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3월 11일(월) 잠언 6:12-19 찬송 240장
12.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14.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5.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개역 개정)
13절)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솔로몬은 불량하고 악한 자들의 행동을 묘사하면서 ‘눈짓을 하며’라고 말한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눈을 깜박거리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성경에서는 종종 거짓을 꾀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로 말하기도 한다.
즉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처럼 악인은 그 마음속에
궤휼(詭譎)과 악의(惡意)로 가득 차 있기에
이것이 곧 그의 눈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는가에 따라
그의 눈은 달라질 것이며 아무리 미소를 짓고 표정을 다르게 꾸민다 할지라도
그의 눈을 통해 마음의 생각과 의도는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눈은 단지 우리의 내면 상태를 드러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눈 앞에 펼쳐진 영상을
그의 내면에 비추는 역할을 한다. 예수님께서도 이에 대하여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6:22.23) 라고 말씀하셨다.
즉 육체의 눈이 마음에 의해 좌우되듯이
또한 마음은 눈이 보는 바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눈은 마음과 긴밀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심령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체이다.
즉 눈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관심을 집중시키느냐에 따라
마음 또한 밝을 수도 있고 어두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고 말하였다.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듣고 성장하느냐가
그의 인격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듯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
가져야 할 눈빛과 갖지 말아야 할 눈빛이 있으며 그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눈을 선하고 아름답게 가꿀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라는
시인의 기도처럼 더럽고 추악하며 거짓과 궤휼로 가득 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신령한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마음에 들이고 있는가?
우리의 눈을 잘 보호하여 마땅히 보아야 할 것,
찾아야 할 것, 추구해야 할 것만을 보려고 애씀으로
심령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도록 힘써야 한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