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하고 굵은 물방울이 얼굴에 떨어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품에 나를 안은 남자가 슬픔이 가득 찬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남자의 울음의 이유를 물으려고 입을 벌린 순간 목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꿈인거 치곤 너무 선명한 고통에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 내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면 이깟 죽음이 무서울까, 부디 네가 행복한 그 곳에서 다시 만나길.. "
내 간절히 기도하마. 말을 끝낸 그 남자는 출처모를 피가 가득한 칼을 들어 내 목에 고통이 느껴지는 곳과 비슷한 위치에 칼을 가져다 대고선 곧이어 자신의 목을 베어냈다
아시발 개꿈도 이런 개꿈을 다 꾸네 꿈에서 꺰과 동시에 욕이 튀어나왔다 꿈이라기엔 내 볼에 닿았던 그 사람의 눈물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침이라도 흐르고 잔건가.. 찜찜한 마음을 뒤로한채 출근 준비를 하곤 문 밖을 나섰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일상을 하는데엔 꽤나 많은 감정소비가 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고개를 들어 하늘만 멍하니 보며 걸었다 큰 눈송이가 내 뺨에 떨어지곤 빠르게 녹아내렸다
아까도 이렇게 차가운 눈물이었는데
" 누굴까 그 사람.. "
빵-빵-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이 경적소리만 낼뿐인 차가 나를 죽일 듯한 기세로 달려왔다
누군가에 손에 이끌리며 차갑고 따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짐과 동시에 정신을 잃은 듯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향긋한 꽃 향이 코끝을 간지럽혀 눈을떴다 지금쯤 난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집 마루 같은 곳에 누워 있다는 점이 의아했다. 나 뒤진건가?
" 동아 일어났느냐? "
동아? 아따맘마 동동이? 자세를 고쳐 누우니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가 보였다. 요즘 저승사자는 한복을 입나 무릎베개까지..? 무슨상황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손을 나에게 뻗는 남자에 식은땀이 절로 났다
물론 가끔, 아니 자주 살기 싫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죽기엔 너무 일렀다고 생각했다. 저 아직 살고싶어요!
" 살려주세요! "
겁에 질린 내 목소리완 다르게 무서움이라곤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 또 나쁜 꿈이라도 꾸었나보구나 "
허공에 잠시 멈추었던 손이 곧 땀에 젖은 내 머리칼을 정돈해주듯 쓰다듬어왔다. 괜찮다 괜찮아 꿈일 뿐이니, 나긋한 목소리로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에 정말로 모든게 괜찮아진듯 마음이 차분해졌다
저승사자가 이래서 무서운거구나. 내 머리를 쓰다듬어줄때마다 움직이는 옷 소매에서 달달하고 따스한 꽃내음이 났다. 꿈이라 그런지 마음이 편안하니 이대로 깊은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설이라고 했다. 겨울이 되려는 추운 날에 만난 이름이 없는 나에게 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하였다. 홀로 조선시대에 똑 떨어진듯 주변 모든것은 사극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집들과 물건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적응하긴 쉬웠다 전부 드라마에서 한번씩은 봤을 법한 거리였고 모든게 비슷했다 마치 역사공부를 재밌게 한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 어서 오세요! "
빨리 오라는 내 부름에 설이라는 남자는 단숨에 내 앞까지 뛰어왔다. 언덕 맨 꼭대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참 아름다웠다
건물이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에 내려 쌓인 흰 눈이 이렇게 까지 예쁜 줄은 처음 알았다. 언덕을 올라온 둘의 발자국들을 제외한 모든 자리엔 자국하나 남지 않은 새하얀 눈이 전부였다
남자는 차가워진 내 볼을 따뜻한 손으로 감싸주었다
" 동아 "
나긋하게 이름을 불러주던 남자는 목에서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목에서 피는 멈출줄을 모르고 새 하얀 눈과 옷을 전부 붉게 물들였다
이내 모든것이 눈처럼 녹아 내리듯 흔적하나 없이 사라졌다.
나쁜일을 암시라도 하듯 이런꿈을 꾼지 이주가 지났고 내가 조선시대에 똑하고 떨어진 것 같은 꿈을 꾸는 것도, 아니 꿈이길 바라는 이 상황도 이주가 지났다.
