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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은 생애를 …
2020년 5월 17일 / 데살로니가전서 5:15-18, 마태복음 5:13-16
유종의 미(有終의 美)란 말이 있다. 이는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시작이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었어도 끝이 좋지 못하면 그 전체가 다 실패한 것이요 반대로 시작이 보잘 것 없고 힘들었어도 끝이 좋으면 그 전체가 모두 좋은 것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루라는 시작과 끝을 주셨고 또 월(月)과 한 해(年)를 주시고 일생이라는 기회를 주셔서 시작과 끝을 살게 하셨다. 그래서 하루를 마감할 때도 혹 낮에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엡 4:26)고 하셨으며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마 6:34)고 하셨다. 하루 동안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었어도 그 날 일은 그 날에 마감하고 좋은 쪽으로 마무리를 해야 내일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우리의 후손과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성공적인 유종의 미를 거둬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자. 내일은 오늘을 아름답게 장식한 사람에게, 내일은 오늘을 보람있게 준비한 사람에게 밝음으로 찾아올 것이다. 영원한 천국은 오늘이라는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행하며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
■ 3개월이 어디입니까? / 시카코에서 태어난 워너 솔맨(Warner Sallman, 1892–1968)은 미국이 자랑하는 화가 중에 한 사람이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 그는 중병에 걸렸다. 의사가 말해준다. "당신은 임파선 결핵을 앓고 있소. 앞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부인은 유명한 가수로 임신중이었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거니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할 때에도 죄스러웠다.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위로하였다.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하십시다.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3개월이 얼마입니까? 천금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십시다. 그러면서 오로지 3개월이나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두 사람은 기뻐하며 감사하며 열심히 그림도 그렸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가 그린 그림에 유명한 것이 있는데 ‘머리되신 그리스도’(Head of Christ)라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렸다. 보통 사람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때에 대개 자비하신 분으로, 고난당하시는 얼굴로 그리는데, 지도력이 있고 강인한 인간성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했다.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그의 그림책은 1940년도에 500만부 이상이 인쇄되었고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많은 가정에 걸려 있다. 그렇다. 3개월이 어디인가? 하루가 어디인가? 한 달란트가 어디인가? 모름지기 감사하며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의 주치의인 존 헨리는 말하기를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해독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치료제이다.”라고 했다.
인생은 얼마나 살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솔맨은 3개월 밖에 못 살 것이다 체념하는 마음이 아니라 3개월이란 귀한 기간이 자신에게 주어졌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이다.
■ 찬양사역자 김석균(2020년 70세) 목사가 쓴 찬양 ‘난 예수가 좋다오’는 많은 크리스천들의 신앙 고백적인 노래로 불리고 있다. 김 목사는 400여곡의 찬양을 작사·작곡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찬양사역자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삶의 존재 이유’라고 밝히며 올해로 39년째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김 목사는 대중가수로 데뷔했다. “무대에 섰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그 갈급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한참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답을 찾았습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모시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 목사는 1981년부터 찬양사역자의 길로 들어섰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96년 안양대신학대학원에 입학해 목회학석사와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20여 년간 서울 문일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찬양사역을 병행한 것. “고3 담임을 맡았던 쉰 살에 문득 ‘하나님은 내 인생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의 계획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봐 걱정도 됐습니다.” 김 목사는 곧장 오산리 순복음기도원으로 향했다. “며칠을 기도한 후에 얻은 결론은 하나님이 상황을 통해서 답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답은 바로 왔습니다. 금식기도를 마친 후 첫 식사 때부터 목이 따끔거리더니 이후 3개월 동안 상태는 더욱 악화됐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기도의 응답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사의 자리를 내려놓으라는 명백한 신호였습니다.” 2000년 4월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그해 8월 퇴직했다. 목은 거짓말같이 나았다.
그의 대표작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많은 곡들이 있다.
사랑의 종소리, 주를 처음 만난 날, 돌아온 탕자,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금보다도 귀하다, 나의 참 친구, 고백, 예수가 좋다오, 눈물의 참회록, 나는 행복해요, 용서하소서, 내가 너를 도우리라,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주님의 빚진 자, 쓴잔, 주의 길을 가리,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해같이 빛나리, 하나님의 약속 등 다수
그런데 미쳐 내가 알지 못했던 2가지 곡이 있었다.
‘겸손’이란 곡은 지금까지 겸손에 대해 나 자신 생각조차 못한 많은 것을 깨닫게 하였다.
❶ 슬픔 속에서도 울지 않는 것 / 억울해서 울지 않는 것 /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속에도 /
걱정하지 않는 것 / 사랑할 수 없는 사람조차도 / 사랑하며 품어주는 것 /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 용서하여 주는 것 / 어떠한 자기 주장도 버리고 /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 진정한 겸손
❷ 참을 수 없어도 화내지 않고 / 끝까지 인내하는 것 /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조건에서도 /
감사하며 사는 것 / 칭찬이나 비난 가운데서도 / 침묵하며 살아가는 것 / 말씀 순종하길
어려울지라도 /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 /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리고 /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 진정한 겸손
<후렴> 겸손은 겉사람이 드러나지 않고 / 속사람이 드러나는 것 /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 바로 겸손한 사람 / 어떠한 자기주장도 버리고 /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맞기며 /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 진정한 겸손
작년 9월부터는 ‘나의 남은 생애는’이란 곡을 알게 되어 많이 활용하고 있다.
나의 남은 생애는
나의 남은 생애는 복음의 편지되어 살리라 / 나의 남은 생애는 섬김의 향유되어 살리라
나의 남은 생애는 주님의 기쁨되어 살리라 / 나의 남은 생애는 사랑의 샘물되어 살리라
일 년을 살지 한 달을 살지 모를 나의 남은 생애 / 주님이 주신 사랑 주님이 주신 은혜 /
빚을 갚으며 살리라 / 나의 남은 생애는 은혜의 통로되어 살리라 /
나의 남은 생애는 축복의 통로되어 살리라
나의 남은 생애는 복 있는 사람으로 살리라 / 나의 남은 생애는 순백의 영혼으로 살리라
나의 남은 생애는 맡은 일 충성하며 살리라 / 남의 남은 생애는 행복한 전도자로 살리라
일 년을 살지 한 달을 살지 모를 나의 남은 생애 / 범사에 감사하며 쉼 없이 기도하며
주님 뜻대로 살리라 / 나의 남은 생애는 정직한 예배자로 살리라 /
나의 남은 생애는 하늘에 속한 자로 살리라.
