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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더 되었네요.
국어교육과 학생으로서 중고생들이 주체적으로 현대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교수학습 방법을 고안해 내겠다며 고민을 거듭하며 썼던 글인데
그간 학생들을 지도하며 이리저리 보완해서 아래와 같은 글이 되었네요.
학생들 지도하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올려 봅니다.
낯선 문학 작품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주제 내비게이션>
<목차> 1. 수백 편이나 되는 문학 작품의 주제를 다 외울 수 있을까? 2. 주제 파악 능력은 왜 갖추어야 할까? 3. 주제 내비게이션[표] 4. 주제 내비게이션 해설 5. 시를 읽지 말고 화자를 읽어라 6. 분석된 화자와 주제 내비게이션 연결하기 7. 현대시 주제 파악하기의 구체적인 예시 8. 주제 학습을 위한 교재 ‘무리하게 진행하는 현대시 115’ |
1. 수백 편이나 되는 문학 작품의 주제를 다 외울 수 있을까?
주제 학습의 기본 원리 |
자, 여러분~ 이건 현대시가 여러 편 실린 각기 다른 자습서들이에요. 각 분단마다 한 권씩 나눠서 가지세요. 이제 게임을 하나 할 건데 여러분들이 한 명씩 작품 제목을 말해 주시면 쌤이 주제를 바로 말해 줄게요. 만약 선생님이 비슷도 않게 말하면 선생님이 진 거고 여러분 모두에게 베라 쿠폰 하나씩 쏠게요.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중복되는 작품들을 빼더라도 수백 편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음~ 만약 선생님이 머리가 좋다 하더라도 이 수백 편의 주제들을 다 외우긴 쉽지 않겠죠? 자 한번 해 볼까요?
매년 예비고1 첫수업 때마다 해왔던 내용이다. 과연 수백 수천 편 되는 작품의 주제를 암기할 수 있을까? 가능한 사람도 있을 거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이런 게임을 하는 이유는 각 작품의 주제들을 개별적으로 외운 게 아니라 수많은 주제들을 나만의 체계에 맞추어 놓은 터라 내가 이길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임을 진행하면 예비고1들이라 그런지 신기하다는 반응 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소 하는 반응 반 정도인 거 같다. 가끔은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나를 틀리게 하고 말겠다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럴 때면 슬쩍 져주어서 모두에게 베라 쿠폰을 쏘곤 했다.
여러분, 오늘 수업은 선생님 머리가 좋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에요. 실제로 쌤 아이큐가 높지도 않고요^^ 인간에게는 유형화하는 능력이 있어요.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한 덩어리로 인식하게 되면 더 많은 내용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는 거죠. 만약 인간에게 이 능력이 없다면 엄청난 지식의 양 때문에 인지적 과부화가 나타날 거예요. 현대시 주제 학습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바로 ‘주제의 유형화’예요. 먼저 이 학습의 기대효과부터 얘기한 다음, 자세한 내용을 이어갈게요.
2. 주제 파악 능력은 왜 갖추어야 할까?
<주제 학습의 효용> ① 주제를 통해 시어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② 학습한 내용들을 까먹지 않고 오래 기억할 수 있다. ③ 낯선 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주제를 파악해 낼 수 있다. ④ 주제를 기준으로 의미와 표현 관련 문제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⑤ 명료한 주제 진술을 통해 명료한 사고를 꾀할 수 있다. ⑥ 현대시뿐 아니라 나머지 고전시가나 소설 등 다른 갈래의 주제도 파악할 수 있다. |
여러분들은 혹시 지금까지 학교에서 시의 주제를 파악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나요?
시의 상황을 떠올려 본다든지, 주된 정서를 찾아 본다든지, 시어들을 긍정 시어와 부정 시어로 나누어 본다든지, 시를 읽고 그림으로 그려본다든지……. 뭐 이런 방법들을 들어 본 적이 있는 학생들도 있을 텐데 사실 이런 방법들은 전체를 아우르는 방법이라기보다는 다소 부분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어요. 만약 낯선 시를 읽고 주제를 바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면 어떤 효용이 생길까요?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함축적 의미’란 무엇인지부터 설명한 뒤 학습의 효용에 대해 얘기할게요.
