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신시장에 가면
한명란
서울 서쪽 끄트머리 방화동
친정엄마 다니시던 방신시장
시장 초입 한쪽 구석
머리 하얗게 센 할매
박스 뜯어 좌판 만들고
쑥, 달래, 냉이 봄 향기로
발걸음 붙잡는다.
“밭에서 방금 온 딸기요!”
고함 소리 놀라 돌아보면
모자 획 돌려쓴 총각 환하게 웃고
내 손은 어느새 딸기 한 소쿠리 집어 든다.
탕, 탕, 탕!
생선가게 아저씨 몸짓만한 대구 손질하는데
낙지는 수족관 모서리 발 하나 올려놓고 나가려 바등대고
죽은 듯 있던 전복 손만 대면 살았노라 꿈틀거린다.
남쪽 어느 갯벌, 어느 바다 밑에서 살다 왔을까?
사람들 길게 선 순댓집을 지나면
노랑 머리통 내밀고 활짝 웃는 콩나물
어릴 적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 쓰고 엄마 사랑 독차지한 콩나물시루.
사실은 그 사랑 내가 먹고 자랐지.
푸짐한 인심에 무거워진 장바구니
나주 죽집 의자에 올려놓으면 할매 반색하고
“엄니는 호박죽 반 그릇도 채 못 드셨어.
돈은 꼭 한 그릇 값 내시고.
우리 집 양반 병나서 이 장사 치울 뻔했는디
그 집 엄니 덕분에 지금까지 먹고사네.“
갈 때마다 같은 말만 하신다.
휠체어에 친정엄마 태우고 왔을 때는
단골 죽집 아주머니도 못 알아보고
자꾸만 옷가게 들어가 알록달록한 옷만 골랐다.
살아생전 딱 한 번만이라도 팔짱 끼고 왔더라면.
첫댓글 과감한 압축이 안됩니다. 비약하고 삭제해도 여전히 깁니다. 시는 정말 어렵습니다.
나중에 수필로 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