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것은
세상이 만물(물질)이
나의 몸 속으로 들어 왔을시
두기지로 나간다.
하나는 오줌으로
또하나는 변으로
마찬가지로
인간 정신에서 비 물질적인 배움이 있어
나의 몸 속으로 들어 왔을시 두가지로 나간다.
하나는 그것을 그대로 보내거나
또 다른 하나는 의식을 재맥락화해서 또 다른 새로운 것으로
9/1 <짱>
자기 일에 유능한 사람은
진정한 기쁨쟁이가 된다.
우리는 모두 탁월함에,
그 대단한 솜씨에 짜릿한
기쁨을 느낀다.
(그렇다면)
대단한 솜씨가 있는 사람의
무엇이 우리게게 기쁨을 줄까?
(그것은)
그의 가슴이다.
챔피언의 가슴이다.
우리는 그들의 창조성에 갈채를 보낸다.
---
<성공은 당신 것>
고로 성공한 사람이란
자기일을 하면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유능하게 일을 처리하며 그 일에 기쁨을 느낀다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9/2 <찡>
마음은
바라는 바와
싫어하는 바 사이에
붙잡혀 있다.
두 가지 다
속박인 것이다.
어떤 싫어하는 것은 본래
어떤 길들여진 인식에 대한
애착이기도 해서
받아들이면 사라진다.
<호모 스피리투스>
9/3
영적 진화는
마음을 지켜보면
(그리고 마음의 부정적 성향을 ‘대상’으로 삼아)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결과이다.
내용이 페러다임이 아니고
맥락이 페러다임에서
전체를 보는 관점으로 지켜본다.
변화를
강제하는 대신
그저 신성이 그렇게 하게
놔둘 필요가 있다.
그러러면
통제하려는 시도,
저항하려는 시도,
이일이나 손해가 있다는
환상을 모두 깊이 항복한다.
환상을 깨뜨리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고‘
그저 환상이
사라지게놔둘 필요가 있다.
<의식수준을 넘어서>
9/4 (완전 짱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이 멎은 것은(이겨내는 것은)
행복의 원천이
내면에 있음을
알게 된 결과입니다.
(즉)
내가 실재한다는 환희,
지속적이고 외적인 것에
좌우되지 않은 이 환희가
행복의 원천임을 알게된 결과입니다.
내가 세상과 타인에게
기대하고 요구하기를
항복한(내려 놓은) 결과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거나 받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걱정과 불안과
불행을 보장하기 떼문입니다.
<호모 스피리투스>
9/5
영적 진보는
단계적으로 일어난다.
처음에는
영적 실상을 알게 되어
그것을 연구하는 단계이다.
이어서
삶의 모든 면에서
가르침을 실천하고 적용한다.
그러면 결국
사람 자체기 기도가 된다.
헌신하고,
서원하고,
실천하는 것을 통해
영적 개념이
경험적 실상이 된다.
<현대인의 의식지도>
9/6
영적 가르침과 하나가 되려면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에고로부터
저항이 올라옵니다.
(실 생활에서
저항이 올라 온다면
에고가 발동했다고 보면 됩니다)
에고는
겸손을 모르며
자부심 탓에
자기가 ’틀렸다‘는데
<엄청> 분개합니다.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틀린 견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견해를 받아들이는 중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눈>
9/7
악의와 적의는
말 그대로 나를 병드게 한다.
내가 품는 양심의 피해자는
늘 나 자신이다.
남모르게 품은 적대적인 생각조차
나 자신의 몸에 생리적인 공격을
초래한다.
<의식혁명>
9/8
성공하려면,
자신이 해야 할 일
뿐만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할 일의 원칙부터 알아야 한다.
사실
‘일을 망친 때’는
시기만 한 레몬으로
맛있는 레모네이드를 만들 기회와도 같다.
이 기회를 활용하려면
실수에 힘입어 더욱 향상할 수 있도록
실수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후회와 쓰라림을 훌훌 털고
먹구름이 가장자리에게 밝은 빛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공은 당신 것>
9/9 <찡>
자각은
‘이익’ 이나 성취가 아니다
또한 선하다고 보상으로 주어지는
‘어떤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모두 어린 시절에 얻은 관념이다.
신은(하느님은)
결코 변하지 않기에
잘 조종해서 편애하게 만들거나
흥정이나 과한 칭송으로
꼬드길 수 없다.
