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윗을 지켜주시는 하나님
2026년 4월 19일 / 사무엘상 23:1-14
다윗이 경험한 위험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하여 AI에서 본다.
1. 사울 왕의 추격으로부터의 보호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웠던 시기는 사울 왕의 질투와 추격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를 보호하셨다.
광야와 요새: 다윗은 십 광야, 마온 광야, 엔게디 요새 등으로 도망쳤다. 성경은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삼상 23:14)라고 기록하였다.
우연을 가장한 섭리: 사울이 다윗을 거의 다 잡았을 때, 블레셋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져 사울이 회군하게 만드심으로 다윗을 구하셨다(셀라하마느곳).
2. 전쟁터에서의 승리와 안전
골리앗과의 싸움부터 시작해 수많은 전쟁을 치른 다윗에게 하나님은 방패와 요새가 되어주셨다.
골리앗 앞에서의 확신: 다윗은 칼과 창이 아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으며, 하나님께서는 물맷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하셨다.
전술적 인도: 다윗이 전쟁에 나가기 전 항상 하나님께 ‘올라가리이까?’라고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릴 때 공격하라는 구체적인 전술까지 알려주시며 그를 보호하셨다.
3. 내부의 반란(압살롬)으로부터의 피신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맨발로 울며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던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지혜의 무력화: 아히도벨의 날카로운 모략을 막기 위해 후새를 보내셨고, 압살롬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함으로써 다윗이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을 벌어주셨다.
4. 다윗이 고백한 ‘구원의 하나님’(시편 18편)
다윗은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벗어난 날,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노래하였다.
시편 18:1-2 /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 다윗을 구하시는 방식 /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기적만 베푸신 것이 아니라, 사람(요나단, 후새)을 붙여주시고, 상황(블레셋 침공)을 조절하시며, 다윗에게 피할 길과 담대함을 주심으로 그를 지키셨다. 다윗의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 되시는 분임을 그의 삶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해설
블레셋의 그일라 공격(1) 그일라는 다윗이 피신한 헤렛 수풀 인근에 있는 유다의 한 성읍으로 아둘람에서 남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블레셋과 접경 지역에 있었다. 당시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공존해 있었던 때로 사사시대부터 계속된 추수기의 탈취 상황이 또다시 재연되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은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다윗의 기도(2-4) 도망자의 신분이었던 다윗이지만 그일라의 위험을 듣고 하나님께 이 상황을 아뢰며 전쟁을 치룰 것을 묻는다. 이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다윗을 따르는 무리의 반응은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려운데 블레셋과의 전쟁을 한다는 상황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이 상황을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고 블레셋을 네 손에 넘기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사무엘상 22장 이후 다윗이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묻고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삶의 방식이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그일라를 구원함(5)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고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였다. 다윗의 현실은 도망자였지만 실상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왕의 역할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대하여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은 자로서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찾아 구원해야 한다.
사울 왕의 추격(6-8) 다윗은 블레셋으로부터 침탈당하는 그일라를 구원했으나 사울 왕은 오직 다윗을 잡는 일에 몰두하였다.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은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그를 자기 손에 넘기셨다고 아전인수격으로 상황을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사울은 지체하지 않고 군사를 징집하고 그일라를 에워싸고자 했다. 왕을 세운 목적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으나 사울은 그일라의 침탈에는 무관심하더니 다윗을 추격하는 일에는 전력을 다하며 국력을 소모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왕이며 무엇을 위한 왕인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다윗의 기도(9-12) 다윗은 위기를 맞자 마침 아비아달이 가져온 에봇을 가지고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물었다. 사울 왕이 그일라로 내려와 성읍을 멸할지를 물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나면 그일라 백성들이 자신을 사울 왕에게 내어줄 것인지를 물었다. 다윗의 물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사 사울 왕이 내려올 것과 그일라 백성이 자신을 배반할 것을 말씀하셨다. 다윗은 도망 생활을 통해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다윗의 피신(13-14) 기도의 응답대로 다윗은 신속하게 자신을 따르는 육백 명과 함께 그일라를 떠나 안전이 확보되는 광야의 요새로 피신하였다. 사울 왕은 다윗이 그일라를 떠났다는 정보를 듣고는 추격을 멈춘다. 다윗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십광야 산골에서 머물며 사울의 핍박을 피하고 있다. 다윗의 영성은 광야를 유리방황하는 이때 깊어간다. 사울 왕이 매일 다윗을 찾지만, 하나님은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고 계심을 도망자의 세월을 통해 삶 속에서 경험하고 배우고 있다. 이 경험들은 시편의 아름다운 시로 승화되었다(시편 150편 중 73편이 다윗의 시)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늘 민감하게 순종하고 살았던 다윗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 전반에서 다윗의 삶은 끊임없는 위기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마다 그를 건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다윗의 신앙 고백이자 핵심 주제였다(14절).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up / 절대로 단념하지 말라)
하나님은 결코 성도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사단의 세력에게 빼앗기지 아니하시고, 잃어버리시지도 않으시며, 내어쫓지 아니하시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 그 아들의 피로 성도를 구속하시고, 큰 대가를 치르시고, 가장 값진 것을 내어주시고 사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오,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온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하 만물을 주관하신다.
