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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생활의 최고의 법
<제2장 성경에 나타난 순종한 자에게 주어지는 결과>
2015년 6월 7일 / 대예배 / 신명기 28:1-14
성경을 한 번 읽으면 기억해야 할 말씀이 꼭 있다면 요한계시록 22장 7절 말씀입니다.
계 22:7 / 보라! 내가 속히 오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확실하고 참되다. 이 일을 믿고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예언을 지키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외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 믿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눅 18:7-8 /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간구하는 그의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해주시지 않겠느냐? 8)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신속히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다시 돌아올 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과연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돈이나 인맥이나 지식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복을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은혜를 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복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란 말을 메아리로 생각해 봅니다. 메아리의 특징은 자신이 말한 대로 메아리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나쁜 놈아. 못된 놈아.”라고 외친다면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10배의 소리로 되돌아옵니다.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신다.”고 외쳐보면 메아리가 자신에게 복의 말로 되돌아옵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어떤 말을 내뱉느냐?’에 따라 복이 오기도 하고 저주가 오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후에 축복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창 1:27-28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따라 당신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28) 그들에게 이렇게 복을 내리셨다. “딸 아들 많이 낳아 그 후손들이 온 땅 위에 퍼져라. 땅을 정복하여라. 내가 바다에 사는 물고기와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와 땅 위에 기어다니는 온갖 짐승들을 다스릴 권한을 너희에게 주마. 너희는 그것들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여라.”
■ 몇 번 예로 들었지만 예수 믿고 변화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과테말라 산악지대에 위치한 작은 도시 ‘알모롱가’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인구 2만 여명의 이 도시는 30여 년 전만 해도 기독교 인구가 0%에 가깝습니다. ‘마시몽’이라는 우상을 섬기며 늘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성인 남자들은 대부분 알코올 중독으로 크고 작은 싸움이 잦아 4개의 교도소로도 수용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알모롱가는 지금은 98%가 예수를 믿고 깨끗하고 은혜로운 도시로 변했습니다. 36곳의 술집 중 33곳이 사라졌고, 늘 만원이던 교도소는 모두 폐쇄돼 주민행사나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도 거의 사라졌고 모든 가정이 회복됐습니다.
이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이 도시를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하며 사역 중인 리스카흐체 마리아노(54·알모롱가 갈보리교회)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나를 섬기게 하기 위해 내가 너를 선택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된 그는 1970년대 중반 영적 전쟁을 선언했습니다. 일주일에 3∼4일씩 금식하며 우상이 떠나가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영적 전쟁은 매우 격렬했습니다. 어떤 이는 교인들에게 먹을 것을 팔지 않았습니다. 교회로 몰려가 예배를 중단시키려 마술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협박과 생명의 위협에도 이 지역에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어느 날 폭력배들이 마리아노 목사를 끌고가 손을 묶은 뒤 안면을 후려쳤고 입에 총구를 넣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마리아노 목사는 자신을 보호하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따그닥, 따그닥” 소리만 날 뿐 총은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간섭에 놀란 폭력배들은 겁을 먹고 그 길로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목숨을 건 영적전투를 통해 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귀신들이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가 낫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며 예수 믿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범죄는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돌세례를 퍼붓던 깡패들이 모두가 변화되어 지역 목사들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의 위력은 이 지역 사람들의 근면과 끈기로 이어졌습니다. 이 지역은 매년 다양한 농작물들로 풍성하였습니다. 샐러리, 파, 꽃양배추, 양배추, 감자, 당근, 무 같은 농작물들이 현지 농부들의 세심한 돌봄 속에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이 야채들은 인근의 다른 마을에서 자라는 것들보다 2∼3배 크고 맛도 더 좋아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농작물의 축복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미국의 농업 연구가들이 수확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과학적 원리를 시험하기 위해 알모롱가를 방문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과학적 방법으로 출하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지혜를 알모롱가 농부들에게 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과테말라의 다른 도시에 있는 목회자들도 기도와 사역으로 알모롱가를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알모롱가는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변화됐습니다. 현지 주민들은 옆 도시인 ‘쉘라’를 알모롱가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켜 달라고 중보 기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의 기적을 보려 몰려들고 있습니다. 현재 5,000여명의 사역자들이 이곳에서 신앙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과테말라 사람들은 알모롱가를 ‘교회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의 순종 여부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을 잘 지킬 때에는 축복을 받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가 있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축복의 땅 가나안이 오히려 저주의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7장은 선포적 의미로서 율법이 선포하면 아멘으로 화답하며 순종으로 동의(同意-의견을 같이함)하는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28장 역시 같은 맥락에서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 삶의 전 영역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장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성도는 하나님이 선택한 보배로운 백성이기 때문에 믿음이 수반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삶의 현장에서 자신 있게 표현하고 마음껏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신명기에 보면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 정직을 심으라 : 옛날 어느 왕이 한 마을 사람들의 정직성을 시험해 보려고 볶은 꽃씨를 나누어 주면서 얼마 후 이 마을에 다시 올 때 화분에 이 꽃씨를 심어 잘 기른 사람에게는 상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 꽃씨를 화분에 심고 열심히 길렀지만 웬일인지 싹이 나지 않아 똑 같은 꽃씨를 구하여 다시 심어 아름다운 꽃들을 피웠습니다. 