■ 개신교 신앙의 선배들은 몇 살까지 살았는지 일부만 살펴보자.
61세 이전에 별세 / 류관순 18 / 이용도 33 / 박에스더 34 / 전덕기 39 이수정 44 / 김교신 44 / 백홍준 45 / 주기철 47 / 손양원 48 / 최태용 53 / 한경희 54 / 장준하 57 / 홍택기 57 / 손정도 59 / 오문환 59 / 안창호 60
61-70세 별세 / 윤성범 64 / 하용조 65 / 길선주 66 / 이승훈 66 / 이성봉 66 / 조만식 67 / 강영우 67 / 남궁혁 68 / 최병헌 69 / 권정생 69 / 박관준 70 / 강규찬 70
71세 이후 별세 / 한석진 71 / 양주삼 71 / 김활란 71 / 김창식 72 / 옥한흠 72 / 김 구 72
/ 한상동 75 / 신흥우 76 / 유일한 76 / 김용기 76 / 문익환 76 / 김익두 76 / 이기풍 77 / 이상재 77 / 서상륜 78 / 공병우 78 / 윤치호 81 / 박형룡 81 / 이명직 83 / 박윤선 83 / 박인덕 84 / 장기려 84 / 최흥종 86 / 김재준 86 / 정대위 86 / 함석헌 88 / 안이숙 89 / 강원룡 89 / 이승만 90 / 백낙준 90 / 전택부 93 / 마삼락 98 / 한경직 98 / 방지일 102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아왔으며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려는 사무엘 선지자
1.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무엘 선지자
사무엘상 12장에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뒤에 그곳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며 고별 설교를 하였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응답으로 태어났다. 한나는 그의 서원대로 아직도 어린 사무엘을 멀리 떨어진 실로로 보내어 제사장 엘리에게서 나실인으로 자라나게 했다. 사무엘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손길도 받지 못했지만 건강하게 자랐다.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가 죽자 제사장, 예언자, 사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무려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도했다. 나이가 많아 늙자 백성들은 자기들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했다. 하는 수없이 사무엘 선지자는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라는 걸출한 청년을 왕으로 세웠다. 청렴결백한 사무엘 선지자는 모든 권력을 왕에게 물려주고 백성들에게 말했다.
삼상 12:2-3 / 그 왕이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가 여러분 앞에 서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나는 이미 백발노인이 되었으며, … 나는 젊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을 인도하며 살아왔으나 3) 이제는 그러한 자리를 떠나면서 여러분의 정직한 판단을 받고 싶습니다. 내가 그동안에 무슨 불법을 행하였다면 지금 여호와 앞에서 나를 규탄하고, 우리가 세운 왕 앞에서 나를 고발하십시오! 내가 어느 누구의 소나 나귀를 빼앗은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어느 누구의 물건을 강탈하거나 어느 누구를 억압한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뇌물받고 그릇된 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습니까?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가 전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무려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5년, 10년, 20년도 아닌 40년인데, 사무엘에게 아무런 부정, 비리도 없었을까? 그러나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삼상 12:4 / 이스라엘 백성이 대답하였다. ‘저희들 중에서 어느 누구를 억압한 일도 없으셨고, 어느 누구에게서 무엇을 강탈하거나 무슨 뇌물을 받은 일도 없으셨습니다.’
2. 남은 생애 역시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무엘 선지자와 다니엘
그러자 사무엘도 말했다. 노년의 사무엘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백성들과 약속하였다.
삼상 12:23 / 나도 계속 여러분을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드리고, 가장 옳고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내가 만약 기도하기를 그친다면 스스로 죄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사직에서 물러난 후 바로 하나님 말씀 사역에 힘을 기울였다. ‘선지자 생도들’을 모아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다음 세대에게 가르쳤다. 고향 마을 라마(삼상 19:18-24)와 기브아(삼상 10:5-7)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 나중에는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도 학교가 세워졌다(왕하 2장, 왕상 20:25).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도록 나이 든 세대에게 명하셨기 때문이었다(신 11:18-20).
▶ 다니엘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던 중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된 원인이 우상숭배의 죄악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렘 25:11-14 / ‘모든 것이 폐허 속에 묻힐 것이며 너희와 너희 이웃 족속들이 70년 동안 바벨론 왕에게 종살이를 할 것이다.’ 12)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그 이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 70년이 찬 다음에는 내가 바벨론 왕과 그의 백성에게도 그들의 책임을 묻고 그들이 스스로 저지른 모든 허물에 대하여 형벌을 내리겠다. 그러면 그들의 나라도 영영 황무지가 될 것이다. 13) 내가 갈대아 족속에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도 그들에게 그대로 내리겠다. 갈대아 족속이 당할 재앙은 내가 세계 만민에 대하여 선포하도록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였던 그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다. 14) 바벨론 백성도 그때에는 더 큰 백성들에게 정복되어 더 강한 왕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도 내가 틀림없이 그들에게 갚아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로 주어진 70년 포로 생활이 끝나게 되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말씀도 보게 되었다.
렘 29:10 / 내가 이제 여기서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둔다. 바벨론 제국은 앞으로도 70년 동안 존속할 것이다. 이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 그때에 가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련한 좋은 계획을 실천하여 너희를 고향 땅으로 데려오겠다. 그때에 내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
다니엘은 이를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 예언에 대한 구체적인 성취의 때를 알려주셨다.
