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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별곡(17)-복자 김종한 안드레아[1] 서한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마태 10,34).
[1] 복자 김종한 안드레아 : 보명(譜名)은 한현(漢鉉), 자(字)는 종한(宗漢)이다. 당시 교우들은 ‘계원’이라 불렀다. 복자 김진후비오의 셋째 아들이며, 성녀 김 데레사의 아버지이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작은할아버지다. 순교 전에 세편의 서간을 남겼다. 이 서간들을 통해서 복자 김종한의 영성을 엿볼 수 있고, 성 김대건 신부님께서 작은할아버지를 어째서 존경했는지를 알 수 있다.
■ 제1서간 : 중형 택현에게
제체(除體)하옵고, 저는 그런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을 적에 안동(安東)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첫 번 문초를 당하는 동안 이 고을 관장(官長)은 어떻게 해서든지 저를 배교(背敎)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주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굴하지 않고 체포되었습니다.
옥에 갇힌 지 10일 후에 관장(官長)은 제 다리를 곤장으로 치게 하고, 급히 대구 감옥으로 옮기게 하였습니다.
그곳에 이르자 관장(官長)은 천만가지 감언이설로 저의 굴복을 받으려 꾀하였으나,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시 다리를 곤장으로 치게 하고 감사(監司)에게 제 사정을 품신(稟申)하였습니다.
답장은 저를 배교(背敎)케 하라는 것이었으므로 저는 다시 곤장을 맞았습니다.
이 고을에서는 남녀노소 도합 100여 명이 붙잡혔습니다.
이 중에서 자기네 고향 옥중에서나 혹은 감영(監營)으로 가는 도중에 굶주려 죽은 이들도 있고 마음이 약하여 배교한 사람들도 있어, 이제는 겨우 13명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천주의 섭리(攝理)가 명하신 것이며, 또 우리들이 감사를 올려야 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육신은 몹시 약하므로 모든 것을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참아 받기는 어렵습니다.
이래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더 슬퍼지기만 합니다.
저 같은 불쌍한 죄인은 순교의 영광을 누릴 만한 공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다만 여러 교우들의 도의심(道義心)만 믿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빌고 기도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제 원이 채워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 제2서간 : 백형 종현에게
제체(除體)하옵고, 몇자 급히 보내드립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거리가 먼 관계로 형님과의 편지 왕래가 아주 끊어졌었습니다.
형님의 소식은 그저 간접으로나 좀 들었습니다마는, 올 농사가 몹시 흉작이라 제 걱정은 날로 심해가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천만 뜻밖에 마침내 형님의 글을 받게 되니, 형님을 상면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것이 꿈입니까.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제 마음에 밀려들어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쏟아집니다.
아버님 돌아가실 적에 임종을 모시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어, 적어도 소상(小祥)에는 참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원도 채워질 수 없으니, 저는 그만큼 더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비참한 흉년에도 형님께서는 여전하시고 댁내에서도 모두 무고하시다는 말씀을 들으니 반갑습니다.
초봄에 형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니 대단히 슬프기는 합니다마는, 아무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장 요긴하고 가장 중요한 일은 착하게 죽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무엇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사람의 가장 큰 도리는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영혼을 구하고,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큰 본분을 채우지 않고 세월을 허송한다면, 살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 본분을 생각지 않고 세상에 태어났다가 사람이 또 그 모양으로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은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 한 것이며 짐승보다도 못한 처지에 놓여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짐승은 죽으면 허무로 돌아가지마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서 그 영혼을 구하지 못하면 영원한 죽음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 말은 무서운 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죽게 마련인 육신이 죽음을 무서워한다면, 영원히 살게 마련인 영혼은 얼마나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
지금 지옥에 떨어지면, 살되 진정으로 살지 못하며, 죽되 죽을 수가 없습니다.
수 만년을 거기서 지났다 해도 언제나 시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슬프고 슬프다.
하늘과 해의 광명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
언제나 캄캄한 심연(深淵) 속에 빠져 있다는 것. 이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러나 한편 지옥의 괴로움을 생각하면, 이 세상의 어려움과 괴로움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세상의 병과 재산을 고생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잘 이용할 줄만 알게 되면, 그것들이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육신은 생명을 이어나갈 만한 것을 찾아내는데, 어떻게 영혼은 그렇게 할 수가 없겠습니까.
이 세상 물건은 본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선용하면 좋은 것이 되고, 악용하면 나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올라가는 데도 쓰이고 내려가는데도 쓰이는 사다리와 같은 것이어서, 어떤 물건이든지 우리가 죄를 피하고 공을 세우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위하여 하십시오.