드디어 왕이 오시는 날 거리는 그들이 정성껏 가꾼 꽃들로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틈에 싹이 나지 않은 흙덩이만 들어있는 빈 화분을 안고 울고 있는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왕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더 서럽게 울면서 “내 꽃씨는 웬일인지 싹이 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그 아이에게만 상금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정직성을 알아보려고 볶은 꽃씨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갈 6:7-10 /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8) 만일 자신의 악한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악한 씨앗을 심은 셈이 되어 그 결과 죽음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좋은 것을 심는 사람은 성령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9)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실망도 포기도 하지 않고 꾸준히 선을 행하다 보면 복을 거두어들일 날이 올 것입니다. 10) 기회 있을 때마다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십시오.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실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항상 축복과 생명, 저주와 멸망을 두셨습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과 복을 얻도록 하게 하려는 것이지 결코 불순종을 전제로 하여 말 안 들으면 화를 받게 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끝까지 많은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외면하고 끝내 불순종할 때에는 멸망과 저주가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 이러한 의도를 알고 실행하면 어떤 복이 준비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신명기 28장 1-14절에서 먼저 순종하는 자에 대한 복을 말씀해 주신 후에 15-68절에 걸쳐 불순종하는 자에 대한 저주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심으로 조금이라도 불순종으로 인한 저주가 눈에 띄면 회개하고 엎드릴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달라지는 확실한 증거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는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는 인생을 살 것인지에 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명확하게 갈림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성도는 ‘복’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부터 확실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믿음 = 물질적인 복’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심 있는 신앙생활의 결과는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하게 되며 생활의 어려움이나 뜻하지 않은 재난은 나태한 신앙과 죄의 결과라는 개념입니다. 만일 이런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이 성도들보다 더 형통하는 경우가 많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본 장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복의 개념과 저주의 개념을 바로 알고 신앙을 확실하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분명히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해주십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만사를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형통만 바라보고, 축복만 바라보는 것을 기복주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복을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복이 온 것이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순서를 잘 정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세부적으로 보면 1-6절은 개인적으로 받을 복을, 7-14절은 민족적으로 받을 복에 대한 내용입니다. 15-19절은 개인적인 저주와 20-68절은 민족적인 저주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1절 /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한 주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세상의 모든 민족들보다 높여 주실 것입니다(개정개역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삼가 듣고(솨모아 티쉐마:)’는 “너는 듣고 또 들을지니라”인데 주의 깊게 경청하라는 뜻입니다. 쉐마의 말씀처럼(신 6:4-9)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고,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는 부지런히 가르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세입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주의하여 경청하는 것은 말씀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아는 자들의 믿음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것은 불신앙의 죄를 범하는 것이지만, 외식으로 행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는 가증스럽게 여기시고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믿음과 행함이 하나가 되도록 신앙생활을 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도와 한 나라가 복을 받을 수 있는 전제 조건으로 말씀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율법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불신자나 다른 민족들이 가질 수 없는 특권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별(區別)하셔서, 그들에게 순종에 따른 복을 주시려고 주신 약속이 곧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습니다. 음식을 편식(偏食-특정한 음식만을 가려서 즐겨 먹음)하지 않고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그렇듯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욕심이나 비판하는 마음을 비우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공비법은 듣는 자세에 있습니다. 듣는 마음, 듣는 귀에 복이 있습니다. 내 이성적 비판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상대가 납득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들을 다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을 주시는 분은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도 그냥 믿고 ‘아멘’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예배 때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아도 끝으로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내 경험을 버리고 당신의 길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신앙은 내 생각을 버리고 내 뜻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말씀에 의해서 확증을 얻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환경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는 기회요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중에서 뛰어나게 하십니다.
