수준으로 사회임금을 확대하는데
드는 재원보다 기본소득 시행을 위한 필요 재원 규모가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본소득은 증세, 조세제도 개혁, 행정 비용의 절감 등을 전제한다. 따라서 필요 재원의 크기를 놓고 기본
소득을 비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필요재원의 크기가 작을수록 현실성이 커진다는 논리는 다른 문제
이다.
그리고 사회임금이 기본소득보다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다는 주장도 양자의 재원 규모가 같다고 가정하거나
기본소득이 대상별 필요 복지를 대체한다는 가정하는 한에서만 올바르다.
같은 재원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 주는것과 필요한 일부에게 나눠 주는 것을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큰데, 이것은 그냥 산술적 결과의 확인일 뿐이지 기본소득 비판의 논리가 될 수는 없다.
사회임금 주장자등의 기본소득에 대한 추가적인 질문들
- 기초생활급여, 실업급여 등이 무차별하게 기본소득으로 통합되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가?
- 사회복지 인프라가 시장화되어 있는 한국에서 현금 복지 중심의 기본소득이 애초 취지를 이룰 수
있는가?
- 기본소득이 비판하는 복지행정 비용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간단하게 답변하자면 이렇다.
우선 기본소득은 기존의 현금급여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통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소득 모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통합할 수 있거나 통합해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판단
할 때 상황과 조건에 적합한 세심한 고려가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현금 복지와 현물 복지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으며, 사회복지 인프라의 시장화 문제는 별도의 대응책이 필요한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할 때 거론되는 복지행정 비용의 문제는 사회적 낙인과 굴욕을 유발하는 각종
심사과정에서의 과도하며 불필요한 낭비를 주로 지적하는 것이지, 복지행정 비용 일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재정적, 정치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
바바라 베르그만은 복지국가가 충분히 확립되고 자본주의가 더욱 고도로 발전한 다음에야 비로소 기본
소득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에서 가장 주요한 논리는 재정적 실현 가능성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 이전에 기본복지의 충족을 우선적인 과제로
놓으면서 기본소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의 정수로서 양자는 깊은 상호관련을 맺고 있다.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의 확산은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을 높여 주고, 거꾸로 기본소득 담론의 확산도 보편
적 복지 패러다임의 확산에 기여한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속에서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과 기본복지 실현 가능성은 함께
높아질 수 있다.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이라는 하나의 뿌리는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라는 두 개의 줄기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는 배타적 선택의 문제도 선후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외에 기본소득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을 문제삼는 것도 비판의 논거로 자주 등장한다.
사회의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정책이나 제도 일반은 모두 집권을 위한 프로젝트이자 집권 이후 실현할
수 있는 프로젝트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그야말로 복잡다단한 정치화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문제로서 기본소득 제도 자체가 이 문제
에 대한 해답을 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종말인가, 노동의 변화인가
사회적 필요노동 패러다임
사회적 필요노동 개념은 노동 일반을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으로 환원하거나 역사성과 사회성을 사상한
채 노동을 인간의 특정한 유적 본질로 환원하는 모든 사고에서 벗어나 노동 개념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사회적 필요노동은 자본주의적 임금노동, 즉 자본의 가치 증식 활동에 봉사하는 노동만을 의미
있는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 즉 한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활동을 필요노동으로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노동의 성격의 변화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다니엘 라벤토스에 따르면 노동은 어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그 중요성이 좌우되지 않는 특정한 종류의
활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노동의 정의 속에는 세 가지 형태의 노동이 포괄된다.
그것은 바로 지불노동, 가사노동, 자발노동이다. 그는 이 각각의 노동형태와 그 변화 가능성을 기본소득
과의 연관 속에서 서술한다.
