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10)
18. 전날 왔던 길 되돌아가다(순천 선평삼거리 – 구례 종합운동장 41km)
8월 31일(목), 선선하고 맑은 날씨다. 아침 6시 반, 숙소 옆의 식당(나들목)에서 조반을 들었다. 여주인(박정임)이 힘든 행군 하신다며 음료 한 병씩을 따로 챙겨주는 마음씨가 고맙다.
오전 7시에 전날 도착했던 선평삼거리를 출발, 구례 쪽으로 향하였다. 서천을 끼고 올라가는 길, 아침 햇살이 눈부시고 송치재 전망이 아름답다. 전날은 석양의 내리막길, 오늘은 밝은 햇살 등지고 올라가는 주변의 풍광과 느낌이 전혀 다르다. 올라갈 때 못 본 꽃, 내려올 떼 본다는 시구처럼 전날 못 본 것들이 새롭게 드러난다.
이른 아침에 선평삼거리 출발하여 서천을 따라 걷는 일행
이른 아침부터 밭에서 일하는 손길들이 바쁘고 재두루미 날고 물오리 헤엄치는 개천이 평화롭다. 전날 들렀던 학구삼거리에 이르니 오전 8시 40분, 내려올 때는 살피지 못한 한자 표기 학구리(鶴口里)를 접하니 서천에 재두루미, 백로 떼들이 유유히 노니는 것이 수긍이 된다. 학구리 마을회관에 붙은 남도수군 재건로 표지판을 살피며 충무공이 고심하며 구상한 순천 인근의 여러 수군 진영의 대비상황을 헤아려본다.
학구삼거리에 세운 조선수군재건로
학구삼거리에서 송치재에 이르는 오르막길을 힘겹게 걸어 송치재 정상에 이르니 오전 10시, 완만한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니 차량으로 지원하는 김월호 이사가 인근에 잘 알려진 맛집이 있다며 이른 점심을 제안한다. 식당은 큰 길에서 1km쯤 들어간 한적한 곳의 월등면 송치마을 커피숍, 11시부터 문을 연다는 음식점에 일찍 와서 대기하는 손님들이 여럿이다. 메뉴는 돈가스와 수제비, 유명 셰프가 다녀갔다는 입소문을 입증하듯 반찬으로 나온 오이와 무우 맛이 상큼하고 푸짐한 돈가스와 구수한 반지락 수제비가 입맛을 돋운다. 일행 모두 대만족, 12시 이전에 식당은 대만원이다.
11시 50분에 오후 걷기, 잠시 내려오니 전날 들렀던 매실농장에 이른다. 거기서부터 거친 풀숲 길, 배준태 단장이 미리 준비한 스틱으로 발길을 가로막는 풀 대강이를 제거하는 등 힘들게 풀숲을 헤쳐 나간다. 한 시간여 걸어 황전면 소재지, 면사무소 옆 식당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30여분 걸으니 햇볕이 따갑고 발걸음이 무겁다. 황학 마을의 정자(연화정)가 휴식하기 좋은 장소, 마루에 누워 10여분 쉬고 나니 한결 몸이 가볍다.
이어서 두 번째 잡풀 길에 들어선다. 역시 스틱으로 풀숲을 헤치며 통과, 외구 터널 못미처 쉼터에서 먹는 복숭아가 꿀맛이다. 외구 마을 휘돌아 선변교에 이르니 오후 4시 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천변 따라 한 시간여 열심히 걸으니 순천시 황전면을 벗어나 구례군 문척면에 들어선다. 곧이어 남도 백의종군길 3번 길의 종점인 동해마을, 아이스크림으로 열을 식히고 10여km 남은 구례종합운동장까지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문척교 건너 섬진강과 서시천 합류지점을 거쳐 읍사무소와 손인필 비각 지나서 종합운동장에 이르니 오후 6시 50분으로 이번 행군 중 가장 늦은 도착시간, 41km를 걸어 가장 먼 거리다. 곧장 식당(함지박속 흙돼지)으로 가서 흙돼지삼겹살로 저녁을 들고 숙소(예일모텔)에 여장을 푸니 저녁 8시가 넘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 샤워 후 글쓰기도 포기한 체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8월 마지막 날, 여름의 막바지에 큰 걸음 내디뎠으니 내일부터 더 가벼운 발걸음이어라.
19. 운조루 거쳐 석주관으로(구례 종합운동장- 석주관 15km)
9월 1일(금), 하늘 높고 새털구름 많은 가을 날씨다. 아침 6시 20분, 숙소 맞은 편 음식점(갑호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종합운동장으로 향하였다. 도착하자 이내 길 안내를 맡은 체육진흥회 전남지부 양창승 사무국장이 나타난다. 오전 7시에 하동방향의 석주관을 향하여 출발한다.
