順天의 師範敎育은 성공한 제도였다.
13회 김 병 기
젊음의 고향 앞에서
순천사범 13회는 2007년 4월 6일 서울 상제리센터에서 순사 입학 반세기 기념집회를 가졌다. ‘젊음의 고향 교육의 본적지 순사입학 반세기 자축연’이라는 현수막 밑에서 진행된 이번 집회에는 재경 회원은 물론 순천, 광주, 여수, 부산, 강원도에서 온 친구들과 멀리 하와이에 있는 동창까지 참석하여 범세계적 자축연이 될 수 있었다.
이날 1부 식순은 이렇게 진행되었다.(사회 김병기)
① 개회선언(참석자 중 최연장자인 유현수)
② 국민의례
③ 순사의례 ⓐ교가합창(김인규지휘) ⓑ작고 은사와 작고 동창에 대한 묵념 (작고 은사들 과 이병원 손성수부터 서강대 박휘숙까지 작고 동창 30여 명 호명하면서 추도)
ⓒ승리가 열창(김인규 지휘) ⓓ환희의 악수(남자 동창생들이 여자동창석으로 찾아가 일 일이 악수)
④ 현장 보고(206명 졸업생 중 30여명 사망, 20여명 행불자 제외한 150여명 중 41명 참석 보고 김태진(순천))
⑤ 회장 인사(재경13회남회장- 양현용)
⑥ 50년전 오늘(수석입학자 이병원 사망으로 차석 입학자인 이춘 회고사)
⑦ 축사(재경 총동창회장 이장로)
⑧ 축배(일생을 잘먹고 잘사는 방법을 연구한 유경수(광주))
⑨ 축하 기도(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 유중훈)
⑩ O.B홈룸(양현용 회장 주재) ⓐ하와이거주 김지자 인사 ⓑ부산거주 박성태 인사
ⓒ광주대표 고규석인사 ⓓ여수대표 김상용인사 ⓔ기타안건
⑪ 꼴지에게 보내는 박수(정년의 라인을 꼴지로 들어오고 있는 유경수 이장로 정진에게 위 로의 금반지 수여 - 양현용, 유금자)
⑫ 백세3창(황제를 위해서는 만세, 왕 앞에서는 천세를 부르지만 우리는 백세까지만 살자고 백세3창)
⑬ 내일도 승리하리라(새로운 모습의 승리를 위해 다시한번 승리가 제창-김인규 지휘)
⑭ 기념촬영(만찬 후 촬영, 유현수, 유중훈, 이경자 기념촬영시 이석)
함께 모여서 반세기 동안의 인생역정을 회고하고 3모작 인생을 시작한 우리들이 또 한 번 승리를 창출할 것을 엄숙히 다짐한 사람들의 이름은 아래와 같다.
양현용 고규석(광주) 김병기 김상용(여수)
김용래 김용직 김인규 김찬두
김태진(순천) 박성태(부산) 위광우 유경수(광주)
유남근 유중훈 유현수 이장로
이 춘 임성수 정 진 최원섭(여수)
유금자 강춘지 강희순 김성순
김수옥 김순옥 김정자 김지자(하와이)
나선자 박달순 박우자 송춘강(강원도)
이경자 이경희 이란선 이 정(광주)
이화자 정민자 조영자 조옥봉
최정순
※ 인터넷 주소창 club.cyworld.com/scns를 열면 149장의 개념행사 사진을 볼 수 있다.
인생의 제3악장 장엄하게 연주하리라
1957년 4월 6일 순천에서 만났던 우리들이 2007년 4월 6일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그동안 농업사회가 산업화시대를 거쳐 정보화시대가 펼쳐지는 격동의 시대를 우리는 함께 겪어야 했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한 우리들에게 무난한 반세기를 보냈다고 말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사를 훑어보면 친구중에는 ‘창자가 끊어지는 비통’과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딛고서 오늘에 이른 사람이 많았다.
