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부답
[글쓴이 ▪︎ 권덕진]
산등성이 해는
붉은 짚신을 벗어 놓고
넘어가는데ㅡ
내 가슴엔 아직도
저녁 한 자락이 남았구나.
울지 않는 나무도
속으로는 나이테를 새기고,
말 없는 돌멩이도
천 년 바람을 품고 사는데,
사람 하나 그리운 일은
왜 이다지도 긴 강이 되는가.
묵묵부답...말이 없다고
마음도 없는 줄 알았더냐.
묵묵부답...깊은 우물은
소리보다 먼저 하늘을 품는다.
세월은 흙이 되어도
사랑은 씨앗이 되어
또다시 가슴에서
푸르게 돋아나는구나.
ㅡㅡㅡㅡㅡㅡ
모퉁이 끝 국밥집
저녁 굴뚝 연기처럼
내 그리움도 허공으로
흩어지는 줄 알았더니,
바람 따라 돌아와
가슴 아랫목에
조용히 불씨 하나
놓고 간다.
세상은 큰소리치는
사람을 먼저 기억하지만,
생애는 아무 말 없이 견딘
사람의 등을 먼저 어루만진다.
묵묵부답...
메마른 논바닥도
봄이 오면 한마디
말 없이 푸르러지고,
묵묵부답...
어머니 손등은
평생 사랑을 말한 적 없어도
굽은 손마디마다
자식의 이름이 피어 있었다.
그래... 살다 보면
울음도 목이 쉬어
끝내 소리가 되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날은 굳이 말하지 말거라.
가슴에 묻은 침묵 하나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노래가 되는 법.
세월이 다 지나도
사람이 남기는 것은
목청이 아니라
따뜻하게 견뎌 낸 마음.
그것이 내가 배운
묵묵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