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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0일 일요일 날씨 바람 시원하고 맑음 아내와 둘이
도상거리 20.1km
죽령에서 묘적령까지는 비교적 산세가 험하고 능선의 굴곡이 심하다. 그러나 묘적령에서 저수령까지는 고만고만하고 아기자기한 산세가 볼만하다. 도상거리는 만만치 않지만 일찍 출발하면 정오무렵이면 도착할 수 있을 듯하다. 늦봄의 평화로움과 산세의 어울림이 절묘하게 조화되고 때맞춰 불어주는 하늬바람이 산행 내내 가볍게 불어주어 너무나 인상적인 산행이었다.
구간 지도
죽령에서 백패킹 1박을 하고 아침 4시 50분에 출발한다. 도솔봉 방향으로 가면 되는데 비교적 육산인데다가 능선이 부드럽다. 죽령에 오는 방법은, 단양에서 일 6회, 영주에서 일 3회 버스가 다니는데 단양군 대강면에서 택시를 타고 오는 방법이 제일 편하다. 대강에서는 택시비 15000원이다. 연화봉에서 죽령까지의 시멘트 포장길에 비하면 여기는 너무 행복한 길이다.
시간이 풍부하다면 죽령 옛길을 이용해 봄직하다. 수철리까지 이어지는 이길의 정취는 정평이 나 있다. 과수원과 이웃집 마을의 안마당을 감싸고 때때로 만나는 낮익은 오솔길, 넓지도 작도 않는 길에 때로는 마을 강아지의 반가움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두어 시간이면 족하다 하니 한 번 가봄직하다.
삼형제봉 중 첫빼 봉인 1291봉을 지나쳐 바로 찍은 사진이다. 아마도 포탈에 형제봉이라고 치면 엄청난 양의 정보에 놀랄 듯하다. 대부분 높이가 고만고만하고 어슷한 봉우리가, 두개면 형제봉, 세개 이면 삼형제봉, 일곱개면 칠형제봉 등으로 명명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한 곳이 이곳인데, 세개의 암봉이 나란히 하여, 대강면 성금리 안성골로 뻗어 있고, 성금폭포에서 명이 다하는데 첫번 째 봉우리로 올라갔다 오는 길이 있다. 삼형제봉 중 첫번째 봉 근처에 갈래 길이 있는데 삼형제봉으로 가는 대간길은 남진기준 좌틀이고 첫 번째 봉우리를 밝고 안성골 가려면 직진이다.
삼형제봉(1261m) 데크 앞에서 찍은 죽령방면 사진. 능선이 또렷하게 보인다
삼형제봉에서 본 풍기읍 수철리 방면
우측의 비로봉이 또렷하게 보이고...
소백산 천문대가 또렷하다.
도솔봉( 兜率峰 1314m)에 왔다. 도솔봉은 이웃한 형제봉과 더불어 가장 한적한 육산으로 꼽히고 있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 兜率山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불교용어 도솔천에서 따 온 것이다.기록에 보면 또한 도솔산에는 도솔산성이 있었다는데,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등강성’이라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6.25 당시 모두 사라졌다. 흔적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문외한인 필자는 알 수 가 없다.
兜率天은 산스크리트어 Tusita에서 온 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欲界) 6천(六天) 중의 제4천을 이르는 말로 ‘만족시키다’의 의미로 쓰인다. 지족(知足) ·묘족(妙足) ·희족(喜足), 또는 희락(喜樂) 등으로 번역한다.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이라고 하며, 석가도 현세에 태어나기 이전에 이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했다고 한다. 현재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여기에서 설법하며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下生)하여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로서, 정토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독교인인 필자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불교와 그에 따른 명칭사용이 부러울 수 밖에 없다.
소백산은 일반에게 잘 알려졌지만 , 소백산 서쪽을 차지하는 삼형제봉과 도솔봉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도솔봉은 숨겨진 보물이다. 백두대간 중 한적하면서도 웅장하기가 그지 없어 육산(肉山)중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과연 와 보니 험한듯 험하지 않고, 높은 듯하나 낮은 산의 풍미가 어우려져 있고 ,그러면서도 바위산의 위엄도 넘치는 독특한 산이다. 정말 도솔봉은 소백산의 축소판이라 불릴만큼 한 키나 되는 철쭉과 진달래가 화원을 이루며 각종 고산식물이 많다. 또한 숲길 가득 수목이 울창하고 계곡마다 꽃피는 초본류가 무성하여 발길 닿는 곳마다 풍치가 그만이다. 정상 도솔봉을 주축으로 좌로삼형제봉과 우로 묘적봉을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으며, 능선에는 바위지대와 억새등이 있다. 정상 암봉에 서면 죽령에서 장엄하게 뻗어 오른 소백산의 장릉을 끝까지 바라볼 수 있어 황홀하고, 남쪽으로는 활같이 구부러지면서 황장산으로 이어내린 백두대간이 아련하기만 하고,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산야가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천하 명산이다. 오늘따라 날씨까지 따라주니 얼마나 좋은지..