그렇기에 우리가 부른 교가는 가요무대처럼 흘러간 노래가 아니었다. 생활과 직업, 운명이 버무러진 영혼이 외치는 소리였다. 또 승리가를 부를때는 단순히 운동경기의 승리가 아니라 반백년 동안을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다는 생명전선에서의 대첩(大捷)을 확인하는 환희의 순간 이기도 했다. 그래서 축하를 받을 만했고 마땅히 자축해야 햇다. 그리고 더 많은 축복을 하늘에 간구할 자격도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학교는 가슴설레는 남녀공학이었다. 50년전 13회 남학생에게는 신성한 사명이 있었다. 당연히 우리의 짝으로 공인된 13회 여학생들을 지켜야 하는 의무이다. 가당잖게도 음탕한 시선으로 야욕을 나타내는 S고생들을 막아내야 했고, 엉큼한 생각으로 호시탐탐하는 12회 11회 선배들의 흑심도 남학생들이 차단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아련한 사랑은 몽롱한 예습(豫習)이었고 비능률적인 독학(獨學)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누구와 결혼했고 어떤 형태로 인생을 논술했던, 우리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여학생 남학생들을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그리움으로 채우면서 살았다.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의 상봉은 부끄럽고, 반가웠고 흥겨웠으며, 밤중에 기도드리는 무녀(巫女)처럼 처연하기도 했다.
우리는 세월의 계단을 하나씩 딛고 내려가 50년 전 조례동 골짜기로 돌아갔다. 그리고 60대의 목소리로 10대의 꿈을 이야기 했다.
한국 현대사가 응축된 지난 반세기는 우리들에게도 그리스의 신(神)처럼, 생업과 도전, 우정과 사랑, 경쟁과 질투까지를 껴안고 달려온 질풍노도(疾風怒濤)의 50년이었다.
우리는 1인 2역의 배우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르내리면서 10대부터 70대까지 한꺼번에 소리낼 수 있는 만능(萬能)의 악기(樂器)가 되었다.
아, 순사13회, 푸른 우정 악보삼아 인생의 제3악장 장엄하게 연주하리라.
우리가 한국발전의 주인공
우리가 사범학교를 다님으로써 교육자로 영주권을 얻었지만, 순사를 왔던 것은 우리의 의사보다 부모가 등을 밀어서였다. 그렇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사범제도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모교가 없어져버린 순천사범은 교육계 내에서나 밖에서나 우리들에게 매우 빈악한 사회적 의상이었다. 출세의 내복도 되지 못했고 처세의 외투로도 초라했다.
꼭 그래서 그런것만은 아니겠지만, 일반 행정부로 전직한 친구들은 고위 공무원단에 2급 공무원 한사람 밖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못생겼다고 어머니가 아니랴. 무식하다고 부모가 아닐까. 교육제도의 낙수(落穗)가 되어 기억의 저편으로 쫒겨나버린 남루(襤褸)한 모교, 순사의 이름 앞에서 우리가 눈물 머금게 된 것은, 우리 앞날을 생각해서 순사로 진학시켜준 생부(生父) 생모(生母)의 간절한 소망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허지만 교육의 창구로 본 순사13회는 깊고 그윽하게 흐르는 인재의 강이었다. 소리없이도 반세기의 충만함을 아우성친 무성한 숲이었다. 우리들은 평범하게 보여도 평범하지 않는 터널을 통과한 비범(非凡)스런 평범(平凡)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교육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 가장 강력하고 성취도가 높은 천상 사범출신이었다.
지금 이 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경영학의 아버지라는 피터 드라커는 4반세기 만에 산업화를 완성시킨 한국을 인류문명사의 신화라고 예찬하고 있다. 그 신화의 주요 원인이 우수한 인적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는 일생동안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이 아닌 양질의 인적자원을 육성하는데 헌신하였다. 때문에 대한민국 발전의 기본 인프라는 우리가 깔았고, 한국 발전의 주역은 바로 나라고 큰소리쳐도 결코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이것 또한 교육계에 근무한 사람의 보람이요 순사를 나온 사람의 긍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대부분 연금을 받고 있다. 복지사회 1세대로서 국가의 혜택을 단단히 누린다 할 것이다. 황혼기에 연금을 받느냐 못받느냐의 차이는 똥과 된장이 같은 노란(黃)색이지만 차원이 다른 물체이듯, 황혼기(黃婚期)의 생존의 품계를 천당과 지옥으로 차별화 시키고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고갈되지 않는 생명의 수원지(水源池)로서 순사의 위대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13회는 여수․순천지방 고교로서는 처음으로 입학 50주년 기념집회를 갖고, 50년대 말 지방 고교생의 대중적 정서와 사범생들의 집단적 추억을 기리는 정신적(精神的) 조형물(造型物)을 쌓았던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성과는 남녘지방의 문화유산으로 계승 발전되리라 예견되고 있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사람은 결국 죽는다. 멍게나 바닷가제처럼 죽지 않고 영생하는 기이한 생물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은 종교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병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한국인의 건강수명이 69세라는 보도를 보면서 우리 또한 자신의 나이를 헤아려보고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극소수가 딴 길을 갔지만 우리들은 거의가 교직에서 일생을 보냈다. 사범출신 답다고 할 수 있지만 다양성의 빈곤은 시인해야겠다.
