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18.2.17 .9:30
만난곳:도봉산역(7호선)
산행지:도봉산
참가자:김상희,호경,남영우,엄형섭,윤한근,이강호,대용,성열,정우,종구,종원(이상 11명)
산행기록:김호경
약속시간 보다 15분 이르게 도봉산驛 하차, 좀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상희 회장도 같은 차에서 내린다,
미팅 포인트엔 종원이가 이미 와 있고. 이어서 형섭·영우·정우·대용·종구·성렬·강호·한근이 모두 제 시간에 show-up했다.
요즘 이 모임 저 모임의 비슷한 현상은 대체로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 시간 딱 맞춰 가면 꽁무니에나 앉기 일쑤.
이 나이엔 친구 만나는 거만큼 좋은 게 없으니 제 시간까지 기다리는 걸 참지 못해서일 것,
약속을 해 놓으면 왜 그리 때가 기다려지는지... .
“11명인데... 더 기다려?”
“오는 사람은 늦을 거 같으면 지가 먼저 전화한다구, 가세!”
날이 아주 청명하다. 좀 차다. 정면으로 뵈는 멀리 仙人峰이 해를 받아 매우 찬란하다.
始山祭 지내는 날, 過年엔 점지한 제사지낼 장소를 선점 당할까봐 서두르기도 했는데,
당일은 날이 차고, 설 연휴기간이라 그런지 산객이 눈에 띠게 적어 장소를 선점당할 염려는 없을 듯,
그래서 여유 있게 산행 시작.
날이 차고 땅이 얼어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에 동절기엔 선뜻 집 나서기를 꺼려들 하지만, 정작 나서면 하절기 보다 산행이 훨씬 편하다,
날이 차서 땀을 덜 흘리니 덜 지친다. 걸으면 몸에서 열나는 걸 느끼고 더 열심히 걷는다, 씨너지!
당일, 우리 11명 일행은 거의 한 뭉치로 팀을 이뤄 산을 탔으니 老益壯은 바로 이런 현상을 표현한 말이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나온 형섭·영우·정우·대용이 오히려 팀을 리드한다.
산 속 익숙한 길임에도 오랜만에 들어서면 나무계단, 철난간 등 인공 설치물들이 새로 들어선 걸 왕왕 보고 이 게 그 길인가 한다.
산길 보호의 측면도 있고, 산객의 안전보행도 도모하고, ,..,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설치를 긍정적으로 보는데 자연 속 인공물 그 자체를 싫어하는 이 또한 많다.
맨길(?)이었던 도봉산장-->天竺寺 구간엔 전에 없던 돌계단이 널찍하고 단정하게 깔려있다.
이 길을 걸은 지 그렇게 오래 됐나..., 어느 새 이 공사를 했단 말인가.
‘天竺’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편안하게 하자는 佛心의 보시일 것이다.
도봉산 입구 --> 금강암 갈림길 --> 도봉산장 --> 천축사 --> 마당바위 · · · 관음암 못 미쳐
왼쪽으로 행보를 틀어 인적 드믄 길을 좀 걸으면,
벌써 여러 해 本會가 도봉산의 제사 明堂이라고 입을 모은 곳에 도달하게 된다.
祭祀란 무엇인가?
인간의 祭祀역사는 아마 호모사피엔스의 역사와 같이 할 것이다. 태초엔 인간이 어느 동물보다도 나약했다더라.
그 나약한 인간에게 자연의 무수하고 무서운 변화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고,
하늘·땅 사이의 森羅萬象이 萬變無常하는 것을 외경하다 그 것들을 다스리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를 神이라 부르며 의지하니, 때가 되면 그 神靈에게 제물을 바치며 無事安寧을 빌어온 것이라더라. 그러면서 수만(?) 년...
AI네 Big data네 하며 4차산업혁명을 운운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2%(20%?)가 부족하다는 조짐을 느끼는 것은,
재벌회장이 풍수도참가를 은밀히 불러 첨단산업 제품 공장 지을 터를 자문하는 것은, ...
어느 민족이라고 토속신앙이나 풍수를 따지지 않겠냐만 우리 민족의 그 것은 더 유별나다는 생각도 한다.
또 陽曆이 생활의 기조가 된지 언젠데 神靈을 받드는 제사는 여전히 陰曆을 따라야 뭔가 神과 제대로 通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始山祭는 보통 음력 正月 초하루~보름 사이에 지내는 것이라는 통설이 있는데
本會의 2월 산행일 세 째 토요일은 대체로 그 기간에 들어가니 이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상산회 출범 22년 차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도 그 동안 山祭를 정성으로 지낸 덕에 탈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그래도 시산제에는 꼭 참석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이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 할 것이다.
시산제 명당자리라고 점지한 도봉산의 그 작은 봉우리, 도봉산의 요충을 두루 眺望할 수 있는 곳은 여러 포인트가 있을 것이나
本會는 그 곳이 그 중 으뜸이라고 여겨 여러 해 제삿자리로 찾고 있다.
다만, 봉우리의 암봉 좌대가 그리 넓지 않은데 祭를 지내는 2月엔 눈과 얼음이 여전히 덮여 있어 slip의 우려가 있는 것이 실상,
그래서 이 번엔 그 봉우리 아래 커다란 岩壁으로 신령님을 모시고 산제를 지냈다 (작년에도 그랬더군).