그러면 간선자(揀選者)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착한 지향(志向)이나 나쁜 의향에 달린 것이니, 형님은 아무리 큰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예수를 위하여 참아 견디십시오.
그러면 그 어려운 일들이 구원을 이룩하고 천국을 얻게 하여 줍니다.
그러니까 고통과 고뇌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천주의 영광만을 찾으십시오.
교오(驕傲)와 육욕(肉慾)과 분노(忿怒)의 山을 무너뜨리고 영원한 행복을 향하여 날아가십시오.
저로 말씀드리면 이 괴로운 곳에 들어온 지가 벌써 1년이나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은혜로 몸 성히 잘 있으니, 이 은혜를 천주께 감사하는 바입니다.
저는 순교를 향해 가는 중이며, 이 마지막 은혜를 받기에는 너무도 부당합니다.
모든 일이 질질 끌어가기만 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으므로, 저는 몹시 겁이 납니다. 그로 인하여 육신은 편합니다마는 영혼은 마치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만일 이 훌륭한 은혜를 얻지 못한다면, 이 후에는 어떻게 삼구(三仇)와 대항해 나가겠습니까.
육신이 성하게 됩니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만약에 제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그것을 영영 다시 찾지는 못 할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형편을 생각하면 할수록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근거 없이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온전히 공으로 주시는 천주의 은총을 바라고, 둘째로는 여러 교우들의 기도를 믿습니다.
그러니까 전심전력으로 기도하여 주십시오. 제가 산림 속의 나무같이 되지 말고, 열매를 맺도록 날마다 기도하여 주십시오.
제가 언젠가 몇 가지 차인(差人) 물건을 받았는데, 아무 편지도 없었으므로 누가 보낸 것인지를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형님의 글을 받고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받은 것은 엄동의 추위를 지내는 데에 매우 유익하겠습니다.
천만번 감사합니다.
모든 이가 곤궁을 당하는 가운데 저는 이렇게 많은 분들의 부담이 되는군요.
천주께서는 제가 이렇게 열렬히 원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 제3서간 : 교우 이씨와 유씨에게
세월은 흐르는 물 같아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한 지가 어언 1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저나 형이나 고생은 아마 매일반일 것입니다. 가끔 형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이 무서운 겨울동안 형은 많은 곤란을 당하면서도 살아 계시다니 천주를 찬미합시다.
나는 지금 신앙을 위하여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훌륭한 처지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순교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질 뿐 아직 내 죄 때문에 아리따운 순교의 문턱에 머무르고 있을 뿐입니다.
결말이 지어지지 않고, 질질 끌어가기만 합니다.
나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습니다.
만일 이대로만 간다면, 이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월은 보배입니다.
그것을 한번 잃기만 하면 영영 도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 시간에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나 노력하게 되겠습니까.
세상사에서도 좋은 기회를 놓치면 그것을 다시 얻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구령사정(救靈事情)에 있어서 이겠습니까.
나는 천주교에 입교할 적에 천주를 섬기고 내 영혼을 구하는 것밖에 다른 목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당하는 처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별로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 아내가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괴롭고 슬픕니다.
내 아내는 겨울의 혹한(酷寒) 중에 몸을 부접할 곳이 없으며, 그가 있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친척이 아니면 친지라고는 하지마는, 내가 이런 처지에 있으므로 아무도 그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들이 가끔 자기 자신의 몸이 위태로워 질까봐 겁난다고 핑계하는 바람에 내 아내는 다른 데로 몸담을 곳을 찾아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어찌 이렇게까지 무정하고 무관심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교우들은 천주교를 믿기 시작하면 천주를 섬기고 우리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멀리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지방을 찾아갑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온갖 희생을 당합니다.
우리는 역경이거나, 순경이거나, 모든 것을 천주의 섭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서 오는 모든 곤란이 천주의 명으로 되는 것이고, 기쁨이나 괴로움이 우리가 잘 쓰면 모두 구원되는 방법이 된다 하더라도, 아무 의지 없이 외로이 있는 자들을 도와주는 것이 더욱더 훌륭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몸담을 곳이 없는 내 아내를 보살펴 주십시오.
내 아내를 형의 집에 받아들이고 친척처럼 대하며, 그의 육신과 영혼의 생명을 보존하여 주는데 힘쓰시면, 형은 그것으로 형 자신의 구원의 일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아내를 마음 놓고 형에게 부탁합니다.
형의 따님(역주: 따님이 아니라 누이, 이시임 안나인 듯함)이 우리와 함께 갇혀있기 때문에 나는 이 부탁을 한층 더 마음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몇 해 동안이나 더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될는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할 수 있는 대로 따님(역주: 따님이 아니라 누이, 이시임 안나 인 듯함)의 용기를 북돋아 주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서로 보상이 될 것입니다.
