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 버들피리
이상호
“너 아까 만들어 줬잖아”
“그거 소리 안 나서 버렸어요.”
“이건 한 번만 만들어주는 거야. 버린 것 주워와”
“그럼 안 할래요”
“그럼 하지 마”
애써 만들어준 버들피리를 소리 안 난다고 버린 아이를 탓한다고 어찌할 것인가!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 나고 자란 아이의 당연한 행동인 것을.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고 계절의 변화조차 냉난방기로 극복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온 몸으로 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맘과 같지 않아 속이 상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글을 읽는 많은 이가 나와 같은 마음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번 호에서는 버들피리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 이덕무가 어느 봄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를 남긴 것이 그의 책 『청정관전서』에 남아 있다.
“김씨의 동산 흰 흙담에/ 복사나무 살구나무 나란히 줄을 이뤘는데
버들피리에 복어 껍질 북으로/ 어깨를 연이은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기에 바쁘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따옴)
생동하는 봄과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잘 어우러져 평화로운 풍광이 눈에 선하다.
그밖에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 조선시대 학봉 김성일, 유득공, 매천야록의 황헌 등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은 버들피리를 소재로 시와 글을 지었고 심지어 난중잡록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의 무용담으로 전쟁 중에 사람을 시켜 호드기(버들피리의 다른 이름)를 불게 하여 적군을 겁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는 기록 등 관련 문헌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버들피리가 예로부터 봄, 아이들, 평화로움의 상징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호기심의 화신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것은 아이들의 지극한 호기심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세상에 나올 때 아는 것이 없기에 하나하나 알아가려는 끊임없는 충동이 곧 호기심인 것이다. 어쩌면 아이와 노인의 가장 큰 차이는 호기심의 여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호기심은 주위의 사물로 뻗어 나가고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물오른 버드나무에 까지 미쳤을 것이다.
나무를 잘라 손으로 잡아 비틀면 대가 나오고 빈 대롱이 남으면 입으로 불어 버들피리가 되는 것이다. 빈 대롱을 불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은 대금, 소금, 중금과 같은 신라 삼죽을 비롯하여 상고시대부터 전해졌다는 점으로 비추어 그리 어렵지 않게 알게 된 원리일 것이다. 이규보가 채마 밭에 나는 파를 소재로 시를 읊을 때 ‘파피리’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버들피리 만드는 시기와 방법
공기나 고무줄과 같이 언제든 할 수 있는 놀이가 있는가 하면 때를 놓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버들피리는 때를 놓치면 할 수 없는 놀이의 대표라 할 수 있다.
보통 버드나무는 3월 중순부터 물이 올라 4월에 들면서 꽃이 피고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너무 이르면 물이 오르지 않아서 줄기와 껍질이 분리되지 않아 만들지 못하고, 줄기가 뻗기 시작하면 그 부분에 구멍이 생겨 바람이 새기 때문에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따라서 남쪽 지방은 3월 초순, 중부 지방은 3월 중순 경이 적당하다.
먼저 버들피리를 만들려면 주위에 버드나무를 찾아야 한다. 버드나무는 우리나라에 약 40여종이 있고 전국 어느 곳에서나 서식한다. 그 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능수버들, 수양버들, 갯버들, 호랑버들 등이 있는데 종류와 상관없이 모두 만들 수 있다. 이 나무는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 군락을 이루고 살기에 주위 하천이나 공원 연못 근처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찾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고 마음에 담아 놓았다가 다른 곳에서라도 찾게 되면 채취해 놓는다.
이때 주의할 점은 꺾어서 1~2시간만 지나면 줄기에 물이 말라 만들 수 없고, 그렇다고 껍질과 분리해 놓아도 뻣뻣하게 말라 피리로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작은 생수통에 물을 조금 담아서 꺾은 나뭇가지를 넣어 뚜껑을 꼭 닫아 놓으면 몇 시간은 거뜬히 원래 상태를 유지한다. 혹시 더 오래 보관하고 싶거나 만든 버들피리를 또 불고 싶으면 마찬가지로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한 달 이상 버들피리를 불 수 있다.