마 10:29-31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시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으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참새 두 마리는 한 앗사리온 곧 6,250원(한 데나리온의 1/16, 일당 10만원 계산시)에 팔린다. 3,125원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참새보다 더 귀한 성도의 생명은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성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
마 6:25-26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사울은 왕이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다. 절대 권력을 쥐고 있다. 3,000명의 군사를 대동하여 다윗을 수색하여 잡고자 하였다. 전에는 단창으로 죽이려 하였다.
이에 비하여 다윗은 사울의 신하요, 그를 보호해 주는 사람은 미약한 이들의 동정에 지나지 않았다. 이리저리 정처없이 쫒겨 도망다니고 있었다.
누가 이기겠는가? 그런데도 사울은 다윗을 잡지 못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왜 사울 왕은 신하 다윗을 잡지 못했을까? 다음 몇 구절을 통하여 사울왕의 계략이 어떠함을 알 수 있다.
삼상 23:15 / 다윗이 사울이 자기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삼상 23:25-26 /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26)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여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였더라.
삼상 24:2 /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삼상 26:2 /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그런데도 잡지 못함은 무슨 이유일까(삼상 23:14)?
하나님께서 간섭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다윗을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의 손에 넘기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심과 넘기심의 주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이다.
▶ 1-14절까지 내용을 자세히 본다면 성경 기자가 [넘긴다]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였다.
4절 하 /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7절 하 /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11절 /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데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12절 /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14절 /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 [넘긴다]는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바는 무엇인가?
1. 블레셋 사람들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시다.
삼상 23:4 /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은 사울의 죽이려는 의도를 이미 알고 있기에 도망다녔는데, 그일라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 주민의 타작마당을 도적질한다’라고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였다(삼상 23:1).
이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2절 /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그러자 하나님께서 분명히 응답하셨다.
4절 / …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네 손에 넘기리라.] 이 단어의 의미는 가두다. 강제로 감금하는 행동을 말한다.
레 13:4 / 피부에 색점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털이 희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 둘 것이며
시 31:8 /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하였다.
삼상 23:5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다윗이 블레셋을 물리치고 그일라 주민을 구원한 것은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그 손으로 가두어 두셨기 때문이다. 그의 수중에 넘겨주셨기 때문이다.
전쟁에 용사되시는 주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이다.
2. 그일라 주민들은 다윗을 사울에게 넘기리라(삼상 23:12)
사울이 자기를 잡고자 하여 내려올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자 재차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라고 하나님께 물었다.
삼상 23:11-12 /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데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12)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그일라 주민들은 다윗에게 빚진 자들이다. 다윗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그렇기에 사울이 다윗을 찾아도 숨겨 주어야 할 터인데, 자기네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은혜를 저버리게 될 것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윗은 그일라를 떠나 피하였다. 그일라 주민들이 사울의 손에 넘길 것조차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기에 이들의 생각은 헛수고에 그칠 뿐이다.
무엇보다 다윗은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들이 배반할 때에도 그들에 대해 분노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믿음으로 행하였다. 이런 다윗의 모습이야 말로 환경을 초월하여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다.
삼상 23:14 /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잠 3:6-7 /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하나님이 생명 싸게 속에 고이 보호하시니 어떻게 찾아내겠는가?
삼상 25:29 /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게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눅 13:34-35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사울조차도 미래의 될 일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삼상 24:20 / 보라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참 멋진 신앙인(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인)이었다.
삼상 24:4 하 /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 이유는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사람을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삼상 24:6). 그러기에 옷자락만 조금 벤 것도 가슴 아파했던 것이다.
삼상 24:5 /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이 마음에 찔려 ….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일치되어야 한다. 이것이 참된 지식이요, 앎이다.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의 불일치는 그 알고 있는 앎은 참 지식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이 산상수훈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마 7:15-20 /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사울은 다윗의 미래를 예측(예언)까지 하였다. ‘보라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다. 이런 앎은 참 앎이 아니다.
