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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 十七 章 사마덕조의 죽음 쿠콰콰쾅! "와아아아!" "죽여라, 카악! 컥!" 여기저기 전각들이 마구 터지고 폭발하는 가운데 잠송 일행과 수로맹의 무사들이 한데 뒤엉켜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수로맹의 무사 중 수장무사가 죽어 자빠져 가는 수하들을 미친 듯이 독려하고 있었다. "적은 불과 여덟 명이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라!" 그러나 그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죽어나가는 것은 수로맹의 무사들이 전부였다. 수장무사는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막 분통을 터트리려는 찰나였다. "한가한 소리하고 있군!" 불쑥 뒤통수에 와 닿은 차가운 음성에 그는 흠칫거렸다. 수장무사는 재빨리 돌아섰다. 그의 뒤에는 제중인이 싸늘한 냉소를 흘리며 서 있었다. 수장무사는 그를 쏘아보며 분기를 뿜어내었다. "방금 지껄인 놈이 너냐?" "뻔히 알면서 뭘 물어보고 그러나?" 패애액! 어느새 뽑아든 수장무사의 쾌검이 제중인을 난자할 듯 내리쳐왔다.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놈이 감히……." 번쩍! 마치 섬광처럼 눈부신 검광이 작렬했다. 수장무사는 전신의 모든 기력이 일시에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검을 내리친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제중인 역시 칼을 비스듬히 치켜든 자세를 유지했다. 수장무사의 전신이 경련을 일으켰다. "이, 이렇게 빠른 도법(刀法)이!" 퍼억! 마침내 그는 할말을 다하지도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제중인은 검을 멋지게 한바퀴 휘돌린 뒤 검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는 뒤쪽 멀찌감치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잠송을 향해 능글맞은 웃음을 보냈다. "이 말이 끝날 때까지 그럴듯한 별호가 튀어나오지 않으면 둘째형과 한판 붙고 말겠소!" 잠송이 웃으며 짧게 말했다. "전광쾌도(電光快刀)!" 제중인은 빙긋 웃었다. "둘째형은 죽으면 틀림없이 천당 갈 거요!" 콰차차창! 콰차창! 그들과 좀 떨어진 곳에서 호랑평은 섬뜩하게 생긴 창을 종횡무진 휘두르며 무사들을 무더기로 베어 넘기고 있었다. 잠송은 그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 "셋째, 내 말 들리나?" 호랑평은 창을 살벌하게 휘두르며 벌떼처럼 달려드는 무사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내고 있었다. "나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합시다." 잠송이 큰소리로 외쳤다. "자네의 별호는 혈마륵(血魔勒)으로 결정했네. 다소 마음에 안 들더라도 잘 기억해두도록!" 호랑평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악귀처럼 창을 휘둘렀다. "내참! 별호 한번 더럽게 살벌하네." 잠송은 피식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누군가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헌데, 막내 놈이……." 잠송은 말을 멈추고 흠칫했다. 높다란 지붕 위의 달빛 속에서 시커먼 쇠꼬챙이를 비스듬히 치켜들고 있는 석옥성과 그 주위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세 명의 무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석옥성의 표정은 무심했다. 그러나 무사들은 미간 사이의 콩알만한 점에서 피를 흘리며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쿠쿵! 털썩! 이윽고 무사들은 석옥성의 발 밑에 썩은 짚단 넘어지듯 쓰러져 버렸다. 석옥성은 잠송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제가 싸우는 건 못 보셨지요?" 잠송도 마주보며 웃었다. "안 봐도 본 것 같구나." 석옥성이 눈빛을 반짝 빛냈다. "그럼 제 별호도 이미 만드셨단 말입니까?" "천루혈(千淚血)이면 어떠냐?" 석옥성이 달빛을 응시하며 씨익 웃었다. "천루혈이면 일천 방울의 피와 눈물이라는 뜻, 좋군요. 무덤 속까지 갖고 가겠습니다." 이때 돌연 허공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려왔다. "멈춰라!" 엄청나게 웅후한 음성의 영향으로 양쪽 진영의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휘황찬란한 만월 속을 초고속으로 날아오는 한 줄기 인영이 있었다. 