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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극대도] 2권 제6장 위기의 순간들 ① '와라!!' 종남산을 뛰어다니던 두 다리는 천주부동(天柱不動)을 이루고, 스 물하나의 세월을 가슴에 품었다. 참으로 아까운 나이지만 결코 서럽지만은 않으리라. 죽음을 함께 하길 두려워 않는 친구가 곁에 있고, 최선을 다해 살 아왔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두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죽는 것이냐다. 창! 처음으로 타인에게 먼저 알몸을 드러낸 백혼검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불끈 움켜쥔 검자루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황보영우만은 탈출시키겠다는 굳은 의지처럼 힘이 들어가 있다. 단호삼이 검집을 허리춤에 꽂은 순간, 스윽……. 세 개의 그림자가 빨리듯 허공으로 솟았다. 흑의복면인의 몸이 멈 칫했다. 촤르르륵! 쇠사슬이 끌리는 음향이 들리며 날카로운, 바늘이 빽빽한 세 개의 원추가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단호삼은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타앗!" 우렁찬 기압성과 함께 불쑥 뛰어오른 그의 팔이 원(圓)을 그렸다. 카카캉! 불꽃이 튀었다. 푸욱! 하고 잘려진 원추가 땅속에 깊이 박히기 전에 그는 왼손으 로 쇠사슬을 휘둘러 잡아 확! 밑으로 끌어당겼다. 그렇잖아도 떨어지는 가속도에다가, 원추에 무게를 싣기 위해 내 려오던 중 단호삼이 쇠사슬을 잡아당겼으니. 쇠사슬을 놓고 몸을 기러기 깃털 마냥 가볍게 한다는 부운약평(浮 雲弱平) 신법으로 멋들어지게 착지해야지 하는 생각이 막 들 때였 다. 홀연 땅이 벌떡 일어나더니 거세게 부딪혀 왔다. 술도 먹지 않았 는데. "꾸액!" "캐액!"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렸는지, 머리통이 깨져 피와 뇌수가 땅을 적시고 있는지 단호삼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강한 적과의 임전시(臨戰時) 가장 좋은 책략은 도망이 다. 만약 그것도 못할 지경이면 수장(首將)의 머리를 베는 것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허공에서 연속으로 몸을 구부렸다 뒤집기도 하며 날아가는 단호삼 의 눈에는 팔짱을 끼고 있는 담사와 환사의 얼굴만이 그득했다. 그러나 마음 따로, 몸 따로였다. 산공독에 구 성밖에 진력을 쓰지 못하고, 비천갈독은 막힌 혈도를 뚫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내공을 사용한 탓이리라. 게다가 살청막의 살객들은 눈뜬 장님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한 반발에 잠시 놀란 그들 중 다섯이 일제히 검 을 떨치며 짓쳐들었다. 파츠츠츠! 검(劍)의 오만함인가. 환상 같은 검기가 허공에 가득 퍼졌다. 노을 빛을 받아 번쩍거리 는 검기는 누가 보아도 단호삼이 피할 수 있는 삼십육 방위를 전 부 장악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상대의 약점을 잘 파악하는 살객이라서인지 몰 라도 그들의 공세는 실로 절묘한 바가 있었다. 운룡대구식으로 날 던 단호삼이 진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멈칫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단호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싶은 순간, 백혼검으로 벼락 같이 내리쳤다가 쳐 올리는가 하면 어느새 횡으로 긋고 있었다. 지나가는 똥개도 웃는다는 육합검법의 연환식이었다. 그러나 단호삼의 손에서 시전 되자 웃음은커녕 울음보가 터질 지 경이었다. 비록 그 위력이 반감되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검극(劍 戟) 따라 피어난 검화가 마주쳐갔다. 차차창앙! 날카로운 금속성이 귀청을 울렸다. 그뿐이었다. 처절한 비명도 피 분수도 피어나지 않았다. 다만 두 개의 자석(磁石)이 같은 극(極)을 만난 듯 퉁겨졌을 뿐이 었다. 흑의복면인들이 제아무리 살청막의 일급 살객이더라도 평상시의 단호삼이라면 이런 결과는 빗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검을 절단 시켰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그는 다치지 않고 막은 것만도 다행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② 비틀……. 