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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 [조계산/장군봉] 산행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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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선암사주차장;전남 순천의 조계산 산행을 위해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후 산행전 단체사진을 찍습니다. 10월내내 비가오며 날이 안좋았었는데 오늘은 산행전에 날이 가을날의 전형적인 시원함을 안고 출발을 합니다.
10;11 주차장에서 산행들머리 전에 상인들을 먼저 만납니다. 각종 농산물을 판매하기위해 즐비하게 나열하고 계시지만 산행전에 샀다가는 큰일입니다. 눈으로 구경만하고 지나칩니다.
조금 지체했더니 대원들이 일렬로 쭈욱 진행하고 계십니다. 아주 보기가 좋습니다.
10;13 선암사 들어서기전에 안내도가 먼저 맞이합니다.
10;14 이정표 1[ ↑ 선암사 1km, ↓ 나가는곳,제2주차장(식당)] 0.276km
10;26 승선교[보물 제400호/0.824km] 1.1km
♣선암사승선교[仙巖寺昇仙橋];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7m, 길이 14m, 너비 3.5m의 길다란 화강암으로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연결하여 반원형의 홍예[虹蜺]를 쌓았는데.결구솜씨가 정교하여 홍예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홍예를 중심으로 좌우의 계곡 기슭까지의 사이에는 둥글둥글한 냇돌을 사용하여 석벽을 쌓아 막았다. 다리 좌우의 측면석축도 난석[亂石]을 쌓기로 자연미를 그대로 살렸으며 원형을 잘 지니고 있다. 기단부에는 아무런 가설도 없이 자연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다리가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다. 홍예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석축에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 다리는 임진왜란 이후 선암사를 중건할 때 가설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즉,1698년[숙종 24] 호암대사[護巖大師]가 관음보살의 시현을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圓通殿]을 세워 관음보살을 보시는 한편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다리이고 무지개 모양이며,임진왜란 이후에 불에 탄 선암사를 중건하면서 경내의 시냇물을 건너기 위한 용도로 놓았다. 보물 정식 명칭은 '순천 선암사 승선교'이다.
승선교위를 건넜다가 다시 되돌아 오고 계십니다.[핵폭탄님]
♣조계산 선암사[曹溪山仙巖寺];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이다. 875년(헌강왕 1) 도선이 창건하였고 1088년(선종 5) 의천이 중창했다. 정유재란과 한국전쟁 및 기타 화재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어 중건을 거듭했다. 현재는 대웅전·원통전·팔상전·불조전·장경각·강선루 등 20여 동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이래 제작된 불상들, 대웅전을 비롯하여 동서 삼층석탑, 승선교, 북승탑, 33조사도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을 보유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2009년 12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542년(진흥왕 3)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처음으로 개창하여 비로암(毘盧庵)이라고 하였다고 하나 이것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875년(헌강왕 1)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여 선암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
박전지(朴全之)가 쓴 「영봉산용암사중창기(靈鳳山龍巖寺重創記)」에 지리산 성모천왕(聖母天王)이 “만일 세개의 암사(巖寺)를 창건하면 삼한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전쟁이 저절로 종식될 것이다.”라고 한 말을 따라 도선이 세 암자를 창건하였는데, 곧 선암(仙巖) · 운암(雲巖) · 용암(龍巖)이 그것이라고 했다.
절 서쪽에 높이가 10여 장(丈)되는 면이 평평한 큰 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옛 선인(仙人)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고 하며, 이 때문에 선암이라는 절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1088년(선종 5) 의천(義天)이 중창하였으며 선암사에 의천의 영정이 있는 까닭은 이러한 인연 때문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석종(石鍾) · 철불(鐵佛) · 보탑(寶塔) · 부도(浮屠) · 문수전(文殊殿) · 조계문(曹溪門) · 청치(圊廁) 등은 다행히 화를 면하고 나머지 건물은 모두 병화에 소실되었다. 정유재란에 불타기 이전의 선암사에는 수많은 건물이 있었다.
법당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쪽에 명부전(冥府殿) · 약사전(藥師殿) · 적연당(寂然堂) · 명경당(明鏡堂) · 대장전(大藏殿) · 청운당(靑雲堂) · 백운당(白雲堂) · 배면당(背面堂) · 독락당(獨樂堂) 등이 있었고, 그 서쪽에는 미타전(彌陀殿) · 무집당(霧集堂) · 영풍루(迎風樓) · 천장전(天藏殿) · 지장전(地藏殿) · 문수전 · 보현전(普賢殿) · 용화당(龍華堂) · 만월당(滿月堂) · 반선각(伴仙閣) · 제운료(際雲寮) · 낙성료(落星寮) · 서하당(栖霞堂) · 성행당(省行堂) · 탕자방(湯子房) · 청치 등이 있었다.