패딩이 없는 추운 겨울은 말그대로 최악이었다 평소라면 롱패딩에 말려진 김밥마냥 다닐텐데 무겁고 불편한 한복만 가득했다. 어서 이 추운 겨울이 지나가길
" 저기서 요술을 보여준대! "
예고도 없던 축제로 인한 길터는 온동 시끌벅적했다. 엽전이 사라지는 마술, 손수건 속 꽃 한 송이가 나타나는 마술 흔하고 흔한 마술이었다.
재밌게 놀다 늦게 돌아오라는 설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왔지만 피곤한 몸에 궁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장과 전혀 다른 조용하고 넓은 장소가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출근길, 회사, 퇴근길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치여 살았을텐데.
조용한 방안에 누워 있으니 귀가 예민한 듯 누군지 모를 사람이 조용히 또 소란스럽게 자리를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불안한 마음에 그의 뒤를 쫓았다. 평소 궁에 있던 소수의 인원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방 앞을 지키던 두명의 호위무사 또한 자리에 없었다.
또 한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듯 익숙한 장면이었다. 세자 방 앞에 칼은 높게들어올린 사람을 밀치고선 남자를 품에 안았다. 제가 죽거든 절대 따라죽지 마세요.
곧 이어 오른쪽 귀에서 얇은 피부가 썰리는 소리와 여러명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흐릿해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써봤지만 쉽지 않았다
" 정신이 들어요? "
" 세자...? "
" 세, 뭐 세자요? 머리를 많이 다치셨나보네 "
이상하다 머리는 멀쩡하댔는데.. 중얼거리는 남자는 설이와 똑 닮은 얼굴이었다 병원인듯 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역시 다 꿈이었어
" 목은 어쩌다가.. "
" 아, 이거 "
별거 아니예요 하하. 웃어보이는 남자였다 아마도 날 구해주다가 어딘가에 긁힌 듯 했다. 이거 고맙고 미안해서 어쩌지
" 저 죄송해요 치료비랑 옷값이랑.. 다 물어드릴게요 "
" 치료비랑 옷 값은 됐고 저희 밥 먹으러 갑시다 "
" 예? 아니 그래도.. "
" 그쪽 걱정돼서 여기 계속 지키고 있느라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요 "
납작해진 배 좀 보라며 배를 팡팡 거리는 손짓에 웃음이 나왔다. 꿈에서 분명 시간이 2주가 흘렀었는데
" 혹시 지금 며칠이에요? "
" 사고 난 후 두 시간 지났어요 진짜 머리 아픈거 아닙니까? 이거 밥보다 검진을 한 번 더 해야겠는데 "
간호사님! 여기 환자가! 손을들고 간호사를 부르는 남자의 어깨를 퍽 하고 밀쳤다. 아 저 괜찮다니까요!
어깨를 쥐고 세상에 모든 상처를 혼자 받은듯한 똥강아지같은 표정을 짓는 남자에 또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됐고 밥이나 먹으러 가요!
" 네~ 돈까스 어때요? "
" 무슨 아침 댓바람부터! "
" 그럼 삼겹살? "
처음 본 사람이라는게 무색하게 많은 티키타카가 오갔다. 이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될거라는 걸 알려주는 긴 꿈을 꾼 것인가 싶었다
손바닥을 펼쳐내니 눈 송이 하나가 앉았다. 순식간에 빠르게 녹아내린 눈은 작은 물방울 만을 남겨놓은채 모양을 감추었다
그래도 꿈속에 그 남자와 닮은 사람을 다시
" 만나게 돼서 다행이에요 "
저도 모르게 내뱉어버린 오글거리는 말에 덕분에 목숨도 구하고 예전 친구도 만난 기분이네요 하하. 분위기를 넘겨보려 어색한 웃음 지었다
" 간절한 기도 덕분이겠죠 "
나의 말을 맞 받아친 남자에 걸음을 멈추었다.
" 어서와요! "
가게에 문을 열고 기다리는 남자에 부름에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우동 국물이 추운 날에 얼어버린 몸을 녹여주듯 했다
언제나 겨울은 돌아오듯 올해 겨울이 왔음을 체감할 수 있는 하루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