특히 산업화의 뒷골목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성장할 때, 역사의 신음을 듣지 못했거나 외면 했었다.
입으로는 진리를 가르치고 용기와 책임을 설파하면서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는 실천적 고민이 결여됐고, 젊은 학생들과 깨어있는 양심들이 무참하게 희생될 때도 제도권의 부품이 되어 방관했던 부끄러움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우리는 지사(志士)가 아니다. 투사는 더욱 아니다. 월급 받아서 처자식 키워야 했던 쩨쩨한 소시민이었고 모가지 떨어지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하는 범용한 속물일 뿐이었다고 서로를 변호해 주자.
박정희 전두환 시대와 지금과는 사회 환경의 일교차(日較差)가 너무 크다는 것으로 서로를 위로해 보자.
대부분 교육계에서 종신한 우리는 13회 친구중 꼴찌로 정년을 맞는 유경수 이장로 정진, 세사람의 대학 근무자에게 ‘금반지’라고 써진 기념품을 제공했다.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문장이 새겨진 종이로 포장한, 500원짜리 납반지였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있는 이 구절은 色, 즉 이세상의 모든물체는 空이요, 이세상의 모든 공허한 것은 바로 色, 물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만원짜리 지폐는 만원이라고 인쇄해놓고 만원이라고 하니까 만원짜리 돈이지 그 실체는 만원이 아닌 空이라는 것이다. 물론 존재에만 그런것이 아니고 인식에서도 똑같다. 이 세상의 모든 시작이 바로 끝이요 끝이 바로 시작이라는 것이다. 2500년 전의 인류의 큰 스승이 2500년 후의 작은 교사들에게 납반지나 금반지는 똑같은 것이고 정년이 또다른 시작이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시대의 종언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새로운 출발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양의 어느 철학자도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야 나래를 편다”고 했고 영국의 어느 시인은 “모든 좋은 일은 다음에 있으리라”고 했다.
그렇기에 역시 그렇다. 500년전 조선(朝鮮)의 김시습도 男兒未蓋棺 莫道事已己(사내는 관뚜껑을 덮기 전까지 일이 끝났다고 이야기 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順師, 내 인생의 초벌구이
만약 우리가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했다면, 또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면, 고등학교 동창회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얼마나 부러운 마음이 들 것인가.
그 사람이 아무리 성공했다 해도 인생의 골수가 비어 있는 듯한 결핍감에 사회적 노숙자가 된 심정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순천사범을 나오지 못했다면, 졸업후에도 ‘신성로마제국’처럼 ‘순천사범제국’을 복원하여 작고한 동창까지 추모해주는 순사동창회에 어떻게 참석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멀리 외국이나 지방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이글을 읽을 수 있겠는가.
순사동창회는 유한족의 오락상품(娛樂商品)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얼굴은 늙어서 추하게 변했고 마음도 세파에 부딪껴 때가 묻어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공(時空)을 초월해 인생을 카타르시스 시키는 상록의 원시림, 순사시절이 있다.
그렇다. 백두대간의 대미(大尾), 봉화산 기슭에서 달구었던 내 인생의 초벌구이 순사시절, 소박하지만 청초하고 은근하구나.
짧게 배워서 길게 풀어먹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장거리 교육
연정(戀情)을 우애(友愛)로 승화시키는 청춘 진화시스템.
順天의 師範敎育은 성공한 제도였다.
김선태:
멋진 글 감사합니다. 순사 출신들에게 사명감과 자신감을 주고 더욱 분발하기를 촉구하는 말씀
지당하옵나이다.
송춘강:
내 인생의 초벌구이란 말이 맘에 와 닿는군요.초벌구이를 잘해 준 순사의 가르침을 받들어
남은 인생이라도 더 보람있게 덕을 쌓고 베풀며 살아야 겠네요.좋은글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병기'동문 고맙고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클럽에 나와서 이렇게 재주
좋은글 자주 올려주면 않되 실런지..이런기회에 전국 동문들이 더욱 하나되 화목한 모임을
자주 갖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진영:
광주의 순천사범 13회 동창들이 김병기가 보내준 글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들 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글을 많이 써서 동창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보내 준
순천사범 13회 동창들 명부도 고마운 마음 갖고 잘 받았다고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