휘휘휘휙! 인영은 연속으로 몸을 뒤집으며 공간을 빠르게 단축해왔다. 마침내 격전장 한복판에 무서운 기세로 하강하는 인물은 바로 나후공공이었다. 나후공공은 용무늬가 수놓아진 잠룡의(潛龍衣)에 검은 면사가 드리워진, 챙 넓은 흑립을 머리에 쓴 복장이었다. 콰쾅! 육중하게 착지하는 나후공공의 전신에서 무궁한 위엄이 피어올랐다. 그는 장중한 기도를 뿜어내며 불같은 시선으로 장내를 훑어보았다. "총맹주다!" "총맹주께서 나오셨다." 수로맹의 무사들이 반색을 하며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궁지에 몰리던 그들인지라 나후공공의 출현은 무궁한 사기진작을 가져온 것이다. 휘휘휘휙! 격전장 여기저기에 있던 주청산, 제중인 등도 신형을 날려 말을 타고 있는 잠송의 뒤쪽으로 내려섰다. 나후공공은 처참하게 무너진 전각들과 수도 없이 널려 있는 시신들을 보자 전신에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면사 속 눈에서 가공할 안광을 폭사시키며 잠송 일행을 향해 무섭게 쏘아붙였다. "본좌는 황하칠십이수로맹의 총맹주 나후공공이다. 그대들은 본맹과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런 난동을 부리는 건가?" ― 하나가 빠졌소! 문득 허공 가득히 울려 퍼지는 차가운 음성에 나후공공과 수하들은 흠칫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멀리 성문의 지붕 위 달빛 속에 한 인영이 서 있었다. 은은한 달빛을 받고 서 있는 음성의 주인공은 흑립에 흑포를 걸친 위지강이었다. 잠송은 얼른 말에서 뛰어내리며 일행들과 함께 반색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대형!" "큰형님이시다!" 이들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인하여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휘이이이잉! 한차례 야풍이 장내를 스쳐 지났다. 처참한 아수라장을 사이에 두고 성문 위에 서 있는 위지강과 나후공공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또한 광장의 한쪽에는 잠송 일행이, 나후공공의 뒤에는 수로맹 무사들이 서로 대치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위지강과 나후공공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보이지 않는 불꽃이 맹렬히 튀어 올랐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나후공공이었다. "뭐가 빠졌다는 건가?" 만월의 역광을 받으며 위지강이 담담하게 말했다. "귀하는 황하칠십이수로맹이 천하사세 중 북파무림맹 소속의 핵심 세력이라는 사실도 당연히 밝혔어야 했소." 나후공공의 안광이 무섭게 폭출되었다. "그 말은 마치 북파무림맹을 상대로 선전포고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군그래!" "그렇게 해석하면 틀림없을 거요." 위지강의 말에 잠송 등이 의미심장한 웃음들을 머금었다. "황하칠십이수로맹이 그 첫번째 제물로 선택된 것은 순전히 재수 탓으로 돌리면 되는 거고……." "와하하하하!" 나후공공이 발작적인 앙천광소를 한차례 터트렸다. 이윽고 그는 광소를 뚝 멈추더니 가공할 안광을 뿜어내었다. "오랫동안 강호를 멀리했더니 아직도 무림에 황하칠십이수로맹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으로 믿고 있는 놈이 있는 줄을 몰랐구나!" 나후공공의 양손이 허공으로 치켜 들렸다. 처척! 쩌정! 쩡! 어느새 그의 양손에는 새파란 빛이 번뜩이는 기이한 형태의 쌍검이 들려 있었다. 바로 나후공공의 독문병기인 일월쌍검이었다. 나후공공은 쌍검을 치켜든 채 장중한 기도를 발산했다. "믿는 구석이 없고서야 함부로 남의 집 안방을 기웃거릴 리는 만무할 터!" 면사를 꿰뚫은 그의 안광이 벼락처럼 폭사되었다. "내려 오라!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마!" 위지강의 입술이 무겁게 열렸다. "후후,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나올 필요는 없소!" 촤앙! 위지강도 검을 뽑아들었다. "나는 이 싸움을 되도록 빨리 끝낼 생각이오. 따라서 귀하는 목숨처럼 아끼는 비장의 최대절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게 좋을 거요!" 파아앗! 나후공공의 신형이 위지강을 향해 맹렬히 솟구쳤다. "왕년의 강호칠협이 이 자리에 있어도 본좌를 이토록 광오하게 대하지는 못할 터이거늘……. 참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놈이로구나." 퓨류류류류! 나후공공의 신형은 팽이처럼 휘돌면서 성문의 지붕 높이만큼 날아올랐다. 처척! 그는 허공에 우뚝 정지해 선 채 일월쌍검을 든 양손을 옆으로 벌렸다. "오너라, 놈! 얼마든지 상대해 주마." "검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으니 모쪼록 조심하시오." 