사회적 필요노동 패러다임이 지배적으로 된다 하더라도, 자본 관계 자체가 일소되지 않는 한, 임금노동
은 그 속에서 여전히 일정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때의 임금노동은 그 이전 패러다임 속에서의 지위나 성격을 그대로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본소득의 실현이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여 계급 역관계의 변화를 불러오고 노동 자체를 포함한 노동
사회 전반의 혁신을 앞당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적 필요를 강조하는 것은, 노동과 가치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끊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정해진 틀의 노동을 해야만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본
주의의 발전과 함께 모든 사람에게 더욱더 뿌리 깊게 각인된 '노동윤리', '노동신화', '노동 중심성'과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사회적 필요에 대한 강조는 실제의 사회적 필요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이윤을 동기로 작동하는 자본
주의적 생산과 가치증식 활동의 맹목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준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기본소득, 한국에서도 시작하자
한국의 복지현실, 여전히 열악하다
사회보장 제도 가운데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소득보장제도에는 일반적으로 기여금이 없고 소득조사
와 자산조사도 없는 '사회수당', 기여금이 있지만 소득조사와 자산조사가 없는 '사회보험', 기여금이 없지
만 소득조사와 자산조사가 있는 '공공부조'등이 있다.
한국에는 유럽 국가들에서 일부 시행되고 있는 사회수당 제도는 없고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제도가 있다.
한국의 '사회보장기본법' 제 3조에 따르면, 사회보장의 영역은 '사회보장,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
복지서비스', '관련복지제도' 등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 가운데 사회보험은 '국민에게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보험의 방식으로 대처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 공공부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하에 생활 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로 정의되어 있다.
먼저 사회보험의 경우,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의 4대 보험이 가장 대표적이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2010년 현재 사업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 모두 보수월액의 9%이며, 사업장에서는
이를 사용자와 노동자가 각각 50%씩 부담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험료는 2010년 현재 노동자 보수월액의
5.33%이며, 이를 사용자와 노동자가 각각 50%씩 부담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보험료 이외에도 정부가 그해 예상 보험료 수입액의 14%를 지원하고 '담배 부담금'을
통해 그해 예산 보험료 수입액의 6%를 마련해 재원을 보충한다.
고용보험 보험료는 2010년 현재 실업급여 부분은 노동자 보수월액의 0.9%인데, 이를 사용자와 노동자가
각각 50%씩 부담하고 있고, 고용 안정사업 및 직업능력개발 사업 부분은 기업규모에 따라 노동자 보수월
액의 0.25%, 0.45%, 0.76%, 0.85%로 차등을 두고 있으며, 사용자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산재보험의 보험료는 사용자가 전액 부담하고 있는데, 업종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공공부조는 크게 일반적 공공부조와 범주적 공공부조로 나뉘는데, 일반적 공공부조에는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가 가장 대표적이고, 범주적 공공부조에는 기초노령연금, 장애수당, 장애아동수당 등이 대표적
이다.
사회보험의 광범위한 사각지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현황은, 2008년 12월 현재 한국의 생산 가능연령(20-64세) 인구 총 3145만명 중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인구가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 미가입자 1166만명에다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 1834만 명 중 납부예외자 503만명과 지역미납자 248만명 등을 포함하면 무려 1917만명에 달한다.
이때 비경제활동인구 900만명은 국가가 노후소득을 보장해야 할 국민이라는 점에서 사각지대에 포함될
수 있다. 납부예외자는 평균납부기간이 35개월인데, 평균 납부예외기간이 50개월로 15개월이나 길어서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용보험 적용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이 2009년 현재 1336만명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른 총취업자수를 놓고 이 가운데 고용보험 피보험자수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산출한 것이다.
건강보험의 사각지대 현황은, 2009년 4월 현재 110만 5천 세대 217만 2천 명이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
되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는 전체 가입세대의 5.8%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런데 2009년 7월 현재 3개월 이상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세대는 205만 3천 세대이고, 이 중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될 수 있는 6개월 이상의 장기 체납 세대도 152만 8천 세대에 달해, 앞으로 의료사각지대의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생계형 체납 세대에 속하는 이들 대부분은 사각지대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공공부조의 광범위한 사각지대
2009년 3월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과 재산 모두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
기준을 충족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때문에 탈락한 사람들이 60만 가구, 100만명이고, 소득으로는 기준
이하이지만 주거용 부동산, 자동차, 금융자산 등으로 말미암은 재산 기준 초과로 수급권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110만 가구, 240만명이며, 전형적인 차상위계층의 사람들이 30만 가구, 70만명이나 된다.