그런데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데는 고난의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할 때 고난을 주시고 고난을 통해서 사자와 독수리같이 만들어주십니다. 실제 이스라엘 민족은 모든 민족 중에 뛰어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 1절 말씀은 신명기 28장 전체의 서론과도 같습니다.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복을 나열하시면서 그 전에 복을 받을 조건을 제시하신 것이 1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조건에 비하여 과분한 복을 하나님은 예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복을 받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는 먹지 말고 다른 모든 것은 먹으라고 하셨는데, 아담은 다른 모든 과일보다 선악과가 더 맛있어 보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었다고 죽기야 하겠어?”하는 반 정도 의심하는 마음으로 선악과를 먹고 죽었습니다. 복 대신 저주를 받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쳤지만 사람들은 노아를 ‘노인네가 미쳤다’고 하며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내리시는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롯의 사위는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예고했을 때에 ‘농담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 모두가 말씀에 대한 진지한 마음이 없어 복 대신 저주를 받은 예입니다.
말씀에 대한 진지함과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저주를 받았거나 저주 가운데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으십시오. 세상의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부당한 대가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오히려 우리들의 적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복을 받게 하십니다.
잠언 8:34에는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0:38절에 나오는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문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좋은 자리에 앉으려고 미리 와서 문 앞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이미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왜 복인지 아십니까? 듣는 것은 믿음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구원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 5:24 / 누구든지 내가 전하는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는 결코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2절 /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다음과 같은 복들이 모두 여러분에게 이르러 여러분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 모든 복들이 너를 따라 와서 낚아채도록 만들 것이다.”는 뜻입니다. 순종하는 자는 특별히 복을 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모든 복들을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성도가 율법을 완전히 수행한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복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후일 예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입니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와 그에 따르는 복은 유기적인 함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복(福)이란 기본 동사 ‘무릎을 꿇다’란 뜻입니다. 이것은 곧 복(福)의 기원을 말하는 바, 모든 복은 위로부터 임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순종의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한편, 성경을 주의깊게 고찰해 보면 복(福)에는 두 가지 차원(次元)의 복이 있습니다. ①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차원의 복이요 ② 영적이고 내세적인 차원의 복입니다. 전자가 부차적(副次的)이고 상대적이며 일시적인 복이라면, 후자는 근원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복입니다. 계시(啓示)가 발전되어 있지 않은 구약 시대에는 복의 개념이 주로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으로 강조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완전 계시된 신약 시대에는 내적이고 영적인 측면으로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구약시대를 막론하고 복에 대한 성경의 근본 개념은 동일합니다. 곧 참된 복은 인간이 추구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인데, 이것은 곧 순종에 기반을 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 성립’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즉 복이란 단순히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어떤 유익의 단계를 넘어 바로 하나님 자신이 참된 복의 근원이요, 복 그 자체란 뜻입니다(창 15:1; 요 15:5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안에 살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말씀에 대한 순종은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복이 되어 주신 데 대한 의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진정 성도가 추구하여야 할 복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는 영적이고 내세적인 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산상수훈의 8복도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마 5:3-12). 오늘날 개인의 장수, 부귀, 명예, 득남(得男)등이 복의 전부인 양 착각하고 끊임없이 개인의 물질적 축복만을 비는 기복 신앙(祈福信仰)이나 또는 ‘신앙=물질적 복’의 사상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부차적(副次的 - 기본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에 곁 딸린)인 복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때로 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두시기도 하십니다(삼상 2:7). 그러므로 욥과 같은 신앙자세를 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욥 1:21-22 /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 뱃속에서 빈몸으로 나온 이 몸 다시 빈몸으로 돌아갈지라. 여호와께서 주셨으니 가져가지는 분도 여호와시라. 오직 여호와만이 찬양받으실지라.” 22)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도 욥은 그릇된 일을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떤 때는 사랑하는 자에게 그 신앙의 유익을 위하여 물질적 궁핍이나 역경을 일부러 허락하시기도 하십니다(히 12:5-13).