슈아아아앙! 위지강의 신형이 우뚝 선 자세 그래도 지붕을 박차며 쏘아져왔다. 무서운 속도로 공간을 단축해 오는 위지강을 주시하며 나후공공의 눈빛이 한순간 흔들렸다. 그는 일월쌍검을 가슴 앞에 열십자로 교차시키며 냉소를 발했다. "무릎을 굽히지 않는 무탄력경신술인가?" 슈악! 열십자로 교차된 쌍검을 나후공공은 그대로 내뻗었다. "제법 흉내는 낸다만 그 정도로 본좌를 꺾으려 했다면 지나던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꽈츠츠츠층! 열십자 형태의 눈부신 검강이 가공할 기세로 뻗어 나왔다. 검광은 형용할 수 없는 속도로 덮쳐오는 위지강을 요절낼 듯이 마주쳐갔다. 쿠콰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날아오던 위지강의 신형이 걸레조각처럼 산산조각 나버렸다. 잠송 일행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맙소사!" "뭐야, 저런 떨거지한테 대형이 당했다는 건가?" 반대로 수로맹의 무사들은 환성을 부르짖었다. "와아!" "총맹주께서 이기셨다." "천지를 모르고 날뛰더니 결국 끝장났구나, 놈!" 휘휘휙! 자욱하게 휘날리는 옷 조각들 사이에서 나후공공은 몸을 뒤집으며 위지강이 서 있던 성문 지붕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지붕에 내려선 그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놈! 무쇠를 일거에 꿰뚫는 혼천일월검력(混天日月劍力)에 격중된 이상 대라신선이라도 살아날 수 없다."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 흠칫했다. 위지강의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스산한 기운만 허공 가득히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나후공공은 심상치 않는 예감에 휩싸였다. '갑자기 온몸을 조여오는 이 불쾌한 느낌은 무엇인가?' 흡사 좀벌레들이 전신을 스물스물 기어오르는 그런 느낌이었다. 쇄애애애액! 이때 문득 어디선가 터져 나오는 파공음에 나후공공은 흠칫했다. 그는 주위를 다급히 둘러보았다. "이 소리는?" 쇄애애애액!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허공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는 바짝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분명히 검이 날아오는 소린데 사람은 보이지 않다니……!' 문득 뭔가 그의 뇌리를 스치면서 나후공공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는 발작적으로 신형을 틀었다. '설마?' 쾅! 순간 일월쌍검이 박살나면서 나후공공의 심장이 그대로 관통되었다. 그는 가슴에서 피분수를 뿜어내며 가랑잎처럼 허공을 날아갔다. 수로맹 무사들의 눈이 경악으로 일제히 흡떴다. 중심을 잃고 가랑잎처럼 날려가던 나후공공은 뒤쪽에 보이는 이층 대전에 거세게 부딪쳤다. 그의 몸은 일층과 이층 사이의 벽에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다. 우르르르르! 돌 부스러기와 흙먼지가 자욱하게 쏟아져 내렸다. 위지강은 어느새 잠송 일행 앞에 사뿐히 내려서고 있었다. 가라앉은 낙진 속에서 나후공공의 처참한 몰골이 드러났다. 그의 가슴엔 검이 꽂힌 채 얼굴을 아래로 해서 벽면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면사가 뒤집혀 있어 그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나후공공은 얼굴 반쪽이 흉측한 화상으로 뒤덮여 있는 중년여자였다. 눈을 까뒤집은 채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는 나후공공의 흉한 얼굴을 쳐다보며 수로맹의 수하들은 망연자실 넋을 잃고 있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총맹주가 설마 여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후공공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진면목을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심한 시선으로 나후공공을 바라보는 위지강의 주위에서 잠송 일행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황하칠십이수로맹의 총맹주가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과연 사실이었군그래!" "끌끌, 얼굴이 저 지경이니 강호의 출입이 뜸할 수밖에……." 이때 죽어 있는 줄 알았던 나후공공이 바르르 경련하면서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저승길을… 밟고 있다는 무영검(無影劍)! 이, 이제 보니… 너는……." 