이번에도 하길라 산에 도망하여 숨어있다는 정보를 듣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자 3,000명을 대동하고 수색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울은 다윗을 찾아낼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윗이 민첩하거나 사울이 이에 미치지 못함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생명 싸게 속에 고이 보호하시니 어떻게 찾아내겠는가?
다윗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기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윗이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물을 수 있다는 것과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울과 사람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이런저런 음모를 꾀하며 사람들이 다윗을 어려움에 넘기려고 사울에게 고발하여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켜주시는 한 그런 모든 수고는 다 헛수고가 될 뿐이다.
성도들도 살다 보면 삶의 두려운 일이 얼마나 많이 생겨날지 모른다. 그럴 때 성도로서 기억하고 기억할 것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고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도를 사랑하시고 완벽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담대하자. 아멘!
참고로 하면 유익한 글들
▮ 땅에서 얻을 수 없는 유일한 보석이 진주(珍珠)이다. 다른 보석은 모두 광석이나 돌에서 캐내지만, 진주만은 바다에서 얻어진다. 서양에서는 시집가는 딸에게 ‘얼어붙은 눈물’이라고 불리우는 이 진주를 선물하곤 한다.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진주의 아름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진주가 만들어진 과정에서 얻어지는 교훈 때문이다. 조개 안에 모래알이 들어가면, 조개는 그 모래알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그러면 조개는 그 아픔을 참아내기 위해서 특수분비물을 발산한다. 모래알이 고통을 가하면 가할수록 자꾸만 분비물을 발산하게 되고, 그 분비물들이 모래알을 싸고 싸서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간다. 그러기에 진주는 조개가 모래알 때문에 겪는 고통의 결과물로 얻어진다. 만일 조개가 자신의 몸 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커다란 고통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래알 때문에 결국 자신의 살이 썩어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
▮ 이 세상에 고통이나 역경을 통과하지 않고 얻어지는 승리의 기쁨은 없다. ‘에델바이스’라는 작지만 아름다운 꽃이 있다. 주로 유럽의 알프스산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이 꽃은 아주 추운 겨울에 눈 속에서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맺다가, 훈훈한 봄바람에 눈이 녹아내리면 그 청초하고도 앙증스러운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기에 흔히 에델바이스를 ‘인고(忍苦)의 꽃’이라고 부른다. 에델바이스는 추운 겨울의 폭설과 강풍을 견뎌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귀한 꽃이다. 일교차가 심하고, 추위가 강할수록 에델바이스는 더욱 신비로운 빛깔을 드러낸다.
아랍 속담 중에 ‘해만 밝게 비치고 비가 오지 않으면 사막이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에 매일같이 햇빛만 비친다면 우리의 삶은 메마른 사막처럼 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시대가 평안과 즐거운 일만 가득하다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신앙인의 아름다운 삶은 어려움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 기도는 예비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위험한 고비들을 미리 대비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에 게으른 이유는 지금은 별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안하고 배부를 때에는 대부분이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위기가 닥치면 그때부터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우리들의 기도 습관이다. 물론 성경에는 위기의 때, 환난의 때, 고난의 때에 부르짖으라고 말씀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도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는 것이다. 미리미리 우리들의 삶에 닥치는 재난과 위험을 예방하고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다.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일들까지도 기도하는 자들에게 보여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영적으로 민감하게 깨어 있는 사람은 위기를 잘 감지한다. 그래서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산속의 짐승들은 일기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다. 지신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의 움직임도 미리 감지하고 움직인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민감하게 교류하고 살 때, 우리의 영의 안테나가 우리의 삶에 닥쳐오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포착하여 그 중에서 위기의 상황은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예민하게 감지하여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갈 수 있다.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사울은 기도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도 순종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항상 다윗의 뒤만 쫓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르기 위해 영적 안테나를 하나님을 향해 고정하고 살았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바르게 듣기 위해 항상 하나님께 물었다. 그 결과 다윗은 항상 앞서가는 인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1890년 조선에 의사 선교사로 온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은 평양에서 선교를 하고 서울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추운 겨울날 노상에 강도를 만나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홀 선교사가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물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돌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 사람을 업고 다시 오던 길을 가서 여관에 맡기고 자기 돈을 모두 주고 그 사람을 돌봐 달라고 하고 서울로 출발했다. 갖고 있던 돈을 모두 여관 주인에게 주었으므로 이제 초라한 음식을 하루 한끼 밖에 먹지 못하고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전부터 안면이 있었던 일본인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의사는 샛길로 여행할 계획이었는데 이상하게 큰 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다가 홀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일본인 의사가 돈을 줘서 무사히 서울까지 올 수 있었다(셔우드 홀 / 김동열 옮김, 『닥터 홀의 조선 회상』 (서울: 좋은씨앗, 2003), 110-111.).