단 9:20-24 / [70년의 비밀에 대한 설명] 내가 이렇게 내가 지은 죄와 내 겨레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며 기도하였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다시 회복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21) 내가 이렇게 기도드리는 동안 먼젓번 환상에서 보았던 가브리엘이 저녁 제사를 올릴 때쯤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와서 22) 나를 흔들며 말하였다. `다니엘아, 네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왔다. 네가 성경을 읽다가 궁금해하였던 `칠십 년 동안'이라는 예언 말이다. 23) 네가 간청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분께서 이미 대답해 주셨다. 그분이 너를 사랑하시는 까닭이다. 그래서 내가 그 대답을 전하러 이렇게 왔다. 내가 이제부터 그것을 설명할 테니 주의 깊게 잘 듣거라. 24) `이제 하나님께서는 칠십 년이 일곱 번이나 더 지나서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성을 죄와 허물때문에 고생하는 그 길에서 돌아오도록 하실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끝까지 사도다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1. 주어진 사명에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 했던 사도 바울
사도행전 20:17-38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중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 고별설교를 하는 모습이다. 3차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은 자기가 예루살렘에서 겪을 고난을 미리 예측하였다. 예루살렘에는 바울이 오기만 하면 그를 잡아 죽이려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명에 불타는 바울은 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다.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은 가장 오래도록 머물며 교회를 세웠던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 고별설교를 했다.
바울은 모든 면에서 청렴결백하였으며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저들에 대한 문제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 20:18-21 /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그날부터 오늘까지 여러분과 함께 어떻게 지내 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9) 나는 겸손하게, 눈물을 삼키면서 주님의 사업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유대인들이 나를 해치려고 음모를 꾸민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나는 그때마다 극심한 위험을 겪어야 하였습니다. 20) 그러나 나는 대중 앞에서나 여러분의 가정에서나 여러분들에게 전리를 말하는 일을 조금도 꺼리지 않았습니다. 21) 나는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똑같이 죄에서 떠나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을 강조하였습니다.”
행 20:25-27 / 나는 여러분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이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해 둡니다. 앞으로 여러분 가운데 누가 어떤 심판을 받게 되던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27) 나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여러분에게 남김없이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교회에 닥칠 일까지 대비하여 거짓 교사를 삼가라고 하며 자신이 어떻게 참된 교사로서의 역할을 했는지에 대하여 밝히 증거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선한 목자의 표상이 되고 있다.
행 20:28-30 / 이제 여러분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성령께서 맡겨 주신 양 떼를 잘 돌보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치르고 사신 그 교회를 자라게 하셨습니다.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 떼와 같은 거짓 교사들이 나타나서 양 떼들을 마구 해칠 것이며 30) 여러분 중에서도 진리를 왜곡시키는 자들이 나타나 자기를 따르라고 할 것입니다.
행 20:31-35 / 잘 살피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함께 보낸 그 3년을 잊지 마십시오. 밤낮으로 여러분을 보살피고 여러분을 위해 흘린 내 많은 눈물을 기억하십시오. 32) 이제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돌보심과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 하나님을 위해서 성별된 사람들이 상속받는 그 모든 몫을 여러분에게도 줄 것입니다. 33) 나는 지금까지 돈을 탐한 일도, 훌륭한 의복을 탐한 일도 없습니다. 34)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나는 내 이 두 손으로 일해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마련했고 심지어 나와 함께 지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까지도 공급해 왔습니다. 35) 그리고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언제나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바울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까지 예언하며 영적으로 철저히 무장하였다.
행 20:22-23 / 이제 나는 거역할 수 없는 성령의 강한 힘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23) 다만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가는 도시마다 투옥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알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아시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사도행전 21장을 보면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 항구로 가서 신도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지낸 후 그곳을 떠나 가이사랴로 가서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렀다.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그에게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딸이 4명이나 있었는데 모두가 미혼이었다. 그곳에 며칠 머물러 있는 동안에 역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아가보라는 사람이 유대에서 와서 바울의 허리띠로 자기 손발을 묶더니 말하였다. “이 허리띠의 주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묶여 로마로 끌려갈 것이다'라고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그 도시의 신도들이나 바울과 동행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바울에게 울며 간곡히 권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였다.
행 20:23-24 /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무리 권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단념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며칠 뒤에 짐을 꾸려 가지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났다. 웬만하면 하던 일도 잠시 멈추고 휴식시간 또는 안식년을 가질 수도 있었건만. 오히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더 넓은 곳을 향하여 전진하는 바울의 모습은 마지막을 최선을 다하는 그야 말로 모범적인 사역이었다. 지금까지 한 일이 모자란 듯이 더 열심을 다하는 모습은 그저 감탄할 뿐이다.
3. 자신의 마지막 남은 생애를 십자가 지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
바울은 1차, 2차, 3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였고, 수많은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모교회가 있는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이곳에 오자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헬라인을 예루살렘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 거룩한 성전을 더럽혔다는 오해를 받았다. 이 소문이 퍼지자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달려와 붙잡았고,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 그를 치며 죽이려고 하였다. 그때 로마군대의 지휘관인 천부장이 현장에 달려가 유대인들이 바울을 때리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천부장은 진상을 알 수 없어 바울을 쇠사슬로 결박하여 로마군대의 영내로 데리고 왔다.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발했는지 알고 싶어 산헤드린 공의회로 데리고 가서 앞에 세웠다. 바울은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이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은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이라고 밝히자 두 유대교 분파가 서로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찢겨질까하여 군인들을 명하여 무리가운데서 빼앗아 영내로 다시 데려왔다.
바울이 그날 밤에 왜 이런 발생했는지 생각할 때, 주님께서 바울 곁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
주님이 나타나셔서 자기 곁에 서서 하신 말씀을 듣고 바울은 지금까지 예루살렘에 와서 최근 며칠 동안 자신이 당한 모든 일들은 주님께서 자기를 로마로 보내기 위하여 하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당시 로마는 정치, 경제, 군사 등에서 세계의 중심나라였다. 주님께서는 이 나라에 복음을 전하여 국교로 받아들이게 해서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는 그 당시 도로를 잘 닦아 놓았다. 그 당시 헬라어로 언어가 통일되었다. 이러한 적당한 시기에 주님은 바울이 마지막으로 로마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 일이 쉽지는 않았다. 바울이 로마로 가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많이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려면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경비도 많이 든다. 돈이 없는 바울은 로마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로마로 가는 교통편도 좋지 않았다.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가야 하는데 겨울에는 지중해가 얼어붙기 때문에 어렵고, 여름에는 태풍이 자주 불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그리고 로마제국은 이스라엘의 적대국가이다. 로마제국은 BC 63년부터 AD 530년까지 이스라엘을 지배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원수로 생각하고 망하기를 바랐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그곳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곳은 황제를 신격화시켜서 숭배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가서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라고 하면 그들은 좌시할 리가 없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마치 굶주린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곳에는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도울 사람도 많지 않았다. 사실 이스라엘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하고, 그가 복음을 전한 후 세운 소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교회들도 돌보아야 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주님께서 나타나서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로마로 가라고 하셨다. 그 후 바울은 벨리스 총독, 베스도 총독에게 호소했고 또 아그립바 왕에게도 호소했지만 되지 않자 자신이 로마시민이기에 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가서 재판을 받기로 했다.