솜털처럼 가볍게 착지 못하고 마치 주먹만한 돌멩이가 떨어지듯 둔중하게 떨어진 단호삼은 일시간 균형을 잡지 못했다. 흑의복면인의 직업이 뭔가? 바로 적의 약점과 방심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살객(殺客)이었 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그들은 살객이 아니라 마음씨 좋은 시 골 노인일 것이다. 츄우!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싶은 순간 살객들이 가장 애용하는 가 백병 지왕(百兵之王)이라 불리는 검이 불쑥 다가왔다. 대저, 검(劍)이란 도(刀)보다 가볍고 두 치 정도 길다는 것을 제 외하고도 양날을 모두 쓸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절대절명의 순간, "멈춰!!" 눈 깜짝할 사이에 단호삼과 흑의복면인들이 격돌을 하였기에 미처 끼여들 겨를도 없었던 황보영우가 대호성을 발했다. 허나 멈추라 고 해서 멈출 거라면 애당초부터 공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보영우는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는 흑의복면인들을 향해 몸을 날림과 동시에 벼락같이 용골선을 집어 던졌다. 그러나 그의 반응이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흑의복면인들이 먼저 손을 썼고, 또 거리도 무려 삼 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활 짝 펼쳐진 용골선은 직선이 아니라 빙그르르 타원을 그리며 날아 가고 있었다. 직선과 타원! 그 차이는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황보영우는 일순 눈앞이 깜 깜해졌다. 등뒤로 돌아 들어가는 용골선은 흑의복면인들을 죽일 것이다. 그 들이 몸을 돌려 막지 않는다면 말이다. 허나 그들은 지금 이런 사 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단호삼을 덮치고 있었다. '너무 늦었어.' 절망을 느낀 그가 자신도 모르게 발을 멈추었을 때였다. 단호삼의 눈이 반짝 빛났다. 용골선이 후방으로 짓쳐드는 것을 느낀 흑의복면인들이 순간적으 로 움찔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상대를 죽 일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살인기계라 도 단호삼을 죽이는 순간에 자신들도 죽을 거라는 사실에 잠시 머 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찰나지간에 반숨을 들이킬 여유를 찾은 단호삼의 머릿속으로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허공으로 도약을 하면 놈들 중 한둘은 용골선을 막을 것이고 나머 지는 자신을 따라오며 살초를 퍼부을 것이다. 그리고 호시탐탐 기 회만을 엿보고 있는 다른 살객들이 좋아라 하며 달려들 거라는… …. '그렇다면!'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그는 슬쩍 오른발을 들어 땅을 방아 찧듯 내리 찍었다. 꽝! 천근거석이 절벽에서 떨어진 듯 엄청난 굉음이 들리며 땅거죽이 들썩거렸다. 단호삼이 무의식중에 한 이것은 소위 말하는 대지를 발로 디뎌 령 (靈)을 제압한다는 답천제령보(踏天制靈步)에는 미치지 못하나 흑 의복면인들의 신형을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엇!" 중심을 잃은 흑의복면인들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이 순간, 단호삼은 추호의 망설임 없이 왼 팔꿈치로 좌측에 있는 흑의복면인의 가슴을 가격했다. "으악!" 가슴뼈가 완전히 박살나는 소리와 더불어 피분수를 뿜으며 실 끊 어진 연처럼 흑의복면인이 뒤로 날아갈 때, 단호삼의 몸이 밑으로 쑥 꺼지는가 싶더니 왼발을 축으로 빙글 한 바퀴 회전하며 백혼검 을 횡으로 쓸었다. 써컥! 뼈와 살이 저미는 소리가 들렸다. "크윽!" "으아아악!"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처절한 비명이 꼬리를 물고 하늘 가득히 번 졌다. 자신의 죽음이 믿기 어려운 듯 몇 번 두 팔을 허우적거리고 나자 상반신에서 허리에 핏물이 어리는가 싶더니 츄악! 하고 핏줄기가 솟구쳤다. 그때, 위잉!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리며 용골선이 그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 고, 털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상반신이 땅에 떨어졌다. 