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타워크레인
리홍사
드디어 여자가 벗을 시간이다.
707호 여자는 이 시간쯤이면 옷을 벗는다.
한 번도 내 예상이 빗나간 적이 없다. 인부들이 적재물을 결속하는 짬을 이용해 707호를 향해 쌍안경으로 관음의 투망을 던진다. 오늘도 예상적중.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백만 불짜리 생비디오가 드디어 시작되는군!
여자는 지금 막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히고 있다. 그 다음은 뻔하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연 다음에 거실에 있는 거울을 보며 우아하게 옷을 벗는다. 홈드레스를 벗어서 소파에 걸쳐놓고 팬티를 벗어서 손에다 세 번 감아 머리띠를 만든 다음 긴 머리채를 감아 묶는다.
팬티를 머리 묶는 끈으로 쓸 수가 있다니? 처음으로 그것을 본 날, 팬티의 다용도 사용법에 대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머리를 묶은 다음, 레이스가 달린 브레지어 어깨끈을 벗어서 호크를 앞으로 돌린 다음 브레지어를 떼어낸다. 벗는 순서치고는 참 고약한 버릇이다. 그리고는 거울에 비친 제 몸매를 이윽히 들여다보다가 오디오를 켜고는 그 리듬에 맞추어 서서히 댄싱 동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도 팬티로 머리를 묶는 광경을 보면서 내 기분은 한껏 고조된다.
여자는 젊다. 마흔 고개가 가까워지면서 어떤 상대를 두고, 젊다. 혹은 늙었다고 이분할 적에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젊은 축에 속한다.
나체로 거실에서 홀로 춤을 추는 젊은 여자, 그녀의 숱이 적은 음모도, 왼쪽 허벅지 안쪽에 있는 손톱만한 자주색 점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훤히 볼 수가 있다.
60배줌 오츠카 쌍안경은 그런 것까지도 섬세하게 잡아준다. 저 정도 거리에서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줌을 조절하여 숱이 적은 그녀의 음모 수까지 셀 수가 있을 정도로 괜찮은 성능을 지닌 쌍안경이다. 그녀가 스텝을 밟고 있는 음악까지 들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련만 멀리서 훔쳐보는 마당에 그런 것까지 욕심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 그녀의 율동은 댄싱연습이자 아침 운동이다. 나체로 추는 춤은 남편이 출근하고 딸로 보이는 예닐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유치원 가방을 메고 나가면 시작되는 그녀의 일상이고 그 광경을 훔쳐보는 건 나의 일상이다.
오늘도 팬티로 머리를 묶은 그녀의 아침운동을 훔쳐보느라 넋이 나가 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사각지역이지만 아마도 707호 거실 동쪽 벽면에는 대형 거울이 붙은 모양이다. 그녀는 항상 거울이 있는 벽면을 보면서 춤을 춘다. 팔 동작 하나, 스텝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다. 하나, 둘, 셋, 찍고 턴! 좌로 하나 둘, 우로 하나, 여자의 입술이 달싹이는 걸로 미루어 그렇게 스텝을 세면서 몸을 놀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하곤 한다. 거실 정면에 장방형 수족관이 있어 그 유리의 반사로 인해 잘 다듬어진 둔부를 보는데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훔쳐보는 즐거움은 그야말로 극치를 넘어 만땅을 외친다. 적어도 무료하기 짝이 없는 이 타워크레인 안에서 만큼은,
내가 앉은 타워크레인에서 북쪽으로 천 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가 두 곳이나 있다. 작년에 지어진 아파트다. 그 아파트 우측으로 초등학교가 있고 일차로 택지가 개발 된 곳에는 이미 상가와 원룸촌이 들어서 소비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황실아파트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도로와 미처 마치지 못한 택지정리가 막바지 공사에 한창이다. 거대한 신도시 하나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707호 여자는 아파트 단지 맨 앞 동인 101동이라 보는 사람이 없을 줄로 착각하고 있겠지만 무슨 말씀. 먼눈이 무섭다고, 그 황실아파트 약 백오십 미터 전방, 무역센터 신축현장에 서 있는 타워크레인 안에서 누가 쌍안경을 쥐고 있을 줄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나는 아침마다 707호뿐만 아니라 남향으로 앉은 황실아파트 101동의 전체의 ‘가내 두루 평안하심’의 안부를 묻고 있다. 어느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특이 사항으로 일어나는 일들은 대충 파악하고 있다. 어느 집이 맞벌이 집인지, 어느 집이 베란다 확장공사를 하지 않았는지. 어느 집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다른 남자가 그 집으로 출근하는지 훤히 꿰뚫어보고 있다. 다른 집들은 대체로 ‘가내 두루 평안, 하지만 809호는 아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정확히 한 시간 쯤 있다가 다른 남자가 그 집으로 출근하는 809호. 내 궁금증을 수반한 호기심이 잔뜩 발기하지만 일단 남자가 들어오면 베란다로 통하는 커튼을 치기 때문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가 없다. 한 시간쯤 지나면 커튼이 열리기는 하지만 그땐 이미 남자가 809호에서 사라진 뒤다. 여자가 다시 커튼을 열고 베란다로 나오는 시간이면 남자는 흰색 승용차를 몰고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내 풍성한 볼거리는 오로지 707뿐이다.
여자의 춤은 어딘가 모르게 외로움이 묻어 있다. 혼자 추는 춤은, 홀로 우는 울음보다 처량하고 외로워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을 여자의 춤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녀의 춤이 외롭다는 건 자이브를 출 때 여자의 팔이 감싸 안은 상대는 남자가 아니라 허공이다. 빈 공간을 감싸 안고 돌아서고 다시 도는 스텝을 밟는 것이다. 나는 가끔 그녀가 감싸고 있는 허공, 그 안에 내가 들어서서 함께 스텝을 밟는 상상을 하곤 한다.
여자가 추는 춤은 스텝으로 미루어 대개가 자이브나 사교댄스를 연습인데 가끔은 막춤을 추는 날도 있다. 물론 디스코와 지루박을 출 때도 있고 그 춤을 조금씩 섞어서 퓨젼으로 추는 날도 있다. 춤이 바뀔 때면 그녀는 상체를 구부려 오디오 음악을 바꾼다. 오디오 버튼을 누르기 위해 몸을 구부릴 적에 보이는 젖가슴, 나이치고는 꽤 풍만하고 탄력이 있어 보인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그 순간을 포착하면 숨이 턱 막힌다.