주목을 끄는 장면은 바울이 로마로 갈 때에 죄수의 신분이었다. 자신의 신분 때문에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유라굴로라는 태풍으로 배가 침몰될 위기에 있었지만 로마로 복음을 들고 가는 바울 한 사람 때문에 같은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의 목숨을 건졌다.
목숨을 건진 그들이 상륙한 곳이 멜리데 섬이었는데, 섬사람들은 저들을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때마침 비가 내리고 날이 추웠기 때문에 불을 피워 놓고 우리를 맞아 주었다. 바울이 마른 나뭇가지를 한 아름 안아다가 불속에 넣었다. 그런데 나뭇가지 속에 있던 독사 한마리가 뜨거움에 놀라 튀어나와서 바울의 손에 달라붙었다. 섬사람들은 독사가 달라붙은 것을 보고 ‘살인자가 틀림없어! 바다에서는 살아 왔지만 정의의 여신이 결코 살려두지 않을 거야.’하고 서로 수군거렸다. 그러나 바울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그 뱀을 불속에 떨어 버렸다. 섬사람들은 바울의 몸이 부어올라 당장에 쓰러져 죽으려니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바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이번에는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하였다. 마침 보블리오의 부친이 고열과 이질에 걸려 앓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가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손을 얹어 낫게 하자 그 섬 안에 있는 병자들이 다투어 찾아왔다. 바울은 그들의 병도 모두 고쳐 주었다. 3개월을 머문 후 디오스구로라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에 도착하였다. 셋집에서 만 2년을 지내며 찾아오는 사람을 친절히 맞아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하였다.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마로 건너간 바울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수많은 로마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그들은 혹독한 핍박을 잘 견디고 이겨냈다. 결국 AD 313년에 콘티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고, AD 392년에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기독교는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이 시간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사무엘처럼 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남은 생애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자는 것이다.
■ 선교사 스탠리 존스는 인도의 성자라 불린다. 그는 89세에 뇌일혈로 쓰러졌다. 선교회는 그를 강제로 미국으로 송환하여 입원하여 치료받게 하였다. 다시 일어났을 때 모든 사람이 인도로 가지 못하게 만류하였지만 90세에 다시 인도로 돌아가 선교를 계속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종지부(period)를 찍기 전까지는 절대로 내가 쉼표(comma)를 찍지 않는다”고 하였다. 놀라운 복음에 대한 열정이다.
■ 위대한 신앙인들 - 천부적인 달란트로 찬송시를 지은 여류작가, 화니 크로스비(Fanny Crosby) /
뉴욕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지 6주 만에 심각한 눈 염증을 앓아 의사의 부주의한 처방으로 결국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왜 우리에게 이런 비극이! 안 돼! 받아들일 수 없어!"라고 원망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고난의 골짜기를 걸어가기로 작정했다. 그 의사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제가 만약 다시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저는 그분이 저를 시각장애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몇 번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평생 시각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스러운 섭리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그와 같은 섭리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자서전 ‘화니 크로스비의 생애’에서 말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만약 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해도 그것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또 자신이 앞을 못 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노래들을 쓸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만약 제가 앞을 볼 수 있었다면 제 주위를 끄는 많은 흥미롭고 아름다운 것들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져 결코 수천 편의 시를 지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크로스비 가문은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 집안으로 신앙심이 깊었다. 화니는 자랄수록 청각과 미각, 후각과 촉각이 예민하게 발달했고 손재주가 좋았으며 영리하고 똑똑했다. 할머니는 어린 화니에게 성경 이야기를 은혜롭게 들려주며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손으로 만져 보고, 코로 향긋한 향기를 맡게 했다. 특히 자연이 움직이는 모습을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설명해 주었다. 외할머니는 이렇게 가르쳤다. “필요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라. 그리고 일어난 모든 좋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해야 한다.” “일이 너무 어렵다고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실 일이 하나도 없다. 자기의 필요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은 능히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란다.” “너의 기도제목이 아무리 엉뚱하거나 가망이 없는 것일지라도 너에게 유익하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설령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해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얼토당토않는 너의 소망과 기대보다 더 좋은 것을 이미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늘 기뻐해야 한다. 고통과 좌절도 기쁘게 인내하면서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더 좋은 것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지.” 그녀의 외할머니는 성경의 사람이었으며 “기도를 확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발생하는데, 1848년에 맹인학교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어 주검의 시신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장례식에서 경험하고, 화니도 이러한 일을 경험하면서 죽음과 그 후의 삶에 대해서 깨닫게 되어 자기 신앙을 돌아보았다. “만일 콜레라가 내 생명을 빼앗아 갔다면 나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했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무언가를 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때마침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회개의 시간을 통하여 과거 어두움을 다 씻어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하는 사명의 눈을 뜨게 되어 그날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당시에 대해 “내 영혼은 하늘의 빛으로 차고 넘쳤다. 처음으로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이 한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님을 붙들려고 노력해 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고 말했다. 이 체험으로 화니는 예수님 사랑에 푹 빠졌다.
1864년 그녀는 저명한 찬송 작곡가이자 출판가인 윌리엄 브래드버리를 만나 첫 복음성가 ‘저 하늘에 빛나는 우리의 본향’을 출판했는데 출판사에서 그녀가 지은 시 한 편에 1~2달러(당시 달러 가치) 정도만 지급했기 때문에 생활은 언제나 가난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앞으로 51년 동안 하나님께 이끌려 찬송 8,000여 곡을 지으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 상태가 최적에 도달할 때까지 늘 회개하고 기도하며 “나는 시 쓰기에 앞서 기도해요. 좋으신 주님께 내가 쓰려는 시에 영감을 달라고 요청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는 찬송가를 써 본 적이 없어요.”라고 했다.
화니 크로스비를 잘 모른다 해도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녀가 지은 많은 찬송을 부르며 큰 은혜를 받으며 그 찬송들이 비록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영혼의 눈으로 본 영의 세계가 그의 펜을 통하여 아름다운 찬송시로 나타났다.