그 앞으로는 정문 · 종각 · 대루(大樓) · 조계문 등이, 그리고 그 뒤쪽에는 첨성각(瞻星閣) · 국사전(國師殿) · 오십전(五十殿) · 응진당(應眞堂) · 팔상전(八相殿) · 원통전(圓通殿) · 능인전(能仁殿) · 원명각(圓明閣) · 성적당(惺寂堂) · 진의각(眞疑閣) · 활연당(豁然堂) · 적조당(寂照堂) · 심주각(尋珠閣) · 완월당(玩月堂) 등이 있었다. 1660년(현종 1)에 경준(敬俊) · 경잠(敬岑) · 문정(文正) 등 세 대덕이 중건하였고, 그 뒤에 침굉(枕肱)이 많은 당우(堂宇)들을 보수하였다.
특히 침굉은 선암사에서의 규범을 엄하게 하였다. 해마다 제석(除夕)이면 승려들이 동서로 패를 나누어 술을 마시며 노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금하고 염불로써 밤을 새우도록 승려들의 금계(禁戒)를 엄하게 하였던 것이다. 침굉의 문인에는 호암(護岩)과 치현(致玄)이 있었다.
특히 호암은 『법화경』을 염송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았으며, 사찰의 중수에 부지런하였다. 1699년(숙종 25)을 전후한 시기에 원통각(圓通閣) · 약선궁(若仙宮) · 대법당 · 오십전 등을 새로이 건설하고, 관음상 1구, 소상(塑像) 61구, 화상(畵像) 등을 새로이 조성하였다.
1704년에는 호연(浩然)이 『선암사사적(仙巖寺事蹟)』을 썼다. 1819년(순조 19) 봄에 불이 나자 곧 상월(霜月)이 중건하였고, 1823년에 또 다시 불이 나자 그 이듬해에 해붕(海鵬) · 눌암(訥庵) · 월파(月波)가 대규모의 중수불사를 이룩하였다.
1911년 6월 3일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사찰령(寺刹令)」이 발표되고, 다시 같은 해 7월 8일 반포된 「사찰령시행규칙」에 따라 30본사가 정해질 때, 선암사 또한 30본사 중의 하나가 되어 승주군과 여수시 · 여천군의 말사를 통섭하였다.
10;31 조계산 선암사0.4km] 1.5km
10;32 대웅전은 공사중이었으나 경내에서는 한창 스님들의 법회가 진행되고 있어 먼발치에서 보고 지나칩니
10;37 선암사 마애여래입상[仙巖寺磨崖如來入像]을 지나갑니다.
10;40 이정표 2[ ↑ 비로암1km,작은굴목재2.1km,장군봉2.3km, → 대각암, ↓ 선암사0.4km/0.6km] 2.1km
10;46 이정표 3[ → 장군봉2.2km, ← 비로암 1km,작은굴목재2km, ↓ 선암사0.5km,대각암0.1km/0.1km] 2.2km
발길의 흔적은 없이 조용한 대각사를 먼발치에서 바라만 봅니다. 처음에는 관리가 안되는 곳으로 생각되었는데 아닌것 같습니다.
11;34 향로암터[샘터/0.5km] 3.9km
향로암터 근처에 있는 샘터에서 간단히 목을 축입니다. 오랜세월 꾸준히 흘러내리고 있는 샘터가 오가는 산객의 갈증을 해소해줍니다.
소장군봉을 사면을 치고 지나쳐 왔기에 정상을 오르지 못하고 왔습니다. 향로암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진행합니다.
11;41 이정표 4[ → 장군봉0.4km, ↓ 선암사2.1km/0.2km] 4.1km
♣조계산[曺溪山/해발888m];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승주읍·주암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송광산(松廣山)이라고도 한다. 소백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의 무등산(無等山), 영암의 월출산(月出山)과 삼각형을 이룬다. 산 전체가 활엽수림으로 울창하고 수종이 다양하여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동쪽 사면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순천을 경유하여 남해로 흘러 들어가는 이사천(伊沙川)과 합류되고, 서쪽 사면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송광천(松光川)으로 흐른다. 고온다습한 해양성기후의 영향으로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는 애칭이 있는 명산이다. 동쪽 사면에 선암사(仙巖寺), 서쪽 사면에 송광사(松廣寺)가 있으며,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계곡은 울창한 수림으로 덮여 있을 뿐만 아니라 비룡폭포(飛龍瀑布)와 같은 이름난 폭포도 있다. 송광사는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절로서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通度寺), 법보사찰(法寶寺刹) 해인사(海印寺) 등과 함께 삼보사찰에 해당하는 승보사찰(僧寶寺刹)로 16국사(國師)를 배출한 유서 깊은 절이다. 조계산이라는 이름도 조계종(曹溪宗)의 중흥도량 산으로 되면서 송광산에서 개칭된 것이다.
