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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때에 관한 예언(12:1~13)
1. 다니엘서 예언과 종말의 때(12:1)
다니엘서 12장은 종말에 있을 일들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언급하는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존재하게 될 긴 시기와 연관된다. 이 말은 곧 그 시기가 교회 시대를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니엘서를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던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본문에 기록된 약속을 통해 메시야가 오기를 기대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후에는 모든 것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고 어려운 때가 동반된다는 사실도 언급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오심과 최종 심판이 있는 그 사이 기간 동안에 상당한 고통의 때가 따르게 될 것이며, 그 고통은 일반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그 기간은 성도들에게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환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함을 의미한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단12:1)
‘그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은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생명책에 기록해 두신 백성들(단12:1; 계20:15)은 그 환난이 발생하여 고통당하는 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연관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다니엘서 본문에서 언급된 환난을 일반적인 경우에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특정 시대에 속한 성도들이 특별한 국가의 정치세력으로부터 환난을 당하는 것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예수님이 당하셨던 환난과 고통은 매우 특별한 구속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은 바로 그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구원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 교회 시대의 도래(12:2~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구원과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이 행해짐을 의미한다. 그로 말미암아 선악 간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구분된다.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겉으로 보아 확정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사역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 사역이 시행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자기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다니엘서 12장 2절의 기록에서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라고 한 예언은 나중에 세워지게 될 교회와 연관되어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티끌 가운데 자는 자’란 사탄이 지배하는 무가치한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가운데서 깨어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원사건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여전히 허망한 세상 가운데 머물게 된다.
영생을 얻을 자와 수욕을 받아 심한 부끄러움을 입을 자가 동시에 살아있어 활동하는 시기는 교회와 연관된 시기로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에 대한 언급은 교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는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 전파와도 관련된다. 그것은 지상의 교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역이다.
지혜 있는 자들이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지상에서의 환난과 고통을 이겨내며 순종한 결과 얻게 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고서는 결코 이 세상의 환난을 견뎌낼 수 없다. 그들은 핍박하는 배도자들에 의해 심각한 고통을 당하면서 동시에 복음 선포를 통해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회 가운데로 인도하게 된다.
3. 종말의 때(12:4~7)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계시받은 말씀을 잘 간수하고 봉함하도록 명령하셨다. 이는 아무렇게나 함부로 예언된 말씀에 접근하여 해석하지 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아가 이 말은 종말의 때에 발생하게 될 사건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
다니엘에게 허락된 이 말씀은 즉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발생하게 될 사건이다. 계시된 예언의 말씀을 마지막 때까지 봉함하여 간수하라고 명령한 것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물론 하나님께서 보내시게 될 메시야가 존재하고 계신다. 그는 이미 다니엘서 앞부분에서 여러 형태로 묘사되거나 나타나 보이신 바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바는 그로 말미암아 세워지게 될 하나님의 교회와 그 사역들에 연관된 내용이다.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숫자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고 지식이 더하리라고 한 것은 미래에 살게 될 인간들의 일반적인 형편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다.
그 말 가운데는 앞으로 인간들에게 경험주의(經驗主義)와 이성주의(理性主義)가 팽배하게 되리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빨리 왕래하는 인간들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할 것이며, 많은 지식을 가진 인간들은 자신의 이성을 통해 하나님을 판단하려 할 것이다. 물론 인간들은 이 둘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확인하려 한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성이 마지막 때가 되면 교회에 속한 성도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인간의 경험과 이성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다니엘은 그 예언의 말씀을 듣고 있는 중에 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강 이편과 저편 언덕에 서 있고 강물 위에 또 다른 한 사람이 서 있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중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서 있는 자에게 질문을 했다. 천사가 질문한 것은 예언된 그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때가 언제냐는 것이었다. 천사가 그렇게 질문했던 것은 천사 자신이 궁금했기 때문에 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 질문은 다니엘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나아가 오늘날 우리를 포함한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다.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서 있던 천사는 그 질문에 답을 하였다.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단12:7)
이 본문이 말하고 있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진 후’라는 말이다. 이는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감당하게 될 사역이 끝나는 때를 의미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또한 햇수로 3년 반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3년 반에 대한 기록은 요한계시록에도 나타난다. 그것은 성도들의 핍박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기간으로 보인다. 요한은 그것을 성전 측량과 관련된 계시의 말씀과 더불어 전하고 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계11:1~3)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셨다. 그것을 가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측량하도록 하셨다. 그러면서 성전 내부에 속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이방인들이 마흔두 달, 곧 3년 반까지 거룩한 성전을 짓밟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때 하나님의 두 증인이 특별한 권세를 받아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 곧 3년 반을 예언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마흔두 달 곧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게 된다는 말과 같다. 이는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의 성전 곧 교회가 욕을 당하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심각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성전 측량을 명하시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속하게 될 자들에 대한 정확한 범위가 있음을 계시하셨다. 이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과 직접 연관된다. 요한계시록 12장에는 그에 관한 말씀이 계시되어 있다. 그 가운데 심각한 핍박이 따르게 되리라는 기록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12:5~6)
요한은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가 철장(鐵杖)으로 만국을 다스리게 될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있는 여인을 통해 이 땅에 오시게 된다. 이는 창세기 3장 15절에 언급된 ‘여자의 후손’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사탄은 그를 용납하지 않으려 발악을 한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방 지역에서 일천이백육십 일, 곧 3년 반 동안 양육 받게 된다.
