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2018년 4월 15일 / 오후예배 / 누가복음 13: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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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심이 되어야할 것은?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본문 24절)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는 말씀은 구원을 마치 취직이나 대학 입시처럼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해서 쟁취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1등을 해야 또는 커트라인에 들어야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7전 8기하며 인내로서 끝까지 가는 자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세 번을 무섭도록 부인하다가도 회개함으로 그 길을 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누구에게나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순종하며 살 때만이 영생에 합당한 자가 됩니다.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편안하지도 않고, 부대끼는 일도 많고, 양보도 해야 하고, 인내도 필요합니다. 설령 구원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은 그리 쉽고 편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많은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멸망당할 넓고 쉬운 문을 택하지 말고 영생을 얻기 위해 좁은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면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가 육신적으로 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 오히려 죄악으로 살던 과거와는 달리 평소의 삶이 불편해지고, 자유롭지 못하고, 눈치봐야할 일도 많고, 때로는 손해도 많고 피곤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가 뭐 이렇게 힘들어. 나 안 해. 그냥 이대로 살다 죽을래.’하고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은혜를 주셨기에 믿음을 가지게도 되고 영생을 얻을 수도 있게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는 특권을 받았을 뿐 아니라 낮에 해처럼 밤에 달처럼 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자체가 얼마나 귀합니까?
눅 18:28-30 / 베드로가 말하였다. `저희는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주님만을 따라왔습니다.' 2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는 사람은 30)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의 보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벧전 2:9-12 / 그러나 여러분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손수 택하신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하고 순결한 겨레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출 19:5-6). 10) 여러분이 전에는 아무런 가치 없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그 은혜를 입고 여러분의 생활이 변화되었습니다. 11) [하나님의 종다운 생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하늘에 고향을 둔 이 땅의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에 싸움을 걸어오는 세상의 악한 쾌락을 멀리하십시오. 12) 이방인들 앞에서는 더욱 여러분의 행동을 조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욕을 하던 사람들도 여러분의 훌륭한 행동을 보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려면 이 세상에서부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만일 그렇게 하는 것이 귀찮다고, 피곤하다고, 신나게 놀지 못한다고,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고 하며 영원히 복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누가복음 18:25-30 말씀을 하신 후에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수난(受難)에 대한 세 번 째 말씀을 하셨습니다(마 20:17-19, 막 10:32-34, 눅 18:31-34)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우리가 거기에 도착하면 나를 두고 말한 옛 예언자들의 예언이 사실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조롱과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들은 내게 침을 뱉고 채찍질하며 마침내 죽일 것이다. 그러나 사흘 만에 나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이 수수께끼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기도할 때마다 십자가가 무겁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좀 짧게 자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어디쯤 가다보니 큰 계곡이 나왔는데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사람들은 지고 온 십자가를 계곡에 걸치더니 그리로 건너갑니다. 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도 십자가를 벗어 계곡에 걸쳐보았으나 길이가 짧아 걸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무겁다고 불평하면서 조금씩 잘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크게 후회하고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여기에서 조금씩 십자가를 잘라 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 잘라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기에 뜨거운 결심과 더불어 좁은 길로 들어가기를 위해 힘쓰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아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따라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셨고, 이와 관련해 그 길을 가는 이들에게 명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눅 13:25-29 / 주인이 문을 닫은 후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애원을 할지라도 주인은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하지만 우리는 당신과 함께 먹었고 당신은 거리에서 우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하겠지만 27) 주인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해두거니와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너희는 여기에 들어올 수 없다. 못된 짓만 일삼는 자들아, 물러가라.’ 28) 너희는 밖에 서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29) 그러나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을 것이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집 주인이 일단 문을 닫은 후에는 더 이상 그 어느 누구도, 무슨 변명을 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 25-28절의 비유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다른 하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에로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보다 넓고 들어가기 쉬운 다른 문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가려던 문이 자신들이 원했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아닌 것을 뒤늦게 알고 좁은 문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문은 닫쳤고 밖에서 아무리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소리 질러도 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은 안에서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되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즉 그들은 한때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모른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회에 들락거리며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다고 해서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이라는 보장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쉽고 편한 넓은 문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는 하면서도 그대로 행하기를 힘들다고 하면서 싫어하는 자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자들임을 알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하셨습니다.
▶ 29-30절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는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이 한 말 즉 ‘주여 열어 주소서 ...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는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 내놓으시는 반박의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칭찬하셨던 온전한 믿음을 가진 백부장의 경우처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 ‘내가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지금도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도 많이 읽었는데, 성경 지식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에 안 들여보내시겠느냐?’ 하며 착각하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까지 따르라고 하셨건만 길가나 돌짝밭처럼 거역하는 그런 자들이 아니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천지사방 어디에서도 언제라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당부하십니다. 구원의 문은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신앙생활 하기가 때로는 너무나 힘들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백성이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삶은 본래 좁은 문의 삶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모든 위로와 힘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으로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를 매일 부르시며 은혜로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1.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후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2. 전에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 힘입어 그 발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3.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4. 세상 모든 정욕과 나의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았네 어둔 밤이 지나고 무거운 짐 벗으니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