히 12:5-12 / 하나님께서 마치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듯이 여러분에게 격려의 말씀을 주신 것을 여러분은 벌써 다 잊어버렸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주께서 네게 징계를 내리실 때 너는 화를 내어서는 안 된다. 주께서 네 잘못을 책망하실 때 너는 좌절해서는 안 된다. 6) 주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것은 너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너를 채찍으로 때리시는 것은 네가 하나님의 참 자녀이기 때문이다.” 7) 하나님께서 내리는 시련을 참아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당연히 자녀에게 하실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로서 자기 자식을 단련시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8) 만일 여러분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녀가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듯 하나님의 질책을 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도 가족도 될 수 없습니다. 9) 비록 우리를 낳아 준 아버지가 우리를 꾸짖고 야단치는 일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를 따르고 존경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참되게 사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시련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10) 우리를 낳아준 아버지는 우리의 앞날을 위해 그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우리를 훈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나누어 주려고 언제나 바르게 견책하시는 것입니다. 11) 무슨 벌이든 벌 받을 때는 즐겁기보다는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그것이 유익한 결과를 낳아 믿음이나 성격이 다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느슨해진 주먹을 힘껏 쥐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일으켜 세우십시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축복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전적으로 맡기고, 매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참되고 복된 생활을 추구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3절 / 여러분은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녘에서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이 말씀은 순종하는 자는 어디서든지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모든 장소에서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브라함과 같이 복의 근원이 되고, 요셉과 같이 형통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 내려갔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하나님은 그의 범사에 복을 내려 마침내 당시 대제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축복을 받은 것은 두 사람 모두 순종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그 사람이 있는 곳, 즉 그 직장과 그와 관계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절 / 자녀들도 건강하게 태어나 훌륭하게 자라며 농작물도 풍성한 수확하게 되고 소나 양과 같은 가축들도 번성할 것입니다.(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자손의 번성으로 가문이 번창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자손의 복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창 22:17 / 내가 네게 복을 내리리라. 한없이 복을 내리리라. 내가 분명하게 약속한다만 네 후손이 하늘에서 총총히 빛내는 별처럼 엄청나게 불어나게 하리라. 네 후손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지리라. 네 후손들이 그 원수들을 쳐부수고 원수들의 성을 정복해 버리리라. 사 61:9). 토지의 소산은 농산물의 생산이 풍성해 질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셔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신 11:14 주께서 여러분의 농경지에 봄비와 가을비를 철따라 내려 주셔서 여러분이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을 수확하게 되고). 짐승의 새끼들은 축산에 있어서의 모든 받게 되는 복으로, 윤택한 생활이 보장이 될 것입니다.
■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중에는 복을 타고나서 걱정을 모르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무수옹(無愁翁) 설화’입니다. 무수옹은 열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자식들 모두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서로 모시려 하자, 무수옹은 한 달씩 돌아가면서 아들의 집에서 살고 윤달에는 딸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어느 집에 가든지 행복한 웃음이 넘쳐났으니 과연 걱정이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임금은 노인을 시험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노인을 불러 진귀한 구슬을 주면서 ‘언제든지 가져오라 하면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임금에게서 귀한 구슬을 받은 노인은 기쁜 마음으로 강을 건너는데 뱃사공이 구슬을 구경하다가 그만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실은 임금이 일부러 그러도록 시킨 것인데, 노인의 복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주 난처한 상황에 빠진 노인은 이 같은 사실을 자식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위로하며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때 며느리가 저녁을 지으려고 생선 몇 마리를 사와 배를 갈랐는데 한 생선의 뱃속에서 구슬이 나왔습니다. 다름 아닌 노인이 임금에게서 받은 구슬이었습니다. 노인은 구슬을 들고 궁궐로 들어가 그간 구슬에 얽힌 이야기를 임금에게 전합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무릎을 탁 치며 ‘하늘이 내린 복은 어쩔 수 없다’며 감탄했습니다. 과연 엄청난 복을 타고난 노인입니다. 누가 며느리가 사온 물고기에서 구슬이 나올 줄 알았을까요?
세상에는 천복(天福)을 타고난 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무수옹이 꼭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수옹만큼이나 하늘의 복을 타고난 자들이 있습니다. 아니 무수옹보다 더 큰 복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신명기 28장을 함께 보고 듣는 우리들입니다.