여자는 키가 크고 늘씬하다. 어디를 보아도 흠 잡을 만한 군살이 없는 몸매다. 춤으로 다듬어진 S라인데 그녀의 춤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그녀의 춤으로 인하여 무전으로 날아오는 작업지시를 흘려 넘길 때가 더러 있다, 그 정도로 환상적인 나체 춤이다.
-2호기! 2호기 타워! 적재 완료! 상승~ 상승~
오늘도 여자의 춤에 넋을 놓고 있다가 까딱, 작업지시를 흘려들을 뻔했다. 나는 화들짝 쌍안경을 거두고 정신을 수습해 상승 레버를 당긴다. 와이어로프가 감기면서 결속선이 팽팽해지기 시작한다. 골조에 가려진 사각지역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올라오는 적재물이 철근인 모양이다. 붐이 휘청거리는 걸로 보아 3톤은 족히 넘을 중량물이다. 이 철근 더미는 무전으로 날아오는 지시에 따라 철근작업자들이 있는 이층 옥상으로 옮겨주어야 한다. 길이 사십 미터가 넘는 타워크레인 붐 끝에는 까치가 집을 짓고 있다. 며칠 전부터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삼각형으로 생긴 붐 끝에 집을 짓고 있는데 지금도 마른가지 하나를 물어와 붐 끝에 앉아 있다. 붐이 휘청거려도 녀석은 날아가지 않고 집 짓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집을 짓기 시작한 까치는 붐이 스윙을 해도 날아가지 않는다. 까치집은 결국 이동식 주택이 되는 셈이다. 저 녀석이 집짓기를 마치고 알을 낳고 새끼를 칠 때까지 내 무료함을 달래줄 것이다. 까치가 길조라고 했는데 오늘도 아침부터 까치와 공동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니 이 현장에서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의문을 품다가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하긴, 한 현장에서 저렇게 독특하게 노는 여자를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지.
상승레버를 당기면서 적재물이 시야에 보이도록 와이어로프와 붐의 흔들림을 주시하면서도 내 생각은 여자의 춤에 머물고 있다. 지금쯤 신나게 막춤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타워크레인을 설치한 지가 사 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그 동안 지하층과 이층 높이까지 골조공사를 마쳤으니 타워크레인에 앉은 내 눈 높이는 황실아파트 칠 층과 팔 층을 더듬기에 딱이다.
어떤 직업이고 무슨 일을 하든, 단순반복 작업이라면 작업과는 상관없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나 시스템이 있을 것이다. 일테면, 택시기사에게 라디오가 필요할 것이고 사무직에게는 컴퓨터에 깔린 오락프로그램이 필요하듯이 60배 줌 오츠카 쌍안경은 내 조종석에서 필요목록 일위이고 그 다음이 라디오다. 종일토록 라디오 이어폰이 내 귀에 꽂혀 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라디오 프로그램을 줄줄 외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굳이 필요목록을 덧붙이자면 오줌통과 물통이다. 타워크레인 조종석에 오르면 점심시간까지 내려갈 시간도 없을뿐더러 내려가기 귀찮아서 아예 아침에 플라스틱 빈 오줌통과 물이 가득한 페트병을 메고 올라온다. 저녁에 작업을 마치고 내려갈 적에는 반대다. 반쯤 찬 오줌통과 빈 물통이 담긴 배낭을 메고 내려간다. 오줌통이 없다고 가정하자, 삼십 미터 공중에서 유리창을 열어놓고 오줌을 갈긴다면 밑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이슬비인줄 알고 한두 번은 속겠지만 나중에 들통이 나면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겠지.
이 쌍안경과 라디오가 없다면 고공의 좁은 유리 상자에 갇힌 나는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노래를 부르곤 하지만 조정석에 앉으면 딱히 눈길을 줄 곳이 없다. 삼십 미터 아래에서 무전으로 날아오는 작업지시에 따라 레버를 당겨주고 밀어주고 스윙버튼을 눌러주는 일 이외에는,
아무리 무료하더라도 무전기로 잡담이나 농담은 금물이다. 그것은 같은 채널을 맞추어 놓은 타워 1호기 작업지시에 악영향을 줄뿐 아니라, 지나가는 공사감독이 듣는 날에는 그 다음날 안전교육에서 지적사항이 된다. 지적사항이 겁나는 게 아니라 안전에 위배되어 무전기로 전하는 말은 작업에 관한 사항이 아니면 무조건 아껴야 한다.
타워크레인 붐 아래 작업장에서 상승 지시가 떨어지면 나는 그것을 상승시키겠다는 대답을 하고 상승레버를 당긴다. 적재되어 올라오는 건축자재가 균형이 맞지 않아 어느 쪽으로 쏠리든가 아니면 와이어로프가 꼬인 방향으로 풀리면서 적재물이 돌기 때문에 결속한 인부가 작업 반경을 빠져나갈 시간이 필요하다. 적재물이 사각지역을 벗어나 내 눈에 보일 때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지금 짓고 있는 건물은 남향으로 앉는 L자 건물인데 내가 앉은 타워 2호기는 두 시 방향에서 1호기 타워 붐과 충돌할 수 있는 작업 공유공간이고 열 시 방향 아래에는 15만 4천 볼트의 고압선이 작업 반경 안에 들어와 있다. 1호기와 충돌하거나 고압선을 건드리는 날에는 상상할 수 없는 대형사고로 연결된다. 일단 적재되어 올라오는 적재물이 시야에 잡힐 때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긴장하는 것도 좋지만,
쌍안경을 거두는데 조금 미련이 남는다. 그녀의 춤이 막춤으로 바뀔 찰나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추는 춤 가운데 막춤이 볼거리로는 가장 풍성하다. 스스로 도취되어 황홀경에 빠진 듯이 격렬하게 흔들어대는 몸을 보면, 보고 있는 나마저도 엉덩이가 들썩거리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 순간에 작업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제기랄.