‘시어의 함축적 의미’란 무엇일까? 그리고 자습서에 나온 시어의 의미들을 모두 암기해야 할까? 먼저, 함축적 의미란 사전적 의미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문학에서 나타나는 문맥적 의미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과’의 사전적 의미는 ‘사과나무의 열매’이겠지만 시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과’라는 시어가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그것은 바로 주제와 문맥이다. 다시 말해 시의 주제가 ‘어머니의 사랑’과 관련된 것이어야 하고 ‘사과’라는 시어의 앞뒤 문맥 또한 그 의미를 지지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시어들의 함축적 의미는 주제와 문맥을 통해 시를 읽는 사람이 파악하는 것이지 자습서에 나온 대로 암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 이번엔 다른 질문을 한번 해 볼게요. 혹시 여러분들은 처음 보는 시를 읽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안 잡혔는데 시의 주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 이후, 어두운 터널에서 밝은 출구로 나올 때의 느낌처럼 시의 내용이 그전보다 훨씬 폭넓게 이해된 적이 있나요?
학생들(네, 있어요~)
그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서 그와 비슷한 경험을 시가 아닌 줄글로 한번 해 보아요. 자 먼저, 다음 글을 읽어 보세요.
『 절차는 간단하다. 먼저 항목들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두세 묶음으로 나눈다. 양이 적다면 한 번에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에 많은 양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씩 여러 번 나누어 하는 것이 낫다. 이 점은 얼핏 보기에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으나, 일이 복잡하게 되면 곧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한 번의 실수로 대가를 크게 치러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길지 않은 글이니까 다 읽어 봤겠죠? 자 그럼 읽은 글이 무얼 의미하는지 한번 말해 볼까요? 모르는 낱말은 없는데 뭔가 모호하게 느껴지죠? 낯선 시를 처음 읽었을 때도 이와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자 그럼 쌤이 이 글의 제목을 알려 줄 테니 제목을 고려하면서 다시 한번 읽어 볼게요. 자 제목은 <세탁기 사용법>입니다.
학생들 일부(와~ 신기~)
제목을 알고 읽으니 어때요? 이전과는 달리 의미가 더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나요? 지금 읽어본 글에서 제목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의 주제예요. 여러분들이 시의 주제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면 각 시어들의 함축적 의미도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주제는 표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주제를 알고 있다면 시의 표현상 특징도 굳이 암기하지 않고도 머릿속에 많이 넣을 수 있어요. 이쯤 해서 보다 분명히 주제 학습의 첫째 효용을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은 내신 학습에서 외워야 할 내용을 엄청나게 줄여 주는 장점이 있어요. 시험에 나올 내용들을 오래 기억하게 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요.
예전에 이렇게 말하는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 수능 국어 시험을 볼 때 저는 아예 시의 본문을 읽지 않고 그냥 풀어요. 읽어 봤자 어차피 내용을 모르니까요.” 수능 국어는 기본적으로 능력의 평가이기 때문에 낯선 문학 작품이 출제되는 경우가 많다. 낯선 시를 보게 되면 이 학생처럼 반응하는 친구들이 꽤 많은 거 같다. 여기서 주제 학습의 두 번째 효용을 말할 수 있다. 주제 학습을 통해 시의 주제를 빠르게 알 수 있다면 수능 국어 시험에서 낯선 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그 주제를 기준으로 하여 빠르고 정확하게 선택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의 갈래 중 가장 주제가 다양하다고 볼 수 있는 현대시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면 고전시가나 소설, 수필 등 다른 문학 갈래의 주제 또한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주제 학습의 구체적인 원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아래의 표는 전체적인 내용을 보기 좋게 요약한 것이고 그 다음 파트에서 표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이어진다.
3. 주제 내비게이션
인간 층위 구분 | 개인 | 부모 |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
힘든 삶을 사셨던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연민) | |||
가족 또는 연인 |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 | ||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로 인한 슬픔 | |||
자아 | 지난 삶(또는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과 극복의지 | ||
집단 | 노동자 농민 등 | (부조리한 현실로 인한)노동자, 농민의 비애/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 | |
서민 |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연민, 애정 | ||
민중 | 민중의 고통과 (연대를 통한) 극복의지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 ||
시인 | 가난(창작)으로 인한 삶의 고통과 극복의지 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자부심 감동을 주는 시에 대한 소망 좋은 시를 쓰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반성, 성찰 | ||
종교인 | (화자 중심) 절대자에 대한 구도적 삶의 태도 (절대자 중심) 절대자의 섭리에 대한 깨달음 | ||