위지강은 멀리 떨어진 나후공공을 향해 손을 척 내뻗었다. 푸확! 그녀의 가슴에 박혀 있던 검이 그대로 빠져 나갔다. 놀라운 허공섭물(虛空攝物)의 절기가 아닐 수 없다. "컥! 나후공공은 두 눈을 휙 까뒤집었다. 휘류류류류! 그녀의 가슴을 빠져 나온 검이 허공을 휘돌면서 위지강을 향해 날아왔다. 위지강은 검집을 들었다. 쉬이이이……! 철컥! 마침내 검은 정확히 날아와 검집에 꽂혔다. "당신은 너무 늦게 알았소." 위지강의 입술이 무겁게 열렸다. 나후공공이 마지막 경련을 일으켰다. "무인(武人)의… 마지막 명예는… 자신보다 뛰어난… 고수의 손에… 죽는 것……." 그녀의 동공이 극도로 확대되었다. "최후를 이렇게… 맞이하니, 그나마… 다행……!"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마침내 몸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처참하게 죽어버린 나후공공을 쳐다보며 수로맹의 무사들은 망연자실한 채 서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 황하칠십이수로맹 하룻밤에 초토화. 이 소문에 무림은 들끓기 시작했다. 누가 감히 황하칠십이수로맹을 하룻밤만에 무림에서 제명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소문은 강호를 경동시키며 계속 이어졌다. ― 구사보(九獅堡) 괴멸! ― 십혈루(十血樓) 멸문! 그러나 그 다음에 일어난 사건은 무림을 더욱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다. ― 철산철왕가 대력천왕(大力天王) 가주 이하 문도(門徒) 이백 팔십구 명 전원 몰살. 불과 삼백도 채 안되는 인원이나 구파일방 중 그 어느 문파 하나라도 하룻밤만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철산철왕가, 그 철의 가문이 영원히 무림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드디어 강호에 거대한 피의 폭풍이 서서히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으며,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어김없이 시체의 산과 피의 강이 생겨났다. 그것은 악마의 광기(狂氣)요, 죽음의 진혼곡이었다. 마침내 남부무림(南部武林) 전역으로 스산한 피의 공포가 열병처럼 번져나갔다. 혈랑팔겁(血狼八劫)! 그 새로운 신화(神話)의 시작이었다. * * * 쾅! "입이 있으면 말해보라, 제군들!" 넓은 회의청 안. 긴 탁자의 정면, 존(尊) 자가 새겨진 벽면에 사마덕조가 굳은 얼굴로 앉아 탁자를 주먹으로 거세게 내리쳤다. 탁자의 좌우에는 등표를 위시한 북파무림맹의 수뇌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의 표정 또한 돌처럼 굳어 있었고 실내의 공기는 터질 듯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불과 석 달 만에 북파무림맹 산하 열다섯 개의 하부조직이 무너지고 이천 칠백육십 명이 살해되었다." 사마덕조의 질타에 등표를 위시한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바위처럼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사마덕조는 사나운 얼굴로 장내를 향해 포효했다. "한낱 자객 나부랭이들에게 남부무림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에서 벼락같은 신광이 폭사되었다. "이대로 간다면 놈들이 이곳까지 쳐들어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이 터무니없는 사실을 과연 믿어야 하는가?" 등표가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엇보다도 사기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등표는 잔뜩 굳어 있는 수뇌들을 슬쩍 일별했다. "놈들은 연일 승승장구하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는 반면 이쪽은 놈들의 그림자만 봐도 꼬리부터 내리고 있으니, 이건 싸움도 시작하기 전에 이미 구할의 승산을 양보해 주고 있는 양상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사마덕조는 등표의 설명을 들으며 양손을 깍지꼈다. "그래서?" 등표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지금이야말로 맹주님께서 직접 나서실 때라고 생각합니다." 등표는 한층 머리를 조아렸다. "더 이상 방치했다간 자칫 북파무림맹의 권위에 치명적인 독(毒)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장내는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고 모든 사람들은 잔뜩 굳어 있었다. "군아, 그 녀석은 아직도 소식이 없나?" 등표가 송구한 표정을 지었다. "백방으로 수소문 해보았지만 전혀 연락할 길이……." 