모두 200만 가구, 410만명, 무려 전체 인구의 8.7%에 해당하는 국민이 생계 보호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
득층, 즉 사각지대 빈곤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각지대 막을 수 없는 현재의 복지제도
결론적으로, 절대 빈곤층과 중산층 사이의 준 빈곤층, 흔히 차상위 계층으로 불리는 집단은 4대 사회보험
과 공공부조 양 제도로부터도 배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중산층은 대부분 4대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으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당수는 이로부터도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경제 위기상황이 지속한다면 가장 큰 고통을 받게 될 집단은 두말할 나위없이 '국민기초 생활법'에서조차
배제된 절대 빈곤층과 준빈곤층이다.
형편없는 한국의 복지 지출 수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정책 보고서는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을 지난 2005년 기준 약 73조 3450억원으로
추계하였다. 이는 경상 국내총생산GDP대비 9.09%이다. 이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회원국 중 복지후
진국이라 불리는 미국(16.59%)이나 일본(18.39%)과 비교해도 약 50% 수준에 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회복지 지출 수준이 경상 국내총샌산 대비 30%수준인 스웨덴, 프랑스, 독일 등과 비교하면 한국은
이들 국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제도의 측면에서 보면 사회보험 지출이 50.3%로 가장 높았고, 기업복지 23.1%, 공공부조 12.6%, 공공
복지서비스 13.1%, 민간복지서비스 0.9% 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출분야의 측면에서는 건강보험, 의료급여, 산재보험 등 보건관련이 25조 7990억원으로 전체의
35.2%나 되어 가장 높았고, 90%이상이 법정 퇴직금 등 실업 관련이 17조 6610억원으로 24.1% 특수직역
연금이 대부분인 노령 관련이 12조 6490억원으로 17.2%였다. 이들 세 분야가 한국 사회복지 지출의
76.5%나 차지하는 것이다. 가입자의 기여금으로 유지되는 사회보험과 사실상 임금범주에 속하는 법정
퇴직금 등의 기업복지를 제외한다면 공공부조와 공공복지 서비스를 합친 정부의 순수한 사회복지 지출은
전체 사회복지 지출의 25.7%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고용사정, 계속 나빠진다.
실제 취업자의 비중을 알 수 있는 고용률은 매년 내림세를 보여 주고 있는데, 특히 30대 남성의 고용률은
최근 더욱 큰 폭으로 떨어져 90% 선마저 무너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구직 단념자'의 급증이다.
이들은 비경제활동인구로 계산되어 정부 통계상의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데, 사실상 실업자나 다름없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양적인 고용상황만 악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36시간 미만 취업자수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고용의 질 또한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2007년 한국 전체산업의 취업계수(산출액 10억원당 소요되는 취업자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산업의 고용
흡수력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로 쓰인다.)는 8.2명인데, 취업계수가 2000년의 10.9명 이후 꾸준
히 하락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07년 한국 전체산업의 평균 고용계수(불변가격 산출액 10억원당 소요되는 피고용자수)는 5.8명
인데, 이는 2000년 7.0명, 2005년 6.1명, 2006년 5.9명에 이어 더 떨어진 수치로, 고용계수 역시 꾸준히
하락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7년 중 한국 전체 산업의 취업유발계수(특정 산업 부문에 대한 최종 수요가 10억원 발생할 때 해당
산업을 포함한 전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수)는 13.9명으로 2000년의 18.1명에 비해 매우
큰 폭으로 하락했다. 즉, 한국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점차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한국경제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며, 자본주의사회 일반에서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고용없는 성장'은 계속된다.