민족 | 망국으로 인한 비애 비극적인 민족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전쟁(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고통과 극복의지 민족의 밝은 미래에 대한 소망 | ||
보편적 인간 |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 또는 비애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슬픔 이상향에 대한 지향과 좌절 | ||
현대인 | (잘못O) 현대인에 대한 비판 (이기적인, 속물적인, 소시민적인, 순수함을 잃은, 무기력한, 진정성 없는 사랑을 추구하는, 자유를 잃은) | ||
(잘못X) 현대인의 비애(삭막한 현대문명으로 인한)/ 삭막한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 |||
주제 구분 | 정서 중심 | (그리움류) 긍정적 대상㊉에 대한 그리움(고향, 연인, 부모, 가족, 어린 시절 등등) | |
(슬픔류) 부정적 상황㊀으로 인한 슬픔(이별, 사별, 상실, 부정적 현실 등등) | |||
태도 중심 | 긍정적 대상㊉에 대한 긍정적 태도㊉ | 대상에 대한 예찬, 친화, 헌신, 깨달음, 연민 등등 바람직한 삶의 태도에 대한 지향, 소망, 염원(자연물 활용/ 이타적인 삶, 조화를 추구하는 삶, 포용하는 삶, 너그러운 삶, 고결한 삶, 열정적인 삶, 인간적인 유대가 넘치는 삶, 버릴 줄 아는 삶, 소박한 삶 등등 ) | |
부정적 대상, 또는 상황㊀, 긍정적 태도㊉ | 부정적 대상에 대한 비판(반어법) | ||
부정적 상황에 대한 극복의지, 초월, 달관(시상전환) |
4. 주제 내비게이션 해설
<주제 찾기라는 목적을 찾아가기 위한 내비게이션> ① 특정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유형을 통해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② 다섯 가지 주제의 유형을 통해 수많은 주제들을 유형화할 수 있다. ③ 시의 주제는 크게 정서와 태도이다. ④ 정서는 슬픔과 그리움뿐이다. ⑤ 태도는 긍정적 태도뿐이다. |
앞서 제시된 표의 맨 왼쪽을 보면 주제를 찾아 들어가는 유형 틀이 두 가지로 제시되어 있어요. 그 첫째는 인간 유형이고요, 둘째는 주제 유형이에요. 때로는 이 중 하나만, 때로는 이 둘 모두를 활용해 주제를 파악할 수 있어요. 먼저 그 첫째인 인간 유형에 대해 설명할게요. 일단 사람은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게 아녜요. 항상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마련이죠. 인간이 특정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상황에 반응하는 양상은 거의 비슷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오래 기르던 강아지가 하늘나라로 갔다면 슬픔을 느끼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이러한 이치에 따라 주제에 접근해 가는 방법이 바로 인간 유형 구분이에요.
(1) 인간의 유형을 통해 주제 파악하기
만약에 시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나왔다고 하자. 학생들 입장에서 ‘부모님’을 제재로 시를 써 보는 수행평가를 했다고 하면 그 주제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감사’, ‘사랑에 대한 깨달음’, ‘나를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 등일 것이다. 물론 ‘엄마 미워’하는 주제도 있을 수 있지만 높은 점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부모님에 대해 시를 쓰든 산문을 쓰든 이런 주제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인데 교과서에서 만나는 시들과는 달리 학생들이 쓴 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란 주제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학생들은 아직 부모님 곁을 떠나 살아본 경험이 없다. 반면 기성 시인들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신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을 제재로 한 시 중에서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만나게 되는 주제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힘든 삶을 사셨던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이 대부분이다. 요약해서 핵심을 말하자면 시의 주제는 ‘화자가 처한 상황’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시에서 ‘노동자’가 나타나면 그 시의 주제는 무엇이겠는가? ‘부조리한 노동 현실에 대한 비판’ 또는 ‘그러한 현실로 인한 노동자의 비애’ 말고는 그닥 나타날 수 있는 주제가 없다. 따라서 개인, 집단(노동자, 시인, 민중, 서민, 시인, 종교인), 민족, 현대인 등으로 인간의 유형을 구분하고 이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주제를 미리 익혀 놓는다면 부분적인 내용 이해에 앞서 빠르게 주제부터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렇게 시의 주제를 파악하고 나면 이후 시어들의 함축적 의미에 대한 이해와 주제에 걸맞은 표현들에 대한 이해가 보다 빨라지고 정밀해진다.
인간의 유형을 통해 주제를 찾는 원리는 특정 환경에 놓인 인간은 보편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인간 유형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주제를 미리 익혀 놓는다면 처음 읽게 되는 시라 할지라도 주제에 접근하기가 수월해진다. 이와 함께 주제 네비게이션에 있는 ‘주제 구분’까지 활용하면 보다 쉽게 시의 주제를 찾고 암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래에 이어지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잘 이해하고 암기까지 해 두면 좋다.
인간의 유형은 ‘개인, 집단, 민족, 보편적 인간, 현대인’으로 나뉜다. 집단은 다시 노동자, 농민, 서민, 민중, 시인, 종교인으로 나뉜다. 이러한 인간의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화자 분석이 요구된다. 화자 분석은 화자의 나이, 성별, 직업, 종교, 가족 관계, 시선 등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시의 내용 속에서 찾는 것이다. 또한 명료한 진술에서 명료한 사고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주제에 대한 진술은 ‘상황으로 인한 화자의 정서’, ‘대상에 대한 화자의 정서 및 태도’의 두 가지로 한정해서 하는 것이 좋다.
