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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師火帝 鳥官人皇 용사화제 조관인황
용으로 관직을 삼은 용사 복희씨, 불로 백성을 먹인 화제 신농씨 성인의 출현을 알린 봉황, 그 상서러움 담아 관직의 상징으로 삼은 조관 소호씨 용으로 하늘의 신령한 기운을 받고 불로 땅의 약동하는 기운에 힘입어 하늘의 뜻을 땅이 받아 땅에 도래할 하늘 성군을 기린다.
始制文字 乃服衣裳 시제문자 내복의상
비로소 문자를 만들고 옷을 지어 입게 하니 복잡해진 사회, 알뜰한 소통 위해 질서와 예를 마련한다. 삶을 살피고 마음 살핀, 언제나 갸륵한 첫 손길 그 손길 길이길이 기억하여 공의와 사랑의 다스림 이어 받으리
推位讓國 有虞陶唐 추위양국 유우도당
지위와 권력에 연연하지 않은 자,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자 그에게 나라와 왕위를 물려주니 유우라 일컬은 순임금이요 도당이라 일컬은 요임금이라 역사가 시작되던 때 올곧게 세워진 참된 길 거듭 바라보고 기억하리 지금 이곳을 비추는 어둠 속 한 줄기 빛으로
弔民伐罪 周發殷湯 조민벌제 주발은탕
백성에 아린 마음, 죄 앞에 추상같은 엄중함 그 뜻으로 나라 세우니 주나라 희발, 은나라 탕왕이라 불쌍히 여길 자 불쌍히 여기고 엄중히 벌할 죄 단호히 끊는 일 나라와 백성 맡은 자, 왕의 길이어라 |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용사(龍용 룡, 師스승 사)는 중국 상고시대, 하늘의 계시로 하수(河水)에 신비로운 용마(龍馬)가 나왔다고 해서 풍운조화를 부리는 용으로 관직 이름을 삼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그런 법을 행했던 복희씨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龍은 용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月(달 월)은 고기 육(肉)으로 용의 몸을 나타내며, 立(설 립)은 용이 서 있는 것, 우측 글자는 용이 약동하며 올라가는 모양을 나타내지요.
화제(火불 화, 帝임금 제)는 처음으로 불을 떼서 익혀 먹는 방법을 연구하여 화식을 시작한 왕인 신농씨를 가리킵니다. 이때부터 농업을 알게 되었지요.
조관(鳥새 조, 官벼슬 관)은 소호씨가 임금일 때 성인이 나와야 출현한다는 봉항이 나와 상서러움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새의 이름으로 모든 관직의 명칭을 정하게 했다고 하지요.
그리고 이제 비로소 인황(人사람 인, 皇임금 황)이 나오는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1차적으로는 중국 시조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지만, 그 대상들이 담아내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은 인류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든 자기 나라의 시조를 하늘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 내려와 땅에 복된 나라를 건설하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시조 설화에서도 하늘이 상서로운 기운으로 땅의 지도자를 세우고 있습니다. 농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통치자가 백성에게 꼭 필요한 먹을거리를 마련해 준 것을 말합니다. 또한 어느 나라든 백성을 어질게 다스리고 나라가 잘 살게 되는 데 성인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지요.
이렇듯 복희씨, 신농씨, 소호씨는 중국의 전설적인 삼황을 가리키지만, 그 왕들을 기리는 내용은 인류 역사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라와 백성을 어질게 다스리는 성인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비로소 글자와 의상이 생기면서 나라의 기틀이 세워지고 오늘날과 같은 제도와 문화가 이뤄집니다. 앞서 등장했던 중국 전설의 왕 복희씨가 신하 창힐을 시켜 새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처음 만들고 또 옷을 지어 입히게 한 것이지요.
첫 시작을 나타내는 始(시작 시)는 女(계집 녀)에 台(별 태)로, 여성이 아기를 품어 안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는 것을 첫 시작으로 본 것입니다.
더불어 乃(이에 내)는 말이 입에서 술술 나오지 않고 막히는 상태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말을 주저하는 느낌을 담은 글자입니다. 그래서 '어찌, 겨우'란 뜻도 있고, 그렇게 어렵게 나올 듯 말 듯하다 '비로소' 말이 나오는 상황과도 연결되어 '비로소'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乃는 여기서 '이에'라고 번역하는 것보다 앞 구의 '비로소 시(始)'를 받아 같은 '비로소 내'로 보는 게 타당하겠습니다.
衣(옷 의)는 상의를 가리키고, 裳(치마 상)은 하의를 가리켜 ‘의상’은 합해서 아래 위 의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裳의 윗 글자는 尙(오히려 상, 가로막다 상)의 변형으로, 북쪽으로 난 굴뚝에서 연기가 위로 길게 올라가는 모양을 본따 밑으로 길게 내려 입은 옷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남자들도 하의를 길게 늘어뜨려 치마같이 입었지요. 그래서 의상이란 상의와 하의를 모두 일컫는 표현인 것입니다.