그 순간 머리가 쩍 갈라졌다. 비스듬히 잘려진 뇌수와 아직도 꿈틀거리는 내장들. 끔찍했다. 그들의 피로 목욕을 한 듯 전신에 피를 칠한 채 망연자실, 반쯤 앉은 자세로 있는 단호삼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손은 썼지만 눈앞에 펼쳐진 참상(慘狀)에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그 동안 몇 번의 대결로 사람을 죽인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처참하게 죽인 적도, 본 적도 없었다. ③ 위잉…….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자연이 만든 바람이 아니라 황보 영우가 용골선을 잡은 뒤 달려오며 만든 바람이었다. 그런데도 역 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괜찮… 웁!" 다치지 않았느냐고 물으려 했을 것이다. 한데 그 짧은 말조차 다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욕지기를 하는 황 보영우의 작은 등을 보던 단호삼은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고 몸을 일으켰다. 열 명의 흑의복면인이 잔뜩 긴장한 채로 반원형으로 다가오는 것 이 보였다. 복면으로 가려져 있어 볼 수는 없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들의 얼 굴은 돌같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도산검림(刀山劍林)의 세계에서 살객이란 신분으로 살아 가고 있다지만 동료들의 처참한 주검과 가히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는 단호삼의 무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 문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허공을 격하고 눈이 부딪히자, 흑의복면인 들의 몸이 눈에 뜨이지 않게 움찔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내심 탄식을 토한 단호삼은 그들을 스쳐 뒤에 있는 담사와 환사의 눈을 찾았다. 두 사람도 상당히 놀랐는지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문영아! 부친과 오라비의 복수를 위해 사내들에게 희롱을 당하는 치욕까지 감수하며 소위 살청막이 말하는 초계란 것에 참여했던 그녀는 자 는 듯이 누워 있었다. 하지만 결코 자는 것이 아님을 부릅뜬 눈과 기복 없는 가슴이 말 해 주었다. 단호삼의 눈 깊숙한 곳에 언뜻 아픔이 지나갔다. 서문영아의 시신 에서 눈을 뗀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부탁이 있소." 이 판국에 부탁이라니? 그것도 적에게. 의외의 말을 들은 담사와 환사의 눈에 이채로움이 번쩍 스쳤다. 허나 이내 담사가 입을 열었다. 시간은 끌면 끌수록 좋으니까. "말해 봐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잠시 움찔 했다가 서서히 좁혀들던 흑의복면 인들의 몸이 멈추었고, 말할 시간을 줘서 고맙다는 뜻인지, 담사 의 속셈을 알고 있다는 뜻인지 단호삼은 몇 번 고개를 끄덕여 보 인 후 말했다. "난, 당신이 누군지도, 살청막에서 어떤 지위인지도 모르오. 그렇 지만 지금 여기서 당신 신분이 제일 높다는 것은 아오. 그래서… …." 말끝을 흐린 단호삼의 눈이 돌연 허허롭게 변했다. 그것은 마치 오욕칠정을 모두 버린 고승(高僧)의 눈빛과도 같았다. 그 짧은 순간, 내심으로 담사의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있었다. '참으로 괴이한 놈이다. 비천갈독에 중독 되고도 아직 저런 무공 을 펼칠 수 있다는 것도 놀랍기 그지없는데 저 눈빛은 또 뭔가?' 그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단호삼이 물어왔기 때문이었다. "묻겠소. 내 죽음을 원하오?"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생각 전에 담사의 고개가 크게 끄떡여졌 다. "그렇다!" 단호삼은 서슴없이 말했다. "그렇다면 날 보내 주시오." "미친……." "더 들어보시오." 담사의 말을 제지한 그는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들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나는 살지 못하오. 살아봐야 겨 우 두 시진 정도… 그 전에 만날 사람들이 있소. 그들을 만난 후 에 죽고 싶소. 어떻소? 가만히 두어도 죽을 사람에게 손을 쓴다는 것은 불필요한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오." 