① 인간의 유형이 개인일 경우
..시의 화자가 지극히 개인적인 경우가 있다. 이때 나타날 수 있는 대상은 부모, 가족, 연인, 자아 등이 있을 수 있다. 먼저 ‘부모’가 시적 대상으로 나타날 경우 시의 주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또는 ‘힘든 삶을 사셨던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다. 물론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죄송함’ 등의 주제도 나타날 수 있지만 기성 시인들의 경우 부모님이 이미 돌아가신 경우가 많아서 앞서 언급한 주제 이외에 다른 것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시적 대상이 가족이나 연인일 경우 시의 주제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사별)로 인한 슬픔’ 등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층위가 개인일 때 빠질 수 없는 시적 대상이 바로 ‘자아’이다. 시는 결핍과 부족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화자는 시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적 대상이 ‘자아’라면 시의 주제는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 또는 ‘성찰과 극복 의지’ 등으로 나타난다.
② 인간의 유형이 집단일 경우
인간의 유형이 집단이라는 것은 시적 화자가 개인이라기보다는 집단의 대표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집단은 노동자, 농민, 서민, 민중, 시인, 종교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시적 화자 또는 대상이 ‘노동자 또는 농민’이라면 -어민이어도 상관 없다.- 시의 주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살 수 없는 ‘부조리한 현실로 인한 비애’ 또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난다. ‘비애’인지 ‘비판’인지는 화자의 어조를 살피면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시적 대상이 ‘서민’일 때, 시의 주제는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 이것 하나밖에 없다. 일상적인 의미와는 달리 시에서 ‘서민’이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말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연민과 사랑’ 말고는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
셋째, 시적 대상이 민중일 때, 시의 주제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또는 ‘민중의 고통과 연대를 통한 극복 의지’ 등으로 나타난다. ‘민중’은 현대시에서 흔히 이를 상징하는 자연물 또는 사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민중의 개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민중이란 백성의 무리라는 뜻이며 항상 긍정적인 개념으로만 사용된다. 민중은 처음에는 연대하지 못하고 억압적 현실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전태일과 같은 사람이 민중의 의식을 일깨우고 민중의 연대를 이끈다. 연대를 통해 힘을 갖게 된 민중은 참된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희생을 겪으면서도 억압적 현실과 맞서 싸운다. 이러한 민중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는다는 특성과 연대를 통해 큰 힘을 갖게 된다는 특성 때문에 흔히 이러한 속성을 갖는 사물, 자연물에 빗대어지곤 한다. 그러한 사물, 자연물에는 폭풍이 몰아쳐서 뿌리뽑히지 않고 밟아도 되살아나는 풀, 여럿이서 함께 끓는 누룩, 하나는 연약하지만 여럿이 모이면 단단해지는 벼, 작은 물줄기가 모여 이루는 큰 강,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이루는 숲, 여럿이 만들어 내는 산길 등이 있다.
넷째, 시적 화자가 ‘시인’일 경우, ‘가난 또는 창작으로 인한 삶의 고통과 극복 의지’,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소망’, ‘좋은 시를 쓰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 등이 주제로 나타날 수 있다.
다섯째, 시적 화자가 종교인일 경우, 시의 내용이 화자에 관한 것이냐, 절대자에 관한 것이냐에 따라 주제가 나뉜다. 먼저 전자일 때, 시의 주제는 ‘절대자에 대한 구도적 삶의 태도’가 된다. 이때 ‘구도적 삶’이란 말은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고독한 삶 속에서 항상 절대자를 그리워하는 수녀의 삶을 떠올리면 꼭 맞다. 교육과정에는 종교적으로 치우친 내용은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절대자에 대한 예찬’이라는 주제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후자일 때, 시의 주제는 ‘절대자의 섭리에 대한 깨달음’로 나타난다. ‘섭리’란 ‘절대자가 인간을 다스리는 이치‘라는 의미이다. 고통을 받는 사람이 신부님께 ’신은 왜 제게 연속적인 고난을 주시는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신부님은 ‘위대한 조각가가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정으로 쪼듯이 신께서는 당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연속된 고난을 주시는 겁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의 섭리’인 것이다. 또 다른 것으로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사람이 ‘신(神)만은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이끌어 주시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갖게 된 경험을 말하는 경우도 흔한데 이 또한 ‘신의 섭리’이다.
③ 인간의 유형이 민족일 때
인간의 유형이 민족의 대표로 나타나는 경우는 아무래도 작가의 활동 연대와 시적 경향성을 고려하여 살피는 것이 좋다. 작가의 활용 연대와 시적 경향성을 통해 시의 화자가 민족의 대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제 진술은 어렵지 않다. 주제 유형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진술해 주면 되기 때문이다.