그는 차마 말끝을 다 맺지 못했다. 사마군의 행방이 어느 날 갑자기 묘연해졌다. 전 인력을 동원하여 중원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인 것이다. 사마덕조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놈들은 어디 있나?" "난계(欄溪)를 지나 용유(龍遊) 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진행 방향으로 보아 내일 오후쯤이면 월곡관(月谷關)에 들어설 것으로 짐작됩니다." 사마덕조의 명이 떨어졌다. "당장 나가서 일전이원사각구문삼십육방(一殿二院四閣九門三十六榜)의 정예를 전원 소집하라." 사마덕조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한광이 쏟아져 나왔다. "월곡관에 자객 놈들의 뼈를 묻어주리라!" * * * 온통 크고 작은 얼음덩이로 뒤덮인 거대한 천연빙굴. 수백 개의 촛불을 밝혀 놓은 빙굴 한복판의 좌대에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채 합장하여 가부좌를 틀고 정좌해 있는 남궁사의 모습이 보였다. 신비스러운 기운 속에 입정한 고승처럼 정좌해 있는 그의 전신에서는 상서로운 서기가 뻗어 나오고 있었다. 남궁사의 탄탄한 근육질의 상체는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고 허리까지 내려온 길다란 머리카락은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고련의 흔적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그의 무릎 앞에는 고색창연한 보검이 놓여 있었다. 우우우우웅! 신비스런 서기에 휩싸인 남궁사는 전신으로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의 수려한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 일의화행(一意化行)……. 천지간의 모든 정기를 끌어들여 하나의 기운을 형성하고……. 남궁사의 앞에 놓여진 검이 핑그르르 돌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검은 그와 수평을 이루며 머리 위에 뚝 고정되었다. 남궁사는 이를 악물고 전신의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 반망즉진(返妄卽眞)……. 용축된 내가기공에 정기신(精氣神)이 하나로 혼연일체(渾然一體)하니……. 우우우우! 보검이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남궁사의 전신도 더욱 강렬한 기운에 휩싸였다. ― 발대신기(發大神氣)……. 이는 곧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기운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성통공완(性通功完)의 절대경지라! 남궁사는 양손을 번쩍 치켜들면서 벽력같은 사자후를 터트렸다. "천의무상검결(天衣無相劍訣) 제구로(第九路) 대천지연(大天地然)!" 우르르르릉! 검에서 번갯불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쿠콰콰콰쾅! 검극을 구심점으로 수천 개의 검영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주위의 크고 작은 얼음 덩어리들이 산산조각 부서져 나갔다. 폭발은 계속 이어졌고 얼음 기둥들과 얼음벽 등이 종잇장처럼 사정없이 터져 나갔다. 쿠쿠쿠쿠! 천장의 얼음 덩어리들도 마구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얼음덩이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뿌옇게 빙굴 속을 메운 기류와 얼음덩이들 속에서 남궁사의 지친 듯한 모습이 보였다. 그는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후욱후욱 거친 숨을 토하고 있었다. 남궁사는 주변에 널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극성의 경지에 도달하면 검기에 격중된 부위가 칼로 벤 듯 매끄러워야 하거늘……."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아직도 멀었다!" 그는 그 상태로 과거 위지강과의 싸움에서 지고 난 뒤 지친 모습으로 바위에 기대앉아 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 빌어먹을! 이렇게 되고 보니 자네를 일전에 구해준 것이 후회되는군. ―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자전뇌구의 밥이 되도록 내버려두는 건데 말이야. 충격을 받은 위지강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그런 위지강을 자신은 무서운 속도로 쇄도해 들며 검을 내리쳤었다. 