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자 시조
1. 마음을 삽니다
시냇물 흐르듯이 철따라 꽃 피듯이
속마음 곱게 지어 진열대에 놓아 둘까
먹거리 챙겨갈 적에 바구니에 담기게
시간이 나를 밀어 기웃거린 한세월에
애쓰고 남은 것은 뜻 모를 슬픔 한 줌
어느 때 눈물 맑게 씻고 걱정 없이 웃을까
2. 만우절
즐거운 유머 같이 속이고 속아주는
유래야 어찌 됐건 일 년 중 단 하룻날
이런 날 숨겨놓다니 재미있는 세상이야
지어낸 거짓말도 용기 없인 할 수 없어
이것저것 따져보다 만우절 가기일수
"야! 너 교무실에 오래" 그 시절의 우리 유머
속아주고 싶은 오늘 말 거는 이 하나 없네
전쟁이 났다 해도 놀라는 척 해 줄 텐데
속이고 속은 일들도 재미없어 진건지
3. 말 좀 하고 삽시다
한마디 할라치면 몰려드는 악성 댓글
좋은 게 좋은거라 말펀치에 지레 항복
옳은 말 함부로 했다간 혼줄나기 여반장
어른은 없어지고 아이가 어른 되고
스승은 없어지고 존경심 구시대 말
장탄식 이런 거 하는 세대 꼰대라나 뭐라나
흰머리에 일어서던 옛날이 있었었지
헛기침 소리에도 몸 사려 조심했지
매로도 호령으로도 꿈쩍 않는 신세대
걱정이 팔자 될까 입 닫고 묵언수행
가슴 쓸며 시어 찾아 나직이 뇌어볼까
그래도 지구는 돌고 해는 뜨고 또 지고
4. 묵정밭을 보며
한 일 년 버려둔 땅 잡풀이 점령했네
보나마나 저 풀 뽑기 된씨름 해야겠지
봄나절 게을렀단 말 흉이라도 보는 듯
관계에 얽힌 삶이 때로는 저 묵정밭
무심히 버려두고 잘 되길 바라다니
어디서 무엇부터 풀어 이심전심 나눌까
5. 감자가 뿔났다
지난 여름 가져다 둔 뒷방살이 감자박스
잊혀진 사람처럼 혼자서 늙어가네
언젠간 너도 나 같이 될거라나 뭐라나
뿔 잘라 손질하며 미안해 지는 마음
언제부터 슬그머니 기억들이 날 떠나고
언젠간 나도 너처럼 주름살만 남겠지
6. 지진에게 듣는 말
하늘을 다 모르듯 땅 속인들 알 수 있나
고층은 주저앉고 길바닥은 갈라지고
이렇게 살이있음이 기적이라 하는 듯
먼 나라 지진 소식 안타깝게 바라보네
아등바등 고층으로 자랑인 양 사는 우리
잘 살고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듯
7. 시낭송과 트롯오디션
트롯의 대세몰이 뽕짝 무시 옛말이라
노래 좀 한다하면 너도나도 오디션 행
청승이 뚝뚝 떨어지던 유행가의 신일신
노랫말 삐끗하면 볼장다본 실격사유
음정 박자 확실해도 감정선 넘는 난관
청중의 호응도 따라 부담 백배 가수들
무대에 오르기야 시낭송도 마찬가지
가사 암기 기본이고 고저강약 완급장단
모든 것 다 잘했어도 가슴 닿을 일이랴
9. 피자 한 판
딩~동~ 누구세요 피자 배달 왔습니다
동 호수 맞긴 한데 시킨 적 없는데요
어쩌면 엄마 드시라 아이들이 시켰나
그래도 혹시 몰라 확인해 보랬더니
엉뚱한 배달 사고 동 번호 오류였네
어랍쇼 냄새만 남기고 인사도 없이 가다니
9. 봄이 침범하다
허락한 적 없는데 어느 새 당도했네
들 가득 솟아나온 새봄의 점령군들
또 한 해 좋다 좋다하며 살아보라 하는 듯
10. 다시 봄
어머나! 저 꽃 좀 봐 만개한 고운 벚꽃
꽃 같은 시절 가고 꽃 같은 사람 가도
이 봄은 그새 다 잊고 새봄 펼쳐 반기네
봄 같은 마음에다 또 한 해 슬쩍 얹어
꽃망울 피어나듯 희망을 따라볼까
다시 봄 그늘에 앉아 하염없어 지는 맘
임춘자
2005년 현대시조 등단
저서 <봄날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