버드나무를 구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다. 되도록 길게 가지를 잘라 칼이나 전정 가위로 끝을 매끄럽게 자른다. 자른 부위에서부터 양손으로 잡고 비틀면 껍질과 줄기가 분리되는 느낌이 든다. 이는 잘 열리지 않는 마개를 힘주어 돌렸을 때 어느 순간 틀어지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이때 너무 힘을 주면 줄기가 찢어지기에 조심스레 비틀어야 한다. 처음 분리되면 조금만 힘을 주어도 잘 된다. 시작 지점에서 아래로 조금씩 내려가면서 비틀어 최소한 10cm 정도는 되게 한다. 실제 적당한 길이는 6~8cm이니 조금 길게 틀어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잘라내고 밑에서 줄기를 밀면 하얀 줄기가 앞으로 조금 삐쳐 나온다. 이 부분을 이로 물고 조심스레 빼내면 버들피리의 대롱이 완성된다.
다음엔 틀거나 빼다가 상한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 적당한 크기를 남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단계인 겉껍질 벗기기만 하면 된다. 즉 0.5cm 정도만큼 겉껍질을 칼이나 가위로 눌러 벗겨낸다. 그러면 파란 겉껍질이 벗겨지고 하얀 속껍질이 보이는데 이 부분을 살짝 눌러 납작하게 만들면 버들피리가 완성된다.
만드는 과정을 이렇게 길게 설명하니 어렵게 느껴지는데 우리나라 40대 이상의 어른은 대부분 어릴 적 만들어 보았기에 잘 모르겠으면 도움을 받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씌여진 『조선의 향토오락』에는 서울을 비롯한 132곳에서 이 놀이가 행해지고 있고 주로 초봄에 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보편적인 봄철 놀이였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 어른이면 누구나 만든 경험이 있기에 물어보면 가르쳐 줄 것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만들었다고 바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소리가 잘 나지 않는데 입에 대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소리 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리 내는 사람의 입 모양도 보고 세게 또는 약하게 불면서 터득해야 하는데 처음 소리가 나는 것이 제일 어렵다. 이때 안타까운 것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특히 부모는 뭐든지 대신해 줄 수 있다고 여기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 어른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쉽게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이 놀이의 매력이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처음 ‘삐-’ 또는 ‘뚜-’하고 소리가 날 때의 감격의 강도는 소리를 내려고 애쓴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
소리가 안 난다고 버렸다가 다른 아이들이 다 불고 다니니 버린 것을 주워서 내 눈치만 보던 상우의 버들피리를 조금 다듬어 부는 요령을 가르쳐줬더니 한참이 지나 드디어 소리를 냈다.
“선생님~ 뚜~삐~”
교실과 복도가 소란스러웠지만, 그 소리는 진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밝고 생기 넘치는 소리였다.(끝)
첫댓글 오지랍이 넓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것저것 관심이 지나쳐 낄데와 안낄데를 가리지 못하면서 듣는 말이다. 그런데 오지랍이 넓으면 심심하지 않다. 모든 것이 나와 관계된 것 같이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연에 기대어 살던 옛날 사람들은 주변의 모든 사물을 자신의 일상과 연결시키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 흔적은 노인들이 사람들이 버린 물건을 주워오는 것에서 확인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지랍이 넓어 지청구 듣지만 나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을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다. 우리 사무실에서 조금 가면 작은 공원이 있는데 점심 먹고 가끔 산책을 하다보면 눈에 띠는 것이 많다고 한다. 봄이면 버들피리도 만들고, 여름에는 풀피리도 불고 토끼풀로 반지도 만들면 사람들이 '젊은이 답지 안다'고 한다는데 그게 나 때문이란다. 나를 탓하는 말인지 고맙다는 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