5절 / 그래서 광주리마다 온갖 과일이 가득 차고 떡반죽 그릇에도 항상 곡식이 가득 찰 것입니다.(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광주리는 토지 소산물을 담아 곳간에 넣어 두는 그릇을 가리키며, 떡 반죽 그릇이란 매일 필요한 음식들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부풀리는 ‘반죽 통’으로, 매일 필요한 양식을 공급 받는 모든 그릇을 가리킵니다. 하루하루 필요한 모든 양식(일용할 양식)에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해서 한 줌 남은 가루를 바치니까 아무리 퍼내도 그 통에서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부어도 그 병에서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말씀에 순종하니 복이 넘치도록 임한 것입니다. 한 어린 소년이 주님 말씀에 순종해 오병이어를 바치니 5000명이 먹고 12바구니나 남는 복을 누렸습니다. 모두 말씀에 순종하여 누린 복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야속합니다. 한 줌 남은 가루를 바치라고 하고, 한 아이의 초라한 도시락을 바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적인 판단이나 계산을 접고 무조건 그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질적인 축복, 떡 반죽 그릇이 넘치는 복도 거저 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며 살 때 누리는 복입니다.
6절 / 여러분은 집안으로 들어와도 복을 받고 집 밖으로 나가도 복을 받아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될 것입니다.(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일로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항상 복을 받게 됨을 가리킵니다.
■ 유대인들만큼 뛰어난 민족이 없습니다. 유대인이 우수한 것은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기 때문인가요? 1993년 스텐포드 젠센 교수는 유대인 영아들이 동양인 영아들보다 미숙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 했습니다. 나라 잃은 민족으로 2천년동안 유량생활을 해야 했던 저들이지만, 2014년 노벨수상자가 모두 12명으로 그 중에 6명이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려 179명의 유대인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돈 주고 받았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겨우 한명 아닙니까? 그리고 미국 100대 기업 중에 40개가 유대인 소유이고, 하버드 대학 30%가 유대인이고, 예일대는 27%, 보스턴 대학 24%의 학생들이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미국 전체 유권자의 1.3%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상하원 8%가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선거 때마다 민주ㆍ공화 양당 모두 선거자금의 60%를 유대인들에게 의존합니다. 그만큼 유대인의 파워가 큽니다. 그러면 왜 유대인들이 모든 민족위에 그렇게 뛰어날까요?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외우면서 성장합니다. 말씀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도 하고, 문설주에 붙여 놓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이 성경책을 늘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두루마리책에다 꿀을 발라놓기까지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므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가진 성경은 글자는 같아도 문학서적과 같은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진리요 생명의 말씀입니다.
7절 / 원수들이 일어나 여러분을 치러 오면 여호와께서 여러분 앞에서 그들을 땅바닥에 메어치실 것이니 그들이 한 길로 여러분을 치러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칠 것입니다.(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전쟁에서의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달려있지 않으며, 오직 여호와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신 32:30 / 내가 만일 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면 반석처럼 안전하게 그들을 보호하던 내가 원수들의 손에 넘겨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한명의 원수가 내 백성을 천 명이나 몰아내고 두 명의 원수가 내 백성을 만 명이나 도망치게 할 수 있었겠는가?)
수 10:9-14 / 여호수아는 부하들을 이끌고 길갈을 떠나 밤새도록 올라갔다. 그러다가 아모리 연합진영에 다다라 갑자기 공격하였다. 10) 여호와께서 그들을 큰 공포에 빠뜨리자 그들은 이스라엘군을 보고 놀라서 달아날 뿐이었다. 이때 이스라엘군은 그들을 그곳 기브온에서 크게 쳐죽이고 또 벧호론 언덕을 넘어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추격하였다. 11) 아모리 연합군이 벧호론 언덕을 내리달릴 때에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하늘에서 큰 우박을 마구 쏟아부으셨다. 이스라엘군의 칼에 쓰러진 사람들 보다도 우박에 맞아 쓰러져 죽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1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군이 아모리 연합군과 싸워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하시던 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여호와께 외쳤다. “해야! 멈추어라. 기브온 위에 멈추어라. 달아! 멈추어라. 아얄론 계곡 위에 멈추어라. 그 위에 멈춰 서라.” 13) 그러자 해가 꼼짝하지 않았다. 달도 멈추어 섰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의 온 지역을 점령할 때까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였다. 야살의 책에도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서서 꼼짝 않고 하루 종일 그대로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4) 이런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말을 들어주셨던 날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여호와께서는 몸소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 주셨다.