“당신을 위하여 용서가 있다오.” “나를 지나가지 마소서.” “주께로 내가 옵니다.” 찬송가 대부분을 1인칭으로 써서 부르는 자들이 그 찬송의 사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그녀의 삶은 당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던 복음 전도자 무디와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자신이 경험한 간증과 찬양으로 수많은 이를 주님께 인도했다. 맹인이며 95년의 생애를 살면서 대략 8,000여 찬송시를 쓰고 일반 서정시도 1,000여 편 이상을 쓴 시인이며, 교육자, 음악가인 그녀는 하프와 오르간 연주가로도 유명하고, 간증 설교자 겸 강연자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인류역사에서 최고의 찬송 시인이며 위대한 탐험가요 위대한 승리자였다. “주가 맡긴 귀한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천국 아침 맞을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쁜 마음으로 얼굴 대하리…” 그의 영안으로 보는 주님의 모습에 그녀는 절망과 슬픔이 아닌 기쁨과 감격의 인생길 95년을 찬양 속에 살아갔다. 현재 찬송가에는 31, 40, 144(예수 나를 위하여), 176, 240, 255(너희 죄 흉악하나), 279(인애하신 구세주여), 288, 361, 380, 384, 391, 417, 435, 439, 454, 498, 531, 532, 540, 608(1892년), 615장 22곡이 실려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5:15-18, 마태복음 5:13-18로 결론을 맺는다.
매일 매일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그의 일생을 좌우한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더럽고 추한 것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거기 동화되어 간다.
큰 바위 얼굴이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매일 매일 뒷산에 인자한 모습의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이 바라는 큰 바위 얼굴 같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큰 바위 얼굴을 매일같이 바라보며 큰 바위 얼굴을 닮으려 했던 주인공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큰 바위 얼굴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성경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을 바라보는 삶 속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주님을 닮아간다. 주님을 바라보는 삶 속에 우리의 인격이 주님의 인격을 닮아간다. 주님을 바라보는 삶 속에 우리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게 된다.
살전 5:15-18 /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언제나 서로 선을 베풀도록 힘쓰십시오.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언제나 기도에 힘쓰십시오. 18)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마 5:13-16 /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이다. 그런데 만일 너희가 그 맛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느냐? 너희는 아무데도 쓸모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될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15) 등잔에 불을 밝히고 됫박으로 그 등잔을 덮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안을 환하게 밝히려면 누구나 그 등불을 등잔대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다이돌핀(didorphin)이란?
엔돌핀(엔도르핀)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엔돌핀은 사실 코티졸, 엔케팔린과 함께 3대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엔돌핀은 사람이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뇌에서 분비되는 것으로 가장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의 200배에 해당하는 진통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오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엔돌핀이라는 용어가 단지 하나의 호르몬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즉, 내재성 통증 조절 성분을 지닌 호르몬을 모두 총칭하는 용어가 바로 엔돌핀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뇌 속에는 여러 가지 뇌파가 나오는데 깨어 있는 낮 동안에는 우리 몸에 해로운 베타(β)파가 나온다. 이것은 100%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뇌파이다. 그래서 오감으로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듣고, 본다고 할지라도 남는 것은 점점 스트레스와 피곤뿐이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는 알파(α)파가 나온다. 그러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것은 병을 고치는 호르몬으로 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은 피로도 회복하고 병균도 물리치고 암세포도 이기게 한다. 그러므로 잠을 푹 자고나면 저절로 병이 낫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잠을 자는 것은 오감이 차단되는 것으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듣지도 않고 생각도 안하면 편안하고 힐링이 된다. 그런데 깨어 있을 때에도 알파(α)파가 나올 때가 있는데 사랑할 때와 웃을 때와 감동 받을 때라고 한다. 사랑할 때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은 것은 뇌 속에서 알파(α)파가 나오면서 동시에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선물을 받고 칭찬을 받으면 뇌 속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엔도르핀이 나온다. 이 엔도르핀이 분비가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해진다. 그런데 작은 일이라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엔도르핀이 더 잘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감사를 잘하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늘 원망과 불평하며 무슨 일이 그렇게 못 마땅한지 늘 불만에 쌓여 인상을 찌푸리며 사는 사람에게는 엔도르핀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암을 유발시키는 나쁜 독이 몸에서 배출이 되기 때문에 건강을 잃어버리게 된다. 원망과 불평하며 부정적이며 짜증을 잘 부리는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보다 5-10년 더 일찍 죽는다고 한다. 병들고 빨리 죽으려면 매일 원망과 불평하며 살면 된다. 그러나 오래오래 건강하게 장수하며 성경에 나온대로 향수하려면 늘 감사하면서 살면 된다.
▶ 우리 몸의 80%이상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만큼 물은 만병치료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몸이 산성화가 되면서 점점 우리 몸은 늙고 병들어 간다. 때문에 알칼리성이 중화시켜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알칼리성식품이라고 한다. 말기의 암 선고를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물치료법을 통해 암을 완전 극복한 사연은 이미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으며 많은 일반인분들이 치료 후기를 올려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건강한 치료법인 물치료법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널리 퍼져있다고 한다.
그런데 물의 파동을 연구하는 에모토 마사루 박사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이다. 감사, 사랑 고마움을 말로 하거나 글로 표시한 다음 물을 영하 4℃에서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형태에서는 물의 육각 결정체가 선명해진다. 또 같은 물을 가지고 분노, 짜증을 말하거나 글로 표시한 다음 위의 조건과 동일하게 촬영하면 물의 육각 결정체가 불안전하게 되는 사진을 봤다.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주어진 여건에 감사와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우리 몸의 피가 육각수 형태의 좋은 피가 돼 전신을 돌며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에서 ‘다이돌핀’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엔돌핀이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 다이돌핀의 효과는 엔돌핀의 4,000배라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그럼 다이돌핀(didorphin)은 언제 우리 몸에서 생성될까? 의외라고 해도 될까 모르겠지만 엄청 의외였다. 바로 가장 감동을 받았을 때 다이돌핀이 우리 몸에서 생성된다.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감동의 예(?) / 노래와 춤으로 감성지수가 높아져 감동받을 때, 멋진 풍경에 감동받았을 때,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받았을 때,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자신이 원하는 큰 목표를 성취했을 때,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깊이 울려 퍼질 때, 매우 힘들 때 누군가로 부터 구원의 손길을 받았을 때, 환상적인 사랑에 빠져있을 때, 마음속 깊이 한없는 기쁨이 용솟음칠 때에 다이돌핀이 생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다이돌핀이 생성될 때에는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이다. 이때 우리 몸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전혀 반응이 없던 호르몬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안 나오던 엔돌핀, 도파민, 세라토닌이라는 아주 유익한 호르몬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특히 굉장한 감동이 왔을 때 드디어 ‘다이돌핀’이 생성된다. 이 호르몬들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강력한 긍정적 작용을 일으켜 암을 공격한다. 감사를 느낄 때 혈류는 뇌로 많이 들어가고 심장파동과 뇌파는 아주 일정하며 안정됐다. 반대로 분노할 때는 혈류가 아주 적게 들어가고 심장파동과 뇌파가 불규칙하다.
