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화사한 봄날을 뜻하는‘청명’이 지나고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새싹이 움트는 ‘곡우’가 다가오면 살랑이는 봄바람에 연녹색 향기가 묻어온다.
어릴 적, 삼짇날(음력 3월 3일)이 되면 동래 어른들이 하천이나 야산에 모여 장구치고 노래하며 놀던 ‘화전놀이’가 있었다. 그때는 어른들이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며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꽃놀이나 봄나들이를 한 것 같다.
이맘때가 되면 초등학교 동기 모임인 ‘공찬 동우회’에서 부부 동반으로 봄나물을 뜯으러 고향 뒷산이나 동대산으로 봄나들이를 간다.
계중 초기에는 추석날 오후에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편을 갈라 공을 찼다. 결혼을 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찼고 나이 들어 아이들에게 체력이 밀리면서 축구 대신 족구를 했다. 족구에서도 아이들에게 밀리던 어느 날부터 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갔다.
친구들과 초등학교 4학년부터 축구선수가 되었다. 중요한 시합이 다가오면 꿈에 그리던 축구화 같은 운동화도 신어볼 기회가 있었고 통닭이나 백숙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선수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을 누빌 때면 모든 친구가 우리를 응원하는 것 같아 우쭐거리기도 했고 중요한 페널티킥을 놓쳐서 팀이 졌을 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울기도 했다. 먹고살기 힘들어 중학교 진학도 어려운 시절에 함께했던 친구들이기에 표정만 봐도 정이 흐른다.
이름 모를 무덤 앞 넓은 공터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았다. 계중 유사가 준비한 음식과 각지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계곡의 친구가 벌집으로 만든 ‘노봉방주’와 포항 친구가 가져온 문어였다. 살랑이는 봄바람과 따듯한 햇살에다 연두색 초목에 둘러싸여 먹는 음식은 그 자체가 보약이 되었다.
산나물에 해박하다는 친구를 따라 한 시간 반가량 산골짜기를 헤맸다. 가시덩굴과 나뭇가지에 할퀴고 쓸렸지만 아픔도 잠시 내 눈은 산나물을 찾고 있었다.
뜯어온 나물을 앞에 두고 자연스레 품평회가 열렸다. ‘아는 것이 힘’인지라 나는 부지깽이(섬쑥부쟁이)뿐이었다. 내놓은 나물을 보니 부지깽이가 가장 많았고 머위, 산두릅, 취나물이 그 뒤를 이었다. 다른 몇 가지 나물은 들고 봐도 알 수 없고 일반적인 풀들과 구별하기도 힘들었다. 고향집 마당 가장자리에 자라고 있는 나물이 부지깽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정확하게 알았다.
산나물 봄나들이의 묘미는 뜯는 것보다 모아서 뒤적이며 산나물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일이지만 사물에 관련된 생각과 가치관은 세월에 따라 차이가 있고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절대적, 완벽하다는 것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은퇴하면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나의 노래를 만드는 것이었다. 작곡은 힘이 들어 포기하고 나의 추억에 남아있는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어 알고 지내던 작곡가 선생님께 부탁해서 나의 노래를 만들었다. 작곡가 선생님으로부터 반주음악(MR) 파일을 받았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흥분했었다. 반주에 맞춘 노래와 기타를 치며 부른 노래를 녹음해서 휴대폰에 저장해 놓고 듣고 또 듣고 있다. 제목은 ‘나의 이야기’이다.
산나물 품평을 마치고 녹음해 온 노래를 친구들에게 들려준 후 하늘을 바라보며 나의 이야기를 불렀다.
『아롱이는 커피 향에 어렴풋이 눈을 떠보니
속삭이는 햇살 속에 실려 오는 낯익은 향기
용천 물은 마을 길을 휘돌아서 들을 적시고
아기봉은 전설 속에 살아 있는 낯익은 얘기
공차는 아이들 사과 같은 이들의 꿈은 자라고
운명처럼 살아가는 외솔들의 인생이야기
우린 시작이 끝이라 하네 끝이 시작인 것처럼
언제라도 터질듯한 그리움 가슴속 깊이 숨겨 놓고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커피향에 실어 보낸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커피향에 묻어 보낸다』
2024.4.15.(4)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가사를 지어 노래로 만들어 기타 반주까지 하셧네요. 언제 그 노래 들어보고 싶습니다 ㅎㅎ
서서히 글을 쓰시면 더욱 발전하리라 생각됩니다. 글을 읽고 더욱 쓰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글쓰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다방면에 재능을 가지고 계시고 작사는 예술이네요 좋은 작품 기대됩니다
봄나들이 추억을 한곡의 노래 속에 담아 보려는 발상이 대단 합니다.
수필창작이란 바로 이런 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족의 발전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