8절 /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도록 명령하셔서 여러분의 모든 창고에 가득 차게 하시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잘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실 땅에서는 여러분이 하는 일마다 복을 받을 것입니다.(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여호와께서 복이 네게 있도록 명령하시어’입니다. 이처럼 ‘복’을 의인법적(擬人法的)으로 표현하고 있는 원문은 마치 ‘축복’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즉시 찾아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창고는 ‘곡식 창고’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결코 두 손을 놓은 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들이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해 줍니다(신 12:7 / … 여러분이 수고한 모든 일에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복 주신 것을 기뻐하십시오). 요셉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창 39:4-5 / 보디발은 요셉이 무척 마음에 들어 집안일뿐만 아니라 재산까지도 관리하는 가장 가까운 종으로 삼았다. 5) 그 뒤로부터 여호와께서는 요셉을 보시고 요셉의 주인인 그 애굽 사람 보디발의 가족들에게 복을 내리셨고, 또한 그의 집안에 있는 재산이든 들녘에 있는 가축 떼이든 간에 복을 내려 주어 불어나게 하셨다.
■ 강영중이라는 분의 간증입니다. 결혼 후 아내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신앙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10년 가까이 교회를 다녔지만, 그저 출석만 하는 형식적인 신자였습니다. 대기업의 상무이사였던 그는 어릴 때부터 사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직분에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증권투자에 뛰어 들었지만, IMF가 터지면서 모든 재산을 전부 날리게 되었고, 빚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것도 기가 막힌데, 설상가상으로 아들이 뇌막염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진료비조차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는데, 아들마저 아프게 되자 너무나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매달리기로 결심하고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하는 가운데, 100일 작정 기도와 성경통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난날의 모든 일들을 회개하면서 “하나님, 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매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에 기적적으로 아들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 온리원’이라는 천원 상점을 내어 모든 물건을 천원에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온리원이란 ‘오직 예수’라는 의미입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시작된 그의 사업은 점점 번창해서 전북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으로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월요일 아침마다 직원들과 함께 기도시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성경 일독을 하는 직원들에게는 20만원씩 보너스를 주어서 직원들이 성경을 읽게 하는 등 직원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의 사업은 정직한 투명경영으로 계속된 성장을 거듭한 끝에 현재 200억 원에 달하는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왜 나는 안 되나요?” 하는 사람입니다. 조건이 뭐죠?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잘 지켜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멋대로, 내 방식대로 하려니 잘 안 되는 것입니다.
9절 /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분이 가리키는 길로만 따라가면 여호와께서 이미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을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사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았습니다. 시내 산에서의 언약 체결이 그 증거입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으로서의 삶을 유지해 나갈 때에 계속하여 복을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하게 되면 그에 대한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합당한 생활을 유지할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은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10절 /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자기 백성이라고 선포해주시면 세계 만민이 모두 보고 여러분을 두려워할 것입니다.(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이미 출애굽기 19:5, 6에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언약 백성 곧 거룩한 민족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다시금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부분입니다(신 7:6, 26:19).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 두려워하리라’는 어떠한 사물을 그 누구의 이름으로 일컫는다는 것은 곧 그 사물이 그 사람에게 속하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란 이름은 열방 중 언약 관계하에 있는 구별된 백성 이스라엘에게만 독특하게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출 3:15, 출 6:5-6 / 그런데 이제 애굽 사람들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신음소리를 듣고 내가 전에 맺었던 계약을 상기해 냈다. 6) 그러니 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여라. `나는 여호와이다. 이제 내가 사정없이 부리는 애굽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너희를 빼내리라. 강제 노동에 혹사당하고 있는 너희를 건져내리라. 내가 팔을 휘둘러 무서운 심판을 내려 너희를 구해 내리라.). 따라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 성호(聖號)로 이스라엘을 부르시겠다는 것은 곧 그들을 자신의 소유로 인(印)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열방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보고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새끼를 돌보고 있는 어미 사자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과 같습니다.
11절 /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에게 많은 자녀를 주시고 가축도 번성하게 하시며 농경지에서도 풍성한 수확하게 하셔서 주께서 이미 여러분에게 주시겠다고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여러분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실 것입니다.(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많게 하시며’(야타르)의 원뜻은 ‘돌출하다, 두드러지다’입니다. 이는 곧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정도로 풍부하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자손 번성의 복은 오래 전 아브라함에게도 거듭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복입니다(창 12:2, 13:16, 15:5, 17:6, 창 22:17 / 내가 네게 복을 내리리라. 한없이 복을 내리리라. 내가 분명하게 약속한다만 네 후손이 하늘에서 총총히 빛내는 별처럼 엄청나게 불어나게 하리라. 네 후손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지리라. 네 후손들이 그 원수들을 쳐부수고 원수들의 성을 정복해 버리리라.).
앞에 4절에 나오는 내용과 동일하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부어주시는 복이라면 여기에서는 이스라엘 전체에게 부어주실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손의 번성과 물질적 풍요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며 바라는 것이지만, 현세적인 복과 영혼의 만족을 동시에 누리게 되는 것은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입니다.