도솔의 이름처럼 자족(自足)하며 살리라 다짐한다
도솔봉에서 본 풍기방면
단양군 대강면 방면
소백산 천문대 방향
영주시 부산리 방면
우측 사동리로 내려가는 길앞에 세워진 도솔봉안내도
묘적봉방면 능선. 멀리 저수령으로 가는 능선이 또렷하게 보인다.
묘적봉(妙積峰 1148m)이다 ,
봉우리인듯 아닌듯 수줍게 갑자기 나타났다. 칼바위 능선을 지나자 이웃의 1185봉을 지나서 만나는 경승지다.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먼저 만나는 것이 정상이다. 정상은 바위와 흙과 나무가 잘 조화를 이루면서 오똑하게 올라앉았다. ‘묘(妙)하게 쌓여진(積) 봉우리’이니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어느 방향으로 바라보든 경관이 빼어나다.
묘적령지나면 자구지맥분기점이 있다. 이 분기점 직전에 남진기준 거의 150도 우측으로 꺾여져 있는 길을 따라가야 대간길인데, 직진하면 자구지맥으로 가는 길이다. 자구지맥(子求枝脈)은 이곳에서(1020m) 분기하여 고항치 옥녀봉 자구산(786m) 부용산 매봉산 냉정산 남산을 거쳐 예천군 계포면 담암리 한천을 분수하는 지맥으로 도상거리 39.8km 의 산줄기를 말한다.
근사한 경계석이 있다. 백두대간 중 예천군에 속하는 구간이, 이 묘적령에서 저수령까지인데, 이정표도 엉망이고 길도 형편없고 관리도 안한 티가 역력하다. 구간이 짧다보니 그런가 보다.
이곳에서 남진하는 일군의 대간꾼에게 따라잡혔다. 그 분들은 한달에 한 번씩 남진하는 분들인데, 어제 11시에 고치령에서 출발하여 벌재까지 가신다고 한다. 무려 45km, 아무튼 대단하고 엄청나다. 20km 거리도 버거운데 어찌 그 먼길을 한 번에 가실까?
솔봉(1021m)은 도솔봉 구간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첩첩산중이기는 하지만 조망이 매우 좋다. 동쪽으로 예천군 고항리의 시골마을 풍경이 발끝에 놓이고, 서쪽으로는 단양유황온천이 있는 남조리 일대의 농경지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솔봉은 ‘소나무봉’이다. 고항리의 ‘송전마을’도 소나무가 많은 산촌이다
깜박하고 뱀재를 그냥 지나쳤다. 송전탑을 지나는데 담배냄새가 나서 돌아 봤더니 약초꾼들이 있다. 산에서 담배피는 사람을 처음본다. 냄새 때문에 투덜거리다가 뱀재를 지나쳤나 보다. 곧장 흙목정상(1070m)이다. 흙목 근처 예천군 상리면 두성리에 흙목마을이 있다. 토항(土項)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명풍수 ‘박성’이라는 사람이 산천에 제사 지낼 때 향을 피운 곳이라고 하여 吐香이라고 적기도 한다. 吐香이 土項ㆍ흙목이라 와전되었다고 한다
셀카로 한번 찍어본다 구도가 영...
싸리재에 왔다 비교적 넓은 안부가 있고 약초꾼들 수 십명이 이른 점심을 먹고 있다. 바닥에 배재 안내판이 널브러져 있다
싸리재는 저수령이 없던 시절, 예천 용두리에서 이 고개를 거쳐 남조리로 넘어가면 단양에 닿을 수 있었다. 지금도 걷는 거리로는 저수령보다 싸리재가 더 가깝다. 남조리의 단양유황온천으로 내려서는 등산로가 이곳에서 갈라진다. 공터가 있다. 이구간에는 우리말 지명이 특히 많다. 싸리재도 이름 그대로 싸리고개다.