6·25 전에는 80여동 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60여 동이 있다. 큰 가람답게 목조삼존불감(국보, 1962년 지정) · 혜심 고신제서(국보, 1962년 지정) · 송광사 국사전(국보, 1962년 지정) 등 3점의 국보, 송광사 경패(보물, 1963년 지정) · 송광사 하사당(보물, 1963년 지정) · 송광사 약사전(보물, 1963년 지정) · 송광사 영산전(보물, 1963년 지정) 등 12점의 보물, 8점의 시도지정유산 등 많은 국가유산을 지니고 있다.
또한,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곱향나무 쌍향수가 천자암 뒤쪽에 있다. 송광사 일대는 연산봉을 비롯하여 여러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송광사 내팔경(內八景)과 외팔경이 정해져 있을 정도이다. 송광사 부근에는 말사(末寺)인 광원암(廣遠庵) · 감로암(甘露庵) · 천자암(天子庵) 등이 있다. 산 남쪽에는 높이 800m의 선암(仙巖)이 있다.
동쪽 사면에는 선암사를 중앙에 두고 주위에 향로암(香爐庵) · 선조암(禪助庵) · 대각암(大覺庵) · 운수암(雲水庵) · 청련암(靑蓮庵) · 대승암(大乘庵) 등 많은 사찰이 있었으나 6·25 이후 대부분 소실되거나 폐암(廢庵)되었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다 하며, 현재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표적인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는 사찰이다. 선암사 경내에 이르는 길의 조계산 계류에 놓인 승선교(昇仙橋)는 하나의 아취로 이루어진 석교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강선루(降仙樓)와 어울린 그림 같은 모습은 선암사의 상징이다.
선암사 동 · 서 삼층석탑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그 밖에 300년 된 산철쭉과 영산홍 · 고목동백 · 왕벚꽃 · 목련 · 부용 · 구봉화 · 화염물상봉 등의 아름다운 꽃밭,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화도 일품이다. 송광사 지역의 별미는 산채라고 할 수 있으며, 곡우를 전후하여 마시는 고로쇠약수는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물로 유명하다.
수려한 조계산의 경관과 명찰을 찾아 선암사에서 송광사에 이르는 등산로에는 많은 등산객이 전국에서 모여든다. 앞으로 월출산 · 무등산 등과 함께 전라남도의 명산으로, 국민관광지로서의 본격적인 개발이 기대된다.
12;10 조계산 장군봉[해발888m/중 식/이정표 5/ ↑ 작은굴목재0.9km,보리밥집2.1km, → 장박골1.8km,송광사6.0km, ↓ 선암사2.7km/0.6km] 4.7km
소쩍새님
안박님
영빈 산행대장님
핵폭탄님
노다지님
킴스 산행대장님
앞산마녀님
스마일 홍보부회장님
건우님
12;56 배바위[0.4km] 5.1km
13;11 작은 굴목재[이정표 6/ ↑ 큰굴목재1.0km, ← 비로암0.6km,선암사2.0km, → 연산봉사거리0.9km,보리밥집1.5km, ↓ 장군봉0.9km/0.6km] 5.7km
13;27 큰굴목재[이정표 7/ → 송광사4.2km, ← 선암사2.3km, ↑ 고동산4.8km, ↓ 작은굴목재1km/1.1km] 6.8km
13;35 이정표 8[ ↑ 송광사3.9km, → 작은굴목재1.5km, ↓ 큰굴목재0.4km,선암사2.3km/0.4km] 7.2km
13;37 이정표 9[ ↑ 송광사3.7km, ← 아랫집가는길, ↓ 장군봉2.1km,선암사2.8km/0.1km] 7.3km
13;37 조계산 보리밥집[아랫집/0.3km] 7.6km
산객들의 민생고를 해결하고 걸걸한 동동주 한잔이 저절로 생각나는 조계산의 명물 '아랫집'에 도착을 합니다.
경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여기는 줄서서 먹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맛이 있는건 아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뭐든지 맛있을 시간입니다.
덕장님이랑 같이~~
곰님이 한턱내신 덕에 맛있게 먹고 갑니다. 동동주와 야채전으로 잠시 쉬었다가 진행합니다. 감사합니다.
