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테티엔르로 성모 발현지
개요
21 세기에 들어와 주교의 공인을 받은 성모님 발현 성지는 오직 2곳뿐인데,한 곳은 르완다 키 베호(20이)이고,다른 한 곳은 프랑스 생테티엔르로(2008)이다. 생테티엔르로는성모님이 1664년부터 1718년 까지 무려 54년에 걸쳐 대략 2,500차례나 발현하신 성지이나(최장시간,최다발현),성모님이 발현하시고 344년이 지난후에야주교의 공인을 받았다. 성지는 알프스 기슭에 위치하여 접근하기 어렵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있어 이탈리아에서 많은 순례자가 찾아오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가톨릭 철학자인 장 기통은 “유럽에서 가장멀리 숨어 있는 성지이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성지 중 하나”라고 말하였다.
성모님의 발현
1664년 5월 16일,양을 치며 살아가고 있던 17세 소녀 브누아트랑퀴렐이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산골 마을 생테티엔르로 인근 계곡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였다.
브누아트는 본당신부의 강론을 듣고 성모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5월 초 어느날,3세기 순교자성 마우리티우스가주교의 복장으로 그녀에게 나타났고,생테티엔르로의 푸르 계곡으로 가면 하느님의 어머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그녀는 묵주기도를 바치며 양 떼를 데리고 계곡으로 갔다. 브누아트가 어느 작은 동굴 앞에서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성모님이 성자를 안고 나타나셨다. 그녀가 “아름다운 여인이여,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저에게 빵이 있는데 같이 나누어 드실래요?”라고 묻자 성모님은 그저 미소만 지으시며 잠시 서 계시다가 동굴 속으로 사라지 셨다.
성모님은 이후 약 4개월 동안 매일 발현하시어, 브누아트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행동과 영적인 삶을 변화시키셨고. 그녀에게 미래의 사명을 준비하게 하셨다. 8월 29일 브누아트가 이름을 물어보자 그 여인은 비로소 당신의 신분을 이렇게 밝히셨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한달이 지난9월 말, 성모님은 계곡 반대편에 있는 팽드로라는 곳에 나타나시어 브누아트에게 "마을에서 떨어진 곳인 '로’에 있는 경당으로 가면 좋은 향기가 날 것이며, 이제 그곳
에서만 나를 만날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그녀는 성모님이 일러 주신 장소로 갔고,그곳에서 성모님께 봉헌된 작은 경당을 찾을수 있었다,
초가지붕이 얹힌 그 경당은 낡을 대로 낡았지만 달콤한 향기가 나서 성모님이 말씀하신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브누아트가 경당에 들어서자 먼지가 가득한 제단 위로 성모님이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아들에게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이 장소를 요청하였고,나의 아들은 나에게 이를 허락하였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기념하여 이곳에 세우는 새 성전은 수많은 죄인을 위한 회개의 장소가 될 것이며,나는 이곳에 자주 나타날 것이다.” 더불어 성모님은 그녀에게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사명과 성당 가까이에 사제들을 위한 피정의 집을 지으라는 사명도 주셨다. 그녀는 사명에 따라 성당을 세우라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교회 당국에 전달하였다. 성모님의 발현이 인근 지역으로 널리 알려지자 1665년 봄부터 18개월동안 13만명에 이르는 신자들이 이곳을 순례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1665년 성모님은 브누아트에게 순례자와 사제를 돌보는 사명에 헌신할수 있도록 양 떼를 돌보는 일을 중단하라고 말씀하셨다.
1669년부터 1684년까지 15년 동안 브누아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환시를 다섯 차례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받는 모습으로그녀에게 나타나“나의 딸아,네가나의 수난을함께할수 있게 하려고 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날부터 그녀는 매주 목요일 오후 4시부터 토요일 아침 9시까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신비 한 고통을 받았으며,그 십자가 고통은 10년 이상 이어졌다. 성모님은 1664년 5월 16일에 처음 발현하신 이래 1718년 I2월 브누아트가 선종할 때까지 54년 동안 무려 2,500번 이상 발현하셨다. 이는 성모님이 같은 지역에서 같은 시현자에게 가장 오랫동안 발현하신 것이며, 나타 나신 횟수도 가장 많은 발현이다.
발현 장소
이곳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은 ‘죄인들의 피난처’라고불린다. 루이14세가 친정하는 동안,생활이 힘들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지방 백성들이 성모님의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프랑스의 알프스가 시작되는 해발고도 900미터에 위치한 로가 성모님의 발현 장소로 선택되 었다. 순례자들이 주변의 풍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을 살면서 받아왔던 고통과 상처를 어느새 다 잊고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께 다가가게 만드는 아름다우며 평화롭고 신비로운 장소이다.
처음 브누아트가 성모님의 발현을 교회 당국에 알리자 앙브룅 교구는 그녀가 거짓말을 하며 신자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사제들을 보내 이를 조사하게 하였다. 그러나 조사단으로 파견된 랑베르신부와 가야르 신부를 비롯한 여러 사제들은 다리 장애로 6년 동안 고통받고 있던 카트린 비알에게 일어난치유의 기적을 직접 목격하고는 “경당에서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거기에 있었습니다”라고 선언 하였으며, 그 기적에 대한 공식 보고서
까지 작성하였다.
