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왕
신라 제38대 원성왕은 내물왕의 12세손으로 이름은 김경신이다. 아버지는 효양이고,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이다. 왕비는 각간 김신술의 딸이다. 785년에 왕위에 올라 798년까지 13년간 왕좌에 앉아 있었다.
원성왕은 왕위를 이어받는 과정이 석연치 않아 이를 정당화 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신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만파식적을 아버지로부터 받아 보관하고 있다고 백성들에게 전파했다.
이어 원성왕은 즉위 이후 왕권 강화를 통한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고, 귀족들의 세력을 평정하기 위해 독서삼품과를 도입하는 등 제도를 정비했다. 당시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서는 춘추를 풀어 쓴 춘추좌씨전, 예기, 문선, 곡례, 논어, 효경 등의 책은 반드시 읽어야 했다.
왕은 조상의 5묘를 만들어 제사하는 등 왕의 권위를 높이는 일들을 다양하게 찾았다. 총관을 도독으로 고치고 재상과 중앙, 지방정부의 조직을 정비했다. 발해에 사신을 보내 외교를 두텁게 하고, 봉은사를 건립해 불교를 재정비했다.
원성왕은 아들 인겸을 태자로 책봉했지만 태자가 죽자 둘째 의영을 태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 아들까지 차례로 죽어버리자 첫째 아들 인겸의 아들이자 손자인 준옹을 태자로 삼았다. 준옹이 나중에 39대 소성왕이 됐다.
소성왕이 즉위한지 1년 만에 죽으면서 그의 아들 청명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40대 애장왕으로 즉위했다. 애장왕이 어려 숙부 언승이 대신 정치를 했다. 언승은 동생들과 함께 왕을 죽이고 41대 헌덕왕으로 즉위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왕권을 둘러싼 전쟁이 이어졌다.
원성왕이 왕위에 오르자 중국을 비롯 일본에서도 사신을 보내 보물 만파식적을 보고 싶어 하는 등으로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연회국사가 번번이 해결책을 내놓으며 나라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첫댓글 원성왕이 785년 즉위하고
효공왕이 912년에 물러났으니
원성왕 이후 15명의 원성왕 후손이 127년간 나라를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