14;19 배도사 대피소[이정표 10/ ↑ 송광사3.3km, ↓ 선암사3.3km/0.8km] 8.4km
14;29 이정표 11[ ↑ 송광사2.8km, ← 천자암1.8km, ↓ 선암사3.2km/0.4km] 8.8km
14;32 굴목재[해발720m/이정표 12/ → 송광사2.8km, ← 선암사4.0km, ↑ 천자암1.7km, ↓ 장군봉4.4km/0.1km] 8.9km
14;45 송광대피소[이정표 13/ ↑ 송광사2.3km, ↓ 선암사3.8km/0.5km] 9.4km
15;04 이정표 14[ ↑ 송광사1.2km, ← 선암사5.4km, ↓ 장군봉5.2km/1.1km] 10.5km
15;19 이정표 15[ ↑ 송광사, → 선암사6.5km, ↓ 천자암3.0km/1.0km] 11.5km
15;28 송광사[0.5km] 12.0km
♣송광사[松廣寺/사적 제506호];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로서 이전에는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寺)라고 했다. 한국 선종의 대수도도량으로서 유서깊은 승보사찰(僧寶寺刹)이며,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로 꼽히는 절이다. 송광사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송광사사적비 松廣寺事蹟碑〉·〈보조국사비명 普照國師碑銘〉·〈승평속지 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말 체징(體澄)이 길상사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인종 이후 거의 폐허화되었는데, 1200년 보조국사가 수행결사(修行結社)인 정혜사(定慧社)를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길상사로 옮긴 다음부터 대규모 수도도량으로 발전했다. 고려 희종은 정혜사의 이전과 때를 같이하여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修禪寺)로 개명하라는 제방(題榜)을 내렸고, 이후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180여 년 간 진각(眞覺)·각엄(覺儼)·태고(太古)·나옹·환암(幻庵)·찬영(燦英)·각운·무학 등 15명의 국사를 배출하는 소위 수선사시대를 열게 되었다. 1395년(태조 4)에 고봉화상(高峰和尙)이 전당을 중건했고, 그의 뒤를 이은 중인(中印)이 1420년(세종 2)에 당우를 증축하는 한편 절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정종의 윤지(綸旨)로 설립된 수륙사(水陸寺)를 폐지하고 선종사찰로 복귀했다. 그후 수선사가 언제 송광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폐사 직전에 놓인 송광사는 응선(應善)과 부휴(浮休) 등의 노력에 힘입어 명맥을 유지했다. 1842년의 화재와 6·25전쟁 등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거나 파괴되고 다시 중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재 한국 선종을 이끄는 중심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6·25전쟁 전의 가람배치는 의상(義湘)의 법계도(法界圖)와 같았다고 하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국사전(國師殿:국보 제56호)·하사당(下舍堂:보물 제263호)·약사전(藥師殿:보물 제302호)·영산전(靈山殿:보물 제303호)·청량각(淸凉閣)·척주각(滌珠閣)·우화각(羽化閣)·천왕문·해탈문·대장전(大藏殿) 등 50여 동이 있어 대가람의 면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송광사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혜심고신제서(惠諶告身制書:국보 제43호)·고려고문서(高麗古文書:보물 제572호)·경패(經牌:보물 제175호)·금동 요령(金銅搖鈴:보물 제176호) 등이 있으며 1093년 간행된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제205호), 1095년에 간행된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제206호)과 금강반야경소개현초(보물 제207호), 대반열반경소(보물 제90호),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물 제204호), 영산전목불좌상 등이 있다.