특별히 服(옷 복)은 '옷, 옷을 입다'는 뜻인데, 月은 肉(고기 육)의 변형으로 '몸'을 뜻합니다. 오른쪽 글자는 ‘다스림을 받는다’는 뜻으로 합하여져 服은 '몸을 다스려 보호한다'는 의미이며, 이 의미가 확장되어 몸을 다스려 보호하는 '옷'을 뜻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앞의 制(만들다)와 대구를 이뤄 동사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글자와 의복이 생겼다는 것은 삶에 질서가 부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건 다른 한편 억압과 통제가 이뤄졌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 틀이 생기고 규정되는 게 생기는 것은, 유익한 방편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을 절대화했을 때는 실제의 다양한 삶의 진면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폐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현실을 잘 담아내고 소통에 유용하게 되는 반면, 그 틀에 담겨지지 못하는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거나 혹은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할 위험이 상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법과 규칙, 어떤 규정, 어떤 틀을 만들 때는 언제나 그 틈새로 빠져나갈 수 있는 현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역동적이고 출렁이는 현실에 열려 있어 지혜롭게 대처해야 삶의 진실로부터 빗겨 나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를 얻은 셈이지만, 상대적으로 말을 잘 못하는 사람, 자신에 대해 말로 잘 표현 못하는 사람을 향하여 우위에 서서 힘과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말빨이 세어 말싸움에 이긴다거나 논리로 누르게 되는 경우지요. 그러면 말로 표현되지 못한 말 때문에 잘 표현 못한 사람의 마음의 실제 현실은 부정되거나 억압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말로 잘 표현 못하는 사람에게 깊이 귀 기울여야 합니다. 자신의 잘하는 말을 타인의 진실을 억압하는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러한 말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는 자의 말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권력과 힘의 도구를 장악한 사람이 힘 약한 다수를 누르고 억압했던 역사들이 먼 사람들의 얘기만이 아니라 바로 나의 얘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두렵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배움터에서도 지켜야 할 것들을 규칙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경계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규칙이 한번 정해지면 그 규칙이 모든 현실보다 우위에 있게 되어, 그 규칙이 다 고려치 못하는 현실, 그래서 새로운 고려와 새로운 적용이 필요한 현실마저 그 규칙에 억지로 끼어 맞춰 그 규칙에 따라 평가하고 판정 지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을 위해, 서로의 소통과 유익을 위해 만든 규칙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소외시키고 고통을 주는 것으로 탈바꿈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한다는 것도 같은 경계심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공부를 해서 뭔가를 알게 될 때, 그것을 사람보다 우월한 지위에 두게 될 때, 그것은 다른 사람을 잘 도울 수 있는 도구가 되기보다 다른 사람을 누르고 억압하는 무기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겠습니다.
실제로 문자와 의상이 만들어져 제도와 법이 마련되고 지위가 정해지고 위엄을 갖추게 되지만, 그것이 도리어 폭압과 폭정의 도구로 사용되고 마는 이야기가 바로 다음 중국 역사에 이어지게 되지요. 인간의 역사란 끊임없는 위험 속에 경계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유리그릇 같기만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글자와 의복이 생긴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어떻게 쓰냐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관건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도와 질서를 정비하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사용하고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을 성숙하게 하는 것이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책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 정책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지요. 사람을 성숙되게 길러내는 일,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겠지요.
다음으로는 요와 순 임금에 대한 것입니다. 중국 전설의 시조 삼황오제에 이어 요와 순 임금이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렸습니다. 요와 순 임금은 중국에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가장 잘 펼친 것으로 전해지지요. 무엇보다도 선양제도로 유명합니다. 요임금은 자신의 아들이 무능하니 나라를 맡아 잘 다스릴 신하를 찾아 그에게 왕좌와 나라를 물려줍니다. 순은 몇 번이고 사양하다 마지못해 왕의 청을 수락합니다. 순임금 역시 자신의 아들이 왕의 자리에 합당하지 않았기에 신하 우에게 나라를 물려줍니다. 거꾸로 보면 유능하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면 그가 아들이라도 왕좌를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습이 문제되는 이유는, 올바른 정치를 펼칠 수 없는데 아들이라고 왕위를 물려주는 것일 테지요.
推(밀 추)는 새(隹추)가 앞으로 날아가듯이 손(手수)으로 힘껏 미는 것입니다. '열어젖히다, 밀고 나아가다'라는 뜻도 있지요. '헤아리다, 짐작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꾸짖다, 힐난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헤아리고 짐작하는 것, 꾸짖고 힐난하는 것도 모두 밀고 나아가야 할 일이네요.
讓(사양 양)의 襄(양)은 '돕다'는 뜻을 가집니다. 讓은 言(말씀 언)이 붙어 '말로 돕는 것'이 됩니다. '무언가를 받지 아니하거나 응하지 않는 것, 또는 남에게 양보한다'는 의미의 '사양하다'에 '말로써 돕는 것'이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讓'에 '양보하다, 겸손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꾸짖다'는 뜻도 있지요. 양보하는 것, 꾸짖는 것, 무언가를 사양하거나 거부하는 것, 모두 '돕는 것'이 될 수 있지요.
