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국자감(國子監)
고려는 992년 (성종 11)에 국자감을 설립했다. 이 명칭은 경당에서 수련했던 자제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칭한 데서 황제국의 뜻을 계승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는 국자감 교육을 매우 중요시 했다. 1109년(예종 4)에는 교과 과정을 체계화하기 위해 국자감 안에 7재(七齋)를 설치하였다. 7재는 7개의 전문 강좌로, 주역(周易)을 공부하는 여택재(麗澤齋), 상서(尙書)를 공부하는 대빙재(待聘齋), 모시(毛詩)를 공부하는 경덕재(經德齋), 주례(周禮)를 공부하는 구인재(求仁齋), 대례(戴禮)를 공부하는 복응재(服膺齋), 춘추(春秋)를 공부하는 양정재(養正齋), 그리고 무학(武學)을 공부하는 강예재(講藝齋)로 구성되었다.
고려시대의 과거제도에서 무과(武科)가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가운데 강예재가 포함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당시 여진과의 관계가 긴박했기 때문에 설치되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나 1133년(인종 11) 문신들의 반대로 무학재는 폐지되고 말았다. 인종(仁宗)은 그 동안 형부에 예속되어 있던 율학(律學)을 국자감으로 옮겨 국자학(國子學), 태학(太學), 사문학(四門學), 율학(律學), 산학(算學), 서학(書學)의 경사6학(京師六學)을 설치하였다.
국자감의 입학 자격은 신분에 따라 제한을 받았다. 국자학은 3품 이상, 태학은 5품 이상, 사문학은 7품 이상의 자손이 입학할 수 있도록 규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