나는 중량물이 올라올 붐의 25미터 지점에서 감기는 와이어로프를 주시하며 천천히 레버를 당겨 철근더미를 들어올렸다. 중량물을 견인하여 상승할 때는 앞 유리 옆의 손잡이에 발을 고아야 한다. 타워크레인 운전석이 앞으로 살짝 기울어지며 휘청거리기 때문이다. 적재물이 조종석에서 멀수록, 그러니까 붐 끝에 중량 한도에 가까운 무게가 적재되어 올라올 때면 그 정도는 심하다. 바람과 중량물의 영향으로 타워크레인 운전석은 항상 휘청거린다. 그 휘청거리는 것에 숙달이 되지 않은 초보나 안전점검반이 조종석에 멋모르고 올라왔다가 오줌을 찔끔거리고 중간다리까지 후들거리며 내려가기 십상이다. 로프가 팽팽히 당겨지고 중량물이 땅에서 들릴 때는 몸이 앞으로 기울어질 정도로 조종석과 붐이 휘청, 숙여지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그냥 타워크레인 하나가 제자리에서 조용히 돌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 이 휘청거림이 없으면 크레인은 붐은 어느 순간에 전조나 예고도 없이 부러져 추락할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렇다. 유연하지 않으면 부러지는 법이다. 타워크레인의 재질을 강철로 만들지 않고 복원력이 있는 앵글과 쇠파이프로 제작한 것도 전조 없이 돌발적으로 부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부러지기 전에 휘어짐으로 예고를 감지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타워크레인뿐만 아니라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비약적인 비유가 되겠지만 내 성질은 강철로 만들어졌다. 부모님 성격을 몰라서 닮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타고난 천성인 것 같다. 딱 부러지는 성격의 소유자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부러지지 않고 몇 번의 휘청거림이 있었다. 그 휘청거림이 없었다면 보기 좋게 댕강 부러져 사라졌을 것이다.
고백컨대, 나는 몇 군데 고아원을 전전했다. 부러지기 싫어서, 아니 부러지지 않기 위해 시설에서 도망치곤 했다. 돌이키면 무릎시린 나날들이라 기억하기조차 싫지만 구태여 기억하자면 보육원 세 군데를 전전한 것과 내 이름이 주철진이라는 것 밖에 확실한 게 없다. 주민등록상 나이는 서른아홉으로 되어 있지만 마흔일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고아원으로 붙들려 들어가면서 일곱 살이었지만 나이가 많으면 덩지가 큰 놈들에게 얻어터질까봐서 여섯 살이라고 내가 낮추어 말한 것 같다. 그것마저도 너무 어릴 적 기억이라 확실치 않다.
첫 번째 보육시설을 도망치면서 누나인지 동생인지 모르지만 하나 있던 혈육과 헤어졌다. 몇 살에 어떤 연유로 고아원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나와 이란성 쌍둥이 여자애가 있었던 건 분명하다. 나보다 어쩌면 나보다 한 살이나 두 살 정도 많은 누나였을지도 모른다. 미선아! 하고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누나가 되는지 동생이 되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쌍둥이였을 것이다. 모두가 쌍둥이들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쌍둥이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한다. 미선이었다. 주미선. 고아원이 있었던 곳은 밀양이 아니면 청도였을 것이다. 어쩌면 삼랑진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에는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불럭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게 지어진 보육사 건물에 스무 명 남짓의 아이들이 있었다. 어리게는 서너 살짜리부터 많게는 열서너 살짜리까지 함께 살고 있었다. 원아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치가 봉필인지 봉팔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방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일단, 봉필이라고 해두자. 원장이나 보육사가 없는 날이면 그 자식은 거만과 거들먹거림으로 온몸에 도배를 하고 다녔다. 그런 날이면 그 자식이 미선이를 상대로 신랑각시놀이를 하려고 했다. 놀이라면 서로가 즐거워야하는 법이거늘 그 자식은 늘 미선이를 울렸다. 미선이의 눈물을 보면서도 물리적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그 자식에게 직접 달려들지 못하는 마음이 아렸다. 그 아린 마음속에는 옹이가 박히고 옹이가 커지는 만큼 칼날을 갈고 있었다. 말이 좋아 아이들의 신랑각시 놀이였지 그건 엄격히 말해 겁탈이었다. 나는 그 자식을 벼르고 있었다. 한 번만 더 그 짓을 하려면 그 자식의 눈깔에 송곳을 꽂겠다고 벼르며 허리춤 주머니에 자루가 작은 송곳을 숨기고 다녔다. 송곳하나만 차고 있어도 어린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그 자식의 눈깔에 꽂을 송곳을 틈만 나면 돌에 갈아 송곳날을 다듬으며 가슴에 깊이 박히는 옹이를 슬쩍 쑤셔보며 봉필이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미선이의 눈물을 멈추게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달래곤 했다. 나는 상상으로 날마다 그 자식의 눈깔에 송곳을 꽂곤 했다.
내가 그 보육원에서 도망치던 날도 원장은 출타 중이었고 봉필이는 또 미선에게 또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그 짓을 하려고 했다. 아이들이 중구난방으로 뛰어노는 큰방구석이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을 만지작거렸다. 송곳자루에 진땀이 베어 미끄러운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나보다 더 어린 아이들은 뛰어 놀기에 바빴고 또 어떤 자식은 오줌을 싸서 울고 있었으며 아무도 봉필이의 행동에 관심이 없을 때였다. 나는 방구석에 조용히 무릎을 감싸고 앉아 무심한척, 그 자식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러면서도 주머니 속의 송곳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도사리고 기회를 포착하고 있었다. 그 자식은 여느 날과 달리 방구석에 쭈구려 앉은 내 눈치를 힐끔 보더니 미선이를 방 귀퉁이로 몰아 홑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그러자 방안에 뛰어 놀던 아이들이 눈치를 긁고 그 쪽으로 몰려 ‘얼레리 꼴레리 미선이는 봉필이 형 각시래요.’ 합창하듯이 놀려대고 있었고 그 자식은 여유롭게 이불 속으로 들어가 싫다고 앙탈을 부리는 미선이와 육박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서 둘러선 아이들이 포위하고 있는 인간울타리를 뚫고 들어갔다. 홑이불을 휙 걷어 보니 봉필이는 미선이 위에 엎어져 한 손으로 치마 속을 뒤지고 있었다. 봉필이에게 깔린 미선이는 싫다고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 것을 보는 순간 내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나는 주저 없이 거꾸로 쥐고 있던 송곳을 그 자식의 뒷목덜미에 힘껏 내리 꽂았다. 마음 같아서는 눈깔을 쑤셔주려고 했지만 그럴 짬도 없었을 뿐더러 그럴 체위가 아니었다. 우욱! 비명 소리와 함께 그 자식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그 틈에 둘러서서 눈이 휘둥그레진 꼬마들을 걷어차고는 보육원을 뛰쳐나왔다.
