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색기(按圖索驥) : 그림을 보고(살펴) 천리마를 구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을 한자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시부시자(是父是子)'이다. 훌륭한 아버지 밑에 훌륭한 아들이 있다는 뜻이다. 송나라 때 '삼소(三蘇)'로 일컬어졌던, 중국 문학사에서 唐과 宋을 통틀어 가장 글을 잘 썼던 여덟 사람을 뜻하는 唐宋八大家에 속한 소순(蘇洵)과 그의 두 아들 소식(蘇軾), 소철(蘇轍)을 일컫는 말에서 비롯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 삼부자를 '시부시자'라 칭하며 부러워하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와 아들이 세대를 연이어 훌륭한 이름을 남기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훌륭한 아버지의 위대함을 계승하지 못했던 두 아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다.
<천리마 감별사 백락의 아들 이야기>
춘추전국시대 백락은 말을 한 번 보기만 해도, 그 말이 하루에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알아낼 만큼 감식안이 대단했다. 천리마 감별사라는 백락(伯樂)의 지위는 역사 속에서 그야말로 不動의 자리에 있다.
나이가 들자, 백락은 자신의 경험을 정리해 천리마를 감별하는 책을 냈다. '말을 살피는 경서'라는 뜻의 《상마경(相馬經》이다.
여기서 상(相)은 '서로'가 아니라, '자세히 살피다'라는 뜻이다. 백락에게는 노년에 얻은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백락이 《상마경》을 쓰고 있을 때, 그 아들이 책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들은 자신 역시 아버지처럼 말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상마경》의 몇 조목을 열심히 읽고 외웠다. 그리고는 속으로 '이만하면 나도 전문가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를 기다렸다.
하루는 그가 길을 가다가 큰 두꺼비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가만히 두꺼비를 관찰하던 아들은 탄성을 지르면서 말했다.
"이게 바로 천리마가 아닌가! 이마가 각이 지고 높으며, 눈은 크고 빛이 나며, 발목은 가늘지만 힘이 있으니, 아버지의 책에서 말한 천리마의 조건과 완전히 일치한다. 드디어 천리마를 찾았다!"
그는 두꺼비를 잡아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 백락에게 말했다.
"아버지, 드디어 천리마를 찾았어요! 아버지가 책에서 말한 천리마의 조건과 똑같아요."
백락이 기가 막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 우둔한 아들에게 한 마디했다.
"아들아. 이 천리마는 잘 뛰기는 하겠다만, 그 등에 사람이 타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이 콩트 같은 이야기에서 비롯된 成語가 '그림을 보고 천리마를 구하다'는 뜻의 '안도색기'다. 교조적인 원리 원칙에 매여 융통성 없이 고지식하게 일을 처리하다 결국 실패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현장의 다양한 경험은 무시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원리원칙만 고집해 두꺼비를 천리마라 우기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살필 按, 그림 圖, 찾을 索, 천리마 驥.
'그림에 그려진 대로 천리마를 찾는다'는 뜻.
<조나라 명장 조사의 아들 이야기>
전국시대 조(趙)나라 효성왕 때 진나라 대군이 쳐들어왔다. 백전노장 염파가 이끄는 조나라 군대와 명장 백기가 이끄는 진(秦)나라 군대가 장평(長平)에서 맞부딪쳤다. 정면으로 맞서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염파는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진나라 군대가 지치기만 기다렸다.
아무리 도발해도 조나라 군대가 도무지 싸움에 응하지 않자, 진나라는 이간계(離間計)를 써서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
"지금 총사령관 염파는 겁쟁이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명장 조사의 아들 조괄(趙括)이 군대 총사령관이 되는 것이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조사에게 적지 않은 병법서를 익혔다. 병법을 論할 때는 사리가 분명하고 언변이 유창하여, 때로는 아버지조차도 그를 굴복시키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 조사는 아들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아내가 까닭을 묻자, 조사가 말했다.
"전쟁은 목숨을 거는 일이 아닌가. 한데 이 아이는 전쟁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네. 조나라에서 이 아이를 쓰지 않으면 그만이겠으나, 언젠가 이 아이에게 병권을 맡기면 조나라 大軍을 망칠 사람은 바로 우리 아들일걸세."
조사가 걱정한 대로, 진나라의 이간계에 넘어간 조나라 왕이 조괄을 총사령관에 임명하려 했다. 충신 인상여가 왕에게 반대 의견을 전했다.
"조괄이 군대를 지휘하게 하면, 틀림없이 실패할 것입니다. 조괄은 그저 자기 아버지 조사의 병서에 적힌 전략만 익혔을 뿐이며, 근본적으로 임기응변의 능력이 없는 者입니다."
하지만 왕은 인상여의 말을 듣지 않고, 조괄을 보내 염파를 대신하게 했다.
조괄은 군대를 접수하자마자, 戰場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 병법서에서 배운 그대로 수비 위주에서 공격 위주로 전략을 바꾸었다.
그는 진나라 백기의 거짓 후퇴에 속아 깊숙이 쳐들어갔다가 고립되었다. 보급부대의 지원이 끊긴 상태로 포위되어 40여 일을 버티던 그는 결국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총사령관이 죽자, 수십만 병사가 그대로 진나라에 투항했는데, 포악한 진나라 군대는 이들을 그대로 생매장 해버렸다. 이 전쟁으로 조나라는 거의 망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사기》'염파인상여열전'에 수록된 조괄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成語가 '지면에서 병법을 논하다'라는 뜻의 '지상담병(紙上談兵)'이다.
이 成語는 실제 상황과 연계하지 않고, 공허한 이론에 입각한 탁상공론만 일삼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상황변화에 따라 발 빠르게 대처하는 임기응변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임기응변 능력이 풍부한 현장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不變의 진리를 망각하면, 일을 그르칠 확률이 높다.
創業도 어렵지만, 그 창업을 지키는 守城은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이것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시부시자'가 힘든 이유다.
백락과 조사는 풍부한 현장 경험에 기초하여 이론을 만들고 전략을 세웠다. 그 이론과 전략은 그들의 명성과 업적에 기대어, 막강한 권위를 얻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가 세운 이론의 권위에만 의지하고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전략을 개발하는데 소홀하면, 결국 守城에 실패하고 만다. 또 끝없는 자기 혁신을 요구하는 이 시대에 先代의 이론과 방식이 현장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인순수구(因循守舊):
늘 하던 방식으로 옛것을 고수하다.
* 고보자봉(故步自封):
옛 걸음걸이로 스스로를 제한하다. 현재 상태에 안주해,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는 자세를 의미한다.
* 독수일치(獨樹一幟):
홀로 깃발 하나를 세우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스스로 一家를 이룬 것을 말한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