1] 송광사경패
보물 제175호. 세로 12.2~16.2cm, 가로 2.3~3.5cm. 불경을 넣는 나무상자의 겉에 달아서 내용을 표시하는 데 사용한 목제 표지이다. 형태는 직사각형으로 대개 아래에는 활짝 핀 연꽃을 조각하고, 윗부분에는 삼각형 또는 원형으로 활짝 핀 연꽃을 조각했다. 겉면에는 액을 만들어 경명과 번호를 새겼으며, 둘레에는 여러 가지 문양을 장식했다. 문양은 연주무늬·당초무늬·학무늬·뇌문 등 다양하다. 뒷면에는 연주무늬·뇌문·학무늬 등으로 윤곽을 잡은 다음 그 안에 보살·나한·신장 등을 양각하고, 그 밑에는 방형으로 구획한 다음 그 안에 정·주·진·하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조각이 정교하고, 깊은 신앙을 나타내는 희귀한 작품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 송광사고려문서
보물 제572호. 수선사형지기 세로 58.3cm, 가로 59.5cm. 노비첩 세로 58.5cm, 가로 66cm. 수선사형지기는 저지에 정교한 글씨체로 씌어 있으며, 그 내용은 수선사(지금의 송광사)의 창건연혁과 사찰 건물의 배치상황을 적은 다음 승려의 수와 재산목록을 적은 복전기가 있고, 끝에는 이 문서를 작성한 관원들의 관직과 이름 및 수결이 있다. 이 문서는 1221(고종 8)~26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비문서도 역시 저지에 묵서한 것으로, 그 내용은 1358년(공민왕 7)에 수선사 주지인 원오국사 내로가 작성한 것이다. 이 2개의 문서는 당시 절의 규모와 노비제도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3] 순천 송광사 국사전
국보(1962.12.20 지정). 자음당이라고도 한다. 송광사와 나라를 빛낸 16국사의 덕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영정을 봉안한 법당이다.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가구의 짜임새는 무위극락전과 유사하며, 공포가 매우 간단한 출목으로 짜여 있고 헛첨차를 두었다. 기둥사이는 비교적 넓으면서도 짧은 기둥의 배흘림이 현저해 안정감을 주는 점으로 미루어 백제계 건축물로 볼 수 있다. 천장은 우물반자에 소란을 장식한 소란반자이며, 바닥에도 우물마루를 깔아 내부공간이 낮고 넓어 차분한 느낌을 준다. 반자뿐만 아니라 대들보에도 칠해진 단청은 고격을 띠고 있어 건축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사전은 1359년에 창건되었고 1404년(태종 4) 송광사 전체의 삼중창 때 다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금강반야경소개현초 권4~5
1461년 작. 보물 제207호. 세로 36cm, 가로 35cm. 공철이 찬술하고 지람이 산보한 것이며, 본문의 내용은 상하단변에 계선없이 30행에 22자씩 씌어 있다.
그리고 각 권의 끝에는 '壽昌四年戊寅歲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수창사년무인세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라는 간기가 있고, 이어 권4에는 '將仕郞尙衣直長同正臣王鼎書'(장사랑상의직장동정신왕정서), 권5에는 '將仕郞尙衣直長同正臣李衍書'(장사랑상의직장동정신이연서), 권6에는 '將仕郞司宰主簿同正臣李彪書'(장사랑사재주부동정신이표서)라고 씌어 있고, 그 끝에는 '天順五年辛巳歲朝鮮國刊經都監奉敎重修'(천순오년신사세조선국간경도감봉교중수)라는 번각간기가 있다.
이것에 의해서 이 목판본이 대흥사에 설치된 교장도감에서 상원·융관·자현 대사가 교감하고, 왕정·이연·이표(李彪) 등이 정서한 것을 근거로 1098년(숙종 3)에 새기고, 1461년(세조 7) 간경도감에서 번각한 것 가운데 일부임을 알 수 있다. 이 판본은 간경도감에서 간행했다는 간기가 있으므로 다른 번각본을 고증하는 데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5] 송광사금동요령
보물 제176호. 높이 20.6cm, 지름 6.6cm. 현재 고부는 완전히 결실된 상태로 손잡이 중간에는 둥근 마디가 있고 그 위와 아래로 사격자무늬[斜格字紋]가 장식되어 있다. 손잡이와 몸체를 연결하는 부분에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몸체는 어깨에서부터 반구형으로 내려오다가 구연에서 모서리를 이루고 있으며, 각 모서리의 중간은 반원형으로 파낸 것이 특징이다.
몸체부분은 연주무늬로 둘러싸인 구획선에 의해 4면으로 구분되었는데, 각 면에는 구름무늬 사이로 용이 1마리씩 새겨져 있다. 용은 위로 향하여 힘차게 뻗어 있는 다리나 S자형으로 된 몸체의 표현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들 용 위로는 도안화된 연꽃과 당초무늬 줄기를 표현했는데 그 끝이 안으로 말려 있어 부드러운 편이다.