그 때 시간이 아마 오전나절이었을 거다. 보육원에서 나와 무조건 농로를 따라 걸었다. 하천을 건너고 보육원에서 멀리 보이던 기찻길로 올라가서 한나절을 철길을 따라 걸었다. 철로를 따라 걷다가 철길 옆에 있는 사과밭에서 낙과를 두 개 주워 먹었으니 아마도 계절은 늦은 가을이었지 싶다. 해가 저물녘에 어느 간이역에 도착해서 서서히 출발하는 완행열차에 슬쩍 뛰어 올랐다. 생전 처음 타보는 기차였다. 그 차가 상행선인지 하행선이지도 몰랐다. 아마 봉필이는 죽었을 것이다. 원장이나 경찰이 어린 살인자를 쫓아오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에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어디로 가야한다는 목적지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무조건 멀리 도망쳐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 타는 기차에는 희한한 것이 많았다. 마주보게 앉을 수 있도록 만든 푸른 융단이 깔린 좌석이 그랬고 기차가 가는 것이 아니라 길가의 전봇대가 휙휙 뒤로 지나가는 것도 그랬다. 차안에 변소가 있다는 사실과 기차에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희한하기는 마찬가지. 그런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호두과자를 파는 아저씨, 귤을 한 아름 안고 다니며 파는 아저씨, 손수레를 끌고 가며 빵과 사이다, 삶은 계란과 껌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삶은 계란을 보는 순간 참을 수없는 시장기가 내장을 휘감았다. 삶은 계란으로 손이 절로 가는 것을 억지로 통제했다. 내 평생 돌이키건대 제일 부러웠던 사람이 그때 그 홍익회의 아저씨였다. 부러움을 지나 그 아저씨가 훌륭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날 귀퉁이가 썩은 사과 두 개를 빼면 종일토록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홍익회 아저씨가 손수레를 밀고 가면 삶은 계란 하나를 슬쩍하고 싶은 생각에 그것을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그 유혹을 떨치느라 손수레가 가까이 오면 눈을 감고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2호기 타워! 2호기 타워! 송신 바람. -2호깁니다! -열한 시 방향에 지게차 보입니까? -네 보입니다. -철근 내리고 그 쪽으로 샤클을 보내 주세요. -알았습니다.
무전으로 날아오는 열한 시 방향에는 방금 도착한 대형 화물차에 합판이 가득 실려 있고 지게차가 합판을 부리고 있다. 철근을 내리면 합판을 올려야 할 모양이다. 철근을 내리고 합판을 올리고 나면 707호 여자는 샤워를 끝내고 화장을 할 시간이 될 것이다. 화장이 끝나면 그녀는 어디론가 출근을 한다. 오전 열한 시가 되어서 출근하는 여자가 뭐하는 사람일까? 내 궁금증이 또 도지기 시작한다. 보험설계사이거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닐까? 내 나름대로 짚어본다. 그녀의 퇴근 시간은 모른다. 그녀가 퇴근을 하기 전인 여섯시면 타워크레인 작업이 끝나기 때문이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직업의 특성상 늘 객지 생활을 한다. 한자리에 오래 있으면 이 년, 짧게는 육 개월에 끝나는 현장도 있다. 저녁 시간이 따분하기 그지없다. 한자리에 오래 있어야 친구도 생기도 또 기간이 짧다고 해도 같이 얼굴을 마주보며 일을 해야지 쉽사리 친해지는 법인데 타워크레인 기사는 그런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점심 먹으러 현장 식당에 가면 어디서 일하는 사람인지 무전을 날리던 놈조차도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장에선 얼굴 없는 작업자인 셈이다. 이 현장에 온 지 넉 달이 되지만 정작 일을 한 기간은 석 달이다. 타워크레인 노조에서 한 달간 파업이 있었다. 전국 연대 파업이라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황실아파트 뒤편에 있는 원룸촌의 숙소에 박혀있었다. 타워기사의 숙소는 현장에서 제공해 준다. 임대계약상 그렇게 되어 있다.
서울 근교에 내 이름으로 등기된 열일곱 평짜리 주공 아파트가 있다. 아직 납입해야할 주택부금이 조금 남아있지만 십칠 년간 타워크레인 기사로 일해서 일궈놓은 것이다. 전 재산인 셈인데 늘 비어있다. 내가 일 년에 그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기간은 두 달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비워두더라도 집을 사고 주민등록지 주소를 그곳으로 옮기고부터 마음에 안정이 되었다. 둥지 없이 고아원을 전전하고 사글세방으로 옮겨 다니던 서글픔은 사라졌다. 나에게 있어서 세계의 중심은 바로 그 열일곱 평이다. 날고 들어야할 둥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지 떠돌이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지난 파업 때는 집으로 가지 않고 이곳 숙소에 박혀 인터넷으로 무료영화를 다운받아 보거나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었다. 그 기간이 장장 한 달이었다. 오늘 파업이 해제된다, 내일 결판이 난다고 노조에서 밀고 당기는 통에 집에도 가지 않고 이곳 숙소에서 머물고 있었다. 1호기 타워기사 오씨는 집이 이 신도시 근교라 출퇴근에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며 늘 집에서 출퇴근을 한다. 원래는 타워크레인 기사 두 명이 쓰라고 구해준 숙소인데 실상은 혼자서 쓰고 있다.
원룸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영화보고 바둑 두고, 먹고 자는 일 외에는, 저녁이면 운동 삼아 원룸 뒤 체육공원을 한 바퀴 돌고 들어오는 정도였다. 한 달간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 일이 있다면 쌍둥이 미선이를 찾기 위해 라디오 방송에서 하는 사람 찾기 프로그램에 두 번 메일을 보내고 오전 열한시 반에 방송되는 ‘그리운 그 사람’이란 방송을 듣는 일이었다. 내가 보낸 사연이 두 번 전파를 타고 방송되었다. 그러나 미선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철근을 옮겨주고 합판을 올리기 전에 잠시 짬을 내어 쌍안경으로 707호를 더듬었으나 여자의 춤은 이미 끝이 났다. 거실에는 춤을 추던 여자가 없다. 아마도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 이젠 라디오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그리운 그 사람. 프로를 들을 시간이다. 이어폰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들으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이 그대로 무전으로 작업자들에게 날아가기 때문에 꼭 이어폰을 이용한다. 한쪽 귀로 작업지시를 들으며 한쪽 귀로는 라디오를 듣는다. 조물주가 인간의 귀를 두 개로 만들 적에는 이런 용도로 이용하라고 만든 것이 아닐까,
나는 학수고대하고 있다. 미선이가 이 주철진을 찾는다고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를, 미선이도 어디선가 분명히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삼십분 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나와 같은 사연으로 헤어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사연은 비슷비슷하지만 미선이는 아니었다. 벌써 오년이 다 된 장수프로그램인데 듣는 사람만 매일 듣는 모양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을 찾았다고, 고맙다고 방송으로 알려오는 이들도 종종 있고 방송 순간에 찾던 사람 전화가 오면 그대로 연결해서 청취자에게 만남의 감동을 생생히 전해주는 생방송이다. 미선이가 나를 찾는 방송이 나오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 순간을 대비해서 나는 방송국 ’그리운 그 사람‘ 담당자의 전화번호까지 숙지하고 있다.