주제 유형 | 주제 진술 |
1. ‘부정적 상황으로 인한 슬픔’ | 망국 또는 비극적 민족 현실로 인한 비애 |
2. ‘긍정적 대상에 대한 그리움’, | 평화롭던 민족공동체적 삶에 대한 그리움 |
3. ‘긍정적 대상에 대한 긍정적 태도’ | 민족의 밝은 미래에 대한 소망 |
4. ‘부정적 대상에 대한 비판’ | 자유가 업압된 현실에 대한 비판 |
5. ‘부정적 상황에 대한 극복의지’ | 국권상실, 전쟁,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고통과 극복 의지 |
위 표에서 3.‘긍정적 대상에 대한 긍정적 태도’에서 민족의 소망이 광복인지, 통일인지, 민족국가 수립인지,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된 세상인지 정확하게 모를 수 있으므로 이들을 싸잡아 ‘민족의 밝은 미래’라고 진술하면 된다. 4. ‘부정적 대상에 대한 비판’의 경우. ‘일제의 제국주의적 폭압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가 있을 법한데 일제 강점 때는 검열로 인해 이와 같은 주제를 가진 시를 만나기가 어렵다.
④ 인간의 유형이 보편적 인간일 때
시에 나타난 인간의 유형이 보편적 인간임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보편적 인간으로 특정할 수 있는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주제가 한정되어 나타나므로 이러한 점을 고려하며 시를 읽는다면 ‘보편적 인간’이라는 인간의 층위를 확인할 수 있다. 한정되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과 비애’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그 사실을 항상 인지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보통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비애로 연결된다. 이러한 인간 생명의 유한성은 꽃이 시들거나 낙엽이나 과실이 떨어지는 등의 자연 현상으로 나타나는 편임을 알아 두자. 또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은 흔히 ‘모든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둘째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슬픔’이다. 만약 시에서 고독이나 슬픔이 나타났는데 그러한 감정의 이유가 뚜렷이 나타나 있지 않다면 이 주제로 볼 수 있다. ‘근원적인’이라는 말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정도의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셋째는 ‘이상에 대한 지향과 좌절로 인한 비애’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란 것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또는 인간의 한계로 인해 도달할 수 없는 것이기에 ‘비애’라는 감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바다를 지향하는 나비’, ‘깃대에 묶여 바다를 향해 펄럭이는 깃발’의 모습 등 자연물이나 사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⑤ 인간의 유형이 현대인일 때
현대인과 현대문명에 대한 내용은 모더니즘 시에서 흔히 나타난다. 또한 모더니즘 시에서는 인간이 아닌 특정 대상, 예를 들면 가로수, 금붕어, 비둘기 등의 자연물을 활용하여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다. 작가의 경향성을 통해 모더니즘 시임을 알아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모더니즘 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주제를 미리 알아 둔다면 ‘현대인’이라는 인간의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시적 화자나 대상이 ‘현대인’임을 파악했다면 먼저 그 현대인에게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만약 현대인에게 잘못이 있다면 시의 주제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 된다. 현대인의 모습 중 비판해야 할 것들을 수식어를 통해 미리 생각해 보자면 ‘이기적인, 속물적인, 소시민적인, 순수함을 잃은, 무기력한, 진정성 없는 사랑을 추구하는, 자유를 잃은’ 등이 될 것이다. 이러한 수식어 중에서 ‘소시민적’이라는 말은 의미가 약간 모호할 수 있다. 소설에서 ‘소시민’은 ‘보통의 서민들’이라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이들은 서로를 시기, 질투하며 다투면서 살아가지만 그 이유는 그들이 악해서라기보다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에서 ‘소시민’은 ‘비판 정신을 잃고 개인적인 무사안일만을 추구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는 의미로 항상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만약 현대인에게 잘못이 없다면 ‘현대인의 비애’ 또는 ‘삭막한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제를 갖게 된다.
(2) 주제 유형을 통한 접근
자, 여러분! 이제 주제에 접근하는 두 번째인 ‘주제 유형’에 대해 알아봅시다. 일단 시의 주제는 크게 정서와 태도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정서란 사실, 여과된 감정의 상태이기 때문에 감정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만 일단 감정이라고 이해해도 좋습니다. 태도란 제스춰를 말하기보다는 어떠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해 두면 됩니다. 본격적인 학습에 앞서 과연 인간의 감정은 몇 가지나 될지 말해 볼까요?
음, 잘 모르겠어요? 그럼 도움을 드릴 테니 한 사람씩 말해 봅시다.