12절 / 여호와께서 하늘의 창고들을 열어 때를 따라 여러분의 토지에 비를 내리셔서 여러분이 수고한 모든 일들이 열대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많은 수확하게 되어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빌려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른 민족에게서 빌려 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는 공동 번역에서는 ‘당신의 풍성한 보물 창고인 하늘’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NIV는 ‘그의 긍휼의 창고인 하늘’(the heavens, the storehouse of his bounty)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뒤에 나오는 ‘비’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네게 하늘 보고(寶庫)를 열어 비를 내려 주시므로 철을 따라 풍성한 수확하도록 해 주겠다’(Living Bible)는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는 팔레스틴의 절기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절히 내려 주시겠다는 뜻입니다(레 26:4). 이는 곧 언제, 어디서든 성도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시고 돌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압니다(마 6:26-32). 11:14 주석 참조.
‘네가 … 꾸어 줄지라도’는 하나님의 복이 이스라엘 중에 넘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차고 넘치는 그 복을 타 민족에게 확산시키는 전수자(傳授者)자가 될 것임을 시사해 줍니다(신 15:6 /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대로 복을 내려 주셔서 여러분이 많은 민족들에게 꾸어 줄 수는 있어도 꾸어 올 필요는 없고 많은 민족들을 지배는 하게 되면서도 어느 다른 민족에게도 지배는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보물 창고를 때를 따라 열어서 비를 내려주신다는 표현은 곧 자연의 모든 환경까지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절히 내려주실 때에 풍성한 수확하게 될 것이며, 이는 곧 부자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예를 든다면 애굽의 7년 풍년으로 7년 흉년 동안 모든 나라들에게 곡물을 팔고 나라가 부강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는 예나 지금이나 이웃 국가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러한 복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13절 /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는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요셉을 보십시오. 노예로 끌려갔으나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다니엘도 느헤미야도 포로로 끌려갔으나 그곳에서 총리가 됩니다. 바울도 죄수로 로마로 끌려가는 중에 배에서 풍랑을 만났으나 그 풍랑으로 오히려 그 배의 지도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배의 276명의 승객을 살려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늘 기독교에서 지도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삼일독립 운동을 주도했던 33인의 대표 중에 기독교인 16명이었습니다. 링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 중에 89%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성경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 들이었다” 여러분 인류역사에 위대한 역사를 남긴 과학자, 음악가, 미술가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 ‘여왕벌의 먹이’란 뜻에서 로얄젤리라고 불렀는데, 꿀과는 다르며 일벌이 인두선에서 분비한 흰색의 액체로 벌이 꿀과 꽃가루를 먹고 몸 안에서 한번 소화, 흡수시킨 다음 만들어내는 신비스러운 물질입니다. 로얄젤리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1954년 로마교황 바오로 12세가 80세가 넘은 고령에 폐렴의 악화로 고생할 때 교황의 주치의가 로얄젤리로 치료한 뒤, 기적적으로 혈색도 좋아지고 완쾌 되면서부터 입니다. 소련의 공중 위생국이 발표한 기록을 보면 소련의 100세 이상 장수자의 대부분이 양봉가로서 벌꿀과 로얄젤리를 먹고 있다는 것이 있는데, 그 발표 이후 로얄젤리의 명성이 알려졌습니다. / 벌들의 세계는 수벌, 일벌, 여왕벌 3종류가 함께 사는데 무정란과 수정란으로 구분하고 무정란으로 태어나면 수벌이 되며, 수정란으로 태어나면 일벌과 여왕벌이 됩니다. 수정란이 부화하여 유충이 되면 처음 3일간은 로얄젤리로 기르게 되며 4일째부터 일벌의 먹이는 꿀과 화분으로 바뀌게 되나 여왕벌은 계속해서 다량의 로얄젤리를 먹는데, 이 4일째부터 먹이의 차이에 의해 일벌과 여왕벌로 나뉘게 됩니다. 일벌들의 수명은 40일에서 60일 정도에 불과한 반면, 로얄젤리를 먹은 여왕벌은 몸집도 크거니와 수명이 5년 이상이라고 합니다.