신(하느님)을 경배하면
이로운 것은
(내) 서원과 영감이
강화되기때문이다.
신(하느님)은
고요하고
말이 없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호모 스피리투스>
9/10
자기도취적인 에고 핵은
‘맞다’에 정렬합니다.
이 ‘맞다’가
‘지혜와 부합하다’릉 의미하든
‘지헤를 근거없다고 거부한다’를
의미하는 게의치 않고
증명하는 방법이 지닌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된다.
진실을 검증하려면
주관적 경험으로 확증하는 것은 물론
객관적이고 증명 가능한 기준을 통해
획증할 필요가 있다.
9/11<짱>
뜻밖의 일로 삶을 격변하면
다시 적응해야만 하는 것에도 불안을 느낀다.
중대한 의사 결정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아 둘 필요가 있는
영적 연구 보고에 따르면,
심신이 괴롭거나
감정적으로 힘든 것은
모두 저항 때문이다.
그 치유책은
받아들이고 항복함으로써
고통을 덜거나 없애는 것이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
9/12 <짱>
용기는
두려움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용기는
두려움을 이겨 낼 자발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두려움을 이겨 내면
숨어 있던 강인함과 불굴의 용기가 드러난다.
의도하고 노력할 책임은 있지만
결과를 낼 책임은 없다는 점을 깨달으면
실패의 두려움이 줄어든다.
결과는 개인의 것이 아닌
여타 많은 조건과 요인에 좌우된다.
<의식수준을 넘어서>
9/13
호의가 사라지면
성공도 사라진다.
호의가 사라지면
신뢰, 믿음, 만족, 마음가짐, 고객의 충성심,
여타 삶을 가치있게 해 주는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진다.
그 모든 것이 함께 파탄을 맞이한다.
<성공은 당신 것>
9/14
문: 영적 진실, 즉 깨달음의 탐구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답: 간단하다.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인가?에서 시작하라
모든 진실은
내면에서 발견된다.
검증된 가르침을 길잡이로 삼으라.
9/15 <완전 짱>
영적 학습이 일어나는 과정은
논리처럼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영적 원칙과 영적 단련에
친숙해지면서 ‘알아차림’과 ‘자각’에 눈을 뜨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것’도 배우지 않는다.
대신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
완전히 명백한 것으로 나타난다.
<<나의 눈>
9/16<완전 짱>
진화가 미묘한 차이를 나타남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진화의 길에서 더 멀리 간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알면
타인에 대해
분노하고,
두려 하고,
증오하고,
비난하는 대신
용서하고,
연민을 갖게 된다.
그리고
타인을 용서하려는 자발성이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반영되어 능력이 커진다.
<호모 스피리투스>
9/17<완전 짱>
자기 자신을 포함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저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변형의 힘이다.
친절은
어떤 반발도 사지 않고
어떤 부정적인 면도 없고
어떤 손해나 절망도 없다.
어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사람의 파워를 증대합니다.
하지만
최대의 파원에 도달하려면
친절의 대상에
어떤 예외가 있어서 안되고
어떤 이기적인 보상을 기대하며
친절을 베출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친절의 미치는 영향은
미묘한 만큼이나 지대하다
<의식혁명>
(이 단락을 묵상한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사실 친절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9/18
신성과
진실에 정렬하기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면
다시 자율권을 얻으면서
정체성의 자아에서
큰나로 이동하고,
이에따라
자신을 비하하거나 폄하하는 대신
자신 있고 용기 있고 품위 있게 된다.
전면적으로 항복하면
평화를 얻는다.
부분적으로 항복하면
의심이 오래도록 남는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
9/19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
생명의 친구가 되고,
인간이 지닌 본성의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친구가 되는 것
또한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성공은 당신 것>
9/20<완전 짱>
단편적이고 국한되어 있는
입장성들이 일으키는 착각과 환상을
가리켜 ‘문제’ 라 일컫는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원하는 바와
원하지 않는 바가 있을 뿐이다.
무언가로 괴로운 것은
그것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9/21<완전 짱>
삶이 의미를 잃으면
우리는 먼저 우울에 빠진다.
삶의 너무 무의미해지면
우리는 아에 삶을 떠난다
힘(포시)의 목표는 일시적인 것이다.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면
덩 빈 무의미만 남는 것이다.