봉필이 목덜미에 송곳을 꽂은 날, 완행열차에서 허기진 배를 안고 깜빡 잠이 들었다. 내가 잠이 든 곳은 객차 문을 열면 문으로 가려지는 제일 좌석과 벽체의 틈바구니 구석이었다. 의자 뒤에 걸레처럼 구겨져 잠이 든 것이다. 얼마나 잤을까, 왜소한 일곱 살짜리 꼬마가 경찰에게 발견 된 곳 수원을 거의 다 왔을 때였다. 경찰이 아니라 지금 생각하니 정복을 입은 차장이었다. 그는 나를 발로 툭툭 차면서 깨웠다. 그리고는 내게 누구와 탔느냐고 보호자부터 찾았다. 일곱 살짜리가 혼자서 기차를 탔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가 내 대답을 만들어 준 셈이다. 나는 엄마와 같이 탔다고 말했다. 내 입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담아보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엄마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자다가 보니 엄마가 없어졌다며 울었다. 그는 나를 달래며 어디서 탔느냐고 물었다. 내가 어느 역에서 기차를 탔는지 모르지만 이미 염치와 눈치는 빤했다. 무조건 모른다는 대답을 하고 울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차장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수록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다음 역에서 내려야 했다. 그 경찰이 아닌 차장의 손에 이끌려 내린 곳이 수원역이다. 그때 수원역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로 지어져 이층과 삼층에 상가가 있는 선상 백화점으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엔 일본식으로 지어진 단층 건물이었다. 나는 주인을 잃은, 낡은 보따리처럼 수원역 역무원에게 인계되고 기차는 떠났다. 그 때 시간이 아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이었을 거다. 붉은색과 푸른색 수신호 깃발을 감아쥔 역무원은 나를 역사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 말은 기차에서 들었던 차장과 비슷한 말들이었다. 나는 무조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대답하며 울먹였다. 그 때 나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울음이 무기라는 것을,
수원역 역무원실 난롯가에서 건빵을 얻어먹었고, 날이 완전히 밝은 다음에 역전파출소에서 나온 순경을 따라 파출소로 갔다. 그곳에서 이틀을 보냈다. 차순경이었다. 나를 이틀간 거두어준 경찰이, 파출소장이 ‘어이! 차순경! 저 자식 어떻게 할 거야? 시설로 보내야지?’ ‘차순경! 뭐해? 빨리 출동해.’ 뭐 그런 말들을 들었던 것 같다. 파출소에서 이틀간 밥을 얻어먹고 숙직실에서 출동 대기조와 같이 자며 재떨이를 비워주고 파출소 청소를 해주고 담배심부름을 해주고 행패를 부리다가 잡혀온 취객들 조서를 꾸미는 구경을 하며 사흘을 보냈다.
사흘이 고비였다. 사흘 후에 파출소의 연락을 받고 나타난, 뚱뚱하고 키가 작달막한 대머리 원장을 따라서 버스를 타고 수원 변두리의 보육원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보육원은 미선이와 있던 보육원보다 분위기가 더 험악했다. 아이들도 훨씬 많았고 모두가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다. 중학생 형들이 서넛 있었고 거의가 초등학생이었으며 나보다 어린놈은 겨우 두 명이었다. 나는 그곳 원장실에서 입원 기록을 할 적에 여섯 살이라는 것과 이름이 주철진이라는 것만 말했다. 그리고 덧붙인 것이라곤 파출소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엄마와 같이 기차를 타고 이모네 집으로 가다가 기차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거짓말이었다. 나이에 비해서 나는 영악했다. 다른 고아원에 있다가 왔다면 괄시도 심할 것이고 엄마가 있다고 말하면 언젠가는 엄마가 찾아오리라고 생각하는 보육원 아이들이 잘해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때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화물차에 실린 합판은 아무래도 점심시간이 전에 다 올리기는 힘들 것 같다. 겨우 두 다발을 올리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1호기 오기사로부터 무전이 날아왔다. 1호기 타워는 목수 거푸집을 올리던 중이었다.
-2호기 타워 주기사! 점심 먹고 하자구!
서둘러 내려가더라도 타워기사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꼴찌다. 메인 스위치를 내리고 30미터 철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식당까지 걸어가면 항상 맨 뒤에 줄을 서야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기사는 또 그 애기를 할 것이다. 마흔이 넘으면 그런 혼처도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임자 생기기 전에 빨리 결정해라. 그런 요지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을 먹고 나자 현장식당 옆에 천막으로 만든 간이 흡연실에서 오기사는 또 그 얘기를 꺼냈다.
-그 쪽에서 조만간에 한 번 보자는 데 어때?
-아직 생각 중입니다.
-또 그 대답이야? 아따, 그 생각 한번 참 더럽게 질기게 하시네. 인생 뭐 별거 있어? 내년이면 마흔이라구, 옛날 같으면 손주 볼 나이지.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라구.
혼처 얘기가 처음 나온 것은 두어 달 전이었다. 오기사 형수가 다니는 전자부품 제조업체에서 같이 일하는 서른네 살짜리 젊은 여자가 혼자 살고 있단다. 그 쪽과 짝을 맺는 게 어떠냐고, 인물도 그 정도면 괜찮고 마음씨 하나는 죽인다는데 단지 흠이라면 일곱 살짜리 딸이 하나 딸려있다는 것이다. 오기사는 담배를 깊이 빨며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솔직한 말로, 주기사는 눈이 눈썹 위에 달린 거라구, 그 나이에 처녀장가가 가당할 거 같어? 또 그대가 내세울 게 뭐가 있어? 부모형제가 있나? 배운 게 있나? 겨우 열댓 평짜리 아파트와 이제 시들기 시작하는 몸뚱이 하나뿐이잖아? 물 건너가고 나서 무릎 치지 말고 한번 만나봐? 내가 보기에는 궁합이 잘 맞을 거 같은데....... 만나보는 걸로 손해 볼 건 없잖아?
