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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2024.03.31 부활주일 낮 예배
말씀: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제목: 새 것이 되라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개혁)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성경봉독: 다함께
- 은혜찬양: 살아계신 주 -부활하신 주님
부활절 일요일(3월31일) 엠마오로 가는 길 -누가복음 24장 1절~53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성경말씀 - 눅 24:1~12절 눅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빈 무덤, 여자들은 무덤으로 돌아와서 무덤이 빈 것을 발견하고 두 천사에게 예수님이 부활 하셨으니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베드로는 이 소식이 듣자 무덤으로 가서 무덤이 빈 것을 발견합니다. '안식 후 첫날', 사복음서는 모두 부활이 일요일에 발생했다고 진술합니다. 지상의 주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은 천사들입니다. 여자들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습니다. 빈 무덤은 여자들에게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누가와 교인들에게는 이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이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이 실제로 참이라는 확증입니다. 여자들이 두려워하는것은 경외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두려움을 가리킵니다. 천사들의 출현은 종종 그런 두려움을 낳았습니다. 6절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눅 18: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살아나야 하리라' 이는 하나님의 섭리적 계획이 성취돼야 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눅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제자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9절에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열한 사도' 유다는 이제 빠져 있습니다(행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다른 여자들도', 이는 최소한 다섯 명의 여자가 무덤에 갔음을 가리킵니다. 부활의 첫 증인으로서 여인들은 부활의 메시지 뿐만 아니라 십자가 사건(15:40), 장사(15:47), 빈무덤(16:5) 등의 증인이었습니다. 여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었던 마가의 기록은 용기있는 기록이었습니다. 증인으로서의 여자의 증언은 1세기 상황에서 특히 법정에서 언제나 신뢰를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막15:40-47, 16:1-6). 사도들은 처음에는 이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일어난 무덤에 달려가....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는 불신과 연관될 수도 있지만 보통은 긍정적 반응을 수반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부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누가복음에서 발견되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나타나신 세 번의 사건 중에 첫 번째이자 복음서에서 가장 긴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눅 24: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각 복음서들과 그 밖의 신약의 몇몇 책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여러번 나타나신 사건을 언급하고 있지만 누가만이 예수님이 예루살렘 바로 밖에 있는 감람 산에서 승천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엠마오(아마도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중간기 시대의 엠마오가 아닌 오늘날 칼루니야)로 가던 두 제자와 대화하신 일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요한은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에서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그 주의 첫 번째 날인 일요일이고, '그들 중 둘이', 한 사람은 이름이 나오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글로바입니다(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는 눅 24:18에 기록된 글로바와 그의 아내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과 동행한 부부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와 사모로 표한할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낸 뒤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엠마오의 위치는 불확실하지만 유대 땅의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 리(11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입니다. 16절에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했는데 이는 아마도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았고 그녀가 돌이켜 거기서 누군가를 보았다가 다음 순간 즉시 무덤 쪽으로 돌아가서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다른 때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몸 또한 무언가 다르게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엄청난 고통과 상처로 인해 일그러진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한 원래의 젊은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19절에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 이거늘', 여기서 예수님에 대해 선지자는 정확하지만 불충분한 호칭입니다. 왜냐하면 말과 일에 능하시고, 귀신을 쫒아내시고 병을 고치고 자연을 다스리는 기적을 행하신 일, 죄를 용서하시는 신적 권위 등 광범위한 가르침 등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의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대조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넘겨 주어 십자가에못 박았느니라', 유다는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에게 넘겨주었고,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물리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은 로마인들이 했지만 누가는 예수님의 십자가형에 대한 인간적 책임을 일차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돌렸습니다. 21절에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예수님에 대한 백성의 관점을 종교 지도자들의 관점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22절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베드로가 무덤을 찾은 뒤 다른 제자들도 가서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음을 전제로한 표현입니다(참조 요 20:2~10). 25절에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엠마오로 가는 길에 예수님과 동행한 두 사람을 헬라어 본문에서는 이들이 남자 두 명인지 아니면 한 남자와 한 여자(남편 글로바와 아내 마리아)가 함께 걸어간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으므로 이는 "미련한 사람들이여" 보다 "더디 믿는 자들이여"가 보다 더 정확한 번역이고 표현입니다. 