물론 20세기 후반에 급성장한 서비스산업이 제조업의 급격한 일자리 감소를 완충해 주는 역할을 해왔기
에 아직도 서비스산업의 성장이 고용창출을 이끌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정보, 통신기술의 서비스산업 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이로 말미암은 인력 대체
경향을 근본적으로 넘어서서 완전고용에 다가설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소득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직 '노동소득'으로만 이해된다면, 노동능력이나 노동의사가 없는
사람 혹은 노동능력이나 노동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노동시장으로부터 끊임없이 차별받거나 배제되는
사람은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기본소득의 재원, 도처에 있다
사회복지 지출, 일단 OECD평균은 따라잡고 보자
지난 2005년 기준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에 따라 당시의 경상 국내총생산
7920억 달러의 7.5%인 594억 달러로 추정할 때, 이를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21.2%에 맞추기 위해서는
13.7%인 1085억달러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 규모를 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 수준으로 증가시킨다고 가정할 때 이러한 결과가
나오지만, 2006년을 기준으로 하여 한국의 사회보장 기여금을 포함한 직접세 부담률인 17.1%를 경제개발
협력기구 평균 수준인 24.4% 수준으로 높이면 정부의 세입 규모는 171조 5674억원 에서 254조 8428억원
으로 약 83조 2754억원이 증가하고, 이를 프랑스 수준인 31.6%로 증가시키면 추가적인 재정수입은 145
조 4851억 원에 이른다(김교성, 2009).
이처럼 한국에서 증세와 사회복지 지출의 대폭 확대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증가분을 모두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강남훈 외(2009)의 기본소득 모델에
따라 필요한 예산 약 290조원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하지만 이는 김교성의 기본소득 모델 가운데 전체 국민에게 매달 30만원을 지급하는 '부분기본소득 1'에
필요한 실제 추가 개원 약 140조원과 매달 20만원을 지급하는 '부분기본소득2'에 필요한 실제 추가재원
약 82조원은 거의 충족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런데 이처럼 사회복지 지출 수준을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에 근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특별히 진보적인 요구라 할 수 없다.
남들이 하고 있는 만큼이라도 따라가자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각종 투기소득과 불로소득 환수해야
신자유주의는 그간 복지를 잔여화, 시장화하고 공공재를 사유화, 사영화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의
것을 수탈해왔기 때문에, 이를 되돌려놓는 것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러한 수탈이 더 이상 이루어
지지 않도록 강력한 제어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부동산 시장 등을 통한 막대한
규모의 각종 투기소득과 불로소득의 발생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동안 발생한 토지 불로소득의 규모는 총 2002조원 가량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의 각종 세금 및 개발부담금을 통한 환수 규모는 약 116조 원에 불과하여, 환수 비율이
5.8%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지난 10년동안 생긴 토지 소득 약 2002조원 가운데 각종 세금
과 개발부담금을 제외한 1886조 원이 모두 토지 소유자들에게 불로소득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연평균 약 200조 원 규모의 토지 불로소득이 생겼다는 말인데, 이 중 절반만 매년 환수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연간 100조원 가량의 재원을 새롭게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공공재인 토지를 통해 발생한 막대한 규모의 불로소득을 공공의 것으로 환원하여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추가한다면,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양한 기본소득 재원 마련 방안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입장에 따라 재원 마련 방안이 매우 다양하다.
가장 크게는,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방안과 조세 이외의 수단을 재원으로 하는 방안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조세를 재원으로 하는 방안은 다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상당수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소득세 중심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제임스 로버트슨 등이
주장하는 소비세 중심 방안이다.
다음으로, 조세 이외의 수단을 재원으로 하는 여러가지 방안이 있다. 별도의 기금을 마련하고 그 기금
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배당하는 방안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는 다시 석유 등의 자연자원으로부터 나오
는 수익으로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과 그 밖의 공동체 자산을 원천으로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나눌 수
있다. 가이 스탠딩은 후자를 통해 마련된 기금으로부터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공동체 자산급여Community
Capital Grant'라고 부른다. 그는 공동체의 자산을 기초로 한 기금의 형성과 기본소득 지급을 통해, 민주
주의와 참여에 기초한 기업 지배구조 재편을 이룩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 즉 경제적 민주주의의 확장 및
실질적인 자산 분배를 촉진하자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더글러스의 주장처럼 기본소득의 재원을 세금이 아닌 '공공통화'의 발행으로 마련할 수 있다
는 의견도 있다.
