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은해사 산내암자인 백흥암은 비구니스님들이 머무는 고색의 단아한 암자이며, 수행처이자 선원으로 1년에 두 번, 부처님 오신날과 백중날에만 일반인에게 개방이 된다고 하는 암자입니다ㆍ
《백흥암 보화루》
《 비구니 스님께서 대비자루로 거리를 쓸고 계십니다》
《백흥암의 안내도》
《백흥암 극락전, 보물 제790호》
저희들은 템플스테이 계약을 하면서 간곡히 특별부탁을 드려 참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며, 대신에 묵언을 약속하고 조용히 친견할 수 있었습니다 ㆍ
백흥대난야(百興大蘭若)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영천 은해사의 산내암자 백흥암의 보화루에 걸려 있는 현판입니다.
절을 다른 말로 '가람' '난야' 정사' '절' '사찰' '암자' '암' '포교당' 등으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백흥대난야'는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한 개인이 지은 절을 과거에는 '난야'라 해서 구분했다고 합니다ㆍ난야란 '아란야'에서 나온 말로서 숲속의 고요한 수행처를 의미하는데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보화루가 닫혀있어 영산전 산신각 가는 길》
《직접 꽃 재배와 농사일을 하십니다ㆍ》
《백흥암 극락전 , 보물 제790호 》
영천 은해사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869) 혜철 국사의 발원으로 지어졌습니다. 지금은 은해사에 소속된 작은 절이지만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별개의 사찰로 산 주변에 잣나무가 무성하여 이름을 백지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로 인하여 불교가 탑압을 받고, 승려들의 신분은 최하위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게 되지만, 조선 시대 중기인 중종 15년(1520) 팔공산에 인종의 태를 보관하면서 백지사는 중요한 것을 지키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막중수호지소로 지정되어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받으며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인종의 태실은 은해사 운부암과 백흥암 갈림길의 산 정상부에 있습니다.
《보화루 안쪽》
명종 1년(1546)에는 천교대사가 낡은 건물들을 새로이 고쳐 지으며 이름을 백흥암으로 바꾸었다고 하며, 산의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기세와 같아 운부암에서 일어나는 상서로운 구름이 더욱 치솟아 용의 승천을 돕는다는 뜻에서 ‘백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집니다.
《백흥암 극락전》
《극락전의 아미타삼존불》
《백흥암 극락전 신중탱화》
《백흥암 극락전 지장탱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크게 훼손되었으나 1643년 (인조 21)부터 여러차례 중수하였습니다ㆍ
《일각문(향적당과 설선당 들어가는 문)》
《보화루》
《영산전과 산신각》
《명부전과 무이당》
1730년(영조6)에는 보화루를 중건하였고, 1858년(철종9)에는 영산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한때 수백명이 수도하였으며 암자로서는 매우 큰 편이라고 하네요
《무이당》
《극락전을 중심으로 진영각과 심검당》
《진영각》
《심검당》
《향적당과 설선당》
《육화당》
《공양간 》
《설선당》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화루, 영산전, 산신각, 명부전, 무이당, 진영각, 극락전, 심검당, 육화당, 공양간, 설선당 등이 있습니다ㆍ
《극락전, 보물 제 790호》
《수미단, 보물 제486호》
《감로왕도, 유형문화재 제319호》
주요문화재로는 백흥암 수미단 보물 제486호와
백흥암 극락전 보물 제790호, 백흥암 감로왕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9호 등이 있습니다 ㆍ
백흥암 보화루 누각의 산해숭심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며 진본은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2020년 CNN은 인터넷사이트 여행 섹션을 통해 한국에 900여 곳의 전통 사찰이 있는데 지형, 역사적 의의, 계절에 따라 유난히 풍경이 수려한 곳 등이 고루 포함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을 선정해 소개했는데 백흥암도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백흥암에서 먼저 맞아주는 것이 보화루입니다.
보화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2층 누각 형태로 되어있습니다ㆍ
지금은 닫혀 있지만 1층은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단청이 되어있지 않은 대청마루는 나무 결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고풍스럽고 소박한 느낌이 듭니다. 대청마루에서 바라보는 외부 전경은 가슴이 트이고 눈이 시원해 집니다.
보화루 아래로 누하진입하여 계단을 오르면 극락전을 중심으로 왼쪽은 진영각, 오른쪽은 심검당이 있으며,
마당이 깊어보이는 백흥암 극락전 전체적인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집니다
웅장한 극락전, 그 처마가 극락전 아래 좌우 전각들 지붕위에서 하늘을 날아갑니다ㆍ아름다운 장면입니다ㆍ
백흥암 극락전은 1984년 7월 5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79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백흥암은 은해사에 속한 암자로 신라말에 지은 것으로 전합니다 조선 명종 1년(1546) 인종의 태실을 팔공산에 모시게 되자 백흥암을 수호사찰로 정하고 크게 고쳤다고 합니다.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은 인조 21년(1643)에 지은 것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로 여러 차례 수리한 것입니다.
