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 때문에 한참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중고등부 지도교사로 또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도 강의도 해 보고 청년부 담당 등 수 많은 청소년 지도 경험이 있었지만, 정작 내 아이의 사춘기를 같이 보내기에는 쉽지 않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가 절단되고 딸아이의 분위기만 살피던 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다시 그 시절은 가고 싶지 않다. 그럴 때 책을 읽고 주변의 말씀을 들어보면, 대학에서 아빠학 엄마학을 전공하고 졸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해서도 남편 되기 아빠 되기 등의 과목을 못 배우고 어느 날 아이의 아빠와 엄마가 되고 생애의 패턴이 변화되고 부부의 생활양식이 변화되는 것과 같이 또 아빠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느 대학교에서 이런 과목을 개설하고 학생을 모집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만 필요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보던 때가 있었다.
“아빠 되기, 엄마 되기”와 비슷하게 생애 주기에 따라서 우리가 또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최근 교회 내에서 보면 원로 목사와 원로 사모 그리고 원로 장로로의 변신이다. 마음은 아직 현역 같은데 교리와 장정에 의해서 후임자를 위해 은퇴하고 자리에서 물러나 있는 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은퇴 목사님은 그가 담임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만나보았다. 뒤에서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원로 장로님과 원로 목사님 때문에 교회가 분열된다는 의견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왜, 원로 목사 되기 원로 장로 되기만 있는가? 새로운 임지의 담임목사 되기도 논해야 하지 않을까?
원로의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국가의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는 원로에게 묻는 시간을 만들어서 대외적으로 홍보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말씀에 귀 기울여 경청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자신들의 홍보적 방법이지만 여기에는 큰 깨달음이 있다. 원로는 현재 담임목사에게 후배 장로들에게 하나의 팁을 줄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영성과 지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원로는 분열을 조장하는 원인 제공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화합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랬을 때 확실한 존재감을 교회 내에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 편을 만들고 교회에서의 파벌 내지는 세력을 형성하다보면 새로운 담임목사, 후배 장로들에 의해서 견제의 대상이 되고 고민거리가 되기 때문에 이런 원로가 된다는 것은 평생을 바쳐서 기도와 눈물로 이룬 교회를 위해서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된다.
작은 상가의 임대교회에 담임자로 부임해서 원로 목사님 가정과 함께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아들 나이의 젊은 담임자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시고, 교회의 이름을 변경하고, 교회를 확장하고 교회 의자와 가구를 바꾸고 등등 많은 것을 할 때에도 한 번도 반대 의사를 비취신 적이 없다. 그래서 원로목사로 좋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의견을 청취하고 대화를 나누고 원로목사님의 의견을 항상 존중해 드린다. 그렇기 때문에 담임자가 힘들어 할 때는 원로 목사님께서 옆에서 부추겨 주시고, 성도들에게 우리 목사님에게 이렇게 해 드려야 한다고 하면서 격려 해 주신다. 또한 사모님도 마찬가지로 애써 주신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젊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 연세 있는 분들과 대화를 하시면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우리교회는 원로 목사님의 건강을 항상 염려한다. 목사님이 계속 나오시길 원하기 때문이고, 모든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담임자로서 행동해서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원로 목사님을 존중하고 아버지처럼 따르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 영적 리더십이 분산되지 않는다. 예배를 마치면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감사하다고 인사하시는 우리 원로 목사님의 진정한 표현을 성도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로 되기” 어렵다. 그러나 지혜를 발휘하여 후임자와 원로가 목회자와 원로 장로가 ‘win-win(윈윈))’하여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다면 그 교회는 행복한 교회요,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