순간 담사와 환사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흘러 나왔다. "으음……." 이것은 색다른 충격이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을 죽여왔다. 그래서 인간이 죽을 때 어떤 말을 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개중에는 청 부금보다 더 많은 대금을 지불할 테니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 심한 경우는 방금 죽인 서문영아의 경우다. 잘못했다고, 단호삼이 저런 걸물이 된 줄 알았다면 그렇게 적은 돈으로 청부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니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전 재산(全財産)을 내놓겠다고 하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몸도 준다고 했다. 또 모자라면 시녀가 되어 평생을 받치겠다고 했다. 주인이 원하면 뭐든지 하는 시녀가……. 그런 것이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의 인간들은 모두 조금이라도 더 살고 파 했다. 그런데 단호삼이라는 저 인간은 어떠한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 기준마저 흔들고 있었다. '죽음을 말하는 자의 눈빛이 저리 평온할 수가… 과연 비천갈독에 중독 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게다가 놈이 보내 달라고 한 것 은 살기 위함이 아니다. 더 이상 살인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 ….' 그때, 황보영우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단형, 그게 정말이오, 두 시진밖에 시간이 없다는 것이?" 더 이상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한 단호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 다. "그렇소." 유난히 길어 보이는 황보영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조화선공으로도 억제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오?" 그 순간 단호삼은 담사의 눈이 반짝 빛나는 것을 보며 씁쓸한 미 소를 머금었다. "조화선공이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테지요." "!" 황보영우는 할말이 없었다. 그의 말이 진실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조화선공이 아니고 일반 내공심법이라면 그는 벌써……. 이같은 사실을 잘 알면서 왜 그가 당연히 천산까지 갈 수 있으리 라고 믿었더란 말인가? 기실 단호삼은 서문영아의 손에 들린 독검을 보는 순간, 혈도를 봉쇄함과 동시에 암암리에 비천갈독을 배출시키고자 조화선공을 운공하였다. 허나 억제는 할 수 있었지만 결코 체외로 배출시킬 수 없었다. ④ 만약 조화선공을 대성했다면 모를 일이었지만 말이다. 거기다가 편안한 자세에서 지속적으로 운공(運功)을 했다면 좀더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사정이 그렇지 못해 무리하게 공력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그때였다. "좋다. 네 말대로 더 이상 막지 않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겁이 나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이 아닌데……. 씁쓸한 기분이 드는 가운데 단호삼은 좀 전에 보았던 담사의 야릇 한 눈빛을 떠올리며 말했다. "들어봅시다, 그 조건이 뭔지." "조화선공과 만천검결을 내놓아라." 순간 단호삼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가 곧 물같이 고요하게 변했 다. 조화선공은 방금 들어서 알 것이다. "내게 만천검결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소?" 환사가 슥 한발 나섰다. "그건 내가 말해 주지." 환사는 짤막하게 말했다. "섬서성의 여래객점! 이 정도면 알아듣겠느냐?" 그때 그 희미한 기척. "알만 하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단호삼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유한 눈으 로 두 사람을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주는 것은 어렵지 않소. 