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보에 언급된 이산표석에 대한 유감
부산시보의 이름이 ‘부산이라 좋다’로 바뀌었다. 지난 8월 1일에 제8호가 발간되었는데 여름 특집으로 ‘부산의 계곡’이 소개되어 시선을 끌었다. 게다가 이번 호에는 장산계곡이 소개되어 유심히 살펴보던 중 ‘이산표석’을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본문에는 이산표석 사진과 함께 ‘일제가 조선의 토지를 수탈하면서 왕실 소유 장산마저 빼앗았다. 부당과 비정상에 맞선 자의식의 딴딴한 빗돌이 이산표석이다. 장산 곳곳에 있다’라고 소개되어 었다.
과연 그럴까? 그동안 본지는 10회에 걸친 연재와 수차례의 기사를 통해 이산표석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장산이 조선 왕실의 소유인지를 놓고 많은 연구를 진행했고, 심지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산표석을 세웠는지를 밝히고자 노력했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산표석은 조선 왕실에서 세운 것이 아니며 일제에 맞서 재판을 통해 되찾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같은 사실은 장산 인근이 국유지에서 1924년 창덕궁으로, 다시 1927년엔 이왕직 장관으로 소유가 넘어간 토지대장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창덕궁이 마치 장산 인근을 조선 왕실에서 되찾은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당시 창덕궁이란 명칭은 그저 일제가 조선 왕실을 지칭하던 말에 지나지 않았다.
또 창덕궁을 비롯한 왕실의 모든 재산은 일제가 임명한 이왕직 장관이 관리·감독했다. 그래서 이는 재판을 통해 일제로부터 되찾은 게 아니라 일제의 토지 이전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산’이란 명칭이 ‘이왕조의 준말’이라 여겨 ‘이왕조의 산’이라 여긴 선배 학자들의 오류에서 혼선이 왔다. 본지는 이미 이산표석이 장산 일원에 설치된 시기가 1908년 경이며, 이산이란 글씨체는 이토 히로부미의 것이고, 이산을 새긴 표석은 경주 남산신성의 중창지 장대석이라는 사실까지 연구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라 이산표석의 주체는 조선 왕실이 아니라 박영효와 김홍조의 한성목재신탄주식회사란 사실도 본지에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산표석을 일제 찬탈에 대응한 표석으로 보는 인식은, 대천공원 이산표석 안내판의 부정확한 설명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추측된다. 이산표석 안내판에는 이 같은 잘못된 지식의 전달 외에 이산표석을 일제강점기에 대한제국이 만들었다는 기상천외한 표기까지 해두고 있다.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제가 시작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대한제국이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표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엉터리 안내판이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잘못된 안내판 하나하나가 역사를 뒤틀고 있다.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