학생들(슬픔, 그리움, 비애, 분노, 사랑, 기쁨…….)
잘 말해 주었어요. 사실 인간의 감정은 셀 수 없이 많죠.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보니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이라 말할지라도 사람들마다 그 디테일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감정들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어찌 보면 그런 이유 때문에 시라는 문학의 갈래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에 나타난 그 다양한 감정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할 거예요. 아무리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 시인과 ‘나’는 결국 다른 존재이니까요. 그런데 이처럼 다르기만 해서는 어떻게 시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겠어요? 그 이해의 시작은 인간이 갖는 감정의 보편성에서 비롯됩니다. 유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다시 말해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증오, 욕망 등으로 나누어 놓고 있는데요, 이렇게 보아도 7개이며 여러분들이 말한 그리움, 그리고 더 추가해서 두려움, 놀람, 근심 등을 포함해도 12개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게다가 이들 중에서 여러분들이 만나게 되는 시에서는 볼 수 없는 주제들도 있어요. 먼저 기쁨, 즐거움 등은 시에서 잘 나타나지 않아요. 일단 시라는 것이 결핍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개인적인 기쁨, 즐거움은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노여움, 증오, 근심도 이와 비슷해요. 개인적인 노여움과 증오, 근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요. ‘기쁨, 즐거움, 노여움, 증오, 근심’ 이런 감정은 자식을 낳은 부모의 기쁨, 광복의 기쁨, 민족의 분노 등 민족이나 집단과 관련될 때이거나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의미 있는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제가 많지는 않을뿐더러 다른 언어 표현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빼겠습니다. 또한 사랑과 욕망은 긍정적인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바꾸어 말할 수 있어서 이 또한 빼겠습니다. 이렇게 빼고 보면 아까 살펴보았던 감정 중에서 남는 것은 슬픔과 그리움뿐입니다.
다음으로 시의 주제 중 다른 부분인 태도에 대해 알아보자.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지향, 소망, 염원, 예찬, 극복, 비판 등의 긍정적인 태도와 좌절, 절망, 체념, 비관, 염세 등의 부정적인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태도는 청소년들이 배워가야 할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긍정적인 삶의 태도들만 남는다. 이 남은 것들을 학습에 용이하게 구분지어 본다면
1.<긍정적인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2.<부정적인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3.<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이와 같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긍정적인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가장 많은 주제를 포함할 수 있는 것으로, 주로 자연물의 속성에서 바람직한 인간의 삶을 유추적으로 끌어내어 ‘바람직한 삶에 대한 지향’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긍정적 대상에 대한 연민, 예찬, 염원, 깨달음도 이 유형에 속한다. 둘째, ‘부정적 대상에 대한 긍정적 태도’란 비판 또는 성찰의 내용이 포함된다. 비판해야 할 부정적 대상에는 전쟁, 분단 현실, 독재, 비인간화 등이 있고 이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드러내기 위해 반어법이 많이 활용된다. 셋째, ‘부정적 상황에 대한 긍정적 태도’란 부정적 상황 속에서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극복 의지를 나타내는 유형의 시를 말한다. 이 유형에 속한 시들은 시상의 전환이 반드시 나타난다. 그리고 부정적 현실을 극복해 내는 방법으로는 자기 위로, 운명 순응, 대결 의지, 밝은 미래에 대한 지향, 역설적 인식 등이 나타난다. 물론 부정적 상황에 대해 인간은 부정적인 태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좌절, 절망, 비관, 염세, 현실 안주, 시류 영합 등의 태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들은 청소년이 배워야 할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교과서를 통해 학습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 수능 시험에서도 출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선택지에 좌절, 절망, 비관 등의 단어들이 나왔을 때는 일단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옳지 않은 내용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 두자.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라 주제의 유형을 나누어 보면
1. ‘부정적 상황으로 인한 슬픔’
2. ‘긍정적 대상에 대한 그리움’,
3. ‘긍정적 대상에 대한 긍정적 태도’
4. ‘부정적 대상에 대한 비판’
5. ‘부정적 상황에 대한 극복의지’
이와 같이 모두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2번은 정서 중심의 시이고 3,4,5는 태도 중심의 시이다. 이러한 주제 유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상황과 대상이다. 상황은 부정적인 경우만 존재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간의 반응은 슬픔 또는 극복 의지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경우 부정적 상황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주제 또한 강조된다. 대상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으며, 긍정적 대상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그리움 또는 긍정적 태도(지향, 염원, 긍정, 예찬, 연민, 깨달음)이다. 부정적 대상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비판 또는 극복 의지이다.
명료한 언어 진술은 명료한 사고를 이끈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에 맞추어 주제를 진술하는 노력을 하면 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섯 가지 주제 유형과 함께 인간 유형까지 고려해서 시를 읽는다면 거의 대부분의 시들을 이러한 유형의 틀에 넣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구체적인 사례는 파트를 달리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한다.