성질이 불같은 오기사는 답답하다는 듯이 혼자서 짜증을 내다가 또 얼레고 있었다. 오기사 말이 영판 틀린 것도 아니다. 이렇게 공사판을 홀로 떠돌아다니는 게 싫기도 하다. 또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목욕탕에 가면 아들을 데리고 목욕하러 오는 작자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처녀든 과부든 가정을 가지는 게 마땅하다. 근데 여자 앞에만 서면 가뜩이나 없는 말주변에 입술이 굳어져서 만나기가 두렵다. 그리고 서로를 인간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저울대에 얹어놓고 조건을 탐색하는 게 취향이 아니다. 나는 담배를 비벼 끄며 오기사와 눈을 맞추지 않고 말했다.
-좋습니다. 그 쪽에서 좋은 날로 한번 잡아보라고 하는 게 어때요?
-화끈하구만, 진즉에 대답이 그렇게 나왔어야지. 나 양복 한 벌이다? 알쥐?
오기사가 돌아서는 내 어깨를 툭, 쳤다. 뭔가 일이 진행될 요령인 모양이다. 지나가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오늘 들으니 마음이 흔들린다. 가족이 생긴다? 여태 가족이란 의미와 그 안온한 울타리 밖에만 살아온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알고 살아왔는데 그것도 한꺼번에 두 명의 가족이 생긴다? 그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오후 작업은 합판 한 차를 다 올리고 보니 더 올릴 자재가 없다. 이것으로 오늘 일은 종료되는 셈이다. 1호기 타워에서 올리는 거푸집을 공동 작업으로 거들어주고 싶지만 거푸집이 적재되어 있는 위치에 2호기 붐이 닿지를 않는다. 오기사에겐 좀 미안하지만 먼저 퇴근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오줌통과 물통을 배낭에 챙기면서 오기사에게 무전을 날린다.
-타워1호! 오기사님! 욕보시라요. 저는 오늘 일 종 쳤시유. 오우~ 행복한 대마찌!
-알았다구, 주기사! 이발도 좀하고 때 빼고 광내고 있으라우. 오우~ 내 양복 한 벌!
오기사는 이미 작업내용을 알고 있었던 듯 약 올라하지 않았다. 오기사의 답신을 들으며 붐이 1호기 타워에 영향을 주지 않을 곳으로 옮겨놓고 메인스위치를 내리고 타워에서 내려왔다. 다른 인부들 한창 일하고 있는데 현장을 뻔뻔하게 빠져나오기 뒤통수 간지러운 일이지만 나는 현장을 나와 황실아파트 뒤편의 상가에 있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거기서 이발을 하고 오기사 말마따나 때 빼고 광을 내며 시간을 죽였지만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참 어정쩡한 시간이다. 혼자 사는 놈의 비애라면 이렇게 어정쩡한 시간을 깔끔하게 메우기 힘들다는 점이다. 마땅히 살 것은 없지만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볼 요량으로 상가를 거닐다가 주택단지 중간에 있는 체육공원으로 들어갔다.
체육공원치고는 규모가 꽤나 컸다. 공원 중간에는 원형 분수대가 있고 분수대 옆에 화강암으로 만든 노천 무대가 있었다. 문화의 도시 창조라는 슬로건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주위에 조경수를 심어 아늑하게 만들었고 노천무대에는 가끔씩 소규모 공연도 하는 모양이다.
707호 여자를 본 것이 거기였다. 여자는 북채 두 개를 쥐고 탁, 탁, 장단을 맞추며 체육복을 입고 장고를 멘 여고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의 장고춤을 가르치고 있었다. 분명히 공연은 아니었고 리허설도 아닌 수업이었다.
‘현정이 간격 좀 띄우고’ ‘서령이는 한 템포 빠르잖아? 다시’ 하나, 둘, 하나, 둘, 여자가 장고를 멘 아이들의 춤을 가르치는 동안, 주위의 구경꾼들이 하나 둘 모여 분수대가에 둘러서서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관객들의 눈은 장고를 멘 아이들에게 쏠렸지만 내 눈은 북채를 쥔 여자에게 꽂혀 있었다. 아마도 어디 경연대회에 나갈 아이들인데 장고춤의 간격과 스텝을 맞추는 연습을 하는 모양이다. 뒷모습만 보고 있었지만 707호 여자가 분명하다. 옷을 벗은 모습은 수없이 보았지만 옷을 입고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부근에 어디 무용학원이 있고 여자는 그 학원의 원장이나 강사인 모양이다. 내가 예측했던 부동산 중개업자나 보험 설계사와는 상당한 거리를 가진 직업이다.
나는 여자를 잘 알고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정작 여자는 나를 모른다. 내심 반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알은 체 할 수없는 미묘한 관계다. 장고춤 간격을 맞추는 연습은 한 시간 가량 지속 되었다. 학원 안에서 할 수 있는 연습이 아닌 모양이다. 아이들이 반복되는 연습에 지친 표정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이들의 연습이 양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자, 다시 한 번만 더!’ 그렇게 말했던 게 서너 번이 넘어서야 연습을 마쳤다. ‘ 자 이제 가자. 내일 실수하면 안 돼!’ 장고를 멘 아이들이 지친 한숨을 내쉬고는 줄을 지어 체육공원 뒤의 울타리로 빠져 나갔다. 그녀가 울타리로 사라지고 난 뒤 분수대에 걸터앉아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서 자리를 털었다. 나도 그 울타리를 빠져 나와 드림마트에 들러 찬거리 몇 가지를 사가지고 나오다가 부근에 무용학원이 있다는 걸 알았다. 무용학원은 피아노학원 이 층에 있었다.
추미선 전통무용학원. 간판에 그렇게 적혀있었다. 추미선! 주미선이 아니라 추미선. 아쉽다. 주미선 전통무용학원이라면 바로 이층으로 올라가 확인을 했을 터이지만 추미선이라 맘에 걸렸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를 주머니 속의 휴대폰에 꺼내 입력시켰다.