각종 투기소득과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중심으로 한 직접세 인상 주장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
가 있다. 하나는 기본소득의 재원마련을 위해 각종 투기소득과 불로소득 자체를 앞으로도 계속 원천적
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냐는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한 중과세로 투기소득과 불로소득이 점점 줄어
들거나 사라져 재원마련의 원천이 고갈되면 어떤 대안이 있느냐는 비판이다.
전자의 비판은 사실 자본주의의 착취와 수탈을 제어하고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자본주의적 착취와 수탈
자체의 폐지를 목표로 하지않고 있어서 문제라는 식의 비판과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단지 원리의 선언에만 그칠 뿐 이를 벗어나 실천적 함의를 갖기는 어렵다.
후자의 비판은 사실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투
기소득과 불로소득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은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라 정당한 일이며 더욱 촉진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종류의 소득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부의 총량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이를 재분배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어쩌면 기술적으로 단순한 문제일 수도 있다.
노동 패러다임과 복지 패러다임, 싹 바꾸자
기본소득의 도입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이를
정책과 제도의 수준에서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의 형성일 것이다.
패러다임의 개념의 발전에 이바지한 토머스 쿤이 강조했던 것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이 다수의 지지를 얻어
낡은 패러다임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다른 방법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몇몇 두드러진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식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둘
째,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선행자들에 의해 축적되어 온 구체적인 문제해결 능력 가운데 상당 부분을 보존
한다는 것을 기약해야 한다.
이중의 장벽을 넘어 '트로이의 목마'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하여 중요한 두 가지 축은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하나는 기존의 임금노동형 완전고용 패러다임을 '사회적 필요노동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선별적, 시혜적 복지 패러다임을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전자에서의 핵심은 완전고용이 이제는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과 함께 노동과 소득의 연계
가 아닌 분리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기존 노동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에 머무
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의 창출과 맞물린 것이다.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중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아직 많은 사람은 복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원리이며, 따라서
보편적인 자격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회구성원의 특수한 처지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연대의 원리'가 아닌 '평등의 원리',
그리고 '특수한 자격'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 자격'의 문제로 복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에 입각할 경우, 복지는 국민 모두에게 공통으로 보장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서 국민
주권의 전제조건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의 밑바탕에는 대안사회에 대한 갈망이 자리하고 있다.
기본소득 지지자 상당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로 다가갈 수 있는 디딤돌로
기본소득을 바라보고 있다.
한편, 진보진영 내에서는 기본소득의 이러한 위상 때문에 여러 다양한 논쟁이 불붙기도 한다.
아무튼, 상당수의 지지자는 기본소득이 대안 사회를 향한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고 보며,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과제들
우선 기본소득 제도실현의 가능성의 문제가 정치적 조건과 관련하여 제기된다.
사실 현재의 정권이 돌변하지 않는 이상, 기본소득 제도의 실제적 도입은 그 제도를 지지하는 정권의 창출
을 전제로 한 집권 후 프로그램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브라질에서의 기본소득 제도 도입 계획도 그러한 전제가 충족되었기에 가능했다.
기본소득은 집권 후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집권을 위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고, 그 프로그램으로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만 실현을 앞당길 수 있다.
다음으로, 기본소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회세력이나 기반을 구축하는 문제가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표적인 대중조직 가운데 하나인 노동조합이 나서서 기본소득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경우도 있다. 유럽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네덜란드노총 소속의 식품 분야 노동조합인 식품조합이다.
이 조합은 과감한 노동시간 단축과 결합한 조건없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실천을 전개하기도 했다. ...
이러한 흐름은 아직 일부에 그칠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빈민, 여성, 장애인 등의 조합이나 단체에서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정도이다.
기본소득 제도의 실현을 위해서는 지지층 확보를 위한 계획이 반드시 수립되어야 한다.