26절에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구약 전체가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들을 먼저는 고난을 통해, 그 후에는 영광으로 이끄신 과정을 통해 보여 주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메시아 자신도 이 광범위한 패턴에 대한 성취이자 많은 예언들에 대한 성취로 '영광'에 들어가기전에 먼저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이 영광은 그리스도의 부활 때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승천 때 더 충만하게 나타납니다(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27절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이 말씀은 구약 전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예언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의 역사적 패턴도 구약 전체에 걸쳐 거듭해서 예수님 자신을 예고하셨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30절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이 사건과 관련해 최후의 만찬과 5천 명을 먹이신 사건 사이에는 눈에 띄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눅 22: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9: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예수님이 떡을 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졌고,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으로 인식했음을 뜻합니다. 그 후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셨습니다. 32절에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기 전부터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 주셨다는(해석해 주셨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소망을 주었고 부활에 대해 확신하게 해 주었습니다(참조 행 17: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두 제자는 열두 제자에게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는 말을 들은 뒤(참조 막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자기들도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주님을 만난 사연을 말합니다. 즉 그들은 부활하신 분이 바로 자신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쏟아부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누가복음 24장 36~53절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부활한 상태에서 나타나고 사라질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이 39~40 절에서 하신 말씀에 비추어보면 그들의 의심에는 최소한 예수님의 부활한 몸의 실제 육체적 실재에 대한 약간의 혼란과 부활 그 자체의 사실성에 대한 계속되는 의문이 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시각, 그들을 볼 수 있고 청각, 그들의 말씀을 듣고 있고 촉각,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만져서 자신이 실재하는지 살펴보라고 권하십니다. 39절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보고 나를 만져보라', 예수님은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아닙니다. "나는 있느니라", 비록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부활한 몸은 이제 완전히 나았고 강인하며 죽음과 육신의 부패를 겪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활 이전의 몸과 다르더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나사렛 예수는 동일 인물입니다(고전 15:1~19). '무슨 먹을 것', 예수님은 음식을 드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을 만져보도록 허락하심으로써 자신의 부활한 몸의 육체적 본질을 입증하십니다.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은 음식을 먹거나 다른 사람이 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44절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너희에게 말한 바'란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가리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사렛 예수와 부활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한 분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예수님 시대의 구약의 세 부분을 가리킵니다. "시편"은 성문서의 책들 가운데 하나가 전체 성문서를 대표하는 제유법의 한 예입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5~48절)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구속사 전체가 어떻게 서로 맞물리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성경에 대한 참된 이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이는 26절의 반복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섭리적 계획을 성취하게 위해 반드시 필요했음을 강조합니다. 47절에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48절에 '이 모든 일의 증인', 제자들은 증인으로서 복음 전승의 수호자 역할을 했습니다(눅 1: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49절에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란 성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가리킵니다(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 강림은 세례 요한에 의해 메시아가 오셨다는 징표로 선포된 적이 있습니다(눅 3:15~17). 성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성취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승천하시며 제자들이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과 함께 끝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감람 산 위의 베다니 앞까지 나가셨습니다. '축복하실 때에', 이는 50절의 축복의 일정 시간 동안 지속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들을 떠나 하늘을 올려 주시니'(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십니다. 52절에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백성이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가운데 시작된 곳인 성전에서 끝납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눅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
- 부활이 주는 메시지- 새 것이 되라
우리가 새 것이 된다는 의미는 ???
주후200년경 로마의 히폴리투스가 기록한 『사도전승』 에는세례받는자가 3년에 걸친 장기적인 회심과 양육의 과정을 거친 것을 보여준다. 당시의 세례는시작이아니라 도달할 최종 관문과도 같았다.
교회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성직자의 심사를 거쳐서 카테추멘(Catechumen, ‘듣는 자’라는 의미)이 된다. 교회의 설교 와가르침을 들을 자격이 있다는 확인이다. ‘듣는자’는 3년 동안 예배에 참석하며 가르침을 받는다. 세례를 받기 전 마지막 심사는 예비자의 생활에서 전향적인 발전이있었는지, 즉 성실하게 살았는지, 과부와 병자들을 도왔는지, 선행과 봉사의 증거들은 무엇인지를 인도자가 증언해 주어야 한다. 그 심사를 통과하면 부활절 전날 철야를 한 후 동이트기 전에 물속에 세 번 몸을 담그면서세례를 주었다.