이 금강은 형태와 도상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중국이나 일본의 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함을 지니고 있으며 부드럽고 세련된 조각기법으로 보아 더 이전 시대의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표현에 나타나는 요소들은 이미 형식화된 것이므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6] 송광사대반열반경소
보물 제90호. 목판본. 세로 35.5cm, 가로 32.7cm. 이 책은 담무참이 한역한 〈대반열반경 大般涅槃經〉 40권에 대한 당나라 법보의 주석서로서 의천이 간행한 것을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번각한 것이다. 이 책에는 〈대반열반경〉 40권 가운데 권15~21의 내용이 상하단변에 계선 없이 30행에 22자씩 씌어 있다. 각 권의 끝에는 '壽昌四年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수창사년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라는 구간기가 표시되어 있다. 현재 담무참의 〈대반열반경〉이 전하지 않으므로 불교 장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7]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 권13~14
보물 제205호. 세로 35cm, 가로 36cm. 이 목판본은 〈신편제종교장총록 新編諸宗敎藏總錄〉 잡집론부에는 현범이 주석한 것으로 모두 16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일부이다. 본문의 내용은 상하단변에 계선 없이 30행에 22자씩 씌어 있다. 각 권의 끝에 '大安九年癸酉歲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대안구년계유세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라는 구간기가 있다. 1093년(선종 10)에 판각한 것을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번각한 것이다.
8]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국보(1962.12.20 지정). 높이 13.9cm, 지름 69cm. 송광사 소장. 전개식(展開式) 삼면 불감으로, 닫으면 머리부분이 원통형이 되고, 열면 중앙 반원부에 본존불이, 1/4의 원 안에는 협시보살이 각각 1구씩 조각되어 있다. 중앙의 본존은 전신광배(全身光背)가 있고, 결가부좌를 한 다리 위로 양 어깨에서 법의가 내려와 대좌를 덮는 상현좌(裳懸座)를 이루고 있다. 두 줄로 표현된 법의의 옷주름은 인도 및 서역의 영향으로 보인다.
좌우에는 두 나한이 서 있는데 오른쪽은 가섭으로 보주를 들고 있고, 왼쪽은 아난(阿難)으로 합장을 하고 있다. 나한의 아래에 배치된 두 협시보살은 연꽃을 들고 있으며, 가는 허리와 두 다리의 윤곽이 강조되어 있다. 대좌 앞에는 향로를 가운데 두고 고행인인 듯한 두 상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사자가 있는데 왼쪽의 사자는 파손되어 없어졌다. 감실의 천개(天蓋)에는 장막이 둘러쳐져 있고 그 위에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불단 아래에는 고사리형 초문(草紋)이 투각되어 있다. 오른쪽 감실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쓴 문수보살이 사자좌 위에 앉아 연꽃을 들고 있다.
그 왼쪽에는 동자보살상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시자(侍者)가 다리를 굽힌 채 사자를 붙잡은 듯이 있다. 왼쪽 감실에는 보현보살이 코끼리와 반가(半跏)의 자세로 앉아 역시 왼손에 연꽃을 들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동자보살상이 연화좌 위에 서 있고, 왼쪽에 코끼리의 시자가 오른발을 약간 구부리고 있다. 좌우 불감의 천개부에는 모두 장막이 있고, 그 위에 비천상(飛天像)이 3구씩 투조되어 있다. 이 목조불감은 전체적으로 뛰어난 조각수법을 보여주면서 인도·중국풍의 이국적인 면을 보이는 희귀한 예이다. 또한 보조국사가 당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염지불감(念持佛龕)이라고 구전된 사실은 이 불감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면을 이해하는 데 한 단서가 된다.
9]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
보물 제204호. 세로 26cm, 가로 35cm. 과문은 본문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내용을 간결하게 표현한 어구를 줄을 그어 연결시킨 것이다. 이 과문의 내용은 상하단변에 계선 없이 30행으로 되어 있으며, 끝에 '壽昌五年己卯歲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수창오년기묘세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라는 구간기가 있으나 〈금강반야경소개현초〉와 비교해볼 때 번각솜씨·종이질 등이 유사해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중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10] 묘법연화경찬술 권1~2
보물 제206호. 세로 36cm, 가로 35cm. 본문의 내용은 상하단변에 계선 없이 30행에 22자씩 씌어 있고, 권말에 '壽昌元年乙亥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수창원년을해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라는 구간기 다음에 권1에는 '秘書省楷書同正臣南宮禮書'(비서성해서동정신남궁예서), 권2에는 '寫經院書者臣柳侯樹書'(사경원서자신유후수서)라고 씌어 있다. 대흥사에 설치된 교장도감에서 남궁예와 유후수가 쓴 판본에 의거하여 1095년(헌종 1)에 새긴 것을 다시 번각한 것이다. 1461년 중수기록이 있는 〈금강반야경소개현초〉와 비교해볼 때 번각솜씨·종이질 등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번각한 것으로 보인다.
11] 송광사약사전
보물 제302호. 사방이 모두 1칸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 건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법당 중 가장 작은 규모이다. 사적기에 의하면 1751년(영조 27)에 재건하고 약사여래를 봉안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다포계 건물이며 정사각형의 건물에는 일반적으로 사모지붕을 얹는데, 이 건물에서는 팔작지붕을 얹어 건물의 규모와 달리 화려하고 장엄해 보인다.