◆ 다윗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사무엘상 24:1-2의 기록을 보면 사울이 온 이스라엘 전국에서 선발된 최고 정예병들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 일행을 제거하려고 엔게디 광야의 험한 산지에 이르렀다. 다윗을 따르는 사병들은 600명 정도이니 이보다 다섯 배가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일시에 다윗 일행을 섬멸하려고 작정하였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보호 아래 있는 다윗을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모두 15번이나 도피하였다. 다윗은 유다광야를 중심으로 도피하느라 젊은 나날을 다 보냈다. 유다광야의 날씨는 사해바다 옆에 있어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덥다. 보통 40-45˚ 가장 더울 때는 54˚가 된다고 한다. 하루 이틀도 아닌 십여 년을 피난민으로 살아야 했다면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다윗은 해냈다. 그 15번의 도피생활 중에 사울 왕을 원망하지 않았고, 절망하거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인내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문제도 결국 믿음과 사랑 그리고 인내의 문제라고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약 1:2-4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➊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3) 험난한 길은 여러분에게 인내를 기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4) ➋ 인내력을 기르십시오. 여러 문제가 닥쳐올 때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지 마십시오. 인내력이 충분히 길러지면 여러분은 완전히 성장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들이 있는데 여러 가지 시련이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오며 피할 수 없다. 그것도 한두 가지 시련이 아니다. ‘겪는다. 당한다. 만난다’는 말은 ‘한 가운데로 떨어지는 것’이란 말로 우리의 삶의 한 복판에 뚝 떨어진다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기대했던 것도 아니다.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데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할 것은 인내(忍耐)입니다.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순간이 있는데, 이것을‘포기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문제는 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어떻게 뛰어넘느냐?’이다. 누구나 거룩함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못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고 그 다음은 못 한다.’ 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뛰어넘는 것이 진짜 인내이다.
물이 100°에 이르지 않으면 끓지 않는다. 증기기관차는 수증기 게이지가 212°를 가리켜야 움직인다. 99°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211°로는 기관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시험도 1점 차이로 떨어지고 붙는다. 올림픽 우승은 0.01초 차이로 갈린다. 승리하는 비결은 끝까지 참는 것이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38-48절에서 그렇게 교훈하셨다.
마 5:38-42 / 또 모세의 율법에 `만일 어떤 사람이 남의 눈을 상하게 하였거든 자기 눈도 상하게 하라. 만일 남의 이를 부러뜨렸거든 자기 이도 부러뜨리라'고 하였다. / 39)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➊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 ➋ 네 한쪽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 40) ➌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 겉옷까지 벗어주라. 41) ➍ 비록 가고 싶지 않더라도 누가 너더러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➎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➏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
마 5:43-48 / 또 모세의 율법에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이 있다. 4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➊ 원수를 사랑하라! ➋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46)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무슨 미덕이 되겠느냐? 세리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 47) 만일 너희가 너희 이웃들과만 가까이 지낸다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느냐? 이방인들도 그렇게는 하고 있다. 48) ➌ 그러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용서하지 않으면 밤잠을 설칠 수 있지만, 용서하면 평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복수하면 사람을 잃을 수 있지만, 용서하면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지만, 원수를 악으로 갚으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모든 죄를 용서 받았다면,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선을 베풀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18:21-35에서 용서에 대한 교훈을 하시면서 이런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다.
마 18:35 /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네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만일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지만, 만일 너희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음과 생각 속에 증오를 품으면 밤에나 낮에나 한 순간도 이 증오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것을 해결하기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한 순간 혹은 수년에서 일평생 지속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분노심의 습관들은 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체하게 하여 혈액순환을 막는다. 점점 혈액을 탁하게 만들고 몸의 유연성을 떨어뜨려 긴장되고 뻣뻣해지게 된다. 용서 못할 미운 대상을 품고 있으면 그 증오의 독이 상대에게 미치기 전에 먼저 나의 간을 먼저 상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내 몸에서 먼저 독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움과 증오는 먼저 자신을 찌르고 계속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
■ 미국 에모리대학 정신의학과 부교수 찰스 레종 박사에 따르면,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수준을 넘어 누군가에게 적개심을 지속적으로 품으면 자신의 육체의 건강도 병들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에 따르면 미음과 증오의 감정 응어리를 풀지 않으면 호르몬, 면역 체계에 교란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마음에 분개와 복수심을 품으면 신체가 본능적으로 그 대상과 싸울 준비를 하는데 이러한 끊임없이 싸울 대비는 혈압과 심박동수 증가와 같은 변화로 이어진다고 한다. 마침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공황 발작을 겪으며, 체내에 C반응성단백질과 같은 화학물질이 쌓이면서 심장과 신체 다른 부위에 큰 타격을 준다고 하였다. 이는 혈압과 심박동수 증가와 더불어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현상을 발생시켜 부정맥, 심장질환 등으로 돌연사하게 한다고 하였다.