애덕(愛德)을 가지고야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천주께서도 이 세상을 애덕(愛德)위에 세우셨습니다.
만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보존되겠습니까.!
성교회(聖敎會)는 오직 한 몸을 이룰 뿐이고, 하늘과 땅이 하나의 전체를 이룰 뿐이며, 세상도 또한 하나의 전체를 이룰 뿐입니다.
합심과 사랑 위에 자리 잡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육체는 많은 지체(肢體)가 있는데,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지체(肢體)가 어디 있으며, 우리가 떼어 버렸으면 하는 지체는 또 어떤 것입니까?
사람은 서로서로 도움으로만 사는 것이니 육신은 영혼을, 영혼은 육신을 도와야 합니다.
생명을 보존하는 데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비록 각 사람이 따로 떨어져 한 지체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마는, 성교회(聖敎會)의 머리는 천주님이요, 목은 동정 성모 마리아이시며, 우리들은 모두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직접 해하지 않는다 하여도, 해하는 것은 곧 머리를 해하는 것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지체를 사랑하는 것은 곧 머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천주를 사랑하면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고, 사람들을 사랑하면 천주를 또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 김종한 안드레아의 해제 / 영남교회사연구소 부소장 마백락 클레멘스
1815년(을해) 박해 때 그해 4월 3일(음) 안동 고을 우련전 에서 체포되어 안동진영으로 압송된 후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온 긴대건 신부의 종조부인 김종한 안드레아는 그의 중형 택현에게 첫 번째 안부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관장이 그를 배교 시키려고 문초를 했으나 끝까지 굽히지 않았고, 10일 후에 대구감영 옥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처음 100 여명이 체포되었으나 그 중에 배교 하거나 굶주려 옥사하고 이제 겨우 13명만 남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첫 서신은 1816년 중형 택현에게 보낸 서신이며, 둘째 편지에는 감옥에 갇힌 지 1년 후에 백형인 종현에게 보냈다.
그 내용은 “사람의 가장 큰 도리는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영혼을 구하고,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만약 이 본분을 채우지 않고 세월을 허송한다면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이 본분을 생각지 않고 세상에 태어났다가 사람이 또 그 모양으로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은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할 것이며 짐승보다도 못한 처지에 놓여 있게 됩니다.”라고 그의 깊은 신앙심을 고백하였다.
끝으로 1816년 교우 이씨(아마 이성삼)과 유씨에게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아서 의지할 데 없는 자기 아내를 돌보아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했다.
그 대신 지금 자기와 같이 감옥에 갇혀 있는 그의 따님(아마 누이)의 신앙을 잘 보살펴 주겠다는 내용이다.
“나는 천주교에 입교할 적에 천주를 섬기고 내 영혼을 구하는 것밖에 다른 목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당하는 처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별로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 아내가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괴롭고 슬픕니다. 내 아내는 겨울의 혹한 중에 몸을 부접할 곳이 없으며, 그가 있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친척이 아니면 친지라고는 하지마는, 내가 이런 처지에 있으므로 아무도 그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들이 가끔 자기 자신의 몸이 위태로워 질까봐 겁난다고 핑계하는 바람에 내 아내는 다른 데로 몸담을 곳을 찾아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몸 담을 곳이 없는 내 아내를 보살펴 주십시오. 내 아내를 형의 집에 받아들이고 친척처럼 대하며, 그의 육신과 영혼에 생명을 보존하여 주는데 힘쓰시면, 형은 그것으로 형 자신의 구원의 일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몇 해 동안이나 더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할 수 있는데로 따님의(딸이 아닌 누이) 용기를 북돋아 주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서로 보상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김종한(한현, 계원) 안드레아는 첫 번째 부인이 결혼하여 순교자 김 데레사를 낳고서 일찍 세상을 떠난 후 둘째 부인을 맞이하였다.
그때 둘째 부인에게서 난 자녀인 김공숙(재덕)이 1813년에 출생하였으므로 3살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친척들이 잘 돌보아 주지 않으므로 어린 자녀와 함께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가 편지를 쓴 이씨는 아마 이성삼인 듯 하며 그때 그는 충청도 공주 부근의 무성산에서 피신하고 있었고 그 때 김종한 안드레아와 함께 감옥에 갇혀있는 이성삼의 딸이 아닌 누이는 아마 순교자 이시임 안나인 것 같다.
※ 문헌상으로 보아 첫 서신은 중형인 澤鉉, 즉 김대건 신부의 祖父에게 보냈다.
※ 김대건 신부의 족보(金海金氏 安敬公派 世譜)에 의하면 1816년에 宗鉉의 부인이 사망했으므로, 둘째 편지는 長兄인 宗鉉에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