특히 가장 큰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대열의 선두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이 스탠딩도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역할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를 진전시킬 수 있는 강한 조직이 없다면 대중이 더욱더 불안
정한 삶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강한 노동조합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본다.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과정에서는 기존 제도의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기존의 공공부조는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사회보험 가운데 국민연금의 경우에도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되 기존 가입자가 낸 보험료는 적절한 방식으로 보전해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과 비교하면 특혜에 해당하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등의 특수
직역연금 또한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문제는 기존 연금 수혜자들의 반발 가능성
이다. 원금과 기대수익 실현 사이에서 기존 연금납부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연금 관련 기관 종사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문제인데, 최소한 복지 혹은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결합
마지막으로는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결합 문제가 있다.
기본소득 제도도입을 우려하는 의견 가운데 가장 영향력있는 것은 의료, 교육, 주거 등의 기본복지도 제대
로 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것은 기존의 부족한 기본복지마저도 훼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이다.
재원이 마련된다면 우선 기본복지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기존 복지국가의 해체에 반대하며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결합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물론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를 결합시키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본소득의 전제가 되는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의 확립은 기본복지의 강화를 위한
튼튼한 토대가 된다.
또한 기본복지를 위한 재원은 기본소득의 재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으므로,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기본복지를 위한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수도 있다.
한편, 기본복지 가운데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의 경우에는 노동 사회의 안정성을 위하여 현행 틀은 유지
하되 사각지대를 없앰으로써 보편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고, 건강보험의 경우에는 사각지대의 발생 자체를
없애기 위해 재원을 조세로 마련하여 의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보장하고 그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기본소득은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여성, 장애인 등 모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전면에 함께 나설
수 있는 훌륭한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의제를 받아들이고 폭넓은 연대의 의지가 있는 모든 대중조직이 함께할 수 있는 유력한
매개이기도 하다.
물론 가능성과 현실성 사이에는 큰 틈새가 있기 때문에 이를 좁히기 위해 매우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이다.
노동조합이 기본소득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노동조합을 배제하고 기본소득 운동이 성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설득하고 동의를 이끌어내 기본소득의 주요 지지기반으로 만들 수 있어야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
유럽에서는 이 과정에서 많은 충돌과 논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시작 단계이므로 아직 그러한 일이 일어
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기본소득 운동의 전개양상에 따라 그러한 현상이 충분히 나타날 수도 있을 것
이다.
기본소득을 논할 때 주장자들과 비판자들 모두에게 가장 크게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실현 가능성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복지 패러다임과 노동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은 물론 조세제도의 혁신
등을 비롯하여 연동된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과 과제의 해결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본소득이 현재의 사회위기 속에서 하나의 유력한
사회대안이자 경제대안으로 충분히 주목할 만한 것이라면 과감하게 부딪혀 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건들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다고 하더라도 기본소득 모델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도입이 그리 쉬운 일
만은 아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단계적인 도입 혹은 확산 전략을 사고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거에 기본소득 제도가 순조롭게 도입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본
소득 제도의 근본 취지와 들어맞을 수 있는 여러 다양한 제도의 실현에 집중하는 것도 패러다임 전환의
관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현존하는 다양한 수당 및 급여제도가 지닌 자산 심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가능한 한 완화
하기 위한 노력, 또는 현생 기초노령연금과 장애인연금 등을 온전한 사회수당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은
큰 의미가 있다.
또한, 2010년 6월의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의제로 급부상한 무상급식 문제는 저소득층 학생
들에 대한 기존의 선별적인 학교급식 지원을 보편적인 무상급식으로 전환하자는 광범위한 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것인데, 이는 보편적 교육복지의 구현이란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의 토대가 되는 패러다임
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본소득은 일국적 수준의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본소득 구상의 바탕에 깔린 빈곤으로부터의 탈피, 자유, 평등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들에는 국경이 존재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과 빈곤의 해소문제에 주목하며 지구적 차원의 기본
소득 실현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본소득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일국적 차원에서 하나의 제도를 실현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미 영토적으로 일국적 차원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차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반 빠레이스가 강조했듯이 19세기와 20세기를 각각 대표하는 가장 커다란 사건이 노예제의 폐지와 보통
선거권의 확립이었다면, 21세기에 가장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은 바로 기본소득 제도의 확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칼을 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