구례 종합운동장 출발에 앞서
운동장 옆 광장에는 지리산국립공원 50주년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오늘(9월 1일)과 내일에 걸쳐 50주년 행사가 이 일대에서 크게 열리는 모양이다.
출발 직전, 둘째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아들의 생일, 벌써 40세가 된 걸걸한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태극기를 개국기라 발음하던 철부지가 어느새 불혹의 나이에 이르렀구나. 아무쪼록 한 몫을 잘 감당하여라.
읍내의 오솔길 따라 큰 길에 이르러 서시천 제방 길로 들어서 잠시 걸으니 합수지점을 거쳐 섬진강 본류에 접어든다. 주변에 우뚝 선 지리산과 이를 휘감고 도는 자욱한 안개, 백로 때 노니는 강변이 한 폭의 그림으로 길손을 매혹한다. 이를 배경으로 한 컷, 사진작가가 두 분(배준태 단장과 정상희 대원)이나 있으니 멋진 작품 나오렸다.
돌다리가 운치 있는 섬진강 풍경
아침 이른 시간, 길 건너 동네 마이크에서 9월을 안내하는 방송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인다. 오늘은 9월 1일(음력 7월 열사흘), 7일은 찬 이슬 내리는 백로, 22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이라는 안내의 말을 들으며 농촌 들녘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더운 여름 열심히 일하였으니 풍성한 열매 거두시라.
한 시간여 걸으니 토지면에 들어선다. 발음만 들어도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고장이다. 이곳의 걷기코스는 섬진강길, 지리산 둘레길, 이순신 백의종군길 등 다양하게 펼쳐진다. 강변 따라 20여분 한적한 길을 걸으니 강변의 멋진 곳에 용호정이라는 작은 정자에 이른다. 정자에는 1910년 경술국치를 겪은 농촌의 지사들 70여 명이 갹출한 1,370원으로 이곳에 정자를 세워(1917년)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시계회를 열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조용한 농촌 마을 여럿 지나 9시 20분 경 오미마을에 있는 운조루(雲鳥樓)에 이르렀다. 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1776년)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柳爾冑)가 지은 것으로, 조선시대 양반가의 대표적인 집이다. 집의 문화적 가치도 중요하거니와 이 집에 서린 훈훈한 이야기가 더 정겨운 곳, 어려운 이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열어 먹을 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뜻)라 쓴 쌀독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집인데 그 덕인지 숱한 난리와 격변의 세월에도 훼손되지 않고 원형대로 보존된 것을 자랑한다.
그 앞 나무그늘에서 휴식한 후 오미마을 지나니 오전 10시 경 석주관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넓은 길이더니 차츰 급경사의 오르막 내리막이 여러 차례 이어지며 점점 걷기 힘든 조악한 산길이 5km쯤 이어진다. 악전고투 끝에 힘든 산길을 벗어나 석주관에 이르니 12시 반, 두 시간 반가량 험한 길 걷느라 모두들 고생하였다.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위치한 석주관, 그곳에 새긴 설명문은 이렇다.
1597년 8월 3일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교서를 받고 전주 손경례 집에서 떠나 구례현(현 구례군)에 입성한다. 하동에서 구례로 들어서는 초소인 석주관에서 구례 현감 이원춘을 만난다. 이순신은 일본군 10만 병력이 섬진강을 따라 구례 방향으로 북상한다는 급박한 전황을 보고받는다. 석주관은 전라도 구례현(현 토지면)과 경상도의 하동(현 화개면)을 잇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내륙으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곳에서 현감 이원춘이 이끄는 의병, 승병들과 일본군의 내륙진출을 차단하기 위해 죽기를 맹세하고 방어진을 쳤다. 지금 이곳에는 당시 처참하게 싸우다 순직한 이를 기리는 석주관 사우, 순절묘, 그리고 석주관성(사적 385호)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석주관 사우, 칠의사 묘 등은 문이 굳게 잠겨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석주관에서 승합차에 올라 인근의 섬진강변에 있는 음식점(용궁식당)에서 매운탕으로 점심을 들고 같은 건물의 2층에 있는 객실에 여장을 풀었다. 선상규 회장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길 안내를 해준 양창승 전남지부 사무국장의 노고에 감사하며 그를 구례가지 전송하였다. 일행 모두 모처럼 일찍 끝난 여유시간을 휴식 등으로 자유롭게 보내고.
오늘 걸은 거리는 약 15km, 전체 일정의 4분의 3이 지났다. 남은 날, 유종의 미 거두도록 발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