推와 讓에 모두 '꾸짖다'는 의미가 담겨 있네요. 선한 일을 행하고 무언가를 양보하는 일과, 꾸짖는 일이 같은 가치와 목적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推位(추위)와 讓國(양국)은 각각 순임금과 요임금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有虞(유우)는 순임금을, 陶唐(도당)은 요임금을 말합니다. 시대적으로는 요임금이 앞서는데 요임금을 뒤에 언급한 것은 8언 끝 글자가 '~앙'으로 끝나는 압운을 맞추기 위함입니다. 원래는 '도당유우'라고 해야 하는데 '당'을 끝에 쓰기 위해 '유우도당'이라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우의 아들(하우씨)이 왕위를 계승(하나라 창건)하면서 중국은 왕위세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후 하나라의 걸왕이 폭정을 행하게 되고, 이에 반발하여 탕이 걸왕을 물리치고 왕이 되어 은나라를 세웁니다. 폭군을 물러나게 하고 세워진 은나라는, 다시 후
대에 주(紂)왕의 패악에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 왕의 패악은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한가. 인간이란 존재가 어디까지 끔찍해질 수 있는가 싶어 참담하지요.
'조민벌죄 주발은탕'의 내용은 하나라 걸왕을 물리치고 왕이 된 은나라의 탕왕과, 은나라의 주(紂)왕을 끌어내리고 왕이 된 주(周)나라 희발 왕(주 무왕)의 이야기입니다. '주발은탕'은 주(周) 나라 발(희발-주무왕)왕과 은나라 탕왕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이 바로 백성(民)을 불쌍히 여기고(弔-조) 죄(罪)를 벌(伐)했다는 내용입니다. 즉,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죄를 벌한 것이 바로 주나라 발왕이며 은나라 탕왕이라는 뜻이지요. 실제론 은나라 탕왕이 앞서지만, 여기서도 8언 끝의 압운을 맞추기 위해 '은탕'을 '주발' 뒤에 쓴 것이라 보여집니다.
한편, 역사라는 것이 권력을 잡은 자에 의해 권력 장악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데 기여하도록 쓰여질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할 때, 앞선 왕들에 대한 평가가 어디까지 진실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많은 기록상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의 폭정과 패악을 부인할 수는 없긴 하지만 말이지요. 이러한 의구심을 공자도 가졌었나 봅니다. 논어 ‘팔일’에서 공자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순임금의 음악은 밖으로 드러난 모양도 아름답고 안에 담겨 있는 의미도 훌륭하다. 무왕의 음악은 밖으로 드러난 모양은 아름다우나 안에 담겨 있는 의미는 훌륭하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죄를 벌했다고 밖으로 얘기되는 대목은 아름다운 내용이나, 실제로는 그저 왕위를 쟁탈하기 위한 반역의 행위가 아니라고 단정짓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이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이고사가 바로 이 사건과 얽힌 이야기입니다. 주 무왕이 은나라 폭군 주(紂)를 칠 때 백이가 만류하나 무왕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백이가 무왕이 다스리는 땅에서는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실제로 왕에게 충성하는 의미를 고지식하게 받아들인 백이가 폭군인 왕에게도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이런 중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비록 은나라의 어느 왕, 주나라의 어느 왕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죄를 엄중히 벌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도 절실히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이것이 뒤바뀌어 죄 지은 힘 있는 자들에게는 관대하고 죄 없는 백성에게는 엄중히 벌을 가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 어떤 나라를 세워 갈 것인가는 그렇게 우리의 일상의 삶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움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조민벌죄의 정신을 철저히 잘 길러 책임 맡은 자리에 서게 될 때 사람들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렇게 역사를 공부할 때는, 그 사건의 배경과 진의를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겠고, 다음으로, 지금 이 현실에서 우리가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을 잘 포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어떻게 보면 중국 역사 초기에 인간 왕의 최고 형태와 최악의 형태가 다 경험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역사는 쳇바퀴 돌듯 좌우를 왔다갔다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동일하게 반복되어 보이는 역사 속에 무수한 인간의 이야기와 희노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그 반복되는 것 같아 보이는 모습이 단순한 반복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단순히 반복이라 치부하기에 앞서, 그 지나간 무수한 과거의 이야기, 역사의 이야기들, 인생의 이야기들이 지금 여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를 더 세심히 귀 기울여 봐야겠습니다. 오히려 늘 다시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아 보이는 역사를 그 수많은 인생들이 어떻게 살았나를 볼 수 있을 터이고, 거기서, 반면교사로 삼을 인생, 깊은 위로와 힘이 되어 줄 인생,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한껏 가르치고 고양시키고 있는 인생들을 풍성히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8.용사화제조관인황 시제문자내복의상 추위양국유우도당 조민벌제주발은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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