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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정성들여 몸과 마음을 순일하게 하는 곳, 정사(精舍). 부처님 당시의 수행처인 죽림정사나 기원정사에서 따온 이 정사(精舍)라는 이름은 사찰이나 암자와 동일한 성격을 가진 명칭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해 보면 ‘수행’에 가장 걸맞는 어휘로 여겨지기도 하니 바로 오늘의 혜원정사를 이름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수식이다.
불교를 배워 깨달음을 찾고자 하는 이라면 반드시 닦아야 할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 이 삼학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수행의 동산’혜원정사(慧苑精舍)는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묘봉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부산지역 포교의 핵심사찰이다. 푸르게 우거진 묘봉산 언덕, 나한바위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여법히 자리한 혜원정사는 채 1백년도 되지 않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 도심포교의 성공적 기능을 보여주는 흔치않은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일반인들을 위한 시민선방과 철야기도객들을 위한 24시간 산문개방 등으로 널리 알려진 혜원정사, 그러나 이 사찰이 제대로 된 사격을 갖추고 불자들을 맞이하게 된 것은 불과 30년 남짓한 일이다. 천막조차 없던 이곳에서 처음 노천법회가 시작된 이후 초가삼간 같은 가건물이 하나 둘 들어서고 겨우 법당으로서 구색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무렵. 이어 육화전, 대웅전 등 여러 대작불사를 연차적으로 거듭하며 1만여 평의 넓은 대지에 명심전, 만불전 등 10여동의 건물을 갖춘 손색없는 도량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기까지 혜원정사 사부대중의 노력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황량하고 척박하기만 하던 빈터에 이와 같은 대작불사를 이루어 낸 고산스님(조계종 전 총무원장)과 혜원정사 선지식회 회원들은 오직 이 땅에 불법을 전하려는 신심과 원력 하나만으로 똘똘 뭉쳤던 것이다. 오늘날 혜원정사는 지역내 각급 학교와 연대한 수많은 장학사업, 복지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을 뿐 아니라 교육 연대를 통한 전통문화의 산실로 더 높은 위상을 갖추고 있다. 또한 육화정신을 바탕으로 한 불교대학, 시민선방, 고산장학회 등을 운영하는 등 ‘받는 불교에서 베푸는 불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땅에 실천하고 있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관람 포인트] 전통사찰다운 면모를 잃지 않으면서도 도심사찰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혜원정사. 우선 이 사찰의 일주문 격인 범종각 하층의 천왕문을 들어서면 글자 그대로 1만 부처님을 모신 전각 만불전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이 없는 기도객들을 위해 24시간 개방하는 만불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과 함께 금박을 입힌 1만 불상, 각양의 비천상들이 장식된 천장화 등 만상이 일체가 되어 화엄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독특한 불전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곳은 중단구역의 명심전 시민선방으로 이곳을 찾을 때는 특히 발소리를 낮춰야 한다. 법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불자들이 하루 일과 중 짬을 내어 참선 수행을 하는 곳으로 넓은 선방에서 울러 퍼지는 죽비소리에 맞춰 긴 호흡을 가다듬어 보는 것도 혜원정사를 제대로 참배하는 요령 중 하나.
명심전에서 상단 구역으로 오르는 등나무 오솔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짧은 거리이지만 그 정취가 남다르다. 이 길은 부처님 진신사리 2과가 봉안되어 있는 5층석탑전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바로 방장실 앞 정원과 맞닿아 있다. 사시사철 푸른 수목과 갖가지 화초들 곁에서 지친 마음을 쉬어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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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정사의 창건은 1925년 일제의 한국강점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근마을에 살고 있던 김덕만(金德萬)이라는 노인이 땔감나무를 하러 이곳 산에 왔다가 우연히 옛 절터를 발견하였는데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렴풋이 불심을 지니고 있었던 터라 부인 김순임(金順任)씨와 함께 이곳에 작은 사찰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옛 절터를 발견한 김덕만 할아버지는 부인과 함께 다음 생에 왕생극락할 것을 발원하고 가산의 일부를 털어 어렵게 금동부처님 한분을 조성하여 두 내외의 원불(願佛)로 삼았고, 이 절터에 3간 목조기와로 된 금당(金堂)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후 부부는 30여년간을 더 머물며 염불수행을 하며 지내다 여생을 마치게 되었고이 부부의 자손들이 사찰을 10여년간 계승 유지하다가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폐사 되었다.
오늘날 혜원정사가 지금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은 고산스님이 1975년, 사찰터를 살펴보기 위해 이 지역을 답사하던 중 옛 절터를 발견하게 되고 사찰재건을 결심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1934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나 1946년 동산스님을 은사로 범어사에서 출가. 18년 동안 제방선원에서 안거하였으며, 1961년 직지사 강원 대교과를 수료하였다. 깊은 불교학문의 섭렵으로 당대의 대강백인 고봉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고, 석암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아 선과 교, 그리고 율을 겸비한 선지식이자 대강백, 대율사이다.
청암사, 범어사 등의 강원에서 학인을 가르쳤고 조계사, 은해사, 쌍계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부천 석왕사, 부산 혜원정사, 통영 연화도 연화사 등을 창건하여 지역포교에 남다른 열의를 보이는 등 실천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고산스님은 현재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경남 하동 지리산 쌍계사 조실이자 부산 혜원정사의 방장으로 주석하고 있다.