공포는 2출목이지만 3개의 앙서[仰舌]를 써서 전체적으로 장중한 느낌을 준다. 내부 공포는 3출목이며, 대들보는 사용하지 않고 공포와 도리만으로 가구했다. 정면은 전면을 개방하여 사분합의 띠살문을 달았고, 좌우 벽면에도 역시 띠살문의 출입문을 냈으며, 나머지 부분은 토벽으로 막았다. 또한 공포의 귀한대는 대각선으로 설치되었고, 출목들이 이와 교차되면서 천장을 메우는 등 작은 구조물 속에 다양한 건축기법들이 치밀하게 사용된 건물이다.
12] 송광사영산전
보물 제303호.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 안에는 1725년(영조 1)에 제작한 영산대회탱과 팔조탱이 봉안되어 있다. 사적기에 따르면 1637년(인조 15)에 창건하고, 1737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전면의 간격이 21척밖에 안 되는 작은 건물이므로 기둥 사이가 좁고 기둥이 높은 편이다. 평면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외관을 장엄하게 보이기 위하여 외3출목의 다포계 공포로 짜올려 기둥과 처마의 사이가 벌어지도록 했다. 중첩되는 공포로 인해 내부 천장의 면적이 좁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 내부의 공포는 2출목으로 했다. 앞면 3칸은 모두 개방하여 빗살무늬의 분합문을 달았으며, 약사전 쪽으로 외문을 단 것을 제외한 나머지 옆벽과 뒷벽은 토벽으로 처리했다. 밝은 색채의 모루단청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13] 송광사영산전목불좌상
1780년 작. 뒷벽에 있는, 1725년에 제작된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의 본존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인데, 육계가 낮아 경계가 확실하지 않으며 정상계주와 중앙계주가 있다. 얼굴은 조선 후기 불상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밋밋한 네모형이며, 턱선이 약간 둥글게 되어 있다. 가는 눈과 빚어 붙인 듯한 콧 등은 형식적이지만 미소를 머금은 입 모습은 다소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턱선까지 내려온 귀나 목의 삼도 표현에서 형식화된 면이 보인다. 불신의 어깨가 좁은 편이지만, 몸을 앞으로 숙여 위축된 느낌을 주는 동시대의 다른 상들에 비해 안정감을 주며, 특히 양감 있게 볼록 나온 배가 특징적이다.
우견편단의 불의를 기본으로 하면서 왼쪽 어깨에서 등 뒤를 돌아 오른쪽 어깨를 감싸는 옷자락이 오른쪽 팔목 부분을 드러낸 채 배 앞으로 돌아들어가는 모습은 뒷벽 불화의 본존상과 같은 형식이다. 그러나 가슴에 승각기를 묶은 띠매듭은 없다. 불의의 옷주름은 형식화되어 비교적 단순하나 주름선은 유려한 곡선으로 되어 있다. 손 모양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얹은 촉지인이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수인에 가깝다. 둥글고 부드러운 얼굴 모습, 양감 있는 배의 표현, 둥근 손의 형태, 부드러운 옷자락선 등이 어울려 비교적 온화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비슷한 시기인 1782년에 조성된 실상사 약수암목각불탱의 불상들과 비교할 때 도식화의 정도가 덜하다. 불상의 복장 조사를 통해 1780년에 제작된 것이 밝혀져 조선 후기 불상의 편년자료로서 중요하며, 불의 표현에서도 실상사의 상과는 다른 유형을 보이는 중요한 예이다.
14] 송광사하사당
보물 제263호.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주심포계의 맞배지붕이다. 이 건물은 승방건축으로 평범한 주거건축구조를 보여준다. 초석은 지면으로부터 높은 편이며, 그 위에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왼쪽 2칸은 온돌방이고, 나머지 1칸은 부엌이며, 그 위에 환기를 위한 돌출시설이 있다. 부엌의 지붕 위에 환기구를 둔 것은 보기 드문 시설이지만, 순천과 광주 지방의 살림집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온돌방은 종이천장이고, 부엌은 연등천장이다. 공포는 주심포로 측면을 보면 평주와 고주 사이는 하방·중방·창방으로 자연스럽게 구획하고, 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한 수법은 조선 초기의 가구수법으로 국사전과 유사하다. 이 건물은 국사전과 함께 조선 초기의 양식이 점차 변하여 주심포 후기양식으로 변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싸리나무라는 설과 느티나무라는 설이 있어 헷갈리는 부분도 있지만 4,000명[쌀7가마]분의 밥을 담을수 있다고하니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실제로 한번 밥을 넣어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어려운 일이라 가히 짐작만하고 나옵니다.
