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7월 20일(월) 베드로후서 2:1-3 찬송 436장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신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개역 개정)
- 거짓 교사의 정체 및 속성 -
오늘 말씀은 성도의 신앙 생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거짓 교사
곧 이단의 정체와 특성 및 이단의 사설(邪說) 등에 논박하고 있는
본서 본론 2:1-3:13까지의 일련 기사의 개시 부분이다.
이미 도입부 1:3-21에서 암시하였거니와 성도에 대한 이단의 2대 공격 목표는
도덕적 탈선과 정통 교리에서의 이탈, 특히 그리스도 재림에 대해 부인하는 것이다.
이에 베드로는 본론에서 이러한 이단의 실체와 그들의 죄상 및
이단 사설의 허구성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성을 밝히 드러냄으로써
성도들이 이를 분명히 깨닫고 올바른 신앙 생활을 위한
경계의 지침으로 삼도록 하고 있다.
이런 맥락하에 본론에 대한 일종의 서론격인 본문에서
베드로는 거짓 교사 곧 이단의 출현에 대해 예고한 후(1절)
이단의 정체와 속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먼저 본문에 언급된 이단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언젠지 모르게 교회 안에 몰래 들어와 거짓 교사 노릇을 하는 중에
또 다른 이단, 곧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이는 자이다.(1절)
본문에서 베드로는 마치 거짓 교사와 이단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실상 이들은 동일한 부류이며 다만 거짓 교사들은
마치 밭의 가라지처럼(마13:24-30) 언젠지 모르게 교회 안에 들어와
표면적으로 성도들과 동일한 신앙 생활을 하며
또 선생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던 자들이고,
이단은 그 후에 거짓 교사들에 의해 끌어 들여진 것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구속 교리를 부인함으로써
스스로 임박한 멸망을 자초하는 자이다.(1절)
그리고 이단의 속성에 대하여는
① 도덕적으로, 특히 성적으로 극도로 타락한 행위들을 일삼으며(2절)
② 자신의 탐심을 채우기 위하여 자신들이 지어낸 사설(邪說)로 성도들을 미혹한다.(3절)
이상의 본문의 내용을 통해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사단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 즉 친구나 같은 교우들
심지어 교회안에서 신앙의 지도자로 가장한 거짓 교사들을 통하여
성도들을 자주 미혹하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행20:28-3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경계할 때에
동복이나 형제나 자녀나 품의 아내나 자신과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꾈지라도 결코 유혹당하지 말며 그를 돌로 쳐죽이라고 했다.(신13:6-10)
이는 우리 자신들이 인정에 이끌리어
이단의 미혹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함을 보여 준다.
둘째, 예수께서 열매를 보고 그나무를 알라고 교훈하신 바(마7:15-22)
우리는 이단의 행위들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그들을 분별하고 경계할 수 있다.
이단은 자주 광명한 천사처럼 자신을 가장한다.(고후11:14)
때문에 겉모습만 보고는 그가 이단인지 광명의 천사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미혹되지 말고
근본 타락한 자들은 타락한 행위들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바
그 행위를 보고 이단을 분별해야 한다.
셋째, 이단을 분별하는 또 한 가지 방법으로서 그가 자기 행위나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 아니면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있는지를 살펴
이단의 여부를 분별할 수 있다.
이단이 어떤 사설을 꾸며내어 퍼뜨림으로써 성도들을 미혹하는
첫 번째 목적은 자기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의 표면적인 내용보다 그 배후에 그 이야기를
말한 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이단을 잘 분별해야 한다.
3절)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상반절에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라고 말씀한다.
성경에서는 ‘탐심’이라는 말을 거의 대부분
‘돈에 대한 욕심’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물질이나 이해 관계에 대한 탐욕스럽고 부정스러운 갈망을 가리킨다.
거짓 교사들은 바로 이러한 탐심을 가지고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돈에만 관심을 두어 자신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만
저울질하고 있다고 베드로 사도는 고발하고 있다.
거짓 선생들은 영혼이니 생명이니 하는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들은 ‘교묘히 만든 이야기’(벧후1:16)들로
성도들을 유혹하고 아첨하며, 달콤한 이야기들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의 돈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 애쓸 뿐이다.
마치 예수님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들을 취급하면서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요2:13-17)
이처럼 거짓 선생들의 모든 활동들의 근본 동기는 바로 탐심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도 발견하게 된다.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밖으로는 앗수르 제국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웠으며,
안으로는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매우 불의하고 타락하였다.
게다가 이때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종교적인 활동을 하였다.
미가 선지자는 그들을 이렇게 고발한다.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미3:11)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들은 어떠한가?
교회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교회들이 자신들의 몸집을 불리거나 여러 가지 수익 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돈 많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교회로 이끌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는가?
혹은 ‘하나님께 귀한 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더 귀한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다’라는
달콤한 이야기들을 교묘히 이용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헌금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이 물음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태도와 말을 다시 한번 냉정히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 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미3:12)고 한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성도를 미혹하는 거짓 선생들의 근본 동기는 바로 탐심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어떠한 말도 서슴지 않고 지어내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양 외쳐댄다.
그리고 성도들을 연약한 하나의 영혼으로 보기보다는
이익을 저울질하는 하나의 상품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들의 아첨하는 말과 교묘한 언행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
자신의 몸과 마음과 물질을 드려야 한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롬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