하지만……." "안됩니다!!" 격한 음성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돌린 단호삼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황보영우 가 말해 줄 테니까. "저런 자들에게 조화선공과 만천검결을 넘겨준다는 것은 호랑이에 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초계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청부자 도 서슴지 않고 죽인 놈들이 살려 준다는 보장을……." 그때, "갈!!" 담사의 입에서 천둥소리가 터졌다. 말을 끊은 그는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황보영우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맘에도 없는 말을 했다. "나는 살청막의 이인자(二人者)인 담사다! 그런 내가 헛소리를 하 겠느냐? 다시 말하지만 두 가지 물건을 건네주면 건드리지 않겠 다!" 황보영우는 놀란 눈으로 담사를 쳐다보았다. 담사(曇死)라는 이름 이 주는 의미는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도, 자식도, 친구도 믿지 마라. 그들 중 천(千)의 얼굴을 가 진 죽음의 신(神)이 있다." 이렇게 강호를 믿을 놈 하나 없는 메마른 세계로 만든 자는 바로 오대살객 중 으뜸이며 살청막주인 천면사신(千面死神)이었다. 그리고 담사는 삼백 번이 넘는 살행에 성공한 천면사신의 아성(牙 城)에 가장 근접한 살객이었다.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담사일 줄이야. 그렇다면 저 자는 환사?' 황보영우는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대살객 중 두 명만 나타났다는 것이 다. 자신들의 입으로 살청막의 살업을 중단시킬 줄 모른다는 초계 라고 해놓고 말이다. 알게 모르게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문 그는 단호삼이 자신을 생각 하듯, 그 역시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단호삼만은 살리고 말리라는 맹목적인 욕심이 치솟았고, 그것은 두려움을 떨쳐 버리게 만들기 에 충분했다. 그가 단호삼을 보며 말을 하려 할 때였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당신들에게 그것들을 줄 수 없다." 단호삼의 어투는 존칭에서 반어로 바뀌어져 있었다. 순간 담사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날 놀리다니……. 쳐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흑의복면인들이 접근해 왔다. 아까와는 달리 좀더 신중하고 은밀하게 다가오는 것을 본 단호삼은, "바짝 따라오시오." 황보영우에게 주의를 주고는 바람같이 달려가며 백혼검을 뻗었다. 육합검법의 화룡점정이었다. 쌔액! 단순한 동작에 검풍이 일며 칼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마빡을 겨누 고는 있지만 변화의 여지가 충분한 검초였다. 단호삼이 선제 공격을 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흑의복면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렇다고 마빡을 찍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 어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수중의 검을 위로 쳐 올렸다. 차앙! 날카로운 검명(劍鳴)이 울렸다. 더불어 일반적인 검보다 세 배나 무거운 보검인 백혼검은 흑의복 면인의 최후의 발악을 비웃기나 하듯 검을 절단하고도 기어이 이 마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허나 탁천용검 곽조웅을 죽일 때처럼 좁쌀 만한 흔적만 남기지는 못하고 그냥 이마를 관통시켰다. 이는 단호삼의 내공이 전과 같이 않다는 뜻! 그 순간 가장 가까이 있던 두 명의 흑의복면인이 득달같이 덮쳐들 었다. 좌측의 흑의복면인은 머리를 쪼갤 듯이 내리 치고, 우측에 서는 허리를 쓸어오고 있었다. 상하(上下)를 동시에 노리는 절묘한 공세. 단호삼은 좌측은 무시하기로 했다. 뒤따라 온 황보영우가 불쑥 튀 어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의 손에는 용골선 대신 청강검(靑鋼劍)이 쥐어져 있었다. 아마 죽은 흑의복면인에게서 취 득한 것이리라. 단호삼은 땅을 박차고 슬쩍 도약해 흑의복면인의 공세를 발 밑으 로 흘려 보냄과 동시에 이기선풍각을 연거푸 전개했다. 빠각! 