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2월 13일(월) 에스라 7:1-10 찬송 214장
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2.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3.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4.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5.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7.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여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개역 개정)
유대 백성들의 제 1차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에 관해 서술한
에스라의 전반부(1-6장)와 오늘 말씀에서부터 시작되는
본서의 후반부(7-10장) 사이에는 58년이라는 시간적 공백이 있다.
즉 성전 재건 공사가 마무리된 것이 주전 516년이었는데 비해서
본문에 언급되는 유대 백성들의 제2차 귀환은
주전 458년에 이루어진 사건으로서
바사 제국의 통치자 역시 4대 왕 다리오에서 아하수에로를 거쳐
6대 왕 아닥사스다로 바뀌어진 뒤의 일이다.
따라서 앞장과 본장 사이에 에스더 사건이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유대 백성들의 제 2차 포로 귀환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한편 본문에서 제 2차 귀환을 주도한 것이
본서의 기록자인 에스라임을 알 수 있는데
그는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서 율법에 정통한 학사였다.
아룰러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받는 관직에 있던 인물로서
유대 백성들을 지도하기에 충분한 신분과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다.
본문은 그의 족보와 신앙 인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1-6절)
이어서 에스라의 인도에 따라 유대 백성들이 4개월에 걸친 여행을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7-10절)
이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아무 사람이나 자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히 준비된 사람을 불러서 사용하심을 교훈한다.
즉 에스라가 유대 백성들의 제 2차 귀환을 주도하고
또한 예루살렘에서 신앙 부흥 운동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은 단지 그가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만한
준비 자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6, 10절)
오늘날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비록 세상 지위가 보잘 것 없고
학문적 지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고 경건한 신앙을 지닌 자를 택하여
당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신다.(고전1:26-28, 딤후2:15, 21)
또한 직선 거리로 약 900km이지만 실제 여행 거리는 무려 1,500km에 가까운
귀환길을 유대 백성들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9절)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험난한 광야에서 40년동안 아무 부족함없이 돌보신(신8:4) 하나님께서는
택한 종 에스라가 이끄는 험난한 여정도 지켜 주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천성을 향해 믿음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의 인생 여정 역시 언제나 도와주시며 보호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친히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날마다 천성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마28:20, 빌3:14)
한편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은 바벨론에서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거나 안락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유대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였다.(10절)
바로 이와 같은 에스라의 태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에 덕을 세우며,
다른 성도들에게 영적인 축복을 가져다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될 복음 사역자들의 사명을 일깨워 준다.(고전10:31-33)
따라서 우리는 매일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리시는 삶의 궤도로부터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9절)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와 그 일행은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을 출발하여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제2차 포로 귀환자들은 만 4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900km에 이르며
장정(壯丁)의 경우 한달이면 족히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이 실제 이동한 거리는 약 1,500km 정도 되었다,
왜냐하면 그 사이를 가로막은 사막을 피하여 북부 시리아로 우회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거리는 대상(隊商)들이 약 3개월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상적인 여행 기간보다
약 1 개월이 더 소요되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의 귀환이 지체된 것은 귀환자들 중에
노약자와 어린이들이 다수 포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당시 바사는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하여
제국 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으며도적과 강도들이 들끓어
귀환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본서 8:31에 의하면 대적과 매복한 자들이 이스라엘을 노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그들의 여정을 지키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이 사실을 9절과 8:31절에서 거듭하여 강조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뢰하는 성도의 인생 여정 동안 함께하시며 선한 손길로 도우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멀고 험한 인생의 여정속에서도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능히 살아갈 수 없는
광야에서 40여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33:29) 라고 말한다.
우리 인생의 수천 수만 km의 여정을 되돌아 보면
우리가 안전하고, 평안하며, 여전히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
우연이거나, 재수가 좋았기 때문일까?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여정은 에스라의 여정만큼이나
많은 함정과 도적과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수많은 위험속에서 고난의 날들이라 불리는 시간조차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고 우리를 이끄시기에
평안을 누릴 수 있고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시37:18-19)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고난을 당하며,
마치 홀로 험한 길을 가는 위기감을 느낄 때가 있을지라도 염려하지 말라
성경은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3-4)고 약속하고 있다.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심을 믿고
확신 가운데 사는 삶의 여정이 되어야 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1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