5. 시를 읽지 말고 화자를 읽어라
<화자 분석과 주제 내비게이션> ① 현대시 감상의 시작은 화자 읽기에 있다. ② 화자 분석은 ‘시의 상황’과 ‘시적 대상’을 찾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③ ‘인간 유형’ 또는 ‘상황’과 ‘대상’을 찾았다면 그것을 주제내비게이션과 연결하여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
주제 유형화에 대한 학습이 끝났다면 다음으로 연습해야 할 내용은 화자 분석이다. 시의 모든 정보는 화자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화자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시의 주제를 찾아가는 가장 첫 단계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현대시 학습서들을 살펴보면 시 감상법에 대한 해설이 친절하지 않다. 예를 들어 ‘화자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며 읽는다. 화자의 심리와 태도가 나타난 핵심어를 찾는다. 시상의 흐름에 따라 읽는다.’ 등이 그것인데, 사실 학생들에게 이러한 감상법을 가르치고 시를 읽게 한 다음 ‘화자가 처한 상황은 어떠하지?’ ‘화자의 정서는? 태도는?’ 하고 질문을 해 봤자 능숙하게 답을 말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 이러한 질문들에 앞서 화자에 대한 분석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 읽기의 목적이 국어학습에 있다면 일단 연필을 들어라. 그리고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화자를 읽어라. 화자를 읽는다는 것은 화자의 나이, 성별, 직업, 종교, 가족 관계, 시선 등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시의 내용 속에서 찾는 것이다. 연습할 때는 자신이 찾은 화자 정보에 번호를 매겨 가며 써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6. 분석된 화자와 주제 내비게이션 연결하기
화자 분석은 주제 내비게이션과의 연결을 위함이다. 화자 분석 후 주제 유형을 선택하고 인간 유형까지 찾아낼 수 있다면 시의 주제는 명확하게 나올 수 있다. 먼저 ‘주제 유형’을 찾을 때 가장 주목해야 할 요소는 ‘상황’과 ‘대상’이다. 부정적 상황이 제시되어 있다면 슬퍼이나 극복 의지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고 부정적 대상이 나타났다면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 대상이 나타났다면 그리워하거나 지향할 것이다. 만약 단번에 ‘주제 유형’을 선택하기가 어렵다면 다음의 순서로 소거법을 활용하면 좋다. ‘이 시는 슬퍼하는 내용인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내용인가? 무언가를 비판하는 내용인가? 부정적 상황을 극복하는 내용인가?’ 이런 질문 중에 맞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면 되고, 이 질문들이 모두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마지막 남은 주제 유형인 ‘긍정적 대상에 대한 긍정적 태도’라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주제 유형 선택’과 함께 노동자, 민중, 민족 등의 ‘인간 유형’까지 찾아낼 수 있다면 주제는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최근 수능에서 출제된 작품들을 통해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자.
7. 현대시 주제 파악하기의 구체적인 예시
<2022학년도 수능 - 이육사, 초가>
구겨진 하늘은 묵은 얘기책을 편 듯 돌담 울이 고성같이 둘러싼 산기슭 박쥐 나래 밑에 황혼이 묻혀 오면 초가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을 그린 묵화 한 폭 좀이 쳐. 띄엄 띄엄 보이는 그림 조각은 앞밭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 간 가시내는 가시내와 종달새 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래짠 두 뺨 위에 모매꽃이 피었고. 그넷줄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더니 앞내강에 씨레나무 밀려 나리면 젊은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 벌러 항구로 흘러간 몇 달에 서릿발 잎 져도 못 오면 바람이 분다. 피로 가꾼 이삭이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 놈이 북극을 꿈꾸는데 늙은이는 늙은이와 싸우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에 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의 밀고자인 강물조차 얼붙는다. | <화자 분석> ① 고향을 떠난 성인 남자 ② 황혼 무렵 산기슭에서 초가 마을을 바라보고 있음 ③ 고향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고 있음 ④ 고향에 대한 좋은 추억을 떠올리고 있음 ⑤ 부정적인 상황으로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음 |
<주제 유형과 연결> 제목인 ‘초가’는 ‘고향’을 의미한다. 화자는 타지에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고 있는 듯하다. 그 고향의 모습이 긍정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났다면 그리움이란 주제를 갖겠지만 부정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고향의 부정적인 상황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상황이 나타났으되 극복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으므로 주제의 유형은 ‘부정적 상황으로 인한 슬픔’이다. 저항시인인 작가를 고려한다면 인간의 층위는 ‘민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므로 좀 더 주제를 구체화한다면 ‘일제강점의 비극적 민족 현실로 인한 비애’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2022학년도 수능 – 김관식, 거산호2>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壽)하는 데다가 보옥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그 품 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아아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네 품이 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같은 산 정기를 그리며 산다. | <화자 분석> ① 성인 남자 ② 산을 좋아함 ③ 산 근처에서 삶 ④ 산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말함 ⑤ 자신의 삶과 죽음까지 산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함 ⑥ 삶의 모습을 닮고자 함 |
