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라 밀 다.
이 말은 반야심경에 쓰여져 있습니다.
바라밀다는 고대 이집트어의 파라미타이고 구체적으로는 프라쿠릿트어입니다.
그 진짜 의미는 '내재된 위대한 지혜에 도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래의 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500여년 전의 인도에서는,
벌꿀은 귀중품이었고, 영양가가 가장 높은 식량으로서 진귀하게 여겨 소중히 했습니다.
인간의 위대한 지혜도 이것과 똑같이,
꿀이 가득찬 가치있는 대지식이고,
인간은 누구라도, 그 위대한 지혜의 보고(寶庫)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한자의 바라밀다는 파라미타의 음역(音譯)이지만,
밀다에 대해서는, 당시의 진짜 의미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 대지식, 지혜의 보고를 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수행이 필요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고,
용기와 노력을 거듭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용기는 신리의 앞에서 무서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정법을 믿고, 신리가 이해되어 간다면,
세속의 습관에 유혹되지 않고,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세속의 상식이 그 사람을 지배하여,
좋다고 알고 있어도, 그 상식이 방해를 해서,
한발작도 앞으로 내디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도꾜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으면,
도시는 하룻밤 사이에, 청결한 도시가 되겠죠.
급한 성격은 손해라고 알았다면,
자기보존의 검은 상념을 미련없이 버리는 것입니다.
단골거래처의 접대라도, 음주를 피하려고 하면,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습니다.
부끄럽다든가, 상식이라는 것은, 대개의 경우,
자기보존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보존이 마음에서 활동하는 동안은,
용기의 마음은 점점 더 퇴화되어 갑니다.
퇴화는 위대한 지혜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노력입니다.
'행운은 누워서 기다려라.'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 것 같지만,
행운은 누워서 기다려서는 주지 않습니다.
문자를 쓰는 펜 하나만 보아도 인간의 노력과 연구에 의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노력과 연구가,
보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을 달리는 자동차, 하늘을 나는 비행기, 바다를 건너는 선박,
어느 것이나 인간의 노력과 땀의 결정이,
보다 정교한, 보다 안전한, 보다 편리한 것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노력은, 인간의 지식으로부터,
위대한 지혜로 연결되는 도화선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정법신리에 적합한 용기와 노력을 거듭하여 가게 되면,
인간은 마침내 내재된 위대한 지혜를 열어,
조화된 매일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도록 될 것입니다.
용기와 노력과 지혜.
이 3개는 서로 순환되는 것으로서,
삼위일체의 행위는
바라밀다의 위대한 대지식, 지혜의 보고를 여는 열쇠라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심안을 열다 - 다카하시 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