▮ 믿음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 어느 병이 깊게 든 환자가 있었다. 좋다는 약은 다 먹어 보았고 용하다는 의사란 의사는 다 만나 보았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고 숨을 거둘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심방오셔서 말씀하셨다. ‘지금 당신의 병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혹시 당신이 지금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있는 이가 있습니까? 미움을 가지고 죽으면 안 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환자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자기가 미워하며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제가 용서하여 주어야 할 사람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후 한 주간동안 이런 기도는 계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1주일동안에 무려 500명이나 되는 사람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미워하고 상처를 주고 용서하여 주지 못하였음을 깨닫고 나니 눈물이 펑펑 쏟아져 흘렀다. 이런 영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한 명 한 명을 위하여 용서하며 눈물을 흘리면 기도하고 전화하고, 기도하고 전화하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을 미워하였음을 용서하여 주세요.’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이렇게 영을 정리하는 동안에 마음에 평안이 찾아 들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인간관계의 동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믿음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 고통의 섭리 / 고통에 관한 몇 가지 명상 ❶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다. ❷ 전에는 몰랐으나 고통을 당한 뒤 비로소 자산의 모습을 보게 된다. ❸ 고통당할 때는 스스로를 축소 지향적으로 여기지 말라. ❹ 고통의 상황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고통 너머의 절대자를 의지하라. ❺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신다. ❻ 고통의 때는 새로워질 수 있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다. ❼ 인간의 절망은 복된 섭리의 시작이다. ❽ 고통의 때에 서로가 하나 될 수 있다.
❚ 고통을 보상하는 회개 / 1939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강당에서 마펫(1864-1939) 목사 선교4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교회 초기선교에 있어 등불이었던 마펫 목사는 감회어린 표정으로 이런 답사를 했다. ‘제 턱엔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어느날 저녁 예배인도차 교회에 가는데 돌멩이가 마구 날라와 제 턱을 쳐 큰 상처를 낸 것입니다. 평양 깡패들의 소행이었는데 바로 그 깡패 중엔 지금 저쪽에 앉아 있는 이기풍 목사도 있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목사까지 되었으니 나는 상처가 났어도 기쁩니다.’ 장내는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 고통과 시련 중에서 / 연주를 듣다가 왕이 벌떡 일어났다는 그 유명한 ‘할렐루야’를 작곡한 헨델은 건강이 매우 나빴다고 한다. 그는 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남의 돈을 빌려 썼다. 그러나 건강도 찾지 못했고 돈도 갚지 못했다. 결국 반신불수의 비참한 상태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때 그는 불행했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남긴 불후의 음악인 할렐루야를 작곡한 곳은 바로 이 감옥이다. 소설가 O.헨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은행원으로 근무할 때 부정 대출에 관련되어 감옥에 들어가야만 했다. 거기에서 그는 무료함과 고독을 견디는 방편으로 글을 썼다. 그것이 저 유명한 「마지막 잎새」다. 미국에서 네 번이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은 루즈벨트뿐이다. 그 역시 소아마비로 지체가 부자유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초강대국의 영도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헨델, 헨리, 루즈벨트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감사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기에 그들은 고통의 심연 속에서도 위대한 음악, 위대한 글, 위대한 업적을 건져올릴 수 있었다. 지금 고통과 시련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가만히 귀 기울일 일이다. 나직하나 분명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하나님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일이다. 당신을 사랑하기에,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결코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 계산된 고통 / 절제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계산된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역량과 지구력을 키워 주는 도전 상황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밀어 넣는 행동이다. 자신을 절제하는 과정에서 실패의 쓴 잔도 마시고, 굴욕감도 느낄 것이다. 게다가 만족과 성취는 자꾸만 뒤로 미뤄진다. 절제를 아는 사람은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제의 시기가 모두 끝난 뒤에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박수 갈채와 찬사를 보내는 보상이 찾아온다. 육상 선수, 레슬링 선수, 수영 선수들은 모두 자신에게 더 큰 장기간의 지구력과 더 빠르고 강한 체력을 요구함으로써 자기 몸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밀어올린다. 피로하거나 고통스럽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정신적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몸의 편안함보다는 의지대로 몸을 움직인다.이 원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엄청난 임무를 감당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영적 성장의 길」 / 고든 맥도날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