조계산 송광사의 명물 비사리구시 앞에서[곰님,덕장님]
15;43 송광사 광장[이정표 16/ ↓ 화장실0.2km,등산로,송광사1.4km/1.3km] 13.3km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가을날의 추억을 한아름안고 안전하게 하산할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함께하신분들 수고하셨습니다.
버스로 30여분을 이동하여 맛있는 하산식을 합니다. 역시 산행의 꽃은 하산식입니다..
2025년10월25일
*산행지;전남 순천시 [조계산(장군봉)]
*산행거리;13.3km
*산행시간;05시간34분[휴식시간 45분 포함]
*날씨;흐림
*기온;16℃~20℃
*사용GPS;TRANGGLE,Ramblr
*만보기;22,935보[순수산행]
*참여인원;26명
*특이사항;①벽송산악회 제522차 정기산행 ②100대명산 ③점심 매식가능[보리밥&동동주] ④하산식[주암식당/오리주물럭]
*산행코스;선암사~소장군봉~장군봉~작은굴목재~큰굴목재~굴목재~송광사
10;09 선암사 주차장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767-1번지]
10;14 이정표 1[ ↑ 선암사 1km, ↓ 나가는곳,제2주차장(식당)] 0.276km
10;26 승선교[보물 제400호/0.824km] 1.1km
10;31 조계산 선암사0.4km] 1.5km
10;40 이정표 2[ ↑ 비로암1km,작은굴목재2.1km,장군봉2.3km, → 대각암, ↓ 선암사0.4km/0.6km] 2.1km
10;46 이정표 3[ → 장군봉2.2km, ← 비로암 1km,작은굴목재2km, ↓ 선암사0.5km,대각암0.1km/0.1km] 2.2km
11;14 소장군봉[1.2km] 3.4km
11;34 향로암터[샘터/0.5km] 3.9km
11;41 이정표 4[ → 장군봉0.4km, ↓ 선암사2.1km/0.2km] 4.1km
12;10 조계산 장군봉[해발888m/중 식/이정표 5/ ↑ 작은굴목재0.9km,보리밥집2.1km, → 장박골1.8km,송광사6.0km, ↓ 선암사2.7km/0.6km] 4.7km
12;45 중식후 출발
12;56 배바위[0.4km] 5.1km
13;11 작은 굴목재[이정표 6/ ↑ 큰굴목재1.0km, ← 비로암0.6km,선암사2.0km, → 연산봉사거리0.9km,보리밥집1.5km, ↓ 장군봉0.9km/0.6km] 5.7km
13;27 큰굴목재[이정표 7/ → 송광사4.2km, ← 선암사2.3km, ↑ 고동산4.8km, ↓ 작은굴목재1km/1.1km] 6.8km
13;35 이정표 8[ ↑ 송광사3.9km, → 작은굴목재1.5km, ↓ 큰굴목재0.4km,선암사2.3km/0.4km] 7.2km
13;37 이정표 9[ ↑ 송광사3.7km, ← 아랫집가는길, ↓ 장군봉2.1km,선암사2.8km/0.1km] 7.3km
13;37 조계산 보리밥집[아랫집/0.3km] 7.6km
14;19 배도사 대피소[이정표 10/ ↑ 송광사3.3km, ↓ 선암사3.3km/0.8km] 8.4km
14;29 이정표 11[ ↑ 송광사2.8km, ← 천자암1.8km, ↓ 선암사3.2km/0.4km] 8.8km
14;32 굴목재[해발720m/이정표 12/ → 송광사2.8km, ← 선암사4.0km, ↑ 천자암1.7km, ↓ 장군봉4.4km/0.1km] 8.9km
14;45 송광대피소[이정표 13/ ↑ 송광사2.3km, ↓ 선암사3.8km/0.5km] 9.4km
15;04 이정표 14[ ↑ 송광사1.2km, ← 선암사5.4km, ↓ 장군봉5.2km/1.1km] 10.5km
15;19 이정표 15[ ↑ 송광사, → 선암사6.5km, ↓ 천자암3.0km/1.0km] 11.5km
15;28 송광사[0.5km] 12.0km
15;43 송광사 광장[이정표 16/ ↓ 화장실0.2km,등산로,송광사1.4km/1.3km] 13.3km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34-2번지]
![유유자적 [悠悠自適]~~~그곳에 산이 있었다~~~](http://t1.daumcdn.net/cafe_image/cf_img2/img_blank2.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