미선이란 이름은 지난 삼십 년간 내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환장할 정도로 그리운 혈육, 미치도록 찾아다녔다. 밀양, 청도, 삼랑진의 보육원을 수도 없이 다녔다. 삼십년 세월은 산천조차도 그냥 두지 않았다. 내 어릴 적 미선이와 더불어 보육원 아이들과 거닐던 강변 둑길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방송은 물론이거니와 집에는 전국에서 모은 인명편 전화번호가 각 시도별로 열권도 넘게 있다. 그 전화번호부에 실린 주미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화번호에 짬만 나면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다. 수천 통은 넘을 터이다. 나와 통화를 한 주미선이가, 전화를 받는 모두가 동명이인이었다. 내 쌍둥이 주미선은 전화번호부 안에는 없었다.
나는 수원의 보육원에서 미선이를 찾아 나서며서 다른 고아원으로 입양되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보육원 원장으로부터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맞은 날이었다. 보육원 취사장 뒤에서 혼자 앉아 울다가 무작정 보육원을 나섰다. 미선이가 너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일곱 살이 되던 봄날이었다. 조금 겁은 났지만 왔던 길을 되짚으면 미선이가 있는 곳에 닿을 걸로 생각하고 원장과 함께 왔던 길의 기억을 되짚어 수원역으로 갔다. 밤이 되도록 수원역 부근을 거닐다가 내려가는 밤차를 탔다. 봉필이를 죽였어도 그 보육원만 찾으면 밤에 가만히 들어가 미선이를 데리고 도망치리라고 마음을 먹고 시도한 것이었다. 근데 그날 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내 인생이 흘러갔다. 수원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그게 아마 경부선 열차가 아니라 호남선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기차 한번 잘못 타니 인생이 달라졌다. 다음날 새벽, 내가 떨어진 곳은 목포였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유달산 중턱에 있는 작은 보육원에 수용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말이 보육원이지 원생은 겨우 일곱 명, 작은 암자에서 운영하는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지금 내 본적지가 그 곳으로 되어 있다. 그곳에서 수용된 지 며칠 후에 원장의 손에 이끌려 부근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중학까지 다녔다. 그곳 원장은 명태스님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파계를 일삼는 땡초라고 했지만 원생에게는 학대나 편견을 갖지 않고 잘 대해주었다. 명태스님이 운영하는 자비원에서 가장 오래 머문 아이가 바로 나였다. 중학을 졸업하고 목포에서는 알아주는 명문 고등학교에 장학생을 겨냥하고 시험을 쳤으나 보기 좋게 낙방, 고등학교에 갈 길이 막혔다. 신도가 몇 명 되지도 않고 정부 지원금이 나오지 않는 자비원에서 고등학교 등록금을 마련해줄 형편이 아니었다. 원장인 명태스님은 그날 법당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다고 하면서 나에게 행자가 되기를 종용했다. 명태스님 말대로 바로 머리를 깎았다. 옷도 승복으로 갈아입고 그 절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명태스님의 상좌가 되질 못했다. 반야심경을 외고 천수경, 금강경을 외기는 했지만 심오한 불가의 영역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니요 산만한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일 년 후에 알아차렸다. 명태스님은 내가 그곳에서 몇 년 행자생활을 하다가 승가대학으로 가길 원했지만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승복을 벗어던지고 내가 간 곳은 통닭집이었다. 돈을 벌어야했다. 작년에 입적하신 명태스님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승가대학을 갔더라도 환속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명태스님 말마따나 승가대학을 나오고 자비원의 상좌로 있었다면 지금쯤 자비원의 주지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다른 길로 들어섰다. 호프집을 겸한 통닭집에서 배달원 겸 서빙을 하다가 만난 사람이 그곳에 단골로 오는 중장비학원 원장이었다. 국비로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조건으로 중장비 학원에 등록을 했다. 낮에는 학원을 다니고 밤에는 통닭배달과 호프집에서 일 하며 자격증을 땄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교육이었다. 나는 중기 자격증만 네 개를 소지하고 있다. 자격증만 있다고 타워크레인 기사가 되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중장비학원 원장의 소개로 포클레인 조수로 들어가 무보수로 차를 닦고 기름을 치며 레버를 익혔다. 그 기간이 육 개월, 어느 정도 기술을 익히고 그 다음은 자주식 크레인 조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 기간도 한 일 년이 된다. 그 땐 장비가 부족한 때라 정기사가 되려면 오년이 걸릴지 육년이 걸릴지 모르던 시기였다. 나는 일찌감치 타워크레인 조수로 자리를 옮겼다. 타워가 한창 보급되던 시기였으니 기사자리 구하기가 쉽겠다는 속셈이었다. 타워크레인 조수로 자리를 옮기니 무엇보다 숙식이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타워 조수에서 기사로 자리를 굳히는 데는 일 년이 걸리지 않았다. 자주식 크레인 조수로서 쌓은 운반물 균형 감각이나 무게를 지탱하는 붐의 각도 등 현장 경험이 많은 작용을 했다. 타워크레인 기사로서 근 이십 년 근무면 타워크레인 업계에서는 원로에 속하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기사를 탔으니 나이로서는 많은 축에 들지 않는다. 베테랑으로서 대접을 못 받는 게 좀 억울하긴 하지만 나이 많아 대접 받는 거 보다야 낫지. 나는 젊음으로 그 억울함을 달래본다.
출근하고 조종석에 앉자말자 오기사로부터 무전이 날아왔다.
메인 스위치도 올리기 전이었다. 성질 급하긴....... 이번 일요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는 전갈이었다. 일요일이면 바로 모레다. 좀 성급한 감이 있지만 숙제라면 빨리 해치우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아 가타부타 없이 알았다고만 했다. 어쩔 수없이 만나긴 만나야할 모양이다. 아이가 하나 딸린 여자지만 생전 처음으로 맞선을 보는 자리인데 무슨 옷을 입고 갈까 잠시 고민에 빠진다. 환절기라 입을 옷이 마땅찮다. 저녁에는 새로 생긴 이마트라도 한번 들러보아야겠다.