고대교회의 세례는공동체에 참여하는 입회식이며 책임있는 정규 멤버로서 공인받는 사건이었다. 개인의 신앙, 의사 결정에 맡겨진 사적세례가 아니다. 세 례는 공동체적 사건이다. 세례의 주행위자는 받는사람이 아니라 교회이다. 교 회는 세례받을 후보자를 교육, 양육하여 참여와 책임을 분담하는 사람이되도록 해야 한다. 세례교육을 통해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성장하고, 하나님과 의관계를 지속하는 법을 배우고, 성경에서 요구하는 신앙생활과 교회의 요구를 이해하고 헌신하게 하고, 또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교제하고봉 사하는 법을배 우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의 세례의 개념과 많은 기독론적 사고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례는 종말론적으로 주님과 하나되는 사건이다. 성경적으로는 니고데모와 주님과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주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세례이다.
거듭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21절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름난 바리새인이며 유대 민족을 다스리는 산헤드린 공회 (유대인의 통치를 위한 의회) 의원인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는 몇 가지 의문을 갖고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대화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3-7).
“거듭난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이다.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있다. 회심 또는 회개의 전제가 핗요했다. 마음의 변화, 즉 영적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운 탄생, 즉 거듭남은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다(고후 5: 17; 딛 3: 5; 벧전 1: 3; 요일 2: 29; 3: 9; 4: 7; 5: 1-4, 18).
요한복음 1장 12, 13절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다.
“왜 사람에게 거듭남이 필요한가?”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였다. 로마서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인은 영적 ‘죽음’ 상태에 있다. 또한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영적 생명을 얻을 때, 우리는 거듭난다고 한다. 오직 거듭난 사람들만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게 된다.
즉, 에베소서 2장 8-9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때, 그 사람은 거듭나고 영적으로 새로워 진다. 새롭게 태어나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십자가에서 해(害)받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주님.
그것은 우주적인 사건이다. 창세로부터 종말에 이르기 까지 전후무후한 사건이다.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시 유일하신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면, 성령님이 마음에 하시는 호소에 귀를 기울여 보시겠습니까? 우리는 거듭남이 필요합니다. 오늘 회개기도를 드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겠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1. 부활의 의미 - 구원의 정복
요한일서 5장 13절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구원의 핵심들을 간략하게 짚어봅시다.
(ㄱ)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들을 행했습니다(롬 3:23).
(ㄴ)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형벌을 받아 마땅합니다(롬 6: 23).
(ㄷ)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롬 5: 8; 고후 5: 21). 예수님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짊어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죄값이 충분히 지불됐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ㄹ)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값이라는 것을 신뢰하며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와 구원을 베푸십니다(요 3:16; 롬 5:1; 롬 8:1).
(ㅁ) 성령님은 우리가 믿음을 갖는 순간,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생을 보증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소식입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롬 8: 38-39; 마 28: 20).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합니다(요 10: 28-29). 예수님만을 당신의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다면,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원자로 믿으셨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죄는 용서를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않고 또한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롬 8:38-39; 마 28:20). 당신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요 10:28-29). 예수님만을 당신의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다면, 당신은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말씀을 듣는 믿음 - 몸된 교회
교회를 단지 건물로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교회란 사람들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주된 목적 중 하나입니다. 이제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다면,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성경을 믿는 교회를 찾아 그 교회의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길 권면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에게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믿게 된 사실을 알리시길 바랍니다.
교회의 두 번째 목적은 성경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능력 있고 성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세 번째 목적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걸음을 직접 이끌어 주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시며, 은혜가 풍성하십니다. 요한계시록 4장 11절은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라고 표명합니다.
3. 주 너의 하나님을 공경하라
매일 하나님께 집중하며 보내는 시간을 따로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간을 “경건의 시간(Quiet Time)” 또는 “큐티(QT)” 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헌신의 시간(Devotions)”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아침에 이 시간을 갖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저녁 시간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이 시간을 뭐라고 부르는지, 언제 이 시간을 갖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하나님과 규칙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어떤 일들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할까요?
(ㄱ) 기도: 기도는 하나님께 단순히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걱정과 문제들을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지혜와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당신을 위해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얼마나 감사드리는지 하나님께 고백해보세요. 기도란 이런 것입니다.
(ㄴ) 성경 읽기: 교회, 주일학교 그리고 성경 공부 그룹을 통해 성경을 배우는 것 외에 당신은 스스로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자신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알려주는 하나님의 필수 지침서입니다.
맺음
오늘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우리는 새 것이 되라는 사도바울의 말씀에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새 것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지내온 나의 삶과 생각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나의 삶과 생각을 가지고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우리 만나인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는 것이 주님의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삶이란 것을 다시 한 번 더 새기는 계기가 되는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