성모님의 발현이 다른 지역까지 알려지며 많은 순례자가 이어졌다. 그런데 성모님이 알려 주신 낡은 경당은 겨우 10명 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는 작은 경당이라 끊임없이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수용할수 있는 큰 성당을 지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 었다. 이에 지역 교구는 1665년 9월 18일 신자들의 순례를 공식 승인하고 수백 명의 순례자를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성당과 사제들을 위한 집을 건립하기로 결정 하였다.
성당 건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지역의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어서, 필요한 자재를 마련하는 데만 1년이 걸려 1666년 10월 7일에야석을 놓았다. 지역 주민들과 순례자들이 냇가에서 돌을 하나씩 들어 건설 현장까지 직접 가져왔으며, 어린아이들까지 돌을나르고, 변 지역 사람들이 돈이나 물건을 기부하여, 1669년 드디어 낡은 경당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성당을 완공할 수 있었다. 성지에서 1시간 정도 동쪽으로 걸어가면 팽드로가 있는데,현재 그곳에는 성모님이 브누아트에게 경당 위치를 알려 주신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성상이 서 있다.
시현자
브누아트 랑퀴 렐은 1647년 9월 16일 프랑스 남동부 알프스 기슭에 위치한 생테티엔 다방송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브누아트의 집은 가난하였는데, 그녀가 세 때 아버지가 아가신 뒤로 가족들은 더욱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근처에 학교가 없어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한 그녀에게는 주일미사 때 신부의 강론을 듣는 것이 유일한 배움이었다.
어머니를 돕기 위하여 12세 때부터 양 치는 일을 하였고, 하루종일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1664년 17세가되었을 때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1666년 그녀는 가프에서 온 도미니코회 수도자들과 함께 순례자들을 안내 하였는데,이런 인연으로 도미니코회의 제3회원이 되었고,그때부터 제3회원의 베일과 망토를 입었다. 성모님에 대한그의 신심이 점점 더 강해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브누아트 수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집에서 성지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오가는 게 힘들었던 브누아트는 1672년에는 성지 옆으로 이사하여 순례자들을 직접 안내하면서 그들이 기도와 참회를 할 수 있게 적극 지원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몸이 아픈 순례자들에게 성모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성지에 있는 램프의 특별한 성유를 사용하자 그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한때 브누아트는 교회에 의해 가택 연금을 당하여 오직 주일미사만 허락된 힘든 시기를 보냈고,성모님이 자신에게 54년 동안 계속 발현하시는 일도 감내하였다. 성모님의 발현을 한두 번만 체험해도 그 충격과 부담이 엄청날텐데 무려 54년간 약2,500번의 발현이라니, 보통사람이라면 감히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여러 교황이 그
녀를 칭송하였고 이러한 칭송은지역 주교가성모님의 발현을 공인하는단초가되 었다.
1718년 12월 주님 성탄 대축일에 브누아트는마지막으로성체를 영했다. 그리고3일 후인 28일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받고주위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긴 뒤 십자가에 입 맞추고 나서 71세의 나이로 평화롭게 선종하였다.
발현 의미
루이 14세가 친정을 시작한 이후부터 무리한 전쟁과 정책으로 프랑스의 지방 주민들은 곤궁함에 빠져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물적이나 영적으로 피폐해져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성당을 건립하여 수많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은신처가 되게 하라”라는 말씀은 바로 이처럼 어려운 처지로 내몰린 프랑스의 지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로하는 사랑이 담긴 메시지였던 것이다.
발현 이후 순례자가 끊임 없이 방문하였다는 것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순례 온 사람까지도 합심하여 새로운 성당을 건립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위안과 행복을 갈구하였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성모님을 찾아가는 그 여정 속에서 원했던 것 이상으로 충분한 위로와 축복을 받았음은 확실하다. 이런이유로 생테티엔르로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은 ‘죄인들의 피난처’,또는‘복된 만남의 성모님’으로불린다.
생테티 엔르로는 알프스산맥에 위치하여 풍광이 매우 좋을뿐 아니라, 성모님이 주시는 위안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피난처의 의미가 있기에 지금도 매년 17만 명이 순례하고 있다. 프랑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세계 3대 성모님 발현 성지 중 하나인 루르드 다음으로 유명한 성지로 자리매김하였다. 다만 성지가 산자락에 위치해 있어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를 두고 가톨릭 철학자 장 기통은 “유럽에서 가장 멀리 숨어 있는 성지이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성지 중 하나”라고 말한것이다.
성지 소개
생테티 엔르로 성지는 크게 로의 성모 대성당과 야외 성전,그리고 순례자를 위한 시설,인근 주요 순례 시설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 야외 성전은 2008년 성모님 발현을 공인하였던 장소로,지금도 미사가 자주 봉헌되고 있다. 성지까지 오는 것이 쉽지 않아 대부분의 순례자가 이곳에서 숙박을 하는데 이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 카페, 성물방, 회합장소, 도서관등의 규모가성지 내에서 가장크다. 생테티엔르로를 순례한다면 당일 방문은 지양하고 가능한 한 하루 이상 묵어 가는 편이 좋겠다. 성지 공식 홈페이지에서 미리 숙소를 예약하고,그곳에 머물며 성지에서 제공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한다면 바람직한 순례가 될 것이다. 성지 인근에는 브누아트의 집,그리스도의 성혈 경당,성모님이 브누아트에게 로를 가리켜 주신 팽드로,십자가의 길이 있고,또한 생테티엔르로 마을에는 브누아트 어릴적 살았던 집과 세 례를 받았던 작은 경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