메인 스위치를 올리고 타워 아래 현장 분위기를 보니 오늘 일은 만만찮다. 아침부터 거푸집을 실은 대형화물이 일곱 대나 줄을 지어 서있었다. 지게차 한 대가 바쁘게 그 물건들을 내리고 있었다. 1호기 타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작업공간이 아니었다. 분위기를 보니 1호기 타워는 가공된 철근 몇 다발만 올리는 오늘 작업은 끝날 것 같다. 지게차가 물건을 어느 정도 내려야 타워크레인이 결속할 공간이 생긴다. 지게차가 물건을 내리는 동안 쌍안경으로 101동의 안녕을 훑었다. 별 일이 없는 듯하다. 809호 여자는 남편이 출근을 했지만 다른 놈팽이가 출근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고 707호는 아이가 아직 유치원에 가지 않은 것이다. 추미선 무용학원원장이 사는 707호, 말하자면 추미선의 나체 춤을 보려면 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쌍안경으로 까치의 동정을 살폈다. 붐 끝에 까치집에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다. 어제 오후에 꽤나 열심히 가지를 물어다가 집을 지은 모양이다. 1호기 타워는 가공된 철근을 철근작업자들이 있는 이층 구석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2호기 타워! 지게차 뒤편으로 샤클을 내리세요. 거푸집 야적할 작업 공간이 부족합니다.
좀 서둘러야겠습니다.
작업을 시작하자는 무전이 날아왔다. 일곱 대 분량의 거푸집을 내리려면 야적 공간이 부족하다. 지게차가 물건을 내리는 대로 지게차와 충돌하지 않게 조심하며 바로바로 올려야 할 것 같다. 인부들이 샤클로 올릴 거푸집을 결속하는 동안 나는 쌍안경으로 707호를 살폈다. 여자가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드디어 여자가 벗을 시간이다. 809호는 그 사이에 베란다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놈팽이가 출근을 한 모양이다. 도대체 뭐하는 놈팽이인지, 사뭇 궁금하지만 알 수 없을뿐더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뻔하지만 볼 수가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력도 대단해요. 매일 지랄이군, 하루도 안 빠지고,
-주기사! 무슨 소리야?
혼자서 한 소리인데 1호기 타워의 오기사가 들은 모양이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707호로 쌍안경을 돌렸다. 707호 여자, 추미선은 아랫도리는 이미 나신이었다. 벗은 팬티로 머리를 묶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저 여자가 추미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학원의 강사일 수도 있다. 그 순간 어제 휴대폰에 입력한 전화번호가 생각났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어제 입력시킨 전화번호를 찾았다. 추미선이라면 전통무용학원 원장이고 아니라면 강사인 것이다. 밑에서 결속 작업하는 인부들을 보니 오늘 처음으로 나온 초짜들인 모양이다. 결속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작업반장이 그들에게 뭐라고 지시하는 게 멀리 보인다. 그 틈에 찾은 번호를 눌렀다. 뚜우~ 뚜우~긴 음을 울리며 신호가 간다. 신호가 가는 동안 살펴보니 여자는 나신으로 춤을 출 준비가 완벽하게 마친 상태로 오디오를 켜느라 상체를 구부리고 있다. 그러다가 전화를 받는다.
-네, 추미선입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했다. 그 순간 무전기로 작업지시가 날아들었다.
-2호기 타워! 적재 완료 상승하세요.
작업지시가 전화통을 통해 추미선에게 들렸을 것이다.
-저어, 잠깐만요.
나는 전화통에 대고 그렇게 말하고는 작업스위치를 오토로 바꾸고 상승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귀에 대고 물었다.
- 혹시 추미선 무용학원 원장 맞습니까?
-네. 그런데 어디시죠?
갑자기 할 말이 막혔다. 추미선 무용학원 원장이 맞다. 여자는 거실 중간에 서서 거울을 보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내 손이 떨려 늘 보던 707호 거실이 흔들리고 있었다.
-혹시, 저, 저........
-2호기 타워! 자재를 목수 작업장으로 올려주세요.
옘병하고 있네.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 무전이 또 날아왔다. 이 소리도 추미선에게 들렸을 것이다. 나는 갑자기 바빠져 정신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무선기의 볼륨을 끝까지 낮추고 좌측 스윙버턴을 눌렀다. 그리고는 천천히 돌아가는 조종석에서 707호를 주시하며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저어 한 가지 여쭙겠는데요. 혹시, 주철진이라고 아세요?
그렇게 물어놓고 생각하니 내가 주철진이 아니라 추철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추철진이 아니면 추미선이가 아니라 주미선일 수도 있다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휴대폰을 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주철진이라구요? 주철진이가 아니고 추철진이 내 동생인데, 혹시, 혹시, 철진이니? 삼랑진 희망원에 있다가 사라진 추철진!
거기까지 들었을 적에 뒷목덜미가 당기고 전신이 마비되는 듯했다. 쌍안경을 쥔 손으로 초점을 맞추어 707호를 보니 여자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두 손으로 전화통을 감싸 쥐고 통화중이다. 나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거기가 삼랑진이었나요?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반쯤 잘린 추철진! 철진이 맞지? 주철진이가 아니고 추철진이 내 쌍둥이동생인데요. 혹시 댁이....... 철진이 아니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나는 휴대폰을 쥔 손의 새끼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내 새끼손가락은 손톱이 없다. 그게 언제 사라진 것인지 나도 모른다. 너무 어릴 적 일이라 무슨 사고로 손가락 한마디가 잘려나갔는지 기억이 없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간 붐이 출렁이며 휘청거렸다. 아차!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자동 스위치를 눌러 돌아간 붐이 1호기에서 드리운 와이어로프를 휘감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스윙스톱 버튼을 눌렀으나 때는 늦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비상스위치를 누르며 쌍안경을 무릎에 떨어트리고 무전기 볼륨을 높였다. 오기사의 놀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주기사! 지금 뭐하는 거야? 메인 스위치 내려! 비상 스위치를 내리라구!
듣고 보니 정신이 없었다. 비상 스위치는 내렸지만 스윙을 하던 관성에 의해서 붐은 일 미터 가량 더 돌아가서 멈추었다. 1호기와 붐 높이가 달라 붐의 충돌은 피했지만 붐 끝 까치가 집을 짓고 있던 부분이 1호기가 드리운 와이어로프를 걸고 한참 돌아간 것이다. 그 바람에 1호기에 결속된 철근을 풀던 인부 두 명이 느닷없이 솟아올라 돌아가는 철근 다발에 맞아 콘크리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까치가 붐 끝 부분에서 나풀대며 요란스레 짖어대고 있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 내 눈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사지가 굳어 있으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주철진이가 아니라 추철진이라, 그게 나란 말인가.
귀가 먹먹해지면서 세상이 갑자기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