酒果脯醯를 진설하고, 상희회장이 降神의 禮로 재배하고, 다시 일동재배로써 參神한 후,
이어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 ·의 순서로 ‘단기 4351년 戊戌年 정월 초이틀
저희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69학번 상산회원 일동’은 도봉산에 올라 산신령님께 제를 올렸던 것이다
(*유첨 祝文 참조 : 윤한근 총장 작문).
상산회는 언제부터 산제를 지냈을까... 이 산에서도 지냈고 저 산에서도 지냈고. 검단산에서, 북한산에서, 도봉산에서, 청계산에서, ...
적설량이 대단해 제수를 진설할 자리가 마땅치 않을 땐 정강이까지 차는 눈을 밟아 祭壇을 만들기도 했고,
승기가 會를 이끌 땐 朔風 이는 한 겨울 눈 쌓인 太白山 將軍壇에 내리 3년 祭需를 陳設했다.
축문의 내용도 시대를 살아오며 主調가 변해왔다 ;
- 젊었을 땐(?) ‘목 축일 물이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시고...’
- 힘이 좀 부친다고 생각한 시기엔 ‘반드시 정상에 오르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며...’
- 산을 아끼는 마음이 들어서고는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산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 급기야 이 번 시산제 축문엔 ‘人生七十古來稀’가 우리의 현재임을 告知했는데,
결론은, 항상 앞으로도 계속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기를 神明께 빌었다는 것.
밖은 여전히 차나, 셸터를 치고 그 안에 11명이 둘러앉으니 陽光이 ‘온실’ 안의 온기를 높이고,
성열의 보드카·종구의 (自費) 위스키 (자비를 굳이 강조함은 김영란法으로 이젠 들어오는 게 없다나...)가 비등점을 또 높이니
온실 안은 육신의 수증기로 외부와 시야까지 차단되고, 신령님께서 歆饗하고 남기신 편육·북어·棗栗柿李와 나물·찌게 등
‘젯밥’을 향유하며 왁자지껄하니 시간은 물 흐르듯 지나가고..., 다시 ‘거북바위’를 거쳐 ‘작은 마당바위’를 지나 원점으로 하산.
사진을 찍다 보니 주로 可聽 거리 밖에 있어 동무들이 산길 걷는 중에 무슨 이바구를 했는지 잘 듣지 못했으므로
여기에 옮길 수가 없고, 젯밥 먹으며 시끌시끌하게 떠들었던 세상사는 통음 중에 聽했기에 기억이 없소이다.
하산 후 뒷풀이에서의 野說은 소생이 아예 동석하지 못하였기에 또한 적을 수 없으니...(누가 좀 적어주소).
사진 박는다고 오랜 세월 산행기 집필(!)에서 빼 주더니 상희 회장이 이 번엔 ‘찍사’에게 쓰라고 하네.
평소 회장님 命에 토 달지 말라고 곁들며 호가호위한 죄가 있어 군소리 않고 명을 받았는데....,
댓글 몇 줄 다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댓글은 달아도 그만 안 달아도 그만인데 이 건 꼭 써야하고.
지난 달 산행기는 몇 줄 絶句로 긴 산행을 재미있게 다 포괄했는데, 요령없이 길어졌소.
始산제는 산타기를 始작하자는 것, 3월부터는 春節 시작, 동면하고 계신 산우들도 깨어 나와 산에서 봅시다.
백두산(백살까지 두발로 산에 갑시다)!
단기 4351년 시산제 축문
단기 4351년 戊戌年 정월 초이틀 저희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69학번 상산회원 일동은
이곳 도봉산에 올라 산신령님께 제를 올리나이다.
이십 여 년 전 어느 봄날 저희들이 모여 스스로를 상산(商山)이라 이름 짓고
그로부터 매달 산을 찾기 시작한 지 어언 햇수로는 22년째에 접어들었고
산행 횟수로는 250회를 넘겼습니다. 그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저희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 날짜에 매달 산을 찾았습니다.
20주년을 맞은 작년에는 봄에 일본 북알프스 니시호다카를 등반하면서
히말라야급 장관에 감탄하였고 가을 원행으로 금수산에 가서는 어떤 산행도 만만치 않음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250 여 회 산행을 하는 동안 항상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신 산신령님의 가호에 감사 드리면서 금년에도 저희들의 산행을 즐겁고 안전하게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어느 새 우리 모두 일찌기 杜甫가 《曲江》에서 읊었던 "人生七十古來稀"의 언저리를 살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산을 향한 열정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바람도 방향을 바꾸듯이 이제는 저희가 굳이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눈 앞에 펼쳐진 풍경과
발아래 피어있는 들꽃의 아름다움을 완상하며 유유자적하는 산행에 만족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예로부터 만상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있다 하였으니,
저희들이 무엇이든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그 기쁨이 전과 같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울러 森羅萬象의 모든 존재를 귀히 여겨 그들이 우리로 인하여
다치거나 더럽혀지지 않도록 주의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비오니 이 모임의 중책을 맡아 애쓰는 집행부와 산행활동을 이끄는 산행대장,
산행기록을 작성하는 사진작가와 일일 사관(史官)들의 노력과 희생을 가상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지혜와 힘을 주시옵소서. 또한 모든 회원들이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달 산행에 자주 참여하여 이 모임이 오래오래
지속되도록 하시옵소서. 끝으로 오늘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 회원들에게도
산신령님의 지극하신 보살핌이 두루 미치게 하시옵소서.
준비한 제수가 비록 조촐하오나 같이 올리는 한 잔 술과 함께 흠향하소서.
단기 4351년 戊戌年 정월 초이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69학번 상산회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