한편 파워는
우리들에게 끝없이 동기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삶이 주변 사람 모두의
건강과 행복과 안전을 증진하는데
전념하는 것이라면
그런 삶은 결코 의미를 잃을 수 없다.
<의식 혁명>
9/22
진실은
그 절대적 주관 때문에
객관적으로 더 생각해 볼점이나
불 확실한 점이 전혀 없다.
그런 것은
오직 에고로부터 나온다.
에고가 무너지면
모든 논쟁이 그치고
그 자리에 침묵이 들어선다.
의심이
곧 에고이다.
<호모 스피리투스>
9/23
열정의 유뮤보다
전념의 유무가
어떤 길의
진실성 여부인지 더 잘 보여 준다.
그 길에 믿음을 가지고 의심을 거둬야
의심이 현실성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저항항의 형태인지 확인할 수 있다.
구도자는
공부하고
스스로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로 생기는
‘내적 확신’과 더불어
‘굳건한 신념’을 통해
안전함을 느끼고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길은 본질 자체가
구도자의 자신의 발견과
내면 경험으로 진실성이
재확인되는 것이라야 한다.
진정한 길은
구도자의 경험을 통해
그 실상이 점차 밝혀지고
알려지고 재확인된다.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
9/24<완전 짱>
영적 노력에 저항의 생기는 근원은
자기도취적 에고 핵 자체다.
에고 핵은
사람이 실재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놓고
자신의 통치권이자 저작자라고
은밀히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영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제하거나 이익 얻기를 원하는 고집과 욕마이 거듭거듭 분출한다.
이런 양상이 약해지려면
에고가
자만심이 강하고,
오만하고,
탐욕스러우며,
미워하고,
분개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 감정은
에고가
엉겁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달되는 동안 학습되어
에고가
켜켜이 쌓인 것이다.
따라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자기 이익 추구에서
큰나 이익 추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그런 원초적 감정에 끌리지 않게 되었을 때 감정을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의식 지도>
9/25
성공을 지속적으로 보장 받으려면
성공이란
인간의 지닌 본성의 참 모습을 다소
알아차린 결과이며
그런 본성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면에서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알면
성공한사람에게닥치는
도전을 견뎌 내는데 필요한 겸손을 얻는다.
이 도전이 진짜 시험 즉 세상에서 가장 큰 시험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가진 맥락이 근원을
에고가
망치거나 악용하지 않게 해야 한다.
감사는
최고의 방어 수단 가운데 하나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그것으로
어떤 일에 성공하고 있다면
그 재능에 늘 감사하라.
늘 감사하고,
오만하게성공을 과시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성공을 공유하려고 노력하라.
<성공은 당신 것>
9/26
자부심의 부정적인 면은
거만함과 부인이다.
문제가 있어도
시인하지 않고 부인한다.
이런 특징이
성장을 방해한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
9/27<짱>
고통의 근원은
신념체계 자체가 아니라
신념체계와
그 과장된 가상적 가치에 대한
애착이다.
애착을
내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기는
의지의 사용에 달려 있다.
의지는 단독으로도
항복의 과정을 통해
애착 기제를 되무를 힘이 있다.
이 과정이
주관적으로는
희생으로 경험되거나
희생으로 간주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희생이 아니라 해방이다.
상실이 주는감정상 고통은
애착자체에서 생겨나지
상실한 ‘그것’에서 생기지 않는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
9/28 <완전 짱>
진정한 행복은
언제나
이 순간이
‘바로 지금’에 있다
하지만 에고는
언제나 무언가가 완료되어
만족을 줄 미래,
욕망이 실현될
‘그 때’를 기다린다.
<치유와 회복>
9/29
영적 순수성은
자신에게 솔직한 결과이고
자기의 솔직성은
진정으로 헌신한 결과이다.
신의 종이 되는 것은
신성한 인도와 정렬하는 것이며
정렬하면
자아나 세상에 영합하기 보다는
큰나에게 인도하기를 바란다.
<의식 수준을 넘어서>
9/30
문 : 영적 작업이란 어떤 것일까?
답: 그 과정은 발견의 과정이라,
사람은 발견을 위해 내면을 향한다.
또한 큰나에 영향받아
영적 노력을 삶의 목표로 선택한다.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