결국 화병(火病 - 억눌린 분노에 따른 정신적·감정적 장애)에 걸려 죽는다는 말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셈이다. 또한 미음과 증오의 감정 응어리를 풀지 않은 채 장시간 지내면 호르몬, 면역 체계에 교란을 장시간 방치한 결과를 빚어서 결국 호르몬 조화가 깨져서 각종 몸의 이상 현상에 시달려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또 인체 면역계의 장시간 교란은 균형과 조화가 깨져서 그 면역계가 손상되거나 약화되면 신체가 더욱 쉽게 감염되게 된다. 이렇게 사람에서 장시간 면역결핍은 암세포를 파괴하지 못하는 지경이 오게 되어 당연히 각종 암에 걸린다. 그리고 그 면역계의 장시간 교란은 자가 면역질환으로 인해 만성염증성질환으로 일평생 고생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처참한 상황에서도 경건한 모습을 잃기는커녕 빛된 삶을 살고 있는 다윗 / 다윗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거룩하고 신령한 사람인지? 아니면 바보 같이 멍청한 사람인지? 자기에게 해가 될지라도 그리고 남의 조언(助言)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기준을 두고 있는 다윗은 사울이 그처럼 그를 죽이려고 하는데도 한 번도 사울과 맞서지 않았다. 자기가 원하면 얼마든지 사울을 해칠 수도 있었다.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사울이 던진 창을 주워 다시 사울에게 던질 수도 있었지만 창을 던지기는커녕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윗의 마음 한쪽 귀퉁이에서는 ‘너도 사울을 향해 창을 던져라’는 악마의 소리도 들렸을 것이다. 만약 그때 다윗이 창을 사울에게 던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 마음에 꼭 맞기는커녕 다윗 역시 사울 왕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불행하게 살았을 것이다.
사무엘상 24장이나 26장에 나오듯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되시오.’라고 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인다 해도 정당방위로 얼마든지 변명할 수도 있다. 직접 죽이지 않고 다른 사람이 사울을 죽이도록 가만히 있을 수도 있었지만 다윗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류하며 자기를 원수처럼 끈질기게 죽이려는 사울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피하기만 하였다.
▶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다윗은 원수 같은 사울왕의 목숨을 맡기면서 자기는 결코 왕을 해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해결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하나님! 임금님의 마음에 평안을 허락하사 악한 영의 시달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눈물로 기도하였을 것이다. 이 대목은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모범 답안이다.
길보아산에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왕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즉시 자기 옷을 갈기갈기 찢고 슬퍼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와 함께 있던 부하들도 모두 옷을 찢으며 행동을 같이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사울과 요나단을 비롯하여 길보아 전쟁에서 전사한 이스라엘의 모든 군인들을 위하여 슬퍼하면서 저녁때까지 단식하고 울었다(삼하 1:11-12).
작은 결론으로 성도들의 답안을 보자.
■ 어느 목사님의 간증 / 내가 군대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으로 복학한 때였다. 하루는 자취방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군대 고참에게 구타를 당한 생각이 났다. 그 고참은 나를 30분 동안 부동자세로 세워놓고 주먹과 발길질로 구타를 했다. 그 때만 해도 군대에 구타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때였다. 그 생각이 나자 갑자기 내 마음은 견딜 수 없는 분노와 복수심이 맹렬한 불길처럼 타올랐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며 그 고참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고 있노라니 한 5분도 안 되어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나는 하나님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성령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제 마음에 ‘그 고참을 긍휼히 여기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고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자 정말 그 고참 역시 폭력과 악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그를 위해 기도하고나자 내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다. 그 후로는 그가 생각이 나면 분노 대신 긍휼의 마음과 기도가 나왔다. 그 기도는 내 자신을 파괴하는 분노와 복수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마 5:44-48)고 하신 이유였다. 이렇게 순종하는 성도들에게는 평안과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은 거룩함이 있다. 우리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평화도, 기쁨도, 거룩함도 없다. 복수심을 버리고 원수를 사랑할 때 평화와 기쁨과 거룩함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눅 11:9-13).
■ 벤허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을 지켜보며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듣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지자 갑자기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가 치고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나병이 깨끗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다. 영화는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나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기 직전에 먼저 벤허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증오와 복수심을 버리고 용서하는 삶으로 변화된 것을 암시하고 있다. 벤허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전에 자기 집의 노예였다가 자유인이 된 에스더에게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전하면서 비로소 자기의 마음속에서 로마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사라졌음을 알려준다. “그때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리고 그분의 그 음성이 내 손의 칼을 거두어 가는 것을 느꼈오.”(I heard Him say, “Father, forgive them…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 And I felt His voice take the sword out of my hand.”
■ 하나님을 만난 북한 성도들의 순교 / 1972년 북한에서 고속도로를 공사하던 중 갑자기 땅이 무너지면서 땅굴 속에 숨어살던 김태용 목사님과 36명의 성도들이 발각되었다. 성도들은 1953년 북한의 공산당이 예수 믿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할 때에 땅굴로 들어가 19년 동안이나 숨어서 예배를 드렸다. 36명이 되는 성도는 수용소에 갇히는 것도 없이, 재판도 없이 바로 들판주변에 가서 하나씩 하나씩 죽이는데.. 먼저 가장 사악하게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이다. 13살 된 사내아이의 목에다 밧줄을 걸고 손을 뒤로 묶으려고 하는데 아이가 엄마를 불렀다. 죽는 게 무서웠을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하니 사형집행자가 짜증난 듯이 “이 아이 엄마가 누구요? 나오시오.”하고 하였다. 뒤쪽에서 아이엄마가 터벅터벅 걸어 나오면서 아이한테 하는 말 “예수님 만나러 가는 거야.” 그랬더니 아이가 “예! 엄마.”하고 대답을 하였다.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이 아이엄마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할 줄 알았는데, 예수님 만나러 가는 거라고 애기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받히고 있는 의자를 치니 아이가 떨어지면서 손으로 밧줄을 잡고 매달린 상태가 되었다. 손이 묶이지 않은 상태이니 살려고 밧줄을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하는 말 “이 아저씨 미워하지 마라. 천국에서 만나자.” 그랬더니 아이가 밧줄을 잡은 손을 놓으면서 “예! 엄마.”하면서 그대로 밧줄에 메어달려 죽어갔다. 갑자기 주위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죽은 아이 형이 다음 차례로 죽으러 가는데 “엄마! 고마워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엄마가 “뭐가 고맙니?” 하니 아이가 “천국 가서 예수님 만나게 해줘서 … .”라고 말하자 엄마가 “잠시 후에 천국에서 보자.”라고 말을 하였다. 죽으러 가는 아이가 집행관 아저씨를 보면서 말했다. “아저씨! 그래도 아저씨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누가 나를 사랑하니?”,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 아저씨를 사랑한대요.” 이렇게 큰 아들도 교수형을 당해 죽었다. 그리고 서서히 한 사람 한 사람 교수형을 당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김태영목사님을 아스팔트 까는 그 볼도저로 그것도 아주 천천히 발부터 깔아 버렸다. 목사님은 그래도 남자였는데... 무릎까지... 깔 때 살아서... ‘아~악’하면서 악을 섰다. 그런데 너무 놀라운 게... 무릎을 깔고 그 뒤로 넘어가는 순간.. 찬양을 하는 것이다. 혼자서.. ~ ♬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 더욱 사랑" 그러다가 머리까지 넘어와서 깔아버리고 그렇게 죽었다.