허리뼈가 완전히 박살난 흑의복면인은 피분수를 뿜으며 땅에 처박 혔다. 그 순간 잠자리가 물을 찍는 모양을 본떠 만든 청정삼점수( 三點 水)라는 제종신법(提縱身法)으로 이 장 거리를 단숨에 단축시킨 단호삼의 눈에 흠칫, 놀라는 담사와 환사의 얼굴이 가득 차 올랐 다. '속전속결! 살검지도(殺劍之道)인 절혼검(絶魂劍)을.' 웅후한 만천검결보다는 이 순간에는 절혼검이 더욱 효과적이리라 판단한 그는 허공에서 쏘아지는 모습 그대로 절혼검을 펼쳤다. 절혼검은 오늘날의 사하립이 있게 만든 실전무예(實戰武藝)였으 며, 죽음을 부르는 살검이었다. ⑤ 파앗! 마치 폭죽이 터지듯 서릿발같은 검광이 줄기줄기 흘러 나와 담사 와 환사에게 쏘아져갔다. 반경 삼 장 이내가 온통 검기의 폭풍에 휩싸인 듯했다. '굉장하군! 그러나 평상시라면 몰라도… 흐흐흐…….' 단호삼이 이렇게 빨리, 그리고 등뒤를 비어놓고 덮칠 줄은 몰라 일시간 놀랐다. 허나 그들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오대살객들이 었다. 내심 진득한 살소를 터뜨린 담사는 두 손을 가슴 어림까지 들어올 린 후 마치 만근거석을 밀어내듯 천천히 밀었다. 아무런 소리도, 변화도 없었다. 한데 담사의 손이 반쯤 펴졌을 때였다. 우우웅!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보이지 않는 거대무비한 노도(怒濤)가 일 듯 거대한 압력이 밀어닥쳤다. 소리도 흔적도 없다는 무성마장(無聲魔掌)이었다. 그러나 목표점 에 닿는 순간에는 세 치 두께의 철판을 종잇장처럼 찢을 수 있는 가공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 아무런 위력을 없는 것을 보 고 겁 없이 덤벼들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단호삼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빗살처럼 쏟아지던 절혼검의 검세가 무성마장의 압력에 주춤하는 순간, 환사의 손이 허리께로 가는 것이 보였다. 창! 경쾌한 음향과 함께 어느덧 그의 손에는 장검(長劍) 한 자루가 쥐 어져 있었다. 두께가 종이보다 얇아 허리에 두를 수 있다는 연검 (軟劍)이었다. 종이보다 얇다는 것은 그만큼 부드럽다는 뜻이다. 이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낭창한 연검을 사용하는 사람은 내가고수(內家高手)라는 뜻이다. 무성마장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환사마저 나선다면 그 결 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급한 나머지 놈들을 너무 경시했다. 그러나!' 그러나,라고 소리친 그는 조화선공을 극성(極成)으로 끌어올렸다. 평상시의 칠 할밖에 되지 않는 진력이 모아졌다. 충분하지는 않지 만 동귀어진(同歸於塵)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금니를 깨물고 백혼검을 앞으로 내뻗는 단호삼의 입술이 묘하게 비틀어졌다. '후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군. 천하의 오대살객 중 둘과 함께니 말야.' 무성마장이 밀리며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단호삼이 구멍으로 백 혼검을 밀어 넣을 때, "죽어!" 허공으로 도약한 환사는 검과 한몸이 되어 섬전처럼 단호삼의 머 리를 향해 쏘아졌다. 그것은 놀랍게도 검신(劍神)의 경지라는 신 검합일(身劍合一)이었다. 절대절명의 순간, "안돼요!!" 뾰족한 음성과 함께 단호삼 뒤에서 섬세한 인영이 불쑥 튀어 오르 며 검기를 흩뿌렸다. 황보영우였다. 파츠츠츳! 물 한 방울 새어 나갈 틈 없는 검광이 벼락같은 기세로 쏟아졌다. 꽈꽝! 지축을 뒤흔들고도 남을 폭음이 터졌다. 사방 십 장 이내의 땅거 죽이 몸을 비틀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치 돌개바람이 인 듯 자 욱한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신음과 비명이 뒤따랐다. 그리고 용수철처럼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인영의 품에는 한 사람 이 안겨 있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난 자리에는 커다란 웅덩이와 왼팔이 팔꿈치부터 싹둑 잘려나간 담사와 절단된 연검을 들고 하얗게 질린 환사만이 남았다. 혈도를 짚어 지혈을 시킨 담사는 이를 바드득 갈아붙였다. "빌어먹을! 그놈이 펼친 검법은 와운장의 광운십이검이었어. 그놈 … 아니, 그년이 추영화라는 계집일 줄이야." 졸지에 팔자에도 없을 것 같았던 팔 병신이 된 그의 얼굴은 일그 러졌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무성마장이 만든 장벽(障壁)이 단호삼에 의해 밀린다고 느낄 순 간, 마침 환사가 끼여들어 내심 '됐다.'