싸리재에서보니 지친 산객 앞에 거대한 유두봉(乳頭峰)이 턱 가로막고 있다. 사진을 못 찍은게 못내 후회된다. 유두봉은 한자 그대로 여인의 젖꼭지처럼 볼록하여 마치 유두처럼 생겼다.
우측은 남조리 단양유황온천 방면, 좌측은 예천 용두리 방변이다.
유두봉에서 본 지나온 길. 묘적봉이 보인다. 싸리재에서 한참을 숨을 골라야 오를 수 있다.
배재에 왔다. 직진하면 전방에 1084m 봉우리가 보이고 이곳에서 1084봉 시루봉 투구봉 촛대봉이 지근거리에 나란히 붙어 있다.
싸리재에서 서쪽으로 1K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다. 북쪽 구릉 너머로 지나온 삼형제봉과 도솔봉, 묘적봉 등이 부채를 편 듯이 펼쳐진다. 남쪽의 턱 밑에 저수령으로 향하는 927번 국도가 산모퉁이를 이리저리 감돌며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마을의 등 뒤(背)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싸리재는 확실히 낮지만 이곳은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하고 고개 같지 않아 이정표가 없으면 그냥 지나칠 듯하다.
배재를 지나 650m 걸어오면 넓은 안부가 있고 이런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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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봉(1110m)이다. 소백산의 산괴가 월악으로 이어지기 전에 세개의 봉우리로 마감된다. 시루봉,투구봉 그리고 촉(촛)대봉이다. 산의 성질은 벌써 월악을 닮아 바위로 빚어졌다. 저수령에서 출발해 간단하게 등반하고 유황온천으로 향하는 일반 산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떡쌀을 찌는 시루와 같이 생겨서 붙은 이름인데, 밑에서 무엇이 받쳐주는지 뭉뚝한 모습으로 우뚝솟아 있다.
연이어 나타나는 투구봉(1080m) 정상에 있는 투구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촉대봉 혹은 촛대봉(1080m)이라고 한다.
소백산군의 마지막 봉우리. 저수령 건너편의 옥녀봉과 마주 서 있다. 서쪽 사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편으로 목장용 초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다. 이곳부터 대간은 방향을 틀어 서진하면서 내륙의 중앙부를 동서로 관통한다. 세워놓은 촛대와 같이 높게 솟아 있다. 촉대(燭臺)는 촛대의 한자어다.
급한 내리막길을 경험한 후 도착한 저수령(850m), 저수재라고도 한다 .정상 일대는 주목이 군락을 이룬다.
교통량이 매우 적다. 죽령터널이 개통되기 전에 예천 사람은 이곳을 통해 서울로 갔지만, 지금은 한가하다.예천군의 위치에서는 수도권이나 중부 내륙으로 접근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대간의 북쪽 사면을 목초지로 개간하여 소를 기르는 소백산목장이 언저리에 있다. 고갯마루에는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지만 이제는 문을 닫았다
예천 쪽 1Km 지점에 아담한 용두산 자락에 용두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고려 태조 11년(928년) 12월, 고려국의 남쪽 성인 고창군(현재의 안동)을 후백제의 견훤이 포위하자 왕건은 유금필을 대장으로 삼고 저수봉으로부터 나아가 크게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저수재가 개척된 지는 오래된 것 같다. 고려시대에는 고개의 형태가 돼지(猪)머리(首)처럼 생겼다고 저수(猪首)고개라고 불리웠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이 고개이름이 저수령(低首嶺)이라고 쓰이고 지금까지 불리워 왔다. 아마도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이전에는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뜻으로 누군가 개명하여 불린듯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殷豊谷)까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임란시 이 피란민을 도모하려고 좆아 왔던 외적들이, 험한 지형에 매복해 있던 우리측에게 모두 목(首)이 잘려 죽어 낮은 곳(低)에 널부러졌었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내용도 있다.
현재의 도로는 지방도 927호로 1994년도에 개설 완료하여 충북과 서울 강원지방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광 및 산업도로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정자가 있어 백패킹이 가능하다. 필자도 이곳에서 다음 여행지의 숙소로 삼고자 한다.
도상거리 20.1km 만보계 44,204보 도보상거리 30,942m
총 산행시간 8시간 33분 46초 (휴식시간 제외)
첫댓글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