♬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1.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2. 이전엔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3.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 카타콤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지하에 동굴을 파고 그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예배하던 곳이다. 한번은 이곳에 로마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워낙 미로여서 입구에 있던 몇 사람만 잡혔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카타콤 입구에 이 사람들을 십자가에 매달았다. 깊은 밤이 되었다. 로마의 군인들이 돌아간 뒤에 십자가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아버지 밑에 어린 자녀들이 섰다. 십자가에 달린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들아!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란다. 너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믿음을 버리지마라. 주님이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과 딸아! 잠시 뒤에 저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초대교회 순교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바로 전에 동료 미술가와 심한 말다툼을 했다. 복수할 생각으로 작품에 등장하는 가룟 유다의 얼굴에 그 동료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의 얼굴에 그 동료의 얼굴을 넣음으로써 그림을 감상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가 경멸의 대상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다의 얼굴이 제일 먼저 완성되었다. 사람들은 그 얼굴이 다빈치와 싸운 사람의 모습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어서 그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혀 작업을 진행시킬 수가 없었다. 동료에 대한 미움이 그의 최고의 역작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빈치는 즉시 동료를 용서하고 유다의 얼굴을 지워버렸다. 다시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해서 세계 최고의 걸작품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게 되었다. 미움을 가지고서야 어찌 그리스도의 사랑스런 모습을 그릴 수 있겠는가?
웨슬리 목사는 회개 열매와 믿음의 열매를 강조하였다. 웨슬리 목사는 ‘진짜 회개, 진짜 믿음은 반드시 선행(good works)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모든 성도들은 이웃에게 해가 되는 모든 종류의 악을 버리고, 모든 종류의 선을 행하라’고 설교했다.
웨슬리 목사가 말한 선행(good works)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혼을 위한 선행’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몸을 위한 선행’이다. 영혼을 위한 선행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는 것, 병든 영혼들을 위한 선행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배고프고 헐벗은 자들, 갇힌 자들을 돌보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 작가 정연희 [원수사랑] /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여라 무슨 말입니까? 이 무슨 말씀입니까? 내게는 그리도 엄격하시면서 어찌 내 원수에게 그리 관대하십니까?” / “보아라, 나와 함께 하는 것아! 네가 원수와 똑같은 얼굴이 되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구나,” → 요나와 니느웨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어도 ‘어디까지 알아듣느냐?’가 문제가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알아듣는데, 하나님께서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지 그 뜻을 모르면 순종하기가 쉽지 않다.
■ 코리 텐 붐 여사의 용서와 사랑 /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쓴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1882-1983) 여사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코리 텐 붐 여사 집에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가족들이 모두 독일군에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갇혔다. 부모님과 언니는 그 가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서 수용소에서 죽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녀는 신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주의 종이 되었다. 그녀가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민족이기 때문에 지금 큰 상처를 입고 있다.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 그녀는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가라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그렇지만 독일에만은 못 갑니다. 하나님. 그 곳 만은 빼 주십시오. 독일 사람이 우리 부모님도 죽이고 언니도 죽였습니다. 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당한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 독일 사람에게 가서 내가 복음을 증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랑하는 딸아! 내가 나를 저주하고 욕하고 등진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진 것을 기억하라. 네가 내 딸이면 독일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 그 말씀을 듣고 그녀는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주님께 나오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하루는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서자 많은 사람들이 악수하기 위해 줄을 섰는데, 허름한 외투를 입은 한 남자가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코리 여사는 심장이 멎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강제 수용소에서 자기에게 무시무시한 고통을 가한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 간수였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한겨울 이른 새벽에 여자 포로들을 나체로 밖에 서 있게 하고 먹을 것도 주지 않고 갖은 횡포를 다해 괴롭힌 장본인이다.
바로 그 사람 손에 여사의 사촌언니 벳시가 강간당하고 견디지 못하여 끝내 수용소에서 죽었다. 강제 수용소에서 있었던 악몽 같은 괴로운 기억들이 주마등같이 스치는데 앞에 있는 바로 그 남자가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전쟁 당시 수많은 여자 포로들을 죽였기 때문에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꿈에도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강단에서는 용서를 외쳤지만 자기와 같이 벌거벗기운 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죽은 언니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 되면서 자기의 청춘을 짓밟은 장본인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서 손을 내어 밀지를 않았다.
도저히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할 수가 없어서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예수님 저는 하늘에서 진노의 벼락이 내려 이 사람을 때리기 전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도저히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저를 좀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십자가에서 나를 못 박고 죽이고 침 뱉으며 채찍으로 때리고 조롱하며 가시관을 씌워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내가 용서했지 않느냐? 너도 용서해 주어라”,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못합니다.”라고 여사가 기도하자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여사의 손이 나가서 그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무거운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네덜란드 사람인 당신이 전쟁 때 우리 독일 사람이 저지른 죄를 용서하고 복음을 전해 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 주님 앞에 나왔으니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 순간 갑자기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게 임했다. 순식간에 미움과 원한이 눈 녹듯이 다 녹아버리고 말았다. 그를 용서하고 나자 그녀의 영혼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즐거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며 거기에서 10년이나 젊어지는듯한 재생의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코리 텐 붐 여사는 그리스도의 큰 사랑으로 그 사람을 용서해 주었고, 그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그 때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쓰라린 원한의 상처가 치료를 받고 그 이후로 온 세계에 다니면서 용서와 사랑을 힘 있게 전할 수가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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