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옹(晩翁) 서명서(徐命瑞)1711년(숙종 37)~1795년(정조 19) 대구(大丘)
영조 37 1761 신사 乾隆 26 51 1월, 宜寧 縣監이 되다. ○ 東軒을 ‘愛民軒’이라고 명명하다.
영조 38 1762 임오 乾隆 27 52 「金鶴峯龍蛇日錄」의 간행을 주간하다.
영조 41 1765 을유 乾隆 30 55 7월, 모친을 위해 養老禮를 행하다.
〈詠恩字揭愛民軒〉은 의령 현감으로 부임하며 과거 중앙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받았던 영조의 깊은 은혜를 되돌아보고 직무에 전념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晩翁集卷一 達城徐命瑞伯五著○男祖修輯 / 詩 / 詠恩字。揭愛民軒。並序
聖上庚辰正月十二日。臣命瑞以王世孫衛從司右從史。陪世孫。侍坐于崇文堂書筵。上命世孫讀小學書題。仍命臣陳文義。臣拈出愛親二字。仰勉世孫。上以其語要約。大加稱歎。俯詢賤名。筵臣有以故南原府使徐宗鎭之侄仰對者。上曰然乎。是予銅闈時桂坊也。今其侄又爲世孫講官。事非偶然。所陳篤實。特命陞敍。臨罷笑謂臣曰。汝當爲守令。是予薦也。汝以愛親二字勉世孫。予則以愛民二字勸汝。予聞縣齋謂之東軒。汝須臥東軒而須愛吾民也。臣拜受溫音。感泣而退。後數日。陞典牲主簿。以入直官。特賜輪對。是夏禱雨。累度親臨。臣例以掌牲令進。輒使臣入侍于版位前。及六月都政。遷地部郞。亦以事頻使召問。翌年元日太廟展謁時。以前例房入侍于永寧殿東庭。越三日夜。除宜寧縣監。今當辭殿陛而赴南邑。奉版輿而享專城。烏鳥之私情雖伸。犬馬之餘戀彌切。仍竊念如臣無似。猥以微末蔭僚。昵侍經幄。襯近耿光。前後召接。殆逾十數。天笑藹然。敎誨諄諄。若家人父子。或稱以故人之子。或勸以功令之業。郞官一麾。皆以低擬。荐被恩點。榮寵眷遇。逈出尋常。怵惕感激。寤寐不諼。涓埃塵刹。圖酬無地。而惟前年所受愛民二字。卽此日微臣報效之方也。將於赴任後。卽當以此二字。敬揭扁額于政軒。坐臥昕夕。常目銘心。視民如傷。若保赤子。使此百里之民。得免於失所之歎。則庶幾不負我聖上丁寧敎戒之萬一云爾。
星署雷封摠異恩。微臣何以答吾君。愛民二字親承訓。敬刻華楣揭政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