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여든의 언덕에 올라보며
박영일
이 글 쓰는 2023계묘년도 다 지나가고 있다. 나도 한 때는 지학(志學)의 청소년 나이 때도 있었다. 내 나이 입지요, 불혹도 거쳤다. 어언 세월이 물처럼 흘러 여든 넘고, 망구(望九)에 이르러서 어느덧 세월을 관견(管見)한다. 나는 젊어 보았다. 그러나 이제 여든의 언덕에 올라섰다. 내 뒷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한 모금 물마시듯 세월이 지나 간다. 멀거니 서서 물러나 살아 온 뒷모습 바라본다.
2023년 12월 7일 그날 하루는 일장춘몽이었고, 인생의 부귀영화가 꿈처럼 덧없이 사라졌다. 과거 현장에서 제품품질 검증기술 테스트 한다고 부질없는 일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현실에서 상사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쓸모없는 일을 한다고, 세상사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라고 빚 대는 말을 들어본 때가 있었다. 이제 실감한다.
11월 중순경 왼손 중지마디가 붓고 불편하여 Y병원 정형외과에 들렀다. 손가락 기브스로 치료받은 다음 처방전을 들고 약사에게 전하고 기다렸다. 약사는 손가락 치료약은 별개로 말하였다. “연세도 있고, 추위를 타고 하니까 혈액 순환제를 복용하면 건강에 좋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참작 하라고 권유한다. 그 순간 약 구입에 대한 충동감이 생겼다. 먹어볼까하면서 혈액 순환제는 어떤 약이냐고 물었다. 첫째, 티로플렉스 세립과 둘째, 헤모플렉스 캡슐처방을 받고 귀가 솔깃했다. 왜냐하면 나이도 있고, 뇌졸중 치매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얼굴하고 귀를 보더니 귓밥에 주름이 있다하였다. 진단결과 “이 약 다 먹고 난 이후는 치매 뇌졸중 예방약을 알아서 처방 해주겠다.”고까지 하니까 너무 고맙게 생각하였다. 현재 받아가는 약을 신뢰하고, 약사 말대로 약값은3개월 할부조건으로 하고 카드를 내어 주었다. 약값은 십사만 원으로 큰돈은 아니지만 약 먹으면 예방이 된다고 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감사한 마음으로 약 봉투 들고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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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약국으로 가서 약사 지시대로 “하루 2회 약 20일분 모두 복용을 했습니다.”하고, “지난번에 제시한 치매예방약을 받으러 왔다.”고 하였다. 이번 약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있다. 1개월 전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았다. 건강에 관련한 프로그램에서 전 아나운서였던 왕종근 내외가 출연하였다. 치매가 있는 장모 병 돌보며 여러 가지 어려운 사실을 들려 주었다. 왕종근 내외도 예방차원에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텔레비전시청하고 있는 순간 무서운 병이라고 스스로 판단했고, 예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약사에게 약 효능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다시 들었다. 약사는 “약은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상호간 거래를 하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약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십구만 팔천 원 이다. 한순간 아차 큰 실수를 했구나. 약값이 너무 비싼 것 같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본 것으로 이와 같은 약이 “포스파티딜 세린”이라고 했다. 듣고 있는 즉시 메모 해두었다. 이 약국에서는 같은 약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약사는 “이 약은 좋은 약이다.”라고만 말했다. 이도저도 못하고 이 상황에서 입장이 난처하였다. 평소 매사 세심하고, 심사숙고하며 행동하는 사람인데 만감이 교차한다. 이러한 뒷모습이 새삼 저어된다. 아마도 이러한 일에는 젊은 아들과 상의했어야만 좋겠다고 나중에 생각하였다.
집에 들고 가면 당연히 내자가 반대하면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다. “약사님 혹시 나중에 반품은 되겠지요?”하고 물었다. 참 고맙게도 된다고 했다. 얼른 카드를 주고, 2개월 분할하여 카드는 잊지 않고 돌려받았다. 겨우 약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약봉투를 풀어 쏟아놓았다. 내자는 대뜸 “반품이 된다면 가격이 비싸서 반품을 하라.”고만 한다. 거듭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였다.
또 다시 외출하여 약국 들러 반품하여 돌려받았다. 즉시 지하철타고 반월당역 지하광장에 반월당 약국에서 뇌졸중 치매예방약을 구입하기 위하여 갔다. 약사하고 상담하면서 “전 아나운서 왕종근 내외가 ‘포스파티딜 세린’을 복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도 예방차원으로 먹어 보고 싶은데 그 약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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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는 “네. 있습니다.” “약값은 얼마입니까?” “4개월분 칠 만원입니다.” “약을 주십시오.”값을 치렀고, 약은 현재 잘 복용하고 있다. 하루 일과는 오전부터 너무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금쪽같은 시간인데 무의미하게 이곳저곳을 하루로 보내고 보니 허망한 일장춘몽이다.
약품을 제조․판매하는 제약회사에서 신약개발 제품은 엄격한 검정과 효능․성분 관찰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건강보조 식품을 마치 신약으로 개발한 것처럼 속임 하여 판매하는 것이 난무하다. 또한 인체에 유익한 제품이 사회전반에 우후죽순처럼 보급되고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몸에 이롭다고 하는 약이라면 무분별하게, 약을 구입하고 남용하여 도리어 건강을 해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분도 내 뒷모습이라고 보면서 주의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조금도 나이 듦에 늙었다고 생각 안하고 살았다. 지금도 새벽이면 쌀말을 들어 올릴 힘이 넘친다. 마치 아카시아 잎 한 장씩 따면서 놀이하듯 살아 왔다. 그리고 또 세월은 바람처럼 물처럼 나를 비껴갈 줄 알았다. 속담에 “기린이 늙으면 노마만 못하다.”했듯, 탁월한 사람도 늙으면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하루하루 늙어가지만 나는 늙지 않을 줄 알았다. 자고 일어나면 또 다시 아침 일찍부터 계룡산 야시 골 공원 광장에서 펼치는 생활 체조를 하고 있다. 그것이 내 뒷모습인 것이다.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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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솔직히 허심탄회하게 담담히 물흐르듯 들려주시는 이야기 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