그리고 마침내 위지강은 얼굴에서 피를 흘리며 만장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남궁사는 고개를 떨군 상태로 안색이 창백해졌다. '차마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내 일생의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는 자조적인 우울한 미소를 떠올렸다. '우물 안 개구리가 철없이 날뛰다 스스로 늪 속에 뛰어든 꼴이라니…….' 남궁사는 무릎 앞에 떨어져 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그는 검을 치켜들며 움켜잡은 뒤 고뇌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순간 남궁사가 발작적으로 검을 치켜들었다. "으아아아아!" 그는 검을 아래로 힘껏 내리찍었다. 쾅! 검이 좌대 깊숙이 수직으로 쑤셔 박혔다. 그는 검자루를 움켜쥔 채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강렬한 안광을 쏟아내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최고의 무예를 가지기 전에는 결단코 햇빛을 보지 않으리라!' * * * 휘이이잉! 잔설이 흩날리는 석양 무렵의 거칠고 험악한 계곡. 양쪽으로는 칼로 반듯하게 잘라낸 듯한 만장절벽이 길게 뻗어 있었다. 월곡관(月谷關). 잔뜩 쌓인 눈이 강풍에 흩날리며 스산한 풍경을 자아내는 계곡이다. 두두두두두! 월곡관 입구에 수많은 인마가 나타났다. 선두에는 사마덕조가, 그의 바로 옆에는 등표가 바짝 붙어 있었다. 그 뒤로는 북파무림맹의 수뇌들과 기치창검을 한 무사들이 위풍당당하게 치달려오고 있었다. 등표는 달리는 말 위에서 사마덕조에게 말했다. "곧장 월곡관으로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사마덕조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등표는 전방의 계곡을 유심히 살폈다. "월곡관은 전형적인 요철 형태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어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를 공격하기에 더없이 적당한 곳입니다." 그는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 생각에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정면돌파를 시도하느니……." 사마덕조가 힐끗 고개를 돌려 등표를 쏘아보았다. "설마 여기까지 온 날더러 등마저 보이라고 입을 나불거릴 텐가?" 등표가 흠칫하며 얼굴이 굳어졌다. 사마덕조는 더욱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토록 목숨이 아까우면 총사는 그 자리에 남아 있도록!" 등표의 눈에 순간적으로 알 수 없는 기광이 스쳤다. 그러나 그 빛은 나타날 때보다 더 빠르게 동공 깊숙이 갈무리되었다. '저토록 격한 말투를 쓰는 건 지나칠 정도로 흥분하고 있다는 증거. 계획대로 되었다.' 등표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사마덕조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을 사마덕조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이곳 월곡관으로 끌어낸 것 또한 등표의 치밀한 계획이라는 것 또한 알지 못했다. 쿠두두두두! 까마득히 높은 절벽 위에서 계곡 안을 치달려오는 사마덕조 일행을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내려다보는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바로 위지강과 잠송이었다. 잠송은 빠르게 달려 들어오는 인마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군요." 그러나 위지강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사마덕조가 직접 나설 것이라는 예상과 얕은 수를 부리지 않을 것이라는 형님의 계산이 제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위지강의 시선이 계곡을 치달려 들어서는 사마덕조 일행들을 주시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남을 다스려온 자는 의외로 단순한 구석이 많은 법이지." 잠송이 위지강을 쳐다보며 의미 깊은 미소를 지었다. "시작할까요?" "내 몫은 반드시 남겨 두거라!" 잠송은 손에 든 거대한 도끼를 치켜들었다. 석양빛을 받은 잘 벼려진 도끼날이 날카롭게 빛났다. 쉬이이익!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내리쳐졌다. 쾅! 순간 바위에 묶여 있던 굵은 밧줄이 일시에 끊어져 나갔다. 사마덕조는 흠칫 고개를 쳐들었다. '살기?' 이때였다. 콰르르르르! 까마득히 높은 절벽 위에서 거대한 바윗덩이와 엄청나게 굵은 나무토막들이 우박 쏟아지듯 떨어져 내렸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떨어지는 바윗덩이와 나무토막들을 올려다보며 사마덕조를 위시한 나머지 일행들은 눈을 부릅떴다. "맙소사! 