또한 요한계시록 12장 14~17절에는 남자를 낳은 여자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독수리의 날개에 업혀 광야에서 뱀의 낯을 피하여 양육 받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때 뱀은 뒤에서 그 입으로부터 물을 강같이 토하여 그들이 떠내려가게 하려 했다. 그러나 땅이 그 물을 흡수해 버림으로써 그 생명을 보존하게 되자 용은 여자에게 분노하며 맞서 싸우게 되는 기록이 나타난다.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점은 그 삼 년 반은 남자를 낳은 여자가 광야에서 고통당하는 때라는 사실이다. 그 기간 중에도 뱀은 그 여자를 그냥 두지 않고 멸망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끝까지 지키시며 보존하신다.
다니엘서는 그 일이 앞으로 반드시 일어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나중에 한 때 두 때 반 때가 지나게 되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때가 지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권세가 완전히 깨어지게 된다고 예언되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본질적인 구속 사역이 완성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거룩한 백성의 권세가 다 깨어진다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 말은 하나님의 교회가 지상에서 감당해야 할 모든 사역을 마치게 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교회는 지상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게 된다.
그러나 악한 세상은 교회와 성도들이 가진 권세에 강하게 저항한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며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교회의 심판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도리어 그때가 되면 세상에 속한 자들이 더욱 강하게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게 저항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그 권세는 세상에서 구원과 심판 사역이 지속될 때까지 존재한다. 즉 이 세상이 끝나면 구원과 심판에 연관된 권세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다니엘서에서는 그것을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진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작정이 성취되는 것이다.
4. 성도들의 고통(12:8~12)
하나님께서 작성하신 본질적인 구속 사역이 완성되었지만, 성도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다니엘은 그 환상을 보며 그 의미를 쉽게 깨달을 수 없었다. 그는 그 모든 일의 끝이 어떠할지 또다시 질문했다.
세마포를 입고 강물 위에 서 있는 천사는 다니엘의 질문을 듣고 나서 마지막까지 그 말씀을 봉함하라고 말했다. 이는 다니엘서를 읽지 못하도록 금지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읽혀졌고, 그 후 정경에도 포함되었다.
그 예언의 말씀을 봉함하여 간수하라고 명령한 것은 그 의미가 마지막 때가 되어야 온전히 드러나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이는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철저한 비밀로 가려져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말씀은 또한 신약시대의 교회와 연관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12:10)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정결하게 되어 거룩한 성도가 된 자들과 하나님을 알지 못해 아무런 깨달음이 없는 악한 자들이 뒤섞여 사는 교회 시대에 다니엘이 예언한 말씀은 참된 지혜를 소유한 자들만이 온전하게 깨달을 수 있다. 이는 성령의 도움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서 12장 11절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하게 되고 예루살렘 성전에 멸망할 미운 물건이 세워지리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때부터 일정 기간을 환난과 고통 가운데 기다려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단12:11~12)
신학자들 가운데는 이를 셀류코스 왕국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성전 안에 세웠던 제우스상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위의 본문에 언급된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이 세워지게 될 사실은 마태복음 24장 15절에 기록된 의미와 조화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본문 가운데는 매일 드리는 성전 제사를 폐하는 것과 더불어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 그리고 뒤따르는 교회 시대와 연관지어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경에서 3년 반은 대개 고통의 기간을 가리키고 있다. 성경에 전반적으로 그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다니엘서 12장 11절에서는 1290일, 즉 3년 7개월을 언급하고 또 12절에서는 1335일, 즉 3년 8개월 반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3년 6개월보다 2개월 반이 더 긴 기간이다.