고 외칠 때 뜻밖의 방해자 가 나타났다. 그 방해자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팔이 잘리지 않았을 뿐더러, 단호 삼은 중상 내지 사망일 것이다. 그러면 초계는 끝난다. 얻을 것은 얻을 것이고, 살청막이 청부자까지 끌어들여 살인 대상 을 제거했다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며, 요즘 오대살객 중 막내인 혈우로 인해 흔들리는 입지(立地)도 다시 세워졌을 것이다. 아니, 수틀리면 조화선공과 만천검결을 가지고 잠적하면 된다. 그 후에 다시 강호에 나올 때는 감히 누가 자신의 적수가 되랴! 왕도연이고, 사하립이고 간에……. '저 병신 같은 것들 때문에 전부 다 틀렸다.' 병신들이 머뭇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추영화 하나를 막지 못한 살청막의 일급 살객인 여섯 흑의복면인 들이 병신이라면, 그 뒤에 추영화의 하늘빛 장삼 하나로 몸을 가 리고 다가오는, 즉 서문영아의 시녀로 분장해 혼절한 척하고 있다 가 결정적인 시기에 기습을 가하려던 흑매는 병신들을 낳은 어미 일 것이다. 단호삼이 자신이 있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도망쳤는지도 모르고 여 태까지 누워 있다가 이제야 어슬렁거리며 오는 저 꼬락서니하곤… …. 담사는 얼굴에 쓰고 있던 인피면구를 신경질적으로 벗어 땅에 내 팽개치며 으르렁거렸다. "뭣들 하고 있어! 어서 놈을 쫓지 않고!!" ⑥ 밝음이 완전히 밀려났다. 산 자는 떠나고 주검만이 가득한 고즈넉한 이곳에 어디선가 올빼 미인지 부엉이인지 모를 울음이 퍼졌다. 인간들의 추악한 싸움을 한탄하는 듯한 울음이었다. 왜 우리처럼 오손도손 살지 못하느냐고. 위이잉……. 한 줄기 바람만이 의미 없는 죽음 위를 스쳐 흘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 달빛을 가득 안은 세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막주?" 나타나자마자 싸늘한 음성을 토한 사람은, 대나무를 연상시키는 깡마른 초로의 인물로 놀랍게도 복마신검 곽여송이었다. 기실 섬서성의 은검보에 찾아온 주근깨 청년은 살청막주인 천면사 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천하만물상의 호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길게 찢어져 독사같이 번들거리는 눈을 가진 사내 가 서 있었다. 단호삼과 같은 고향이라던 혈우였고, 과거에 단호삼 형제가 고향 을 등지게 만든 장훈이었다. "그렇게 조심하라 했는데… 멍청한 놈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장내를 둘러보며 중얼거린 천면사신은 예 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담뿍 머금고 고개를 돌렸다. "걱정 마시오. 보아하니 약간의 착오가 있은 듯하지만 놈은 결코 우리 손을 벗어날 수가 없소이다." 하남성 은검보에서 이곳 운대산에 오는 동안 천면사신의 얼굴은 정확히 스물일곱 번이나 바뀌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에 비추어 보 면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얼굴을 바꾼 셈이다. 곽여송은 지금 저 얼굴이 과연 천면사신의 본모습일까 하고 생각 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놈을 잡지 못한다면 우리가 나눈 묵계(默契)는 없다는 것을 명심 하시오!" "당연하지요." 곽여송과 달리 웃음을 흘리며 가볍게 머리를 주억거린 천면사신은 이내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달빛이 밝다. 둥근 만월(滿月)이 뿌리는 달빛은 땅바닥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선비들은 한잔 술로 인생을 논하고, 세상을 살 만큼 산 노인은 마 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둘러앉아 손자들에게 지나간 세월을 도란도 란 들려주고 싶어지는 그런 고운 달빛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밝은 달빛이 몹시도 미운 사람이 있다. 가지 못하 는, 혹은 갈 수 없어 그리움을 한잔 술에 담아 들이키는 사람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이런 달빛이 싫은 사람은 뒤도 안 보고 도망 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도 혈흔(血痕)을 남기면서. 단호삼이 달리던 발을 멈춘 것은 그의 발 밑에서 나뭇가지가 부러 지는 순간이었다. 