규모는 정면 3칸·측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입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습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재료의 형태와 짜임이 조선시대의 옛 수법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안쪽 천장은 가운데를 높이고 주변을 낮게 만들어 층을 이루게 꾸몄습니다ㆍ
백흥암 극락전에 있는 수미단은 높이 125cm, 너비 413cm의 조선 후기에 만든 불단입니다.
1968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수미단이란 절의 법당 정면에 상상의 산인 수미산 형태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불상을 모시던 대좌를 말합니다.
백흥암 극락전에 있는 수미단은 앞쪽 면은 5단으로 되어 있으며, 각 단도 5등분 되어 각각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제일 위의 단은 안상문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습니다.
제2단은 봉황·공작·학·꿩 등을,
제3단은 용·어린아이·물고기·개구리 등을 매우 섬세하게 조각하였습니다.
제4단은 코끼리·사자·사슴 등을 꽃잎 속에 조각하였고,
제일 아래단의 양쪽 끝에는 도깨비 얼굴을, 가운데 부분에는 용을 조각하였습니다.
각 단에 있는 새나 동물의 배열이 특색 있고, 조각기법도 매우 우수합니다. 이런 특징이 있는 불단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더러 남아 있지만, 이 불단은 그 중에서도 대표되는 작품입니다.
개방되지 않은 곳에 어렵게 허락을 얻어 조용히 들어와 극락전을 친견할 수 있었음에 감사함이 더욱더 컸습니다
극락전 내에는 아미타 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세음보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불상 뒤에는 아미타 삼존도가 있고, 그 위에는 용이 조각된 닫집이 있으며 아래로는 불상을 모셔놓은 수미단이 있습니다.
극락전 편액은 해서체로 쓰여져 있는데 조선 영조 21년에 쓰여 쾌선의 작품이라고 합니다ㆍ
백흥암 극락전에 보존되어 있는 감로왕도(유형문화재 제319호)는 불경 중 하나인 『우란분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화폭의 윗부분에는 극락세계의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여섯 명의 여래, 지장보살, 인로왕보살이 지옥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온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 주위를 둘러싼 오색구름은 천상 세계와 지옥 세계를 구분해 줍니다. 가운데 부분에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사는 중생을 의미하는 두 아귀가 부처와 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강조하여 크게 그렸고, 그 주위에는 지옥과 현세의 여러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실감 나게 표현하였습니다.
백흥암 극락전 왼쪽에는 진영각이 있습니다.
진영각은 혼허 지조(混虛 智照)의 영정과 판본, 현판 등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인데 '시홀방장(十笏方丈)' 이라는 편액과 여섯 주련이 걸려 있는데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글씨로 알려져 있어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시홀방장의 뜻은 홀(笏) 10개를 이은 크기, 사방 1장(10척) 되는 정도의 작은 방으로 유마거사(維摩居士)가 머물던 방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의 청빈과 무소유를 상징하며, 시홀방장은 큰 산중의 어른인 방장이나 그가 쓰는 방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1531년(중종26)에 간행된 법화경판과 이 절을 거쳐 간 24인의 고승들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백흥암은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입니다ㆍ
영천 은해사와 산내 암자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많이 있습니다. 헌종 13년(1847)에 큰불로 극락전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불타 다시 지을 때 추사와 인연이 있던 혼허 지조스님이 추사에게 부탁해 여러 점의 글씨를 받았다고 합니다. ‘ 은해사(銀海寺)’,‘ 대웅전(大雄殿)’,‘ 보화루(寶華樓)’,‘ 일로향각(一爐香閣)’, ‘불광(佛光)’, ‘산해숭심(山海嵩深)’, ‘시홀방장(十笏方丈)’등 편액이 그때 추사에게 받은 글씨라고 합니다.
'산해숭심'은 또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가 한없이 높고 깊은 산과 바다와 같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일년에 두 번만 산문이 열린다는 신비로움을 간직한 백흥암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한 비구니 스님의 배려로 굳게 잠겨있던 극락전의 문을 열고 아미타부처님을 뵐 수 있는 행운까지 얻게되었습니다. 경내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내내 스님들의 수행과 생활에 혹시나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백흥암의 고요함과 고즈넉함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네~감사합니다.
🔶️은해사의 산내암자 백흥암 🔶️국제포교사회 부울경지부의 상반기 워크샵 🔶️고색 단아한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입니다🔶️불기 2568...
https://youtube.com/watch?v=ecZeOIn4x4Y&si=b17KRmDcKDH2p0g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