이는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고통의 연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고통은 결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왕에 교회와 성도들이 각오하고 있던 그 고통의 기간보다 더 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고통이 연장된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바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받게 되는 철저한 고통을 통해 더욱 정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기간 동안 거짓으로 교회 안에 들어온 자들은 저들의 악한 본색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딘 것을 보며 보라는 듯이 이 세상에 더욱 밀착된 관심을 보일 것이다.
5. 하나님의 요구와 궁극적인 약속(12:13)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선 천사는 다니엘에게 이제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들은 다니엘은 이제 평안히 쉬게 된다. 그것은 그의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니엘이 후대의 성도들을 위해 직접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이제 곧 죽어 평안히 쉬다가 세상 끝날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놀라운 상속을 받아 누리게 된다. 그것은 다니엘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받아 누리게 될 몫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궁극적인 위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니엘서의 마지막에서는 세상의 박해 가운데서도 끝까지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자들이 복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마지막 1260일(42개월, 3년 반)과 그 다음의 한 달(30일) 그리고 또 다음에 따라오게 될 한 달 반(45일)은 견디기 힘든 기간이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매우 지루한 기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참된 성도들은 그 기간 동안 참고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의 시기로 상징되는 한 때 두 때 반 때(3년 6개월; 42개월; 1260일)의 기간이 지날 때까지 최종적인 심판을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3년 반의 기간이 찼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아가 3년 6개월 이후에 한 달이 더하는 3년 7개월인 1290일이 찰 때까지도 주님께서는 오시지 않는다.
그 사이 하나님의 참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고 살아간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며 임의로 성경을 해석하게 된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시지 않는 것을 보며 세상 가운데서 종교로 치장된 각종 우상들을 만들기에 급급하다.
그런 중에도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시지 않고 또다시 한 달 반의 기간이 늘어지게 된다. 이 기간 동안 계시된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의 재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최종 심판이 역사적 사건으로 임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렇지 않은 불신자들 사이에 명확한 분리가 이루어진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순금처럼 정결하게 다듬어지게 된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다니엘서의 내용을 인용하며 종말에 관한 교훈을 주신 다음, 마태복음 25장에 주어진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을 통해 드러나는 의미와 조화된다. 즉 ‘신랑을 맞으러 가는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분리’가 그것들이다.
성경은 끝까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이 복된 자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고통의 기간을 통해 더욱 정결하고 희게 될 것이지만 배도한 자들은 악에 빠져 제멋대로 행하며 종교 생활을 하게 된다. 그들은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고 여기고 자기 취향에 맞는 이방인들과 유사한 신앙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말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욱 심한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기독교 내부, 즉 교회 안에서 옥석(玉石)이 가려져야 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악하고 배도한 자들은 이성과 경험을 동원하기 때문에 항상 저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 대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기다리는 성도들을 고리타분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9~13)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한 자들은 저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성도들을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힘든 고통에 넘겨주며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결국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심한 미움을 받게 된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유혹에 빠져 이기적이 되어 서로 고자질하며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종말의 때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들은 성경을 빗대어 교인들을 미혹하며 신앙을 빙자하여 거짓을 일삼는다. 그런 자들은 세상의 논리를 합법적이라 주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림으로써 불법을 행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불법이 성행하여 어린 성도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바는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며 하나님의 최종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마치 도적같이 이르게 되리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5:1~6)
배도에 빠진 자들이 평안하고 안전한 시기라고 주장할 때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갑자기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우상에 지나지 않는 종교적인 성(城)을 쌓고자 하는 자들은 결코 그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되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갑작스럽게 임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항상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끝까지 견뎌야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시대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이 더딤을 보고 성경의 약속을 달리 해석하려 한다. 배도에 빠진 엉뚱한 해석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재림과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거부하고 있다. 그런 자들은 지상에 종교적인 우상을 만들어 두고 그것이 마치 하나님을 섬기는 방편인 양 생각한다. 더구나 거짓 교사들은 성경을 인용하며 진리가 아닌 거짓을 퍼뜨리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진정으로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 교회와 그에 속한 교사들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가감 없이 전하며 확인해야 한다. 현대는 세상과 배도한 무리가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미혹하는 어지러운 마지막 종말의 시대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성전에 세워지고 나서 1260일의 기간을 보낸 후 1290일의 기간마저 지나 보냈는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마지막 1335일이 끝나가는 시점에 놓여있을지 모른다. 배도에 빠진 자들이 거짓 교훈을 전하면서 진리를 부여잡고 있는 성도들을 비웃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