뚝! 부러지는 소리가 먼저인지, 멈춘 것이 먼저인지 모를 정도로 우뚝 선 단호삼은 거친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안고 있던 황보영우를 내려놓았다. 월광(月光) 때문인지, 아니면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그의 얼굴은 백납처럼 하얀 가운데 은은한 푸른빛이 돌고 있었다. 비틀……. 환사와의 격돌로 상당한 내외상을 당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본 단 호삼은 손을 내밀어 부축하고픈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 호삼아.'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른 단호삼은 냉랭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낭자도 복수를 하기 위해 내게 접근했소?" "!" 비틀거리던 몸이 멈추었다. 충격적인 말에 경직된 것이다. 그러다 부르르 진저리를 치다가 고개가 발딱 들었다. "그게 아……." "흥! 부인하고 싶겠지. 그럼, 좋다! 얼마든지 핑계를 대봐라. 다 들어주마!" 잔인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심장을 후벼파고 있었다. 저 사람이 과연 여태까지 보아왔던 그 사람인가 싶었다. '아무리 속였다지만 내게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황보영우, 즉 지봉 추영화의 입술이 새파랗게 떨렸다. 단호삼 때 문에 불효까지 마다 않았던 자신이었다. 기실 그녀는 한림원주인 황보유학에게 연경에서 수학(受學)하던 중, 부친인 광해검신 추성후의 급한 전갈을 받고 와운장으로 돌아 갔다. 한데 뜻밖에도 얼굴도 본 적 없는 비천혈신 하후천에게 시집을 가 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당연히 그럴 수는 없다 하였고, 설득을 하다하다 안되자 정 그렇다면 부녀지간의 연(緣)을 끊겠다고 해서 할 수 없이 혼수 품을 가지고 가던 도중 단호삼을 만나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단호삼의 군계일학(群鷄一鶴) 같은 늠연한 모습과 대인(大 人) 같은 풍모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던 중 다시 하후천에게 가라는 부친의 말을 들은 그날 밤으로 와운장을 뛰쳐 나와 오늘에 이른 것이다. '낭자, 내가 왜 그 마음을 모르겠소.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날 용서해 주시구려.' 추영화의 커다란 봉목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본 단호 삼은 가슴이 찡 했지만 다시 한 번 어금니를 깨물며 살얼음이 풀 풀 날리는 음성을 토했다. "왜 말을 못하지? 금호를 죽이지 않았는데도 복수를 하기 위해 기 회를 엿본 것이 이제야 마음에 걸리나? 아니면 어떻게 또 속여볼 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순간, "왁!" 추영화의 입에서 시뻘건 핏덩이를 튀어나왔다. 내상에다 거듭되는 정신적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응혈을 토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지도 않고 처연한 음성으로 물었다. "제가 왜 그랬는지 진정 모르시나요?" 단호삼은 칼같이 대답했다. "모른다! 모르니까 말해 보라는 거 아니냐!" 추영화는 잠시 머뭇거렸다. 저 우둔한 사람은 진정 모를 것이다. 모른다면 말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어찌 차마……. 하지만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지금 마음이 너무 아 파 단호삼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으므로. 결심을 굳힌 그녀는 빠른 어조로 말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말을 마친 추영화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여인의 몸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 아무래도 쑥스러웠던 것이리라. 허나 다음 순간, "허… 참! 별 미친년 다 봤네. 웬 사랑타령? 젠장! 별로 오래 살 지도 않았는데 별소리를 다 듣네. 미안하지만 나는 너 같은 계집 을 좋아하지 않아. 또 모르지. 잠깐 놀아 달라면 몰라도. 후후, 그리고 나서 본문의 문규대로 서로 나눠 가지면 좋겠군그래."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