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나의 처녀작 한편 더 공유할려 합니다. 천진에서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신문에 올린 글입니다..
천진에서 인기 높은
로췌이 따고우 (崔大糕)
天津市塘沽에서 “따꼬우로췌이” 혹은 “떡 아저씨”하면 별반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곳에서 떡 장사를 하고 있는 료녕성 신빈 출신인 최용덕, 강옥순 부부를 가리키는 소리인데 그만큼 장사가 잘 됨을 말해준다, 이들 부부는 매일 찰떡과 순대 등을 만들어 주변의 회사나 식당에 배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호황(好況)이 절대 쉽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처음 그들은 돈을 벌어보려고 광주. 상해 등 도시를 다니며 짠지장사를 시작했는데 기대처럼 목돈이 잘 벌어지질 않았다, 후에 강옥순은 10 여 만 원을 꾸어 일본행을 했지만 5개월 만에 쫓겨 오다보니 빚만 가득 걸머지게 되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빚을 갚아야 하고 자식들 공부도 시켜야 했다,강옥순은 재차 고향을 떠나 이번에는 천진으로 오게 되였는데 처음 사촌언니의 소개로 어느 한 떡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볼라니 이곳에는 한국회사와 조선 식당이 많은 반면 떡집은 희소해 떡이 잘 팔리는 지라 자기도 떡 장사를 해 보고픈 마음이 간절해졌다, 한동안 기술을 익힌 후시장조사도 재차 꼼꼼이 하고난 후 남편에게 전화를 하여 돈 몇 천원을 마련해 오도록 했다, 그들 부부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간단한 기계설비들을 장만한 후 1998년 8월부터 떡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기떡과 찰떡. 순대 등을 몇 근씩 가방에 넣고 이 거리 저 거리, 이 식당 저 식당을 찾아다니며 팔았다, 그러다 점차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 번에 수십 근을 요구하는 집도 있었다, 후에는 떡 종류도 늘이고 아울러 음식 질에 대해서도 더욱 신경을 쓰게 되였다, 절편이 너무 두껍거나 순대가 배달도중 터져 되 돌 려 올 경우 경제적인 손실도 손실이거니와 신용을 잃게 되면 고객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매일 수백원어치의 떡을 만들어 주문 호에 배달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떡 장사로 마침내 수 만원 의 빚을 몽땅 갚았고 대학교 고중에 다니는 두 딸의 뒤 바라지까지 하면서 백 여 평의 아파트까지 장만했다,
료녕조선 신문에 올린 글 2004. 02. 20. 3면
이외 수상작품 몇 편은 내 자서전 책에 부록으로 되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있어 다시 공유합시다.
1. 화단
한국 월간지 "샘터" 잡지 (2012년 7월 호
2. "칵"하면 안되요
해남군 65세 이상 로인 치매예방 글짓기 수상 (2019..11.20
3. 옛날 동네 우물
한국 kbs 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2020
4. 배위에서 아홉달 생활
연변잡지 2020년 3월 호
5. 설악산을 오르다.
한국 kbs 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2020.08.03
나의 자서전 전부 맺습니다. 그동안 동창여러분들이 나의 글을 사랑해주고 읽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동창여러분들도 나와 같은 고생도 있었을 것이고 또한 나보다 더 좋게 지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러쿵저러쿵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창 여러분들 앞으로 남은 인생을 더 즐겁게 더 만족스럽게 건강한 몸으로 살아 갈 것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