곤충의 세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귀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고자 이 땅에서 영적인 연단을 시키고 계십니다(벧전 2:9, 잠 17:3). 그런데 이 같은 제사장의 자리는 마련하였지만 육적인 생활에 찌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말씀을 상고하는 일을 중단한다면 일벌처럼 죽도록 일만 하다가 갈 뿐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세상의 것에 많은 시간을 빼앗깁니다. 때로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상당한 시간도 보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염려하며 걱정하는 쓸모없는 일에 많은 시감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차라리 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의 1/10만 로얄젤리인 하나님을 먹고 기도하는 일에 힘쓰십시오. 이렇게 로얄젤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지켜 행하면 바로 그것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과 음료인 것입니다. 영적인 로얄젤리를 많이 먹으십시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십시오.
사 40:6-8 / 이때에 주님의 천사가 내게 말하였다. “너는 기서 네 백성에게 전하여라!” “내가 가서 뭐라고 전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가서 이렇게 전하여라. ‘모든 인간은 풀포기처럼 허무하고 인간의 모든 영화와 권세도 들에 핀 꽃들과 다를 것이 없다. 7) 여호와의 뜨거운 입김이 한번 스쳐 가면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든다. 풀과 꽃에는 주님의 권능에 대항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은 한포기의 풀이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까지나 효력을 발생하고 그대로 이루어진다.’”
14절 / 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 모든 말씀에서 좌로나 우로 벗어나지 말고 다른 신들을 따라다니며 섬기지 마십시오.(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오직 푯대를 향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경주를 하라는 것입니다. 과녁은 고정이 되어 있지만 화살이 조금이라도 겨냥을 잘못하면 처음에는 그 차이가 별로 없으나 결국에는 과녁을 빗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죄’라는 말이 바로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로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 발을 헛디디는 것,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율법의 정도를 따라 가는데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는 우상을 섬기면서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의 말씀을 준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다른 계명보다 가장 우선하는 것입니다.
■ 잠시 하나님께서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야 하는 여호수아에게 당부하신 말씀을 봅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길을 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수 1:1-9 /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다음 여호와께서는 한때 모세의 종이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 “나를 따르던 종 모세가 죽었구나. 그러니 이제는 네가 힘을 좀 써야겠다. 너는 이 백성을 모두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라. 그런 다음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줄 땅으로 들어가거라. 3) 내가 이미 모세에게 일러두었다만 너희 발이 닿는 곳마다 그 곳이 어떤 곳이든 그 땅을 너희에게 주마. 너희가 가는 땅마다 모조리 너희 땅이 되게 하리라. 4) 너희가 들어가 살 땅은 남쪽으로는 광야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레바논 산악지대까지이고, 동쪽으로는 큰 강 유브라데에서부터 서쪽으로는 헷 사람들이 사는 지방을 거쳐 지중해까지이다. 5) 네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네가 이끄는 이스라엘을 당해 낼 수 없으리라. 모세가 살아있을 동안에 내가 그와 함께 하였던 것을 네가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때와 똑같이 너와 함께 하리라.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너 혼자 있게 놔두지도 않고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6) 그러므로 너는 힘을 내거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아무 걱정도 하지 말아라. 네 선조에게 주겠다고 내가 이미 약속하지 않았느냐? 내가 맹세하지 않았느냐? 네가 그 땅을 차지하도록 하겠다. 7) 힘을 내거라. 마음을 굳세게 먹고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가르침을 꼭 지키거라. 그대로 실천하여라.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우습게 여겨서도 안 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내 말을 그대로 따르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가고 잘되리라. 8) 이러한 가르침이 적혀 있는 이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끊임없이 외워라. 그 가르침을 놓고 낮이든 밤이든 늘 명상하여라. 가르침을 끊임없이 곱씹어 보아라.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다 지키고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 말씀대로 따라 살아라. 그리하면 네 앞길이 평탄하리라.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안 되는 일이 없으리라. 9) 내가 네게 분명히 말해 둔다만 힘을 내어라. 흔들리지 말아라. 마음을 굳게 먹어라.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아라. 무서워하지도 말아라. 놀라지도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하워드 A 켈리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날 밤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습니다. “주님, 내 자신과 나의 시간과 나의 능력과 나의 열정,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하오니 나를 정결케 하시고 제가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세상에서의 어떠한 성공이라도 제게 허락하지 마옵소서.”
■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의 등불이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헌신하고 있었을 때 영국에 있던 동료들이 도울 것을 숙의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자네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을 현지에 보내려고 한다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떤 길이 좋은가?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주게.” 리빙스턴은 이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곳까지 오는데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의미 없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을 원한다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헌신하며 각오하는 신앙인의 결심입니다. 그래야 준비된 하나님의 복의 창고가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