<주제 유형과 연결> 제목인 ‘거산호’는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너그러움, 겸허함 등 화자는 산에서 바람직한 인간의 덕성을 보아낸다. 그리고 산처럼 살다가 산의 품에 안겨 삶을 마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긍정적인 대상인 산이다. 따라서 주제 유형은 ‘긍정적 대상에 대한 긍정적 태도’이며 이를 좀 더 구체화하면 ‘산처럼 너그럽고 겸허한 삶에 대한 지향’ 정도가 될 것이다. |
<2021학년도 수능 – 이용악, 그리움>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화자 분석> ① 고향을 떠나 온 성인 남성 ②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북쪽 고향을 떠올림 ③ 고향으로 이어진 철길을 떠올림 ④ 고향에 남은 사랑하는 이를 떠올림 ⑤ 그 고향에도 함박눈이 내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함. ⑥ 그리움 때문에 잠을 깨고 잠 못들어 함 ⑦ 잉크병이 있는 걸로 볼 때 글 쓰는 사람일 수 있음 |
<주제 유형과 연결> 제목에서 이미 주제는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화자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함박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 고향과 고향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잠 못들어 하며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긍정적 대상’인 ‘고향’이다. 복된 눈이 내리기를 바라는 고향,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그 고향을 화자는 사무치는 심정으로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주제 유형은 ‘긍정적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며 좀 더 구체화하면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2020학년도 수능 – 김기택, 새>
새는 새장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매번 머리를 부딪치고 날개를 상하고 나야 보이는, 창살 사이의 간격보다 큰, 뭄뚱어리. 하늘과 산이 보이고 울음 실은 공기가 자유로이 드나드는 그러나 살랑거리며 날개를 굳게 다리에 매달아 놓는, 그 적당한 간격은 슬프다. 그 창살의 간격보다 넓은 몸은 슬프다. 넓게, 힘차게 뻗을 날개가 있고 날개를 힘껏 떠받쳐 줄 공기가 있지만 새는 다만 네 발 달리 짐승처럼 걷는다. 부지런히 걸어 다리가 굵어지고 튼튼해져서 닭처럼 날개가 귀찮아질 때까지 걷는다. 새장 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날지 않고 닭처럼 모이를 향해 달려갈 수 있을 때까지 걷는다. 걸으면서, 가끔, 창살 사이를 채우고 있는 바람을 부리로 쪼아 본다, 아직도 벽이 아니고 공기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유리보다도 더 환하고 선명하게 전망이 보이고 울음 소리 숨내음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고안된 공기, 그 최첨단 신소재의 부드러운 질감을 음미하려는 듯. | <화자 분석> ① 대상인 새를 관찰하고 있다. <대상 분석> ① 새장에 갇혀 있다. ②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한다. ③ 새장 문이 열려 있어도 본성을 잃고 날지 않는다. |
<주제 유형과 연결> 이 시의 화자는 새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화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진술이 중심이 되므로 이 시는 화자 분석에서 대상 분석으로 바뀌어야 한다. 시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이 시의 대상인 ‘새’는 우리가 보는 실재의 ‘새’라기보다는 인간의 유형 중 ‘현대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을 상징하는 새는 날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지 못한다. 대상인 ‘현대인’의 부정적인 면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주제 유형은 ‘부정적 대상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적 속성을 좀 더 구체화하여 진술하자면 ‘자유의지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
8. 주제 학습을 위한 교재 ‘무리하게 진행하는 현대시 119’
이론만 안다고 해서 시의 주제를 단박에 알기란 어렵다.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리하게 진행하는 현대시 119’라는 교재는 주제 파악을 위한 연습 교재이다. 총 119편의 시를 인간의 유형에 따라 무리지어 놓았다. 각각의 인간 유형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위주로 수업을 하되 절반 정도의 작품들은 학생들의 과제 연습용으로 활용한다. 인간 유형에 대한 학습이 끝나면 이를 다시 주제 유형으로 바꾸어 진술하는 학습을 하는 게 좋다. 이 정도의 작품만 학습이 된다면 어떤 낯선 시가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주제를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대단한 글 잘 읽었습니다. 한편의 논문을 읽은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긴 글이 환영 받지 못하는 시대인 것 같아 씁쓸한 요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