저게 도대체……!" "함정이다!" 쿠콰콰콰쾅! 쿠쿠쿠쿵! "으악!" "크아악!" 사마덕조의 수하들이 떨어져 내린 바윗덩이와 나무토막에 깔려 처참하게 박살나고 있었다. 사정없이 깔고 뭉개는 바위와 통나무에 이리저리 부딪치고 깔린 무사들이 어육이 되어 처절하게 죽어나가는 지옥 같은 풍경이 벌어졌다. 등표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위험합니다, 맹주님!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사마덕조는 말머리를 잡아 틀면서 분갈을 터트렸다. "이놈들이 감히……!" 쿠콰콰콰쾅! 천지가 멸망하는 듯한 엄청난 폭발음에 사마덕조는 절벽 위를 올려다보다 두 눈을 부릅떴다. 양쪽으로 마주선 절벽의 윗부분이 통째로 폭발한 것이다. 쿠쿠쿠쿠쿠! 양쪽 절벽 사이로 박살난 거대한 바위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사마덕조의 수하들은 기겁을 했다. "퇴로가 봉쇄되었다!"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들이 들어온 계곡의 입구 쪽이 거대한 바윗덩이들로 꽉 막혀버린 것이다. "도망치겠다고 깝죽거리는 놈이 있으면 대갈통을 날려버릴 테다." 절벽 위에는 뇌화탄을 양손에 하나씩 든 축악이 씨익 웃고 있었다. 휘휘휘휘휙! 양쪽 절벽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일곱 줄기의 인영을 올려다보며 등표는 흠칫했다. 각기 다양한 무기들 들고 다른 자세로 떨어지는 잠송을 위시한 일곱 사람. 그들은 북파무림맹의 무사들을 향해 덮쳐가며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우라지게 많이 몰려왔군그래!" "몸을 풀 바에야 화끈하게 풀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니겠어?" "씨팔, 오늘도 피 바가지 꽤나 뒤집어쓰겠군!" 그들을 주시하던 등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혈랑팔겁(血狼八劫)……!' "와아아아아!" 콰콰쾅! 슈카칵! "크악! 으아아악!" 처절한 아수라장 속을 내리 덮치며 그들 칠 인은 북파무림맹의 무사들을 무더기로 작살내기 시작했다. 피피피핏! 포부동이 별 모양의 암기를 여러 개 날렸다. 암기에 격중당한 무사 몇 명이 눈을 감싸쥔 채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퉁겨져 나갔다. 제중인의 쾌검이 연속적으로 번뜩이자 무사 다섯의 수급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후아아아앙! 퍼벅! 주청산이 뿜어낸 무지막지한 권풍에 서너 명의 무사들이 말과 함께 터져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허공을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섭선을 휘둘러 무사들을 쓰러뜨리는 잠송.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커다란 창을 연신 휘둘러대는 호랑평, 뒤쪽 허공에서 그런 호랑평을 향해 덮쳐 가는 무사 몇 명이 있었다. 콰콰쾅! 순간 굉렬한 폭음과 함께 호랑평을 덮쳐들던 무사들이 걸레조각처럼 터져 나갔다. 호랑평은 뒤쪽을 올려다보았다. 절벽 위에서 축악이 손을 들어 보이며 징그럽게 웃고 있었다. 호랑평은 핏물을 뒤집어쓴 시뻘건 얼굴로 웃어 보였다. 순식간에 장내는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혈랑팔겁이다!" "침착하게 응전하라!" 그러나 죽어나가는 것은 모두 북파무림맹의 무사들이었다. 죽어 자빠지는 자신의 수하들을 바라보며 사마덕조는 극도의 분노에 휩싸여 치를 떨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 문득 허공을 향한 그의 시선이 흠칫 빛났다. 절벽 꼭대기에서 오연한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위지강을 발견한 것이다. 푸아앗! 순간 사마덕조의 신형이 말등을 박차고 붕새처럼 날아올랐다. "네놈이 마도수인지 뭔지 하는 자객이렷다?" 까마득히 치솟아 오르는 사마덕조를 향해 등표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조심하십시오, 맹주님!" 그러나 그의 미소는 자신의 의도가 적중한 데서 오는 만족감을 나타내는 흐뭇한 미소였다. 이로써 둘 중 누군가가 사라진다면 자신의 계획은 그야말로 성공하는 셈이다. 어차피 두 사람은 자신의 앞날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자들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발 더 나아가 두 사람이 동패구상 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기쁠 수는 없을 것이다. 팟! 절벽의 돌출 부위를 박차며 사마덕조는 위지강보다 더 높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는 위지강을 향해 소맷자락을 맹렬히 휘둘렀다. 