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철도
지난 8월 17일~8월 25일,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을 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라서 광복절 직후에 1920년∼30년대 항일 독립운동의 근거지인 시베리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이르쿠츠크 일원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려인 최초의 사회주의자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사형당한 김알렉산드라, 헤이그 밀사였던 보재 이상설, 연해주 독립운동의 아버지 최재형 등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의 역사를 나의 눈으로 보고 듣고 다녔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시베리아횡단열차를 72시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브스크를 거처 이르쿠츠크까지 4,106km, 광활한 동시베리아를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는 시속 50~60㎞ 정도로 달리는 슬로트레블(slow travel)이다.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여행이다. 북쪽 대륙으로 가는 기차여행의 출발인 부산에서 한반도종단철도(TKR)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지 못한 아쉬운 점은 있지만!
모스크바나 블라디보스토크 어느 한 곳만 보고서는 러시아를 알 수 없고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일주를 해봐야 러시아라는 나라가 얼마나 땅 덩어리가 넓은지 비로소 알 수 있다. 시베리아횡단열차는 간이역에서는 5분 이내, 주요 역에서는 15분~30분가량 정차한다. 그 동안 잠시 내려 역사 안이나 역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러시아 역들은 저마다 독특하고 개성스럽게 꾸며져 있을 뿐 아니라 재정러시아 시대의 독특한 분위기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 많아서 볼 만하다. 역 주변 현지인들의 좌판에서는 계절과일이나 음료수는 물론이고 특산물도 가끔 살 수 있다. 이들은 열차가 들어오는 시각에 맞춰 문을 여는 데 방금 삶은 감자나 옥수수, 양념고기류 등을 광주리에 들고 나와 판다. 가격을 흥정하거나 손짓 발짓 섞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맛도 별미라서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또한, 러시아는 땅이 넓기 때문에 열차 내 모든 시간은 모스크바 시간으로 통일되어 표시되어 있어 시간계산을 잘 해야 한다. 열차표에 적혀 있는 시간은 열차의 도착시간이 아니고 열차의 출발시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여 가끔 열차를 놓치기도 한다. 객차 입구에서 아줌마(?) 차장이 여권과 열차표의 이름이 같은 지 확인하면 드디어 열차를 탈 수 있다. 객차는 2인실, 4인실, 6인실이 있다. 나는 ‘쿠페’라는 4인실 침대칸을 타고 여행했다. 아래층과 위층에 각각 2개의 침대가 있다. 횡단열차여행은 장기간 여행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열차중간에는 식당 칸도 있고 ‘사모바르’에서 뜨거운 물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컵라면이나 커피, 차 등을 마실 수도 있다. 식당 칸에는 냉동식품을 해동해서 팔기 때문에 맛은 별로이며 맥주나 보드카도 팔기도 해 여행의 피곤함을 달랠 수 도 있다.
시베리아는 ‘잠자는 땅’이란 뜻의 타타르어 ‘시비르’가 그 어원이다.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뻗어 있는 4,488㎞의 광활한 너른 평야지대인 시베리아는 내가 보기에는 잠자는 땅에서 개발의 땅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유럽 쪽의 러시아인들은 모피를 찾아, 극동지방의 부동항을 찾아, 동쪽 시베리아로 진출하였다. 이후 시베리아의 개발을 촉진한 것은 횡단열차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는 1850년대에 계획하여 1891년부터 1916년까지 25년에 걸친 건설공사였다. 이 공사에는 시베리아로 유형된 죄수, 중국인, 그리고 일부 조선인들의 노고가 숨겨져 있다. 1891년 당시 황태자인 니콜라이 2세가 참석한 기공식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있었다. 현재 그 자리에는 ‘시베리아횡단철도 9,288㎞’라는 기념탑이 있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이고 인류가 만들어 놓은 가장 긴 인공물이다. 열차를 타고 가면 자작나무들 군락이 듬성듬성 있기도 하고 평원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바이칼호수 주변을 달리면서 내가 본 일몰은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2015년 현재 한국과 러시아는 많은 경제교류를 하고 있으며 서로 무비자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러시아와 남북 당국이 협력을 하여 한반도종단열차(TKR)를 연결하면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서울, 원산을 거처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연결된다. 그러면 모스크바를 거처 유럽의 베를린까지 열차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물류와 시간적으로 많은 이익이 된다. 우리가 이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에 불과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