후아아아앙! 무서운 강기가 소맷자락에서 쏟아져 나왔다. "목숨을 내놓아라, 자객 놈!" 위지강은 철판처럼 날아오는 강기를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지켜보았다. 그의 뇌리에 할아버지 풍천양이 죽어가며 남긴 말이 떠올랐다. ― 한 시대를 풍미한 불세출의 영웅은 그렇게 삶을 마감했지요. 위지강은 이리저리 어지럽게 보법을 펼쳐 사마덕조의 공세를 피했다. 콰콰콰쾅! 땅거죽이 통째로 뒤집히는 폭발 속에서 위지강은 허공으로 치솟았다. 허공을 날아오르며 위지강은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쉬아아아악! 형용할 수 없는 속도로 검을 내뻗으며 위지강은 사자후를 토했다. "천마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뻗어라, 검!" 사마덕조는 허공에 우뚝 정지한 채 섬전처럼 쏘아오는 검을 바라보며 살소를 날렸다. "껄껄껄! 쥐도 다급하면 고양이 발톱을 문다더니 네놈이 그 꼴이구나!" 그는 양손을 번쩍 쳐들었다. "잘 걸렸다, 이놈! 바둥거리는 성의가 갸륵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하늘의 무예를 구경……." 순간 사마덕조는 말문을 닫으며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아니!" 쿠오오오오! 위지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천지간을 가득 메운 엄청난 기운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사마덕조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극도의 경악성을 토했다. 위지강이 펼쳐낸 검법의 내력을 알아본 것이다. "이런……!" 그는 발작적으로 엄청난 강기를 쏟아내며 다급하게 외쳤다. 꽈츠츠츠층! "안돼!" 천지 대폭발을 무색케 하는 힘과 힘의 엄청난 충돌이 일어났다. 콰콰콰쾅! 주위 십 장 안의 지면이 지진을 만난 듯 쩍쩍 갈라지고 뒤집혀졌다. 절벽의 윗부분은 충돌의 여파로 인해 아예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절벽 아래서 혈투를 벌이던 북파무림맹의 무사들과 잠송 등은 이 엄청난 광경에 기겁을 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맙소사……!" "절벽이 통째로 터져 나가다니……!" 쿠우우우우! 절벽 위에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도 없는 자욱한 낙진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서서히 가라앉은 낙진 속에서 위지강은 두 손으로 모아 쥔 검을 비스듬히 치켜들고 있었다. 그의 앞쪽 저 멀리 뭉텅 잘려 날아간 절벽의 단면에 사마덕조의 몸이 박혀 있었다. 처참한 몰골의 사마덕조의 눈은 경악으로 인해 한껏 벌어져 있었다. 사마덕조는 충격과 경악에 휩싸인 채 힘겨운 음성을 토했다. "방금… 그 검법이……!" 위지강은 천지부동심의 자세를 유지한 채 무심하게 말했다. "천마겁(天魔劫)!" 사마덕조가 경악성을 토했다. "천마검법 제팔초(第八招)……!" 위지강이 차갑게 말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베푼 만큼 돌려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리 억울하진 않을 거요." 사마덕조의 전신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이제 보니……. 바로 네놈이었구나! 낯설지 않더라니만……!" 툭! 사마덕조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마침내 영욕으로 얼룩진 그의 일생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우욱!" 위지강은 그제야 울컥 피를 한 모금 토했다. 그는 지면에 검을 콱 박은 채 검에 몸을 지탱하여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처음부터 정식으로 겨루었다면 이렇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핏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늘도 온통 핏빛이었다. "으아아악! "크아악!" 우왕좌왕하는 북파무림맹의 무사들을 잠송 등이 늑대처럼 누비고 다니며 도륙하고 있었다.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이미 사기를 잃어버린 북파무림맹의 무사들은 잠송 등이 펼치는 잔인한 손속에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휘이이이잉! 짙은 피비린내가 스산한 바람에 실려 왔다. 절벽 아래는 온통 시산혈해로 가득 찼다